제 목 : 2019년 1월 27일 - 전도사역에 제자들을 파송한 예수님(막6:7-11)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9-01-27 |
첨부파일: 전도사역에 제자들을 파송한 예수님.hwp(21K) |
전도사역에 제자들을 파송한 예수님(막6:7-11)
지금까지 예수님은 혼자 가르쳤고, 홀로 권능을 행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권능을 보기 위해,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와야만 했다. 자연히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몸에, 손을 대려고, 에워싸 밀곤 했다.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모든 촌을 두루 다니며, 가르치기가 용이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공생애도, 절반가량이 지나, 앞으로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녀야 할 마을들은, 아직 많이 남았기에, 이때부터 예수님을 대신하여, 그의 제자들을 각 마을에 파송했다.
예수님이 가르치고, 권능을 행한 그대로, 그들도 가르치고, 권능을 행할 것이다. 그만큼 복음 전파의 효과는 커지고, 사람들은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몰려들지 않아도 된다. 예수님은 파송 받는 제자들에게 몇 가지의 중요한 당부를 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증인이기에, 깊이 새기기를 바란다.
1. 제자들을 부르고, 둘씩 보내는 파송을 함(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고, 둘씩 둘씩 짝을 지어, 갈릴리의 모든 촌으로 보냈다. 여섯 팀으로 나누어서 파송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교회가 성장하려면, 모이고 나누어지는 리듬이 활발해야 한다. 함께 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더, 훈련을 받아야 했다. 따라서 둘씩 서로 도와가면, 할 일을 할 때, 잘 감당할 수 있고, 듣는 사람들에게 신뢰감도, 줄 수 있다.
예수님이 칠십 인을 세웠을 때도, 둘씩 보냈다(눅10:1). 나귀 새끼를 준비하게 하실 때도, 두 제자를 보냈다(막11:1). 유월절 음식을 먹을 객실을, 준비하게 할 때도, 두 제자를 보냈다(막14:13). 제자들을 보내면서,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었다. 귀신들을 제어하는 권능은, 제자들의 특권 중에 하나다.
병을 고치는 권능도 주었다(눅9:1).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도 주었다(마10:8).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림은, 예수님이 행한 권능들이었다. 이런 권능을 제자들도, 다 행할 수 있게 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기에, 자신의 권능들을 그대로, 제자들에게 줄 수 있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왜 이런 권능을 주었나? 그들의 가르침에, 권세를 더하여 주고, 그들이 행하는 놀라운 권능들을 보면서, 그들의 가르침을, 진리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제자들이 행한 권능을 통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예수님의 긍휼을 나타내기를 바랐다.
예수님은 전능한 하나님이기에, 어떤 권능도 행할 수가 있다. 마귀가 시험한 대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그런 식으로, 권능을 행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 때만, 그의 권능을 행했다.
예수님이 귀신을 내쫓은 것도, 귀신들린 사람을, 긍휼히 여겼기 때문이다. 병을 고친 것도, 병든 자를 긍휼히 여겼기 때문이다. 죽은 자를 살린 것도, 죽은 자의 가족들을, 긍휼히 여겼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런 권능을 통하여, 예수님의 긍휼을, 나타낼 수 있었다.
이처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권능을 준 목적은 2가지다. ① 그들의 가르침에 권위를 더하기 위해서, ② 그들을 통해, 예수님의 긍휼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우리도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살자. 예수님은 우리를 사용해서, 죽은 영혼들을 살릴 것이다. 병든 심령들을 고치며, 그들의 삶을 새롭게 할 것이다.
2. 전도여행 동안, 지켜야할 원칙들(8~9).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여행’(호도스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고 했다.
예수님이 그들을 돌보기 때문이다. 삶을 책임지기 때문이다. 그 동안 예수님은, 제자들과 항상 함께 하면서, 친히 보살펴주었다. 이제 예수님을 떠나, 전도 여행을 가도,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예수님이 변함없이, 그들과 함께 하며, 돌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가져갈 것과, 가져가지 말 것을 말씀했다.
(1) 가져가야 할 것
① 지팡이다. 이스라엘에는 높은 산 위에, 동네가 많았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 장거리 여행을 하는데 필요를 덜어주기에 아주 용이했다. 특히 들짐승이 성가시게 굴 때, 지팡이는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그렇지만 여분의 지팡이는, 허락하지 않았다. (마10:10)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그들의 지팡이가, 부러지지 않도록, 예수님이 돌보아주기 때문이었다.
② 신이다. (마10:10)은, 신을 가지지 말라 했다. 여분의 신은, 가지지 말라는 뜻이다. 지금 신고 있는 신만으로도 족하다. 신이 떨어져서, 그들의 발이 부르트는 일이 없도록, 주님께서 돌보기 때문이었다. 선교와 전도는,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다.
③ 옷이다. 두 벌의 옷도, 필요하지 아니했다. 그들이 입고 있었던, 한 벌의 옷만으로도 족했다.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이, 그들을 입히시며, 그들의 옷이 헤지지 않도록, 돌볼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섭리와, 도움이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2) 가져가지 말아야 할 것
① 양식이다. 그들은 여행 도중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아야 했다. 공중의 새를 기르시는 하나님이, 때마다 일용할 양식을, 그들에게 공급해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② 배낭이다. 그 안에 양식을, 넣을 수도 있다. 또는 여분의 지팡이나, 신발 또는 옷을 넣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주님이, 모든 것을 책임질 것이기에, 그런 것들을 예비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배낭을 가지지 말라고 말씀했다.
③ 전대의 돈이다. 전대는 돈을 넣어서, 어깨나 허리에 두르는, 띠를 말한다. 먹을 때가 되면, 주님이 먹을 것을 공급해 줄 것이다. 잠잘 때가 되면, 주님이 잠잘 곳을, 마련해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전대의 돈을, 가질 이유도 없었다.
그들은 전도 여행을 하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필요는 없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주께서 모든 것을, 책임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전적으로 예수님을 의뢰해야 했다.
(눅22:35)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그들이 전도여행을 할 때,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을 돌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일생토록, 옷도 한 벌만 입고, 신발도 하나만 신고, 살아야하나? 아니다.
그때 제자들은 훈련 중이었다. 그들의 훈련은 며칠, 길어야 몇 주 정도였다. 훈련을 통해서 전적으로 예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사정이 다르다.
(눅22:36)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하나님이 준 것으로 준비하며, 스스로 보호하며 사는 것이, 일상적이며 지혜롭다. 살다 보면 형편이 어려워질 때가 있다. 아무 것도 없을 때가 있다. 그러므로 이런 때를, 준비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예수님의 말씀에서, 마음에 새겨야 할, 교훈이 있다. 탐심을 없애라는 교훈이다. 귀신을 내쫓으며, 병을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참 놀라운 권능이다. 따라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부를 축적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배낭도 가지지 말고, 전대의 돈도 가지지 말라고 했다.
그러한 것들이 있으면, 탐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힘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10: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했다. 축적하지 말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놀라운 권능들을, 아무런 값도 없이, 거저 주었다. 그러므로 제자들도 자기들이 받은 권능들을 행하되, 사람들에게 거저, 마땅히 행해야만 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었다.
그러면 목회자들은, 사례비를 받지도 말아야 하는가? 그런 뜻은 아니다. (마10:10下)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예수님은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했다. 예수님이 바라는 바는, 탐심을 없애라는 것이다. 우리는 탐심을 없애야 한다.
(잠30:8-9)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모두 탐심을 없애고, 예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자. 그리하면 예수님은, 항상 우리에게 족한 은혜를, 줄 것이다. 또한 그러나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워야 한다(빌4:11). 있는 것에 족한 줄로 알고, 자족하는 마음을 갖자. 항상 이러한 긴장감을, 잊지 말기 바란다.
3. 거처할 곳이 정해지면, 떠나지 말고 계속 유하라(10).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이제 예수님은, 그들의 숙소에 관한 지침을 말씀했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놀라운 권능들을 행할 것이다.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면, 사람들이 그들을, 자기 집으로, 모시고자 할 것이다. 그 때, 어떤 사람의 집에 머물러야 하나? (마10:11)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부유한 자가 아니라, 합당한 자다.
은혜 갚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자에 머물라고 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건하게 살아가는 가정을, 찾아야 한다. 일단 합당한 자의 집을 찾아 거한다면, 그 곳을 떠나기까지, 그 집에서 유하라고 했다. 환경이 좀 더 좋은 집을 찾아서, 옮겨갈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어느 집으로 인도하든지, 처음 인도한 그 집에서, 계속 머물러야 한다. 잠자리가 불편할 수 있다. 먹는 음식도, 보잘것없을 수 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아야 한다. 그러나 열둘 가운데 한 사람은, 족한 줄을 몰랐다. 탐욕에 사로잡혀,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그는 가룟 유다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에서, 배척받는 것을 보았다. 따라서 제자들은, 그들도 같은 경우를 당할 수 있다고 여기고, 사람들이 그들을 영접하지 않고, 말을 듣지 아니할 때,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궁금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11)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예수님은 ‘거기서 나갈 때에’라면서, 거기서 나가라고 했다.
복음을 배척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어느 집이나, 어느 성이, 그들을 영접하지 않으면, 더 이상 그 곳에서, 시간을 허비할 이유가 없다.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며, 권능을 행해야 할 것이다. 거기서 나갈 때에는,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말씀했다.
이런 행위는, 유대인들의 풍속이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부정하게 여겼다. 그래서 이스라엘 땅을 벗어났다가, 되돌아올 때는, 반드시 몸에 묻은 먼지를 떨어버렸다. 당시에는 먼지가 많았기에, 여행을 하면, 신발이나 옷, 몸에 먼지가 묻었다.
이방 땅의 먼지로, 이스라엘을 더럽힐 수는 없기에, 이스라엘로 들어오기 직전, 머리와 옷을 털었다. 신발에 묻은 먼지도 떨어버렸다. 따라서 제자들을 영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처럼, 여기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거부하는 것은,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다.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은, 단호하게 예수님의 제자들을 배척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받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심판뿐이다. 예수님을 거부하고서는, 아무도 구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증거가 있으면, 긴말이 필요 없다. ‘smoking gun’에 따라, 판결이 있을 뿐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들을 배척하는 곳을 떠나며,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리면, 그것이 증거가 되어,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질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기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할 때, 박해받고 쫓겨났다.
그때 (행13:51)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행18: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바울은 고린도에서, 그의 옷을 털면서, 그를 대적하는 유대인들에게 증거를 삼았다.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그가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 즉시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리면서, “너는 지옥행”이라며, 그에게 증거를 삼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도, 구원받지 못했을지 모른다.
(고후5: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먼저 충분하게 권면하고, 진심으로 간청해야 하지만, 끝끝내 거부한다면, 그를 이방인처럼 여기고, 떠나야 한다. 더 이상 내 노력으로 되지 않으니까, 하나님께 맡겨야만 한다.
예수님의 증인은 어떠해야 하는가? 협력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성령으로 긍휼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전적으로 예수님을 신뢰하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 탐심을 없애고,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해야 한다. 또한 분별력을 가지고, 대처해야 한다.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복음을 주변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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