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8년 12월 23일 - 성탄의 주님을 올바로 맞자(눅2:1-14)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8-12-23 |
첨부파일: 성탄의 주님을 올바로 맞자.hwp(22K) |
성탄의 주님을 올바로 맞자(눅2:1-14)
인간이 겪는 일상에서, 제일 아픈 것은, 거절당하는 아픔이라고 한다. 대학시험, 입사시험에 떨어지는 것도, 거절의 일종이기에, 무척 고통스럽다. 어른을 요양원에 모실 때도, 자식들에게 거절당한 아픔을 느낀다. 그런데 예수님이 올 때, 사람들이 철저하게 거절하는, 아픔을 당했다.
(사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 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람도 사람에게 거절당하면, 참기가 어렵고, 고통스럽다.
그런데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에게 푸대접당할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요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주님은 우리를 구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왔는데, 무지한 인간들은, 주님을 기다린다면서 영접하지 않았다.
영접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박해하고, 심지어는 죽이려고 했으니, 정말 기막힌 일이 아닌가? 몰라서 그랬다면 이해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탄생의 소식을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올 때 ① 거절한 사람들, ② 환영한 사람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먼저 거절한 사람들은 누군가?
(1) 베들레헴 여관 주인이다(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여관 주인은 요셉과 마리아가, 임신한 몸으로 방을 찾을 때, 그를 외면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방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방이 없어도, 임신된 여인이, 방이 없어서 찾는 것을 보고도, 무시했다. 그 속의 탐심이, 양심을 마비 시켰던 것이다.
한몫을 챙겨야 하겠다는 마음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돌볼 마음을, 갖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인간의 탐심이, 예수님을 외양간에 태어나게 만들었다. 짐승이 사는 외양간, 그곳에서 예수님이 탄생한 것이다. 우리를 구하러 오신 주님이, 짐승대접을 받았다. 비극 중에 비극으로, 안타깝게 만든다.
그 여관 주인이 천국에 있을지, 지옥에 있을지 모르겠으나, 믿었으면 천국, 안 믿었으면 지옥이지만, 어디 있든지, 참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주님이 찾아오셨는데, 내가 예수님을 내쫓다니…,”하면서, 애통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작은 이익에 눈이 어두워서, 혹시 예수님을 거절하고 있지는 않는가?
생업에 너무 바빠서, 예수님을 밖으로 내쫓고 있지 않은가? 성탄절에 세상 장사꾼들은, 한몫 챙기는 시기다. 그들도 성탄절이, 예수님이 탄생의 날로 알지만, 믿고 영접하지는 않는다. “축 성탄”이라 새긴 카드도 팔고, 선물도 팔지만,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 교회를 다닐 마음도 없다. 여관주인과 똑같다.
(2) 당대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다(마2장).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찾아 와서 물었다. (2上)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그래서 (3-4) “헤롯…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6)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겔34장과 미5장2절)을 인용하여, 베들레헴이라고 가르쳐주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동방 박사들이 베들레헴으로 갈 때, 따라가지도 않았다. 동방박사들이 수 천리 떨어진 곳에서, 메시아, 유대인의 왕의 탄생을 축하하러 왔다는데,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바탕 소동으로, 끝을 맺었다.
왜 동방박사들을, 안 따라 갔을까? 지식적으로는 메시아가, 베들레헴에 탄생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실제로는 못 믿은 것이다. 그러니 수천 년을 기다린 메시아가 오셨는데도, 잠시 소동을 피우고 말았다. 얼마나 한심스러운 일인가?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입술로만 믿었지, 삶으로는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대제사장이, 성경을 가르친다는 서기관들이, 어찌 이 엄청난 일을 했을까? 아마 그들도 마찬가지, 그 기회를 잃고, 예수님을 무시했던 그 일로, 영원토록 후회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3) 예수님을 죽이려던 헤롯왕이다(마2장).
그는 동방박사들이 묻는 말에, 깜짝 놀랐다. “유대인의 왕!” 당시는 반역, 혁명이 자주 일어나던 때라 유대 땅을 다스리던 헤롯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야 할 소리였다.
왜냐하면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었다. 이두매인이었다. 유대인도 아닌 사람이, 유대나라를 다스리고 있으니, 쿠데타 같은 것이 일어날까, 늘 전전긍긍했다. 그런데 유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하니(2), 소동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제사장,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놓고, 메시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묻고(4) 동방박사들에게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고 요청했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간계였다.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를 축하하고, 경배하지는 못해도, 정치적 욕심에 사로잡혀, 죽이려는 짓을 한 사람이 헤롯이다. 나중에 동방박사들이, 다른 길로 돌아가자, 사람들을 보내서 베들레헴 땅에 태어난 아기들을 몰살시켰다(16).
헤롯은 마귀의 세력을 상징한다. 예수님의 나라를 망하게 하려는, 사악한 마귀의 앞잡이다. 메시아가 자기가 통솔하는 지역에 탄생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죽이려고 했던, 권력에 사로 잡혔던 헤롯, 그는 분명히 지옥행이었을 것이다. 그 곳에서 얼마나 통탄해 할까? 이 시대에도, 헤롯 같은 이들이 있다.
예수님을 대적하는 세력, 하나님 나라를 향해, 칼을 빼드는 세력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대표적인 세력이 공산세력이고, 모슬렘과 신천지다.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사망으로 끌고 가는, 무시무시한 세력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 헤롯 같은 이들이 있다.
2. 기뻐하며 환영한, 그들은 누구일까?
(1) 양을 치던 목자들이다(눅2장).
베들레헴 들판에,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천사들에게,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눅2:10-11)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양을 치던 목자들은 깜짝 놀랐다. 양과 함께, 밤을 새우는 중에, 정말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즉시, 베들레헴으로 빨리 가서, 아기 예수님을 만났다. 성탄의 아기 예수님은, 목동에게 경배받았다. 그러면 천사들은, 왜 목동들에게 나타났나? 차라리 헤롯왕에게든지, 아니면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에게 나타나지, 왜 목동일까? 2가지 이유 때문이다.
① 예수님이 장차 백성들의 목자로, 사역할 것이기 때문이다.
② 그들이 올바로,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도 올바로 믿어야만, 성탄을 맞이할 수 있다. 자기 일에 성실하기도 해야 하나, 예수님을 목자로 올바로 믿어야, 예수님을 맞이하는 것이다.
(2)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다(마2:1~2)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동방박사가 몇 명인가? 3명이라고 하지만, 정확한 것은 모른다. 예물이 3개이기에, 3명이라고 했다. 그들은 먼 곳에서부터 왔다. 지금의 이라크나, 이란에서 온 사람들이다. 한 달간의 여행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들은 하늘의 별을 연구하던 사람들이다. 이를테면 천문학자들이다.
그들이 어느 날, 이상한 별 하나를 발견하고, 그 별이 유대인의 왕의 탄생을 알리는 별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별만 보고 따라왔다가, 예수님을 만났다. 동방박사들이 만난 그 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 별은 특별한, 하나님의 인도한 계시를 상징한다.
“계시”는 하나님 자신과, 자신의 뜻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①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을, “일반 계시"라 한다. 종교적인 본능, 도덕성(양심), 우주를 통해서 알 수 있다. ②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보여 준 것을 "특별 계시"라고 부른다. 성경을 통해서만 완벽한 계시를 보여준다.
동방박사들을 예수님께 인도 한 그 별, 오늘 우리에게는 성경이, 그 역할을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며,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 바로 알아서, 그분을 영접해야 한다. 성경은 예수님을 만나는 유일한 길이다. 성경을 통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완전히 거짓이며 속임수다.
계시에 대해 (계22:18中-19)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완성되어, 성경을 통해서만 계시한다. 그러기에 참 믿음으로, 성경을 배우고 전하자. (미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고 했다.
이 예언은 예수님이 태어나기 700년 전, 미가 선지자가 예언한 것이다. 예수님이 메시아로 태어나는 것을, 사람들이 모르고 있을 때에, 동방의 박사들이 예루살렘을 찾아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물었다. 새로운 왕이 나셨다는 말 때문에, 헤롯왕은 한바탕 소동이 일으켰다.
헤롯왕은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묻자, 저들은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라고 했다. 그러면 동방박사들은 어떻게, 아기 예수님이 태어난 것을 알고 찾아왔을까?
(민24:17中)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했다. 이 예언은 예수님이 태어나기 1500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발람 선지자가 예언한 것이다.
이 예언은 페르시아의 천문학자들인, 동방박사들에 의해 성취되었다. 별을 관찰하던 동방 박사들은 ‘한 별’을 보게 되었는데,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별이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메시아로 온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강한 감동과 이끌림을 받았다. 동방 박사들은 이방인이다.
이방인들이 어떻게, 구약 성경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을까? 유다가 멸망하여 포로로 잡혀간 곳은 동방 바벨론이었다. 귀환할 때, 고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몇 만 명에 불과하고, 바벨론에 많이 정착하여, 성전 대신 회당을 짓고, 유대인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았다. 다니엘은 지혜자들의 어른이었다(단2:48).
그들은 이 땅에 메시아가 나타나서, 구원해 줄 것이라는, 메시아 대망 사상을 가지고 살았다. 동방 박사들은 유대인들을 통해서, 메시아의 별을 알게 되었고, 그 별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우리에게는 아직 약속이 남아 있다. 예수님은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오겠다고 했다(계22:20).
(3) 시므온과 안나 선지자다(눅2:28-38).
예수님이 탄생 8일 만에, 할례를 받으러, 예루살렘 성전에 갔을 때, 그를 기다리던 두 사람이 있었다. ①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이고, ②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는 여선지자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성전중심의 생활을 했으며,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로 섬기던 사람이다. 두 사람은 다 나이가 많아, 세상의 소망이 없던 사람이다. 그런데 성전에서 생활하다가, 어느 날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영광을 누렸다.
(눅2:28절~)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① 믿음으로 주님을 기다리던 사람이며,
② 믿음을 가지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다. 이들은 살아 있는 믿음을 가졌고,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 그 약속을 삶 속에서, 실천하던 사람들이다.
3. 그러면 왜 대다수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온전히 영접하지 못했는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① 알면서도 믿지 않았다. 지식으로는 알았으나, 실제로는 믿지 않았다. 혹시 우리에게는, 그런 모습이 없는가? 그러면 예수님을, 온전히 영접할 수 없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영접하는 것이 축복이다.
② ‘설마’했다. 설마 메시아가 이렇게, 초라하게 올까? 설마 메시아가, 우리 동네에 올까? 설마 메시아가 내 옆에 올까? 그 설마가, 영광의 주가 이 땅에 오신 것을, 온전히 영접하지 못하고, 비극의 인물들로 성경에 기록되고 만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요즘 어린이들에게 성탄절이 무슨 날이냐 물으면, 산타 크로스에게, 선물 받는 날로 생각한다. 우리에게 성탄절은, 어떤 날인가? 우리는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오심을 환영하며, 축하하며 기뻐하고 있는가? 아니면 혹시 거절하는 사람, 거절했던 사람들은 아닌가?
어떤 이에게는 성탄은 축복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성탄은, 심판의 서곡이다. 메시아 되시는 예수님을 환영하고,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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