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내용
•홈  >  말씀과찬양  >  설교내용
  제  목 : 2018년 11월 11일 - 자라나는 씨의 비유를 말씀한 예수님(막4:26-29)
  작성자 : 이건기 작성일 : 2018-11-11
  첨부파일:   자라나는 씨의 비유를 말씀한 예수님.hwp(21K)

자라나는 씨의 비유를 말씀한 예수님(4:26-29)

 

본문은 자라나는 씨의 비유라고 한다. 이 비유는 마가복음에만 나온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말씀의 능력을 밝혀준다. 이 비유에는, 이중목적이 있다. 예수님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감추어지고 심판이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비밀을 더 풍성하게 알려주는, 은혜가 된다.

(4)여러 땅의 비유로 시작했다. 가장 기본 되는 비유인데, 예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까닭을 밝혔다. 그리고 등불 비유그릇 비유가 등장한다. 예수님은 이 두 비유를 통해, 말씀을 듣는 자세를 강조했다. 말씀을 들으면, 드러나게 되니, 자신의 내면이 드러나기 위해, 들어야 한다.

말씀을 들을 때,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 뒤에 오늘 살펴보려는 자라나는 씨의 비유가 나온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생명이 있기에, 싹이 난다. 잘 자라서, 풍성하게 결실하여, 추수의 기쁨을 안겨준다. 따라서 말씀을 듣고, 전하면, 말씀이 스스로 열매를 맺게 된다.

1. 말씀에는 생명력이 있다(26).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하면서 비유를 시작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씀의 능력으로 성장하며, 완성되어 간다.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3개의 명사, 사람, , 땅이 등장한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과 같은가? 다시 말해 사람과 씨와 땅, 3가지 중에, 본문의 비유가, 사람이 하는 역할은 2가지, 씨 뿌리는 것과, 추수다.

물을 주는 일, 잡초를 뽑기 위해 김을 매는 일, 거름을 주는 일 등은, 다 생략되었다. 따라서 본문은, 사람을 강조하지 않는다. 땅을 강조하지도 아니다. “여러 땅의 비유처럼, 여러 종류의 땅이, 등장하지 않고, 오직 한 가지의 땅만 나온다. 사람도, 땅도 강조하지 않았다.

본문은 씨가 나고, 자라서, 결실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씨를 강조하기에, “자라나는 씨의 비유라고 한다. (14) “여러 땅의 비유를 이렇게 해석했다.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요.” 씨는 말씀을 뜻한다. 뿌리는 사람은, 말씀을 전하는 자를 뜻한다. 땅은 말씀을 듣는, 사람의 마음을 뜻한다.

제자들은 이 같은 사실을, 깨달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본문에는 비유 내용만 나올 뿐, 비유에 대한 해석은 따로 없다. 설명이 없더라도, 이 비유가 의미하는 바를, 충분하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리는 일에서 시작된다. 즉 말씀을 전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10:14)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하나님의 나라는 말씀을 전파하는데서 시작된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힘써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 (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사람은 씨를 땅에 뿌리면, 하루 종일 그 곳을 지키면서, 앉아있지 않는다. 밤이 되면 자고, 낮이면 깬다. 필요에 따라, 물을 주기도 하고, 김을 매면서, 잡초를 뽑기도 한다. 그러면 씨가 싹트고, 자라기 시작한다. 물론 씨를 뿌린 사람이, 싹이 나고, 자라게 하는 것은 아니다.

씨 뿌린 사람은, 어떻게 싹이 트고 자라는지, 알지도 못한다. 과학자들이 인조 콩을 만들었다. 자연산 콩과 크기도 같고, 모양도 성분도, 틀리지 않았다. 그것을 땅에 심고, 최적의 환경을 부여했다. 그러나 인조 콩은, 싹트지 않았다. 그 속에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애굽의 피라미드에서, 곡식 씨들이 들어있는, 항아리가 발굴되었다. 그 씨들은 수천 년이 지난 것이었다. 그 씨들을 심자, 놀랍게도 싹이 터서 자라더니, 결실을 했다. 그 속에 생명이 있었다. 씨가 나서 자라는 것은,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에는, 생명이 있다.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고 했다. 하나님 말씀에는 생명이 있기에, 살아서 역사한다.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거듭나게 만들고, 생명을 준다.

(7:60)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은 말씀을 전한 후에, 돌에 맞아 순교했다. 그러나 그가 전한 말씀은, 사울이라는 청년 마음에서, 싹이 나고 자랐다. 결국은 사울을 거듭나게 해서, 그를 위대한 바울 사도로 만들었다. 씨가 싹틔우고 자라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

(고전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따라서 뿌린 결과에 대해, 걱정하지 말자. 우리는 열심히, 씨를 뿌리면 된다. 씨가 좋은 땅에 떨어지면, 저절로 싹이 나서 자란다. 씨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을 전하기만 하면 된다.

2. 말씀에는 성장이 있다(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예수님은 2가지를 말씀했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 열매를 맺는 과정에 대해 말씀했다.

예수님은 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고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예수님은 왜 가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고 하지 않고, “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고 했나? 애굽 피라미드에서 발굴된, 항아리 속의 씨를 생각해보라. 수천 년 동안, 그 씨들은 항아리 속에서, 씨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러다 씨를 땅에 뿌리니까, 비로소 그것이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이처럼 씨는, 땅에 뿌려져야만, 열매를 맺는다. 땅에 씨가 뿌려지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땅이더라도, 땅 자체로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좋은 땅에도, 씨가 뿌려져야, 씨가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 씨에 있는 성장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의 , 땅과 그 곳에 뿌려진 씨를 포함한, 말씀으로 보아야 한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스스로 열매를 맺기까지, 계속해서 자란다. 왜냐하면 씨가 좋은 땅에 뿌려지면, 그 씨에 내재해 있는, 성장이 발휘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씨를 뿌리는 사람이, 열매 맺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땅에 뿌려진 씨가, 열매를 맺기까지, 스스로 자라난다. 씨에는 창조주 하나님이 준, 성장이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심었던 것처럼, 우리도 말씀을 전할 따름이다. 아볼로가 물을 주었던 것처럼, 우리도 기도하며 사랑으로, 보살필 따름이다.

오직 자라나게 하는 이는, 하나님뿐이다. (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는, 사람의 힘이나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는 일이다. 우리는 말씀을 전하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착하고 좋은 마음이 있어서, 말씀이 그 안에서 열매를 맺기까지, 저절로 자라게 된다. 예수님은 열매를 맺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 말씀했다. 씨가 나서 성장하는 과정을, 3단계로 요약해서 말씀했다.

이삭 곡식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씨에 있는, 성장을 강조했다. 씨가 좋은 땅에 뿌려지면 그 씨는 계속 자란다. 곡식이 되기까지, 계속 성장한다. 서서히 성장하기에, 물론 씨가 자라나는 과정을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다.

우리가 밤낮 자고 깨는 중에, 싹에서, 이삭으로, 곡식이 될 때까지, 중단 없이 자란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에는, 성장이 있다. 말씀이 착하고, 좋은 마음에 전해지면, 말씀은 계속 성장한다. 처음에는 싹을 낸다. 다음에는 이삭을 낸다.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 된다.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이처럼 하나님이 시작한 것은, 하나님이 친히 이룬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다. 마찬가지다. 말씀에는 성장이 있어서, 싹이 나면, 이삭을 내고,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 된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씨를 뿌리는 사람이, 열매를 맺게 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열매를 맺어보겠다고 이런 훈련도 받아보고, 저런 훈련도 받아본다. 이런 방법도 써보고, 저런 방법도 써본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예수님은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기만 하면, 스스로 열매 맺기까지 자란다. 하나님 말씀에는 생명이 있고, 성장이 있고, 결실이 있기 때문이다. 생명이 자라나기 위해, 나의 이야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하지 말라. 사람의 말에 생명이 있고, 성장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전하면 된다. 또 열심히 말씀을 전했지만, 열매가 맺히지 않아도, 낙심하지 말라.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땅은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 비록 열매를 맺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다. 성장하는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자라나고 있다.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했다. 예수님은 생명의 말씀을, 힘써 밝혔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무도 많은 저항과, 장애가 있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배척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다.

또 예수님은, 그의 열두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그를 배신할 것과, 나머지 제자들도, 모두 다 그를 버릴 것을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계속 혼신의 힘을 다해, 말씀으로 그의 제자들을 가르쳤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 안에서 싹이 나고, 이삭이 되며,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 되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나라는 점차 커져,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순수하고, 바르게 전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책임지고, 자라나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하면서,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 되기까지, 계속 자라날 것이다.

3. 말씀에는 결실이 있다(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씨에는 생명이 있기에, 좋은 땅에 뿌려지면 싹이 난다. 또 씨는 성장하기에, 이삭이 충실한 곡식이 되기까지, 계속 성장한다.

그러나 씨가 싹이 나서, 끊 없이 자라나지만 않는다. 씨에는 결실이 있기에, 충실한 곡식이 되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그 대신 열매를 익게 한다.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리는 이유는, 씨에 있는 결실을 바라기 때문이다. 열매가 익으면, 추수하기 위해, 낫을 댄다.

추수를 기다려 왔기에, 지체할 이유가 없다. 열매가 익으면, 낫을 대고 추수한다. 그러면 낫을 대는 이가 누구인가? 씨를 땅에 뿌린 사람이다. 그가 직접 낫을 댈 수도 있고, 또는 일꾼들을 시켜서, 낫을 댈 수도 있다. 이렇든지 저렇든지, 씨를 뿌린 사람에게는, 추수의 기쁨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농부는 씨에 결실이 있음을 안다. (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추수할 때까지 참는 것이다. 예수님의 의도는 분명하다. 우리는 단지 말씀을 전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한다.

말씀은 살아 있기에, 스스로 성장하며,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 또한 하나님은, 말씀을 전한 우리에게, 추수의 기쁨을 안겨준다. (126:5-6)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씨를 뿌리면, 단을 거두게 된다. 씨에는 생명이 있고, 성장이 있고, 결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울면서라도, 씨를 뿌려야 한다. 추수할 때는, 씨를 뿌린 자의 눈물이 웃음으로, 또한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에도 생명이 있고, 성장이 있고, 결실이 있다.

그러므로 울면서라도,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말씀을 전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 수고를 잊지 않고, 반드시 추수의 기쁨을 허락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전도했다. 믿음의 싹이 나서, 그가 침례를 받았다. 그의 믿음이 자라더니, 그가 받은 직분에, 충성을 다한다.

이제는 영적으로 성숙해서, 다른 사람을 전도한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는, 큰 기쁨이 생긴다. 그에게 전도 받은 사람도, 똑같은 과정을 거친다. 믿음의 싹이 나고, 자라나서, 열매를 맺는다. 이러한 식으로, 우리가 뿌린 말씀은, 삼십 배로, 육십 배로, 백배로, 점차 그 열매를 더해간다.

그 결과 하나님 나라는, 계속 확장되어 간다. 그러면 장차 우리는 그리스도의 날에, 하나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게 된다. (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이것이 추수의 기쁨이다.

자라나는 씨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말씀의 능력을 밝혔다. 하나님 말씀에는 생명이 있다. 하나님 말씀에는 성장이 있다. 하나님 말씀에는, 결실이 있다. 이제 말씀의 능력을 알았다면, (19: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하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게 여기자. 그리서 우리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늘 충만하게 임하기를 바란다. 말씀의 능력을 믿는다면, 허탄한 이야기로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만들지 말자(고후2:17). 오직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만을 순수하게 전하자.

그리해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일에, 귀하게 쓰임을 받기를 바란다.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바란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자(딤후4:2).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힘써서, 하나님이 주는 추수의 기쁨을, 누리기를 바란다.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가? 그럴지라도 말씀처럼, 포기하지 말자(6:9). 때가 이르면 거둔다. 낙심하지 말고, 더욱 힘써 말씀을 전해서, 하나님이 정한 때에, 하나님이 정한 방법으로 풍성하게 거두기를 바란다.

우리는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살고 있다. 이 어두운 세상에, 생명의 말씀을 밝히면서, 우리 자신을 빛들로 나타내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어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할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열매가 있기를 바란다.

 "

  이전글 : 2018년 10월 28일 - 초막절을 지키라(레23:33-44)
  다음글 : 2018년 11월 18일 - 겨자씨의 비유(막4:30-34)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