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8년 10월 14일 - 비유로 말씀하신 예수님(막4:1-9)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8-1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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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로 말씀하신 예수님(막4:1-9)
우리는 본문 내용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이 비유를 ‘씨 뿌리는 비유’ ‘씨 뿌리는 자의 비유’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씨나, 씨를 뿌리는 자가 어떻다고, 아무 말씀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러 종류의 땅들에 대해서만, 자세히 말씀한다.
본문에는 3종류의 좋지 못한 땅과, 3종류의 좋은 땅이 등장한다. 그러니까 이 비유의 초점은, 씨나, 씨를 뿌리는 자에 있지 않고, 씨가 뿌려지는 땅들에 있다. 따라서 이 비유는 ‘여러 땅들의 비유’라고 불러야 맞는다. 이 사실만 보아도, 본문의 비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은 본문에 나오는 ‘여러 땅들의 비유’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씀한다. (13) “또 이르시되,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이 비유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다른 비유들도 제대로 알 수 없다. 그만큼 중요한 비유다. 예수님의 비유들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비유는, 이단들이 아주 즐겨 사용하는 내용임을, 기억해야 한다. 가라지의 비유를 이 비유 뒤에 붙여서, 2종류의 씨로 둔갑한다. 씨는 무엇이고, 밭, 나무, 새는 무엇인가를 물으면서 변질시킨다. 따라서 미혹당하지 않으려면, 잘 들어서, 이단에 빠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1. 비유의 배경(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이 바닷가는 갈릴리 바다, 갈릴리 호수다.
큰 무리가 모여들었지만,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나아왔다. ① 예수님을 죽이려는 바리새인들과 헤롯당(3:6) ② 예수님이 행하는 일을 보고, 즐기기 위해 나온 무리(3:8) ③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왔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식사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3:20).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다. 또 병든 사람들을 고치고, 더러운 귀신들도 내쫓았다. 이로써 자신이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임을 사람에게, 밝히 드러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계신 곳은, 언제나 큰 무리가 모여들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대부분,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예수님이 전하는 복음보다, 예수님이 행하는, 먹을 것을 주고, 병을 고쳐주는 이적에, 관심이 보였기 때문이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사탄을 힘입어서, 귀신들을 쫓아낸다고 비난했다. 그래서 예수님의 친척들도, 예수님을 미쳤다고 하면서 붙들러 왔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었다. 그래서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그런데 제자들은, 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문 말씀을 한다. 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지, 그 까닭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2)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비유는 ‘파라볼레’(παραβολή)인데, παρα(곁에) + βάλλω(던지다)의 합성어다. 어떠한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 그와 비슷한 다른 것을, 예로 드는데, 깊고 오묘한 영적진리를, 일상의 단순한 일들로, 예를 들었다.
그 동안 예수님은, 늘 직접적으로 표현하며, 말씀하며 가르쳤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4: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셨다.”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했기 때문이다. 물론 예수님은 죽으러, 이 세상에 오셨지만, 아직은 제자들을 양육해야만 하는데, 사람들이 자꾸,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다.
따라서 믿는 자에게는 영적진리를, 분명하게 깨닫도록 하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영적진리를 감추기 위해 비유로 말씀하셨다. (12) “이는 그들로(예수님을 죽이려는 자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예수님은 일상적인 일을 예로 들어, 영적진리를 비유로 말씀했다. 제자들에게는 비유로 말씀하고, 그 비유의 영적의미를 깨우쳐주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비유로 하신 말씀을, 꼬투리를 잡지 못하게 피상적으로 말씀하여, 감추어진 영적진리를 깨닫지 못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하기 위해서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분명히 드러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고(3:6),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들을 쫓아낸다고 말해(3:22) ‘성령님을 모독하는 자가 되어, 영원히 사함을 얻지 못하는 죄’(3:29)를 범했다. 더 이상 주어질 은혜는 없다. 오직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2. 비유의 내용(3).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예수님의 말씀하신 비유는, 곧 여러 땅의 비유는 ‘들으라’는 말씀으로 시작해서, 9절에서 다시 ‘들으라’(아쿠아테)는 말씀으로 끝난다.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본문에는 씨를 뿌리는 자는 나오지만, 씨에 대한 말씀은 전혀 없다. 어떤 형용사도, 수식어도 있지 않다. 만약 어떤 씨를 말하거나, 씨를 뿌리는 자가, 어떤 사람이라고 말을 하면,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이 비유는 땅을 말하고 있다. 왜 사람들이 듣고, 받아들이지 않는지에 대해, 비유로 말하는 내용이다.
(1) 좋지 못한 땅
① 길 가(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논과 밭에는 울타리가 따로 없다. 그 사이에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있다.
씨를 길 가에 뿌리는 사람은 없지만, 뿌리다보면 길 가에, 떨어지기도 한다. 길 가는 경작하지 않고, 사람이 지나다니기에 단단하다. 따라서 길 가에 떨어진 씨들은, 땅 속으로 파고들 수 없어서, 그대로 땅위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새들이 와서, 그 씨를 먹는다.
농부들은 씨를 먹는 새들을, 아주 싫어한다. 그래서 새들이 씨를 먹지 못하도록, 허수아비를 세운다. 씨가 길 위에 떨어지면, 새들이 와서 먹거나, 지나다니는 사람에게 밟혀 죽는다(눅8:5). 이처럼 길 가에 떨어진 씨는, 새들이 먹거나, 사람들에게 밟혀서, 결실할 수가 없다.
② 돌밭(5-6).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돌밭은, 자갈이 많이 섞여있는 땅을, 의미하지 않는다.
똑같은 내용을 (눅8:6) ‘바위 위에 떨어지매’라고 했으니, 땅 속에 숨어있는 암반 위에, 씨가 떨어졌다는 말이다. 암반 위에 흙이 있지만, 흙이 깊지 못하고 얕음을 말한다. 암반 위에 떨어진 씨에서, 곧 싹이 나온다. 수분이 암반 밑으로, 내려가지 못하니까, 오히려 다른 땅보다, 수분이 더 많이 있다.
암반 위에 있는 흙은 얕아서, 태양열도 빨리 받기에, 곧 싹이 나온다. 이런 땅에 떨어진 씨는, 즉시 싹이 나오기에, 한 동안은 잘 자란다. 뿌리가 밑으로 내려가지 못하는 대신, 영양분이 위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들은 결실하지 못한다. 뿌리가 제대로 뻗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여름철에, 비가 오지 않는다. 식물들은 뿌리를 깊이 내려서, 땅 아래 수분을 흡수해야만 한다. 그러나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다면, 여름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다 타서 말라죽고 만다. 따라서 이 돌을 제거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③ 가시떨기 땅(7).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가시 떨기는 눈에 잘 띠지 않아, 겉으로는 문제가 없는 땅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가시 떨기는 잡초이기에, 번식력이 강하기에, 땅에 떨어진 씨보다, 가시떨기가 생존력이 더욱 강하다. 가시 떨기는 땅의 수분과, 영양분을 빼앗아 간다. 농부가 뿌린 씨가, 싹이 나서 자라더라도, 영양분을 빼앗아 간다. 가시떨기가 더 빨리 자라서, 가시떨기 때문에, 햇빛이 가리어진다.
또한 가시 떨기에 막혀, 그 잎이나 가지가 제대로 뻗어나가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이 땅에 떨어진 씨가, 가시 떨기의 기운이 막혀, 결국 결실하지 못하고 만다. 가시는 찌르는 것이다. 생활의 어려움과 염려로 자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가시떨기가 정말 많다. 로마 군병들은, 가시관을 예수님의 머리에 씌었다(마27:29). 이 가시면류관이 가시떨기(ἄκανθα)로 만든 관이다. 헬라어도 똑같은 단어다.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있는 무리들은, 흔히 경험하는 일이기에, 이 말씀도 어렵지 않게 이해했을 것이다.
아예 싹이 나지 못하는 경우에서 시작해서, 싹은 나서 자라지만, 곧 말라죽고, 추수 때까지 자라기는 하지만, 삶의 고난으로, 마지막에 결실하지 못하는 경우로 발전된다. 여기서 세 경우, 결과는 똑같다. 결실하지 못하기는 같다. 그러므로 세 종류의 땅 모두, 좋지 못한 땅이다.
3. 좋은 땅(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2) 좋은 땅들
(1) 삼십 배로 결실한 땅 (2) 육십 배로 결실한 땅 (3) 백배로 결실한 땅이었다. 좋은 땅은, 그 토질에 따라, 그에 상응하도록, 풍성한 결실을 맺었다. 좋은 땅은, 앞의 좋지 못한, 3종류의 땅과 다르다.
길 가는, 흙이 단단하지만, 좋은 땅은, 흙이 부드럽다. 돌밭은, 흙이 얕지만, 좋은 땅은, 흙이 깊다. 가시떨기 땅은 잡초가 많지만, 좋은 땅에는 잡초가 없다. 길 가와는 달리,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싹이 나서 자란다. 돌밭과는 달리, 좋은 땅의 씨들은, 해가 돋은 후에, 타거나 마르지 않고 무성하게 된다.
가시떨기 땅과 달리, 좋은 땅의 씨들은, 풍성하게 결실한다. 물론 좋은 땅이라고, 토질이 다 똑같지는 않다. 땅의 토질에 따라, 추수하는 양이 다를 수가 있다. 예수님도 30배의 결실을 맺는 땅과, 60배의 결실을 맺는 땅과, 100배의 결실을 맺는 땅으로 말씀했다.
예수님이 말씀한 좋지 못한 땅들과, 좋은 땅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사실이기에, 무리는 이 말씀을 이해하는데,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슨 의도로 이 말씀을 했나? (9)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올바로 듣고 깨달으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할 때, 들을 귀를 가진 자가 있고, 들을 귀가, 없는 자도 있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영적진리를 깨달았다. (막3:35)의 표현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뜻대로 행하는 자다.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님을 믿어, 예수님의 참 가족이 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러나 들을 귀가 없는 자들은, 예수님의 비유 안에 있는, 영적인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떠나간 자다. 그러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비유를, 깨닫지 못하고 떠나갔다. 예수님이 이적을 행하고,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주는 떡에만 관심이 있었다.
예수님의 말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들은 예수님의 참 가족이 아니었다. 좋지 못한 땅이었다. 들을 귀 있는 자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과 달리, 예수님을 배척하는 자들이었다. 예수님께 와서도, 자신의 이익만 구하는 자들이었다.
그 동안 예수님은, 말씀과 이적을 통해, 자신이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임을 분명하고도, 충분히 드러냈지만, 예수님을 죽여야한다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더 이상, 그들에게 은혜는 없다. 은혜의 문은, 닫히고 말았다. 오직 심판만이 기다린다.
예수님은 더 이상,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오직 비유로만 말씀했다. 유다 백성이 멸망할 때, 그 가운데 말씀을 믿고 따랐던, 거룩한 씨와 같은, 그루터기들이 남아있었다. 많은 유대인이 예수님을 배척했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소수가 남아있었다.
이들은 예수님의 비유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우치는 은혜였다. 우리는 씨를 뿌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받는 비결은, 사람들의 마음 상태가 문제다. 길 가는 완고하고, 완악한 마음, 굳을 대로 굳은 마음을 말한다. 심령에 파고들지 못하면, 새들이 와서 먹어버린다.
교만한 마음에 뿌려진 말씀은, 마음속으로 파고들어가지 못해, 사탄이 즉시 말씀을 빼앗아간다(15).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의 마음이 그랬다. 그들은 마음이 완악해서, 예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말씀을 들을수록,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고, 결국 죽였다.
좋은 땅을 얻기 위해, 땅을 경작해서, 흙을 부드럽게 만들어야 한다. 땅속에 있는 암반을 제거해야 한다. 가시떨기와 같은 잡초도 없애야 한다. 우리 마음을 살펴보아야 한다. 내 마음이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떨기가 있는, 땅과 같이 되면, 결실하지 못하게 된다.
결론이다. 우리의 마음 밭을 살펴보자. 하나님의 말씀을 나는 어떻게 듣고 있는가? 말씀을 마귀에게 빼앗기고 있지는 않는가? 사람들 때문에. 믿지 못하는가? 마음의 어떤 응어리 때문에 믿지 못하는가? 세상살이에 힘들어서 믿지 못하는가? 말씀을 올바로 듣고 믿자. 올바로 회개하는 자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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