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8년 9월 30일 - 성령을 모독하는 자(막3:27-30)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8-0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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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모독하는 자(막3:27-30)
예수님을 보는 시각에는, 여러 가지 시각이 있다고 했다. 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보는 시각이다. ② 예수님을 미쳤다고 보는 시각이다. ③ 예수님을 종교 사기꾼으로 보는 시각이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하자, 이들은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며, 예수님을 모독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며,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집도 설 수 없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역사를 부인하는 자에게, 성령을 모독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다면 성령을 모독하는’(블라스페미아) 죄는 무엇일까? 예수님은 비유를 들어서 말씀했다.
1. 예수님은 하나님이다(27).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어떤 사람을 결박하려면, 그 사람보다도 훨씬 더 강해야만 한다. 여기서 강한 자는, 사탄을 뜻한다. 그의 집은 사탄의 나라를 뜻한다. 세간은 사탄에게 매여서, 종노릇 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강한 자를 결박하는 분은, 예수님이다.
사탄을 결박한 후에, 강탈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사탄에 매인 자들을, 구원한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악한 사탄에게 매여,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천사장 루시퍼가 타락해서, 사탄이 되었다. 그 때 천사들의 삼분의 일이, 그를 따랐는데, 그 천사들이 타락해서, 귀신들이 되었다.
사탄은 천사장이었다. 따라서 사탄보다 더 높고, 더 강한 존재는, 오직 한 분, 하나님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기에, 사탄을 결박할 수 있는, 더 강한 분이다. 이 비유로 자신이, 하나님임을 드러냈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다른 모든 죄는 용서받을 수 있으나, 성령모독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했다. 옛날 개역 성경에서는 ‘모독’을 ‘훼방’이라고 번역했다.
주의할 점은, 모든 이단은 ‘성령을 모독하고, 성령을 훼방’한다는 단어를, 자신들을 반대할 때, ‘성령 훼방, 성령 모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대항했다고, 성령모독이 아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이는 그들이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임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다.
성령님이 이를 증언하고, 성경이 증언한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며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라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했다. 진정 예수님은 하나님이기에, 하나님의 권세로 말씀한 것이다.
사람의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는다고 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도, 사하심을 얻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편 행악자도 사하심을 얻었다. 이와 같이 사람의 모든 죄는, 사하심을 얻을 수 있다. 그 어떤 모독하는 일도, 사하심을 얻는다고 했다. 모독은 욕되게 하는 것이다.
(행26: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바울은 자신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독하는 말을 하게 했다. 그러나 사하심을 얻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일이다. 그러나 (눅23:34中)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와 같은 죄도, 사하심을 얻었다. 이처럼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을 수 있지만, 한 가지 예외가 있다.
예수님은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 영원한 죄에 대해 말씀했다. 어떤 사람이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는가?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한 죄에 빠진다. 그러기에 그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
2. 성령을 모독한다는,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30).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성령을 모독하는 자가 누구인가? ‘그들은’ 바로,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 유대교의 지도자들로, 예수님이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고 말했다.
침례 받는 예수님에게, 성령님이 임했다(1:10).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광야로 갔다(1:12). 예수님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말씀도 전하고, 능력도 행했다(눅4:18). 이처럼 예수님의 행함도, 말씀도, 모두 성령님의 인도를 따랐는데,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고 했다.
그들은 거룩한 성령의 역사를, 더럽고 악한 영이라고 하면서 모독했다. 물론 바울도 한 때는, 성령을 모독한 자였지만,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했다(딤전1:13). 그러나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을 얻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다르다.
예수님의 말씀을, 충분하게 들었고, 예수님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도 충분히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 결론을 내리기를,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고 했다. ‘그들이 말하기를’(미완료)다. 계속적으로 말했다는 뜻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계속된 증거를 보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속 주님을 모독했다. 그 결과 그들은,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 영원한 죄에 빠지고 말았다. 성령님을 모독하는 죄가, 다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임을 알고, 성령님을 모독하는 죄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불신자와 죄를 범하려는 사람은, 성령을 모독죄가, 얼마나 큰지 모른다. 경건하게 살려는 사람일수록, 죄의식이 강하고, 성령 모독죄에 대한, 두려움도 심하다. 그렇지만 성도들은, 성령 모독죄의 두려움에, 지나치게 눌릴 필요가 없다. 모든 죄를 용서받아, 정죄 받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을 모독하는 죄에 대한, 자유를 가져야 한다. 성령님을 모독하는 죄에 대한 두려움으로, 구원에 대한 확신을 떨어뜨리고, 영생의 길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마귀의 간교한 속임수에 넘어가는 일이, 없어야 한다.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믿는 않는 사람들 중에, 나타나는 죄이다.
참으로 구원받은 성도인지, 성도라는 이름만 가진 사람인지를, 살피는 일이 필요하다. 성도는 항상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한 에서가, 영원히 축복의 기업을 놓치고 말았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히12: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성령모독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 사망에 이르는 죄, 고의로 범하는 죄로 불리는, 참 무서운 죄다. 그러나 이 죄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죄가 아니다. 성도들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성령님의 역사인 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범하는 죄이다.
따라서 우리는 함부로, 어떤 행위를, 성령 모독죄라는 판단을 내리지 않도록 해야 할 뿐 아니라, 신중한 자세로 자기 자신을 살피는, 기회를 삼아야 한다. 그리고 만일 자신의 죄가, 깨달아질 때에는 지나친 두려움에 짓눌리지 말고, 기꺼운 마음으로 회개하여, 의인이 누리는 평안을 가져야 한다.
3. 성령 모독죄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졌다.
(1) 구원받은 성도의 죄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의 죄를, 용서 받을 수 있게, 십자가에 돌아가셨다(사53:).
(롬5:18-19)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범한 모든 죄들을, 용서해준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형태의 죄를 범했는가와 상관없이, 모든 죄를 다 용서받는다. 그 결과 성도들은, 아무도 정죄할 수 없는 의인이 되었다(롬8:34-35). 죄와 사망에서, 영원히 해방을 받는,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
(히10: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한다(요5:24). 영원한 생명이란 결코 취소되는 일이 없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한번 구원받은 성도는, 결코 사망에 이르지 않는다. 또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천국의 삶이 주어진다(마18:3). 그런데 천국은 죄가 없는 곳이다. 따라서 성도는 사망에 이르는 죄, 즉 용서받을 수 없는 죄, 즉 성령 모독죄를 범하지 않는다.
(2) 고의적인 죄다.
사람들은 무지함이나, 부주의함 때문에, 성령님을 모독할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이 과거에 ‘모독하는 자’였음을 고백했다. 자신이 ‘알지 못했기에, 범한 죄’였다. 알지 못했기에, 주님을 믿는 자를 핍박했다.
그런데 바울은 (딤전1:13-14)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바울은 도리어 긍휼을 입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한 주의 은혜를 받았다고 했으니, 이를 보면 사도 바울의 모독죄는, 용서를 받았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성령 모독죄는, 무지나 부주의함으로 범한 죄가 아니라, 고의적으로 범하는 죄다.
서기관인들은 성경을 잘 알고 있었다. 구세주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심을 알고 있었다. (사35:5-6)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그들은 메시아가 오면,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리고, 저는 자가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가 말을 하므로,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이런 역사를 무시하고, 고의적으로 귀신의 역사로 몰아갔다.
(3) 성령의 역사를 거부하는 죄다(막3:28-2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고 했다.
예수님은 성령 모독죄를,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죄와, 분명하게 구분했다. ‘모독’(블라슾훼미)은, 악담, 중상, 조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령 모독죄는, 성령 하나님이나, 그의 사역을 상대로, 방해를 하는 말과 행동을 가리킨다. 성령님이 하는 사역은 무엇인가? 사람들로 예수님을 믿도록 한다.
(고전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고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라 시인할 수 없다.
(4) 끝까지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죄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를 용서해주는, 믿음과 회개를 통해서 임한다. (행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회개는 어떠한 죄도, 용서받을 수 있게 만들지만, 끝까지 회개를 거부하면 (롬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 도다.” 이처럼 성령 모독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끝까지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죄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날에,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피할 수 없다. 성령님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말해주지만, 고의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 끝까지 회개하기 거부하는, 사람의 죄를 말한다. 성령의 감동을 소멸했다는 말과는 다르다(살전5:19).
‘소멸하다’(스벤뉘미, σβέννυμι)는, 불이 꺼진다는 말이다. 꺼진 불에, 다시 불을 붙이면 되지만, 성령 모독죄는, 다시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임을 알고, 성령 모독죄에 대하여, 신중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결론이다. 이 세상에서 영적으로, 고아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요일3:10)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자녀이든지, 마귀의 자녀이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의 자녀에 속하지 않는다면, 마귀의 자녀에 속한다. 그 외는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이다. 그 증거는 명백하며, 충분하다. 또한 그 증거는 압도적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며, 나의 하나님임을 반드시 믿고, 고백해야 한다. (갈3:26) 말씀과 같이,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구주와 주님임을, 항상 잊지 말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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