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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8년 9월 23일 - 성도가 명절에 해야 할 3가지(신16:13-17)
  작성자 : 이건기 작성일 : 2018-09-23
  첨부파일:   성도가 명절에 해야 할 3가지.hwp(21K)

성도가 명절에 해야 할 3가지(16:13-17)

 

우리 민족은 대대로, 추수를 거두어 감사하는, 추수감사절로 지켜왔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분은, 추수의 은공을 조상들에게 돌리며 제사한다. 그러나 성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기에, 세상 사람과는 다른 자세가 있어야 한다. 추수 결실은 하나님이 주었음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추석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성경을 읽으면, 우리나라와 이스라엘이, 비슷한 절기를 지킨다. 그러나 절기를 지키는 이유나 방법은, 우리나라와 이스라엘이 다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절기를 지킨다. 성도는 어떻게 추석명절을 지켜야 하나?

1.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13).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유대인은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할 때, 광야에서 초막’(쑤카)을 짓고 살았다.

그러다 하나님의 인도로,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농사를 짓고, 첫 소출을 거두어들임이 수장절이다. 그들은 추수 후에, 집 밖으로 나와 초막에 거하며,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다. 성도들은 하나님께 여러 가지 의무가 있다. 그 중에 하나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인데, 감사함으로 예배해야 한다.

따라서 명절에 성도들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만 한다.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다. 범사는 슬픈 일이나 기쁜 일이나,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건강할 때도, 병들었을 때도, 어떤 경우에도 감사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 결실의 절기인 추석에,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말로만의 감사가 아니라, 예배를 통해 감사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하나님이 받는, 최고의 예배다. 성경에 감사가 몇 번 언급되었는지, 개역개정 성경으로 검색해 보니, 188번 쓰였다.

그중에 시편에만, 75번이나 기록되어 있었다. 특히 감사하라는 명령이, 36번이나 기록되었다. 이는 하나님이 감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민족과, 감사하는 사람들을 들어 쓰는 분이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감사를 많이 하는 민족과, 개인을 복을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감사하지 않고, 원망 불평하는 사람은, 절대로 들어 쓰지 않는다. 시편을 보면, 다윗은 늘 감사를 해서, 결국 위대한 왕으로 쓰임 받았다. 그러나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원망불평이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는다.

그 후손들만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원망 불평하는데, 잘되는 사람이 없다. 반대로 감사드리는 나라 쳐놓고, 가난한 나라가 없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복을 준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면, 그 복이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감사는 벽을 향해, 공을 던지는 것과 같다.”고 했다.

감사를 던지면,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불행은 감사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타락하고 범죄한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른다. 항상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기에, 삶이 힘들고, 어렵다. 병들고, 고통스러운 삶이 된다.

그러나 감사하면, 마음이 유쾌해진다. 은혜가 흘러 들어온다. 적절한 환경이 조성되고, 사람들이 좋아한다. 사랑의 생긴다. 건강해진다. 기쁨이 넘친다. 돈이 생긴다. 감사하면, 손해 보는 것이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사고만 터지면, 곧바로 누구 때문이냐? 어떤 놈이 잘못했냐?”, 원망불평을 쏟아 붙는다.

그러나 서구사회는 좀 다르다. 대형사고가 터지면, 근심하고 그런 가운데서, 의로운 사람을 칭송한다. 미국에서 한국유학생(조승휘), 총기를 난사하여 많은 사람(33)이 죽었다. 그때 우리나라는 죄인처럼 미안해서,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찾았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오히려, 자기들 탓이라며 조용했다. 심지어 유족도 조용했다. 우리도 원망불평이 아니라, 감사가 나와야한다. 감사는 아무나 할 수 없다. 믿음의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감사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 감사는 마귀도 물리친다. 감사하는 집과, 신앙생활에는, 마귀가 틈 탈 길이 없다.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친다. 감사는 우리 영혼에도 축복이 되지만, 우리 육체의 건강에도, 큰 도움을 준다. 감사가 죽으면, 다 죽고, 감사가 살면, 다 산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복을 받는다. 이 추석명절에 감사예배를 드리므로, 건강한 가정 복된 가정이 되기를 바란다.

2. 믿고 즐거워해야 한다(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네 하나님이, 네 모든 소출과,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을 줄 것이다. 따라서 그 은혜를 헤아리고, 믿음으로, 온전히 즐거워하라고 했다. 성도는 추석을 맞아, 하나님이 베풀어줄 은혜를, 믿고 즐거워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 은혜가, 어떤 것일까? 그 은혜를 다 헤아릴 수 있나?

어떤 분은 치질수술을 하고 나서, 아침마다 볼일을 잘 보는 것이, 은혜인줄 몰랐다고 한다. 소변이 잘나오는 것이 은혜다. 잠 잘 자는 것도 은혜다. 병원에 입원한 분들을 보라. 아이가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 은혜다. 심지어 마음껏, 걸어 다닐 수 있는 것이 은혜다.

이렇게 예배 자리로 나와, 예배드릴 수 있는 것도 은혜다. 세상 사람은 흔히 재수가 좋다고 하지만, 우리는 재수나 운수가 아니고, 하나님이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제와, 정치가 어지럽고 복잡해도, 지켜주었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과 교회를 지켜주고, 건강도 지켜 주셨.

우리가 누리는 최고의 은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다. 이 은혜가 진짜 은혜이다. 이 은혜를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의 은혜 때문에, 다른 복도 준다. 구원의 은혜가 있기에, 갖가지 복을, 때를 따라 준다.

왜 자식을 위해서, 그토록 수고하고, 애쓰는가? 왜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는가? 자녀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고, 먹여주고, 인도하는가? 우리가 주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왜 감사가 없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이 베풀어준 은혜를,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복을 주었는데도, 그 복을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으로 알고 있다. 어쩌다 운이 좋아서, 얻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나님이 주셨음을 믿지 못하면, 감사할 줄 모른다. 그런 사람은, 배은망덕한 사람이 된다. 더 이상 복을, 누릴 수 없게 된다. 어떤 분의 이야기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 셋을 낳고, 10여년을 키우다가, 40도 못되어서, 암 투병을 하다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살려보려고, 모든 재산을 쏟아 부었지만,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돌아간 후 1,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새어머니가 오셨다. 그는 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새어머니를 외면했다.

반항은 기본이고, 거친 말도 쏟아내고, 가시 돋친 말만, 골라서 했다. 반항은 중학교 1학년이 되도록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방안에서,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새어머니가 임신했는데, 지금 키우는 세 아이들 때문에, 뱃속 아이를 낳을 수 없다며 유산시키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낳아야 한다고, 서로가 다투었다. 전 부인의 삼형제 때문에, 자신의 아이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새어머니의 그 말을 들으며,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너무 너무 죄송했다. “그동안 얼마나 속상하고, 마음이 아팠을까!” 지난 행동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새어머니는 진심으로, 날 사랑하고 계셨다는 것을 알고, 그때부터 변화되었다. 세월이 흘러 아버님은 돌아가시고 삼형제는 다 결혼했다. 막내 동생 가정이, 맞벌이를 하는데, 그 어머니가 동생 아이들까지 키워주었다. 그는 핏줄만이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어머니는, 핏줄을 넘어 평생사랑으로, 우리 삼형제와 손자까지 키워주었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깨닫게 됐었다는 것이다. 은혜를 은혜로 알 때만, 은혜가 복이 된다.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복이 될 수 없다.

가장 소중한 믿음, 가장 소중한 건강, 지금 처한 현실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한다. 그 은혜의 귀중한 의미를, 내가 깨닫지 못한다면, 은혜가 은혜 될 수 없고, 복도 복이 될 수 없다. 그러기에 받은 은혜를, 헤아릴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310)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난 알 수 없도다.”, 몰라서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고, 놀랍다는 것이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해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은혜는 하나님이 준 것을, 아는 것이기에, 은혜를 사모하기 바란다. 내가 오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은혜임을 깨닫고, 감격해야 한다. 그리고 이 은혜를 깨닫고, 보답하는 삶을 살기 바란다. 그런 사람이 올바른 성도요. 복을 누릴 성도가 된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며 난리쳤나?

은혜를 못 받아서가 아니다. 받은 은혜를 헤아리지 못하고, 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떻게 홍해를 건넜나? 어떻게 물을 마셨나? 어떻게 아말렉을 이겼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 은혜와 사랑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이 내게 베푼 은혜를 헤아리고, 그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하자. 감사하되 말로만, 감사하지 말라. (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올 때,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였다. 주신 은혜를 헤아린다면, 그냥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추석에,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풍성한 은혜를 헤아려보고, 감사드릴 줄 아는 성도되기를 축원한다.

3. 받은 은혜를 나눌 줄 알아야 한다(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이스라엘의 초막절과, 우리나라의 추석은 기쁜 날이다.

그러기에 그 기쁨을, 혼자 누리지 말고, 함께 즐거워하라 했다. ‘자녀노비레위인고아과부들과 함께 기뻐하라는 것이다. 오늘의 말로 번역을 하면, 가족과, 회사 직원들과, 목회자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잔치하며, 즐거워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우리 이웃인가? 우리 가족도 이웃이지만, 우리의 사랑의 손길이 필요한 자들이 많다. 어려울 때일수록, 함께 기뻐하며,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할 일이다. 우리가 함께 진짜로 즐거워하려면, 그들이 주님 안에 있어야 한다.

그들이 누구인가? 우리 가족 중에, 아직도 하나님이 누구인지, 예수님을 왜 믿어야 하는지를 모르는 가족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진정한 의미로 함께, 기뻐할 수 없다. 따라서 이 명절에 지혜를 얻어, 그들을 전도하기를 축원한다.

우리의 가족들 중에, 믿지 않는 가족이 있는가? 성경책을 선물하고, 믿으라 하라. 믿지 않는 조카나 아랫사람이 있다면, 봉투에 별도로 용돈 좀 풍족히 담아서, 성경구절과 함께 축복기도를 적어서, 장학금으로 주고, 예수님을 믿으라 하면, 감동이 있을 것이다. 말로만 해서는, 들은 척도 안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담고, 믿음을 담으면, 마음 문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굶어 죽는 사람은 없지만, 저 북한과 어려운 나라에는, 지금도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도 어떤 형태로든, 먹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최고의 나눔은 복음인, 예수님이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 앞에 앉아있던 나면서 걷지 못하던 자에게 말한다. (3:6)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요즘 말로 내게는 돈은 없으나, 예수님이 있다. 그 예수님을 믿고 일어나라.”는 것이다. “예수 이름이것은 최선의 선물이고, 영원한 선물이다. 하나님이 심심풀이로, 우리를 만든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영화롭게 하는 방법은, 우리가 빛이 되는 것이다. 빛이 되라고,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은혜를, 이제까지 베풀어 주었다. 한 심리학자는 인간을 3단계로 보았다. 받는 단계요 소유하는 단계요 주는 단계가 있다고 했다. 땅에 씨를 심는 단계, 자라나는 단계, 열매를 맺어 주인을 기쁘게 해주는 단계다.

믿음 생활도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단계, 은혜 받는 단계, 은혜 받은 다음에는 주는 단계로 발전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은혜를 받으려고만 하면, 안 된다. 예수님을 믿은 지 10년이 넘었으면, 교회봉사를 하고, 이웃사랑을 하고, 가진 것을 주기도 하고, 봉사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복을 누리게 된다. 말씀을 맺겠다. (20:35)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추석명절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받은바 은혜를 헤아리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명절이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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