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8년 9월 9일 - 열두 제자들(막3:16-19)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8-09-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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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제자들(막3:16-19)
예수님은 원하는 자, 열둘을 제자로 세웠다. ① 그들과 함께 하면서 가르쳤고 ② 사람들에게 보내서, 하나님의 나라를 넓혀가기 위해, 전도하게 했다. ③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가지게 해서, 하나님이 보낸 증거를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 능력 있게 복음을 전하게 했다.
‘제자’(마테스, 탈미드)는, 스승에게 ‘배우는 자’를 말하고, 반면에 ‘사도’(아포스톨로스)는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 ‘아포스텔로’는 아포(분리) ‘스텔로’(보내다, 세우다)에서 파생된 말이다. 배우는 동안에는 ‘제자’이고, ‘보내심을 받았을 때’에는 ‘사도’가 된다. 제자가 되어 배우고, 보냄을 받아야 사도가 된다.
계속해서 가르침만 받겠다고 하면,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한 후에, 제자들은 사도가 되어서, 예수님을 대신하여, 힘 있게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 교회의 터가 되었다. (엡2:20上).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했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성경을 기록했다(엡3:5). 그들이 기록한 성경을 통해, 지금도 복음이 계속 전파되고 있으니, 우리는 그들의 열매들이다. 그들은 하늘보좌에 앉아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되었다(눅22:30). 본래 제자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만큼, 뛰어난 인물들이 아니다.
학문이 없는 범인이었다(행4:13).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사명을 잘 감당하여,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큰 은혜가 된다. 우리도 연약하지만, 귀하게 쓰임 받아서, 영원한 영광을 누리기를 바란다.
1. 예수님의 제자들의 특징
신약성경에는 ‘열두 제자들’의 명단이, 네 곳에 등장한다. (마10장, 막3장, 눅6장, 행1장). 여기서 4곳의 명단들을 비교해 보면, 몇 가지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1) 베드로의 이름이, 맨 앞에 나오고, 가룟 유다의 이름이, 맨 뒤에 나온다.
베드로는 ‘열둘’ 가운데, 지도자 역할을 했기에, 항상 제일 먼저 등장한다. 제일 먼저 불렀던 제자들인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판 자였기에, 항상 맨 나중에 기록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세상일에는, 조금 뒤떨어지더라도, 예수님을 섬기는 일에는, 항상 남들보다 앞장서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충성하는 일에 베드로처럼, 항상 앞장서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을 배반하는 일이 없이, 끝까지 충성하기를 바란다.
(2) ‘열둘’은 네 명씩, 한 조(그룹)를 이루고 있다.
1조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 2조는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3조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 시몬, 가룟 유다다. 각 조의 조장에 해당하는 첫 이름은 항상 같다.
따라서 조직과 부서를 무시하지 말자. 예수님은 사도들을 세우면서, 그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사역을,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 안에도 많은 그룹, 부서가 있다. 전도회, 목장, 교회학교, 찬양대,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조직이다.
이러한 조직을 무시하면서, 독불장군처럼 행동하지 말자. 각 부서의 모임에도 최대한 힘써 참석하여, 각자가 속한 부서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각 조원들의 이름은, 명단에 따라서, 순서가 조금씩 다르다. 열두 제자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했다. 그들의 기질과 관심사는, 서로 달랐다.
1조의 네 제자는, 공통점을 가장 많이 지닌, 유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두 어부였고, 같은 동네 출신이며, 두 사람씩 형제지간이며, 오랜 친구로 지내온, 사이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마태는 세리이자, 외톨이였고, 셀롯이라는 시몬은 혁명가로, 역시 외톨이였다.
나머지 제자들의 직업은, 알려진 바가 없다. 그들의 기질은, 서로 크게 달랐다. 베드로는 열정적이고, 공격적이며, 대담하고, 솔직했다. 결함도 많았지만,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가 있었다. 비록 실수가 많고, 결함이 많아도, 무엇인가 지적해 주면, 순순히 받아주는 장점이 있었다.
(3) 1조는 많이 알려진 제자들이고, 3조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제자들이다.
1조에 속한 제자들은, 성경에 많은 기록이 나온다. 2조에 속하는 제자들은, 1조에 속한 제자들보다는, 알려진 바가 적다. 3조에 속한 제자들 가운데, 가룟 유다를 제외하고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이러한 사실은, 열둘이라는 비교적 소규모의 그룹에서조차도, 한 사람이 모든 사람과, 가장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암시한다. 그리스도도 모든 제자들에게 똑같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다. 이는 어떤 지도자도, 똑같은 시간과 노력을, 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예수님과 가까이 해야 한다. 교회와도 가까워져야 한다. 주의 종들과도, 교우들과 가까워져야 한다. 그때 그 사람은,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과 멀어지고, 교회와 주의 종들과, 교우들과 멀어지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 이름과 직분만 남게 된다.
2. 제1조의 명단(16-18上).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또 안드레와…”
(1) 시몬이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다. 예수님은 그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더했다. 반석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시몬이 그의 수제자로서, 반석처럼 든든하기를 바랐다. (요1:42)을 보면, 베드로는 게바라고 불리기도 했다. 아마도 다른 제자들은, 그 이름이 그에게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몬은 바위처럼, 듬직하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성격은 충동적이었다. 주변의 상황에 따라, 그의 행동도 잘 변했다. 그러나 시몬은 예수님이, 자기를 베드로, 반석이라고 부를 때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점차 깊이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극에서 극으로 달렸던 사람이다.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처럼, 담대히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사람은 없고,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처럼 뻔뻔스럽게, 예수님을 부인한 사람도 없다. 그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고, 저주까지 했던 사람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큰 칭찬을 들었다. 예수님은 천국 열쇠를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사단이라고 불리면서, 가장 크게 책망을 받았던 제자도, 바로 베드로였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보다, 더 많은 책망을 예수님께 들었고, 예수님께 “주여 그리 마옵소서.”(마16:22中)라며, 항변하기도 했다.
이처럼 베드로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반석처럼 듬직한 인물이 아니라,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그를 불러서, 열두 사도들 가운데, 으뜸으로 삼았다. 왜 그랬을까? 몇 가지 이유를 댈 수 있다.
① 호기심이 많았다. 계속 예수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마15:15)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마18: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마19:27, 막11:21, 요21:21).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을 듣고, 잘 이해하지를 못해도, 그저 속으로 궁금하게 생각하면서, 침묵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달랐다. 주저하지 않고 예수님에게, 묻고 또 물었다. 이것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사역에 관심이 많았다는 뜻이다.
② 앞장섰다. 예수님이 묻는 질문에, 언제나 제일 먼저 대답했다. (마16:15-16)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눅8:4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또한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힐 때, 앞장서 나갔던 사람도 베드로였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한 일이라면, 언제라도 앞서 나갈, 준비와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이런 점을 예수님은 귀하게 보았을 것이다.
③ 능동적이다. 베드로는 제자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이었다. (마14:28-29)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물론 믿음이 부족해서 빠졌지만, 그는 믿고 배에서 내렸다.
(2) 야고보이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두 명이 나온다. ① ‘세베데’(주다, 선물)의 아들 야고보(17)와 ② ‘알패오’(헬렙, 변화)의 아들 야고보(18)가 나온다. 야고보는 세베대의 아들인데, 세베데는 어부들을 고용할 정도로, 큰 어업에 종사했다.
성격이 급해서, 예수님은 그들의 성질이 누그러지 원해서, 그들에게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했다. 예수님의 열두 사도들 가운데, 최초로 순교한 사람이, 바로 야고보다. 제자들 중에 유일하게, 순교의 기록이 남아있다(행12:1-3).
(3) 요한이다. 형은 야고보다. 그들은 어부였고(1:19). 이들의 성격이 급해서, 예수님은 그들의 성질이, 누그러지기를 원해서, 그들에게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더해주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다(요13:23, 19:26, 20:2, 21:7, 21:20).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기록한 이유는, 자신을 과신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로, 자기는 허물이 크고, 너무 부족한데,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사랑을 주셨다는 사실에, 감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전했다.
(4) 안드레이다. 안드레는 헬라식 이름이다. 그는 언제나 헬라식 이름으로만 불려서, 히브리식 이름은, 알지 못한다. ‘남자다운’이라는 뜻이다. 안드레는 침례 요한의 제자였다(요1:35-40). 요한이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말을 듣고, 따르게 된 최초의 신자다(요1:41).
‘데리고 오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형제 시몬을(요1:42),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를(요6:9), 그리고 몇몇 헬라 사람들을, 예수님에게 데리고 왔다(요12:22). 첫 제자, 먼저 부름받은 제자로 불렸다. 가정 먼저 제자가 된 것은, 더 많은 모험과 용기가 필요하다.
안드레는 그의 형제 시몬 베드로처럼, 뛰어나지는 못했다. 그는 예수님이 늘 가까이 했던 세 자자들,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들 중에도 끼이지를 못했다. 그러나 안드레는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에게 인도하며, 그저 그들이 잘 되기 만을 바랐던 사람이었다.
3. 기타 제자들(18中-19).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5) 빌립이다. 제2 그룹의 조장이다. (요1: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고 했다. 따라서 그들은, 서로 간에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빌립은 나다나엘을, 예수님에게 인도했다(요1:45). ‘빌립’(필리포스)은 헬라식 이름이다. 그 뜻은 “말들을 사랑하는 자”이다.
빌립은 그 당시에 상당히 유행하던, 이름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의 이름이 바로 빌립이었다. 따라서 그 당시에 헬라 제국의 기초를 닦은, 그의 이름을 따서, 빌립으로 불리기를 좋아했고, 성경에만 빌립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4명이나 나온다(마14:3, 눅3:1, 행6:5).
언제나 헬라식 이름으로만 불려서, 히브리 이름은 알 수 없다. 그는 계산에 밝았던 합리주의자였다(요6:5-7). 이방인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요12:20-22). 영적 지각이 부족해,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했다(요14:8-11). 그러나 점차 변했다.
(6) 바돌로매다. 아람어(페르시아)로 ‘바’는 아들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돌로매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의 본명은 나다나엘이다(요1:49). 시몬 베드로가 ‘바요나 시몬’이듯이, 바돌로매 나다나엘다(마16:17). 그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자였다. 하지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는 편견이 있었다. 그는 간사함이 없이, 진리를 추구하는 자였다.
(7) 마태다. 그는 세리였다(마10:3). 마태는 (막2:14)에 나오는, 레위와 동일한 인물이다. 레위는 부름을 받기 전의 이름이었고, 마태는 부름을 받은 이후의 이름이다. 선물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죄사함의 권세가 있음을 알고 따랐고, 죄인들도 함께 구원받기를 원했다. 신약성경을 여는 마태복음을 기록했다.
(8) 도마다. 쌍둥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도마에게는, 쌍둥이 형제나 자매가 있었을 것이다. 그는 부활한 예수님을 뵈옵고,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요20:28)라고 분명하게 고백했다.
(9)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다. 제3조의 조장이다. 그는 “작은 야고보”(15:40)라고 불렸다.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상대적으로 키도 작고, 나이도 어리고, 영향력도 적었을 것이다.
(10) 다대오다. “야고보의 아들 유다”(눅6:16, 행1:13)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아마도 막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부모는 그에게 “여자의 젖가슴,” 곧 mama's boy라는 뜻을 가진, 다대오라는 애칭을 붙여주었을 것이다.
(11) 가나나인 시몬이다. ‘가나아’는 히브리어로 ‘열심’을 말한다. ‘인’은 무리, 당을 뜻하는 접미사다. 따라서 그 전체적인 뜻은 “열심당”이다. 눅6:15은 그를 ‘셀롯’이라고 했다. 헬라어로 셀롯도 열심당을 뜻한다. 혁명주의자였다. 로마에 세금을 거부하고, 빼앗긴 나라의 주권을 찾자고 하는 자였다.
마태와 시몬은 정반대의 길을 가는 자였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시몬은 예수님이 로마의 속박에서 해방시켜주기를 원하여, 예수님을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면서, 변화가 되었다. 예수님을 믿고, 자신의 삶을 주님을 위해 바쳤다. 나의 목적이 다르게 왔어도, 변하길 바란다.
(12) 가룟 유다다. 유다 남방, 그리욧 출신이었기에, 가룟 유다라 불렸다. 예수님을 판 자였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대로, 차라리 나지 아니했다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다(막14:21). ‘유다’(찬양하다)는 좋은 이름을 정반대로 사용한 인물이다. 따라서 우리는 나쁜 일에, 쓰임 받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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