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8년 8월 26일 - 무리와 제자들(막3:7-12)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8-0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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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와 제자들(막3:7-12)
예수님은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었다. 바리새인의 전통은, 안식일에는 병을 고치면 안 되는데 바리새인의 전통을 무시하고 고쳐주자, 그들의 권위를 무시한,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었기에, 로마와 연결된 헤롯당과 함께, 그 문제를 의논했다.
(막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했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을 택하고, 그들을 가르쳐, 사도로 세워야 했기에, 바리새인들의 박해를 피하여, 갈릴리 바다로 물러갔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도, 예수님의 말씀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갈릴리에서 행한 사역을, 요약해서 설명한다. TV를 보면, 후편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전편 내용을 요약해서, 보여주는데, 본문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예수님의 초기 갈릴리 사역이 끝나고, 후기 갈릴리 사역이 시작된다. 줄거리를 요약해서 보여줄 때는, 가장 중요한 내용을 골라서 보여준다. 마가복음의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밝히는 것이다. 그 증거는 명백하며 충분하다. “예수님은 하나님이다.”라는 말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1. 제자들과 큰 무리가 예수님께 나아옴(7-8).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알고,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로 물러갔다. 아직은 죽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 큰 무리가, 예수님에게로 나아왔다.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큰 무리 가운데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듣고, 예수님이 행한 표적들을, 직접 본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각처에서 많은 무리가 예수님께로 나아왔다. 남쪽의 유대와,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서, 큰 무리가 예수님께 나아왔다. 유대와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이 사는 지역이다. 이두매는 구약의 에돔이다. 히브리어 에돔을, 헬라어로 음역한 것이 이두매다. 유대보다 더 남쪽이다.
이곳에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섞여, 함께 살고 있었다. 그 다음 등장하는, 요단 강 건너편은, 요단강 동편인데, ‘베레아’라 했다. 이곳에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함께 살았다. 두로와 시돈은 페니키아, 곧 성경에서 말하는 ‘베니게’다. 이 지역은 지금 레바논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이방인들만 살았다.
본문에는 갈릴리에서 시돈까지, 일곱 개의 지명이 나온다. 이는 완전수다. 비록 본문에는, 갈릴리와 유대 사이의 사마리아가 빠졌고, 또 베레아 북쪽 데가볼리가 빠졌더라도, 완전수 안에, 다 포함이 된다. 이스라엘의 각처에서, 또한 이스라엘의 근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몰려들었다.
이들 가운데는, 예수님의 사역을 목격한 이들도 있지만,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대부분 유대인들이었지만, 이방인들도 있었다. ‘큰 무리’(7), ‘많은 무리’(8)가 나왔다. 각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몰려왔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8절에서 밝히고 있듯이, 예수님이 한, 큰 일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각종 병을 고쳐주었다. 더러운 귀신들도, 내쫓아주었다. 계속해서, 이적에 이적을 행했다. 그래서 아무도, 예수님의 능력을 부인할 수 없었다. 예수님의 명성은, 급속히 퍼져나갔다. 당시의료기술은 발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각종 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행한 큰일을, 소문으로 듣게 되었다. 자연히 그들은 병 낫기를 바라면서, 예수님께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9) “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큰 무리, 많은 무리가, 예수님에게 몰려왔다.
사람들이 서로, 에워싸 밀다보면, 자기들끼리 짓밟히거나, 다치게 될 소지가 많았다. 이러한 불상사를 막기 위하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명했다. 베드로를 비롯해서, 여러 제자들은 본시 어부였기에, 예수님이 명대로 즉시, 예수님을 위하여, 작은 배를 준비할 수 있다.
본문에는 2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무리와 제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한 자리에 있었지만, 목적이 서로 달랐다.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도 달랐기에, 자연히 결과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무리는 이기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기의 육신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그 곳으로 몰려들었다.
반면에 제자들은, 헌신적인 사람들이었다. 자기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겸손히 예수님의 뒤를 따랐다. 무리는 예수님을 에워싸 밀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의 소원대로, 행하는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명하는 대로, 작은 배를 대기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었다.
무리는 나중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르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죽기까지 충성했다. 그 결과 하늘나라 영광의 보좌에, 앉게 되었다.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떤가? 예수님께 왔더라도, 무리에 속하면 안 된다. 제자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2. 무리들의 원함(10).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예수님의 명성이 순식간에 퍼져나가서, 각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몰려왔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병을 고치는, 능력 때문이다. 열병으로 누워 있는, 시몬의 장모를 고쳤다(1:29-). 시몬의 집 앞에 모여든,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쳤다(1:34).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했다(막1:40-). 중풍병자를 고쳤다(막2:1-). 한쪽 손 마른 사람을 고쳤다(3:1-). 이와 같이 많은 사람을 고쳤다.
예수님이 수많은 사람들을 고쳤기에,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지고자 했다. 깨끗하게 하실 때, 그의 몸에 손을 대었다(막1:41). 반대로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는,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댐으로, 고침을 받았다(막5:27).
(6:56)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했다. 이처럼 예수님이 만져주든지, 예수님을 만지든지, 똑같이 병 고침을 받았다. 그래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님에게로 몰려와서, 예수님을 에워싸 밀려 했다. 예수님을 만지기 위해서였다.
(요1:3)을 보면, 만물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 지은 것이 하나도, 예수님이 없이는 된 것이 없다.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다. 이와 같은 창조의 능력으로, 예수님은 사람들의 병을 고쳤다. 예수님은 뭇 사람들 앞에서, 분명하게 창조의 능력을 나타냈다.
그래서 (롬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예수님은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었다. 나의 주님이며,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고백하자.
그러면 예수님은, 나를 위해 나의 심령도, 나의 몸도, 또한 나의 삶도 날마다 새롭게, 창조할 것이다. (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귀신들을 내쫓은, 예수님의 능력이 설명되고 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의 한 회당에서, 더러운 귀신을 내쫓았다(막1:21-). 예수님은 온 갈릴리에 다니며, 귀신들을 내쫓았다(1:39). 천사장 루시퍼가 타락해서, 마귀, 곧 사탄이 되었다. 그를 추종하던 천사들이 타락해서, 귀신들이 되었다. 마귀는 귀신들의 우두머리요, 귀신들은 마귀의 졸개에 해당한다.
‘더러운 귀신들’(11)이라 했고, ‘악한 귀신’(마12:45)이라 했다. 더러운 귀신이 따로 있고, 악한 귀신이 따로 있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귀신들이 본질적으로, 더럽고 악한 존재라는 뜻이다. 귀신들은 예수님 앞에, 항상 엎드렸다. 귀신들이 사람 앞에서는, 엎드리지 않는다.
오히려 귀신들은, 사람 안에 들어가서, 그 사람을 다스린다. 그러나 귀신들은, 예수님 앞에 엎드린다. 예수님은 그들을 만든, 창조주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귀신들이 사람을, 무서워하지는 않지만, 귀신들은 예수님 앞에서는, 언제나 부르짖었다. 두려움에 떨면서, 소리를 질렀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들을, 영원한 불 못으로 던질 심판주,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더러운 귀신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귀신들은 본시 하늘나라에서, 예수님을 섬기던 천사들이었다. 그래서 귀신들이, 예수님을 알아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에게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더했다(막3:17). 야고보와 요한이 바로, 우레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함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이다. 신약성경에는 4권의 복음서가 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다.
4권의 복음서는, 모두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 목적은 마지막, 네 번째 복음서인, 요한복음에 잘 요약되고 있다.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네 권의 복음서가 기록된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래서 마가복음도 시작하는 말씀부터, 이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요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믿고 고백해야 한다. 믿으면 산다. 무리가 병 고침을 받으며, 귀신이 나갔다고, 구원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어야,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된다.
성경이 말하는 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왕, 주님, 대 주재이신 나라이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중심인 나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복음, 인간 중심의 복음, 인간적인 복음을 듣고 있다. 나를 위해 예수님이 무엇인가를 해주는, 값싼 무리들이 찾는 복음이다.
3. 예수님의 경고(12).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 귀신들은 예수님을 볼 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내었다.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귀신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했다. (1:34)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고 했다. 또다시 본문에서,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고 말씀했다.
그런데 (막5:7)을 보면, 귀신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면서, 계속해서 예수님을 나타내고 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이 귀신들에게 경고하셨을 때, 그 자리에 모든 귀신들이 다함께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귀신들이 예수님을 나타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나? (요8:44)을 보면, 사탄이나 귀신들은 본질상, 거짓말쟁이들로 낙인찍힌 자들이다. 그런 귀신들이 예수님을 나타낸들, 누가 그들의 말을 믿으려 하겠는가?
(3:22)을 보면, 예수님을 배척하는 자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었다는 주장을 했다. 그런데 귀신들이 계속, 예수님을 나타내면, 그들은 더욱 거세게, 예수님과 귀신들을, 한 패라고 비난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이, 빌립보에 이르렀다.
그 곳에 귀신들린, 여종 하나가 있었다. 그는 바울과 그 일행을 따라다니며 (행16: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계속 소리를 질렀다. 귀신은 바른 말을 했다.
그러나 바울은, 귀신이 말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바울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여종에게서 귀신을 내쫓았다. 귀신의 증언은, 거룩한 사역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혼란을 줄뿐이다. 똑같은 맥락이다. 또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귀신들이 노리는 바가 있었다.
귀신들은 사람들을 선동해서, 예수님을 정치적인 왕을 세워보려고 했다. 말하자면 귀신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지 못하도록, 기를 쓰면서 막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귀신들을 꾸짖었다(막1:25). 예수님은 그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막1:34).
또 본문 말씀처럼, 예수님은 귀신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각종 병을 고쳤다. 예수님에게는 육의 세계를 다스리는, 권세가 있다. 예수님은 귀신들을 내쫓으면서, 그들을 명했다. 예수님에게는 영의 세계를 다스리는, 권세도 있다.
(막4장)을 보면, 예수님은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명했다. 예수님에게는 자연세계를 다스리는, 권세도 있. 이처럼 예수님은 육의 세계, 영의 세계, 자연 세계를 모두 다스린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이 분명하다.
오직 천지와 만물을 창조한 하나님만이, 육의 세계와 영의 세계와, 자연 세계를 모두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다.”라는 사실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오늘도 결론은 똑같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며,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이다.” 믿으면 산다. 믿지 않으면 멸망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믿어야만 한다. 믿고 생명을 얻었으면, 생명의 말씀을 밝혀야 한다. 잠잠하지 말고 입을 열어, “예수님을 믿으세요. 그래야 구원을 받는다.”라고 예수님을 전해야만 한다.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사람,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가정,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교회가 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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