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8년 8월 12일 - 안식일의 주인인 예수님(막2:23-28)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8-08-12 |
첨부파일: 안식일의 주인인 예수님.hwp(22K) |
안식일의 주인 예수님(막2:23-28)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이 부딪힌 이유는, 유대인의 전통과,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주장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거부감이 없이 받아들이지만, 예수님을 배척하던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이었다. 오늘 말씀은 안식일에 일하는 문제로 부딪힌 내용이다.
(창2:2-3)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는 안식했다.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했다. 그리고 제4계명은, 안식일의 계명으로 주었다. 안식일을 정한 분도 하나님, 안식일의 계명도, 하나님이 주었기에, 안식일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안식일의 주인이 하나님이라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임을 밝혔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신성모독으로 여겨졌다.
우리는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 곧 하나님으로 믿는가? 아니면 예수님이 거짓말하면서, 신성모독을 하는 자로 여기는가? 2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신앙에서 그 중간은 없다.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처럼, 예수님을 신성 모독하는 자로 여기겠는가?
아니면 처음에는 도마처럼 의심했지만,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요20:28) 고백하겠는가? 선택은 자유이지만, 결과는 각자의 몫이다. 믿으면 구원받지만, 믿지 않으면 멸망이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며,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확실히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1. 본문의 배경과 비난(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안식일에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로 지나갔다.
안식일에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과, 밀밭 사이로 지나가게 되었다. ‘지나가다’는 말은, 통과해서 가는 것을 말한다. 때는 밀이 무르익어, 추수를 기다리고 있을 때, 아마 4월-5월쯤 되었을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보다, 앞서 가면서 길을 열었다.
이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시장해서(마12:1), 그들은 밀 이삭을 잘라서, 손으로 비비어 먹었다(눅6:1). (신23:25)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곡식밭에 들어가서, 손으로 그 이삭을, 따먹을 수 있게 한, 하나님의 은혜다. 그러나 낫을 들고 가서, 필요 이상으로 이삭을 베지 말도록 했다. 땀 흘려 농사지은, 밭주인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였다. 여기에는 아무 예외 규정이 없다.
안식일이라도,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은, 다른 이의 곡식밭에 들어가서, 손으로는 그 이삭을 따먹어도 괜찮았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의 행동은,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지 않았다. 그들은 먹을 것이 없어 시장했다. 밀밭 사이로 지나가다가, 이삭에 낫을 대지 않았고, 손으로 이삭을 잘라서, 비벼서 먹었다. 분명히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행했을 뿐이다.
(24)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제자들의 행동이,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지 않았는데도,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했다고 비난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했던 행동이, 바리새인들의 전통에서 볼 때, 어긋났기 때문이었다.
(출20: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 말씀에 덧붙여서, 수 없이 많은 조항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들을, 자기들의 전통으로 삼고서 지켰다. 안식일에는 500m, 한 번 쉬고는, 또 500m까지, 그래서 1,000m 안에서만, 이동할 수 있었다. 그 이상을 걷는 것은, 안식일을 범한다고 여겼다.
안식일에 재봉사는, 바늘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 서기관은 붓을 들고 다니면, 일에 속한 행위였다. 안식일에는 목욕해도 안 되고, 바닥에 떨어진 물을 닦으면, 일이고, 여자는 거울을 보아서도 안 되었다. 흰 머리카락을 뽑으면, 그것도 일로 간주되었다.
그들의 탈무드를 보면, 안식일에 대한 전통이, 24장에 걸쳐 기록되어 있다. 어떤 랍비는 그 가운데 한 장을 연구하며 검토하는 데만, 2년 반이 걸렸다고 한다. 그러니 그들이 얼마나 복잡하고, 까다로운 전통들을 만들어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출34:21)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 지며.” 안식일에, 거두는 일, 추수하는 일을 쉬어야 했다. 바리새인들은 수많은 전통들을 만들어냈다. 안식일에는 타작하는 일도, 키질하는 일도 금했고, 거기에 또다시, 수많은 조항들을 덧붙였다.
바리새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 때 제자들의 행동은, 여러 가지로 안식일을 범한 것이다. 제자들은 이삭을 잘랐다. 추수에 해당했다. 그것을 손으로 비볐다. 타작한 것이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했다고 비난했다. 물론 제자들은, 위배된 행동을 하지 않았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만든, 인위적인 전통에, 제자들이 어긋난 행위를 했다고, 심통을 부렸다. 이런 바리새인들을 향해, (마15:6中)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도다.”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전통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저버렸다. 하나님 말씀보다도, 그들의 전통이 더 우선적이었다.
전통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전통은 인위적이다. 따라서 전통은, 절대적일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절대적이다. 하나님은 영원불변하기에,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만을, 든든히 붙들어야 한다. 바리새인들의 비난 섞인 질문에, 예수님은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아니했다.
2. 예수님은 성경으로 반문했다(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다윗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고 물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지 못하였느냐고 했다. 이처럼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절대적인 권위를 두었다. 예수님이 말씀한 다윗의 일은 (삼상21장)에 내용이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읽어서, 그 내용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성경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음을 말씀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 했다. 그래서 다윗은, 몇몇 사람들과 함께, 급히 피난을 떠났다. 그로부터 사흘이 되었다. 그들에게는 먹을 것이 없어, 시장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그 일을 상기시키면서 질문을 했다.
(26)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진설병(늘여놓을 陣, 베풀 設, 떡 餠), (레24장)은, 성소의 떡 상에는 언제나, 한 줄에 여섯 씩, 두 줄로 열두 떡 덩이가, 차려 놓아야 했다.
안식일이면 이전에 진설된 떡들은, 모두 다 빼냈다. 그 대신 새롭게 구운 떡들을, 진설애햐 했다. 그 때 물려낸 떡들은,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기에, 거룩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제사장들만, 그 떡들을 먹을 수 있었다.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해서, ‘놉’이라는 곳으로 갔다. 그 곳에는 성막이 있었다. 다윗은 그 곳에 있는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먹을 것을 구했다. 제사장 아히멜렉은, 대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버지였다. 제사장 아히멜렉에게는, 다른 떡이 없었다. 마침 안식일이기에, 그에게는 떡 상에서 물려낸, 진설병이 있었다.
그러나 제사장 외에는 먹을 수 없지만, 제사장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진설병을 주었다. 다윗은 제사장 외에는, 먹으면 안 되는 진설병을 먹었다. 그리고 자기와 함께 한 자들에게 주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 일로 인해 제사장 아히멜렉이나, 다윗이나, 다윗과 함께 한 자들을 책망하지 아니했다.
(호6:6上)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라고 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도 긍휼을 베푸는 것을 더 원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제사장 아히멜렉은,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한 다윗과, 그 일행에게 진설병을 주었다.
예수님의 의도는, 사람의 구원이 제도보다, 의식보다 먼저라는 말이다. 안식일에 물려낸 진설병은, 제사장만 먹어야 했다. 이는 하나님이 정한 법이지만,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었을 때, 진설병을 먹는 것이 허락되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 예수님의 제자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시장했다. 그래서 안식일이었지만, 이삭을 잘라서 먹었다. 이것은 성경에서, 분명히 하나님이 허락한 행위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바리새인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전통이, 금할 수는 없다. 지금 바리새인들의 비난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불법이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제사보다도 인애와 긍휼을 원한다. 불쌍히 여기며, 도움을 주는 손길을 귀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긍휼을 품고,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3. 예수님의 2가지 교훈(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먼저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안식일을 정한, 하나님의 의도요, 목적이다. 하나님은 2가지 목적으로, 안식일을 제정하였다. ①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다. 사람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원만하게 이루어짐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창조된 존재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이, 바로 이를 증명한다.
② 인간으로 휴식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엿새 동안의 노동으로, 혹사당한 육체는, 휴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과로사’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 급증하는 병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일의 노예가 되어, 육체를 혹사시켜, 과로로 인생을 마감한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한 것을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다.
Ⓐ 사람이 먼저 창조되고, 그 후에 안식일이 정해졌다. 하나님은 사람을, 여섯째 날에 만들고, 다음날인 일곱째 날에, 안식했다. 하나님이 먼저 만든 사람을 위해, 그 다음날을 안식일로 정했다.
(창2:3)을 보면, 하나님은 일곱째 날인 안식일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했다. 안식일은 다른 날보다 복된 날이다. 엿새 동안은 힘써, 모든 일을 행하라고 했다. 그리고 일곱째 날은 안식일이니,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했다(출20:9-10). 일을 하지 않고 쉬더라도, 하나님이 책임지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사람에게는 쉼이 필요하다. 고무줄을 계속 잡아당기기만 하면, 끝내는 끊어진다. 마찬가지로 무조건 일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적당한 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안식일은, 같은 원리다. 쉰다는 것은, 게으름을 뜻하지 않는다. 방종의 기회로 삼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하면 안식일이, 사람에게 도리어 해가 된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쉬고,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세상일로 약해진 영성을, 다시 회복토록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로써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근본적인 잘못을 지적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전통으로, 사람을 얽어매어서, 마치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처럼 만들고 말았다.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가리켜서, 무거운 짐을 묶어서, 사람의 어깨에 지우는 자들이라고 질책했다(마23:4). 잘못된 전통 때문에, 안식일은 더 이상, 복되고, 즐거운 날이 아니었다.
그들의 번잡한 전통 때문에, 사람들은 안식일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그 결과 안식일은, 다른 날보다 오히려 더 힘들고, 더 고통스러운 날이 되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전통을 강요했다. 그들의 멍에는 어려웠다. 또한 짐도 무거웠다.
그들의 까다롭고, 복잡한 전통 때문에, 사람들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져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멍에는 쉽다. 믿으면 된다. 짐도 가볍다. 예수님이 대신 지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쉼을 주기 위해서다.
Ⓑ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인자’는 예수님이, 스스로를 가리킬 때, 자주 사용했던 칭호다. ‘나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이처럼 말씀하는 이유는, 예수님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요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는 예수님이다.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한 분은, 하나님이 되신 예수님이다. 일곱째 날에 안식한 분도 예수님이다. 일곱째 날을 복되고, 거룩하게 한 분도, 사람을 위해, 안식일을 정한 분도 예수님이다. 안식일은 휴식과 예배를 위해, 제정된 날이다.
결론은 분명하다. 예수님은 모든 것의 주인, 하나님이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대해서, 이러해라 저러해라 말할 수 없다. 안식일을 주관하는 분은,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안식일의 주인인 예수님이, 나와는 어떤 관계야 하는가?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이다.”
이와 같은 신앙을 확립해야 한다.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그 때 예수님은, 우리의 삶의 주관자가 되며, 우리를 영원토록 돌보아주기 때문이다. 이런 은혜가 넘쳐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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