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8년 7월 8일 - 순종이 중요한 이유(막1:43-45)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8-07-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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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이 중요한 이유(막1:43-45)
지난주의 말씀은, 나병은 사람의 힘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인데, 이 병에 걸리면,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깨끗이 만들었다. 예수님은 그를 불쌍하게 여기면서, 손을 그에게 댔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나병환자의 병을, 짊어졌다는 말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단절된 자를, 다시 결합시키려고, 나병환자에게 손을 댔다. 나병환자에게 손을 댄 것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짊어짐으로, 스스로 불결한 자로 되었다. 하나님과 단절된 우리를, 예수님의 속죄를 통해, 다시 깨끗하게 만들어, 하나 되게 만들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가, 가족과 사회에 있지 못하고 있을 때, 다시 회복시킴으로, 이전처럼 사회생활을 다시 할 수 있게 했다.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고, 손을 댈 때, 인류의 구원이 시작된다. 아담이 상실한 낙원 회복은, 예수님의 거룩한 손만이 가능하다고 했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회복시켜준 나병환자가, 순종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를 말한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문제가 생기고,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내 생각과 상대방의 생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순종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
1. 예수님의 엄한 경고다(43-44).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예수님은 깨끗함을 받은 나병환자를, 곧 그 자리에서 떠나보냈다. 그가 사회로 되돌아가기에 앞서, “엄히 경고하사.” 예수님은 그를 보내면서, 엄히 경고했다. 예수님은 그에게, 어떤 제안이나 조언을, 한 것이 아니었다.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하면서, 아주 강한 경고를 했다.
깨끗함을 얻은 사람에게, 2가지를 경고했다. ① 예수님은 그에게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했다. 2중적으로 말했다. 왜 예수님은 어떤 사람들에게도, 사실대로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했나? 함구령을 내렸는가? 그가 입을 벌림으로 발생하는 역효과가, 너무 컸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② 예수님은 그에게 ‘하라’고 경고했다. ‘가라.’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라.’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제사장들에게 입증하라.’ 예수님은 그 나병환자에게, 율법에 명한 규례를 따라(레13장), 병이 나은 것을 확인하는 절차를, 밟도록 지시했다.
율법에 정한 규례를, 그가 먼저 행해야 했기에, 제사장에게 보이고,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중하라고 했다. 물론 예수님이 행한 이적에 의해, 완전하게 깨끗함을 받았지만, 율법에 의하면,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입었다는 사실의 확정은, 제사장이 책임지는 일이다(레14장).
그래서 예수님은 깨끗함을 받은 사람에게, 먼저 율법에 정해진 규례대로 행하고, 그 뒤에 사람들에게 말하라고 명했다. 율법은 나병에 걸렸다가, 나은 사람은,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쳐서, 공동체로 복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레14:2-31).
① 제사장에게 가서, 자신이 나은 것을 알리고, 제사장에게 정밀진단을 받는다. ② 제사장이 나았다고 판단되면, 정결예식을 통해, 그가 병에서 나은 것을 증언했다. ③ 질병에서 나은 자는, 몸을 씻은 후에 규정된 예물들 드리고, 1-2차 정결 예식을 행해야 했다.
④ 그 후에 그는, 병을 치유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하나님께 다시 자신을 헌신하는, 의미의 제사를 드렸다. ⑤ 이 모든 예식이, 정상적으로 마치면, 제사장은 그 사람이 병에서 나았다는 사실을 선포했다. ⑥ 이 모든 절차가 마치면, 그는 비로소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
예수님은 나병에서 나은 사람에게, 이런 율법의 절차를 거쳐서, 가족에게로 돌아가라고 했다. 예수님은 특수한 상황에서, 율법의 규례를 넘어서, 그를 고쳐 주었지만, 고침 받은 후에, 율법의 규례를 따르도록 지시했다. 깨끗함을 받은 사람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서,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면,
제사장들은 그의 몸을 살펴보면서, 놀라운 듯이 물어볼 것이다. ‘언제 나병을 앓은 적이나 있었소?’ 그는 이와 같이 대답할 것이다. “나는 온 몸에, 나병이 들렸던 사람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를 이처럼, 깨끗하게 해주셨다.”
(요2장)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깨끗하게 했다.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과, 돈을 바꾸는 사람들을 내쫓았다.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들은, 예수님이 율법을 폐한다고 비난하면서,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깨끗함을 받은 사람의 증언을 통해서, 예수님의 신적능력을, 그 곳 제사장들에게 밝히 보이기를 바랐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예수님이 결코 율법을 무시하거나, 폐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보여주기를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깨끗함을 입은 사람은, 예수님의 명에 순종하지를 않았다.
그는 예수님이 바라는 대로, 행하지를 않았다. 예수님의 뜻과는 아무 상관없이, 자기가 뜻하는 대로 행했다. 행여 이것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 예수님이 바라고, 예수님이 원하는 대로, 우리는 따라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을 내도, 예수님의 뜻이 아니면, 예수님은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수님 말씀에, 늘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사실 너무나도 기쁘고, 좋은 일이 생겼는데, 입을 꾹 다물고, 침묵하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째든 그는, 예수님의 명을, 순종하지 않았다.
2. 불순종의 결과(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예수님은 깨끗함을 받은 사람에게, 엄히 경고했다.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 했으나(44), 예수님의 경고와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나가서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자기를 깨끗하게, 한 일을 전파했다.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했다.
그 결과 예수님이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했다.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실 수밖에 없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병 고침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에게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 결과는 어떠했나?
그런데 깨끗함을 받은 사람이, 예수님의 명에 순종하지 않음으로,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따라서 예수님이, 깨끗함을 입은 사람에게, 입을 다물도록 명했다. 그는 성전의 제사장들에게, 예수님이 원하는 증거를, 입증해야 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사역에도, 막대한 지장을 주고 말았다. 몰려오는 무리로 인해서, 더 이상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다. 주님은 때로는 바닷가에, 때로는 빈들에, 때로는 산에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방에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왔다.
그들이 나아온 목적은, 복음을 듣고, 그들의 영혼이, 구원받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병이 낫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들의 소원을 이루기를, 원할 뿐이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자기에게 몰려오는 사람들 때문에, 더욱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만일 예수님이, 그들의 병을 모두 다 고쳐주면, 그들 모두가 예수님을, 믿지 않겠느냐고, 생각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생각이다. 예수님은 많은 유대인의 병을 고쳐주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다. 그러므로 겸손히,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자. 이것이 복이다.
사소한 문제로, 부부싸움을 할 때도, 그 이유를 가만히 살펴보면, 내 생각이 더 옳다고 주장하면서, 굽히지 않고, 밀고 나가기에 생긴다. 따라서 서로 이해하고, 순종하는 자세를 취하기 바란다. 예수님은 군중들이, 이적과 기사에, 열광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
그리스 신화에, 미다스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양아버지요, 스승인 술에 취해있는 ‘세일레노스’를 발견하고, 내쫓지 않고, 잘 보살폈다. 그래서 디오니소스 신이, 미다스에게 소원을 하나를 들어주겠다고 하자, 미다스는 순간 욕심이 생겨서, 자신의 손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지, 황금이 되게 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기둥을 만지니, 금이 되었다. 방바닥을 만지니, 황금 집이 되었다. 신이 났다. 그런데 자신을 반기는, 귀여운 딸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 마이다스는, 만지면 황금이 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로, 딸을 껴안게 되고, 딸은 금이 된다.‘
그 뒤에 아무도 미다스와, 가까이 하지 않고, 식사를 하려고 해도, 음식이 황금으로 바뀌기에, 식사를 할 수도 없었다. 좋은 것 같지만, 좋은 것이 아니었다. 나병환자는 부정했기에, 동네에서 살지를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치유해서, 동네에서 살게 만들었다.
예수님을 찾아와서, 깨끗함을 얻었다. 그는 이제 동네 안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예수님은, 동네 밖으로 나가서 지내야 했다. 하나님의 생각을 넘어서는 자체가, 오히려 잘못된 길임을 알아야 한다.
3. 그러면 만일 깨끗함을 받은 사람이, 예수님 말씀에 순종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예수님은 여러 마을로 들어가서,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원하는 바는, 갈릴리 여러 마을로 가서, 그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인데, 예수님이 그릇된 메시아로 오해받고, 복음전파 사역이, 지장 받게 되었다. 예수님은 어려 곳에 있는 모든 병자들, 특히 먼 곳까지 이동할 수 없는, 중환자들까지도 다 고쳐주었을 것이다.
(삼상15:22中)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했다. 언제나 순종이 제사보다 더 나은 법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림으로,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며, 영화롭게 하자. 더 나아가면 (잠14:12, 16:25)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했다.
오늘날 이 사회는,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 만능주의’가, 마치 옳은 진리인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는, 영적으로 매우 어두운 시대이다. 진리는 다수결이 아니다. 이 시대의 빛이 되어야 하는, 교회들마저도, 자유주의, 다원주의, 쾌락주의를 무분별하게 용납하고, 세상 가치관과 타협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수결’과 ‘시대의 사조’를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다. 믿는 사람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성경을, 기준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성은, ‘다른’과 ‘틀린’을 구분하지 못한다.
인간이 중심적일 때,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틀린’을 단지 ‘다른 것’이라고 왜곡한다. 동성애를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성경은 이것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분명히 죄라고 한다(롬1:26-27).
우리는 마음에,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동성애를 행하는 사람을 사랑하되, 동성애는 죄며, 잘못된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아이는 여자가 임신해서, 낳아야 한다. 그런데 왜 여자만 이런 어려운 임신을 하고, 해산을 해야 하냐면서, 남자를 수술시켜 임신하게 하고, 해산시키자고 한다.
부분의 순종은, 절반의 순종이 아니라, 불순종이다. 어떤 어머니가 아들에게, 슈퍼에 가서 3가지를 사오라고 했다. ① 아이스크림 ② 라면 ③ 고추장을 사오라고 했다. 아들은 슈퍼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오고, 라면을 사왔다. 그런데 고추장은, 자기가 생각할 때, 살 필요를 느끼지 않아, 안 사왔다.
그러면 지금 이 아들은, 어머니 말에, 얼마나 순종했는가? 아이스크림을 사왔고, 라면도 사왔으니, 두 가지는 순종한 것이고, 고추장 한 가지만 분순종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런데 지금 이 아들은, 어머니의 말씀에, 부분적으로 순종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불순종한 것이다.
아이스크림과 라면을, 사 온 이유는, 자기 생각에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사왔다. 고추장을 안 사온 이유는, 자기가 생각할 때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안 사온 것이다. 만약에 이 아들이, 라면을 사오라는 것도,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면, 분명히 라면도 사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아들은, 어머니 말에 순종하여, 아이스크림과 라면을 사온 것이 아니다. 이 아들은 모두 다 자기 생각대로, 자기 맘대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부분 순종은, 절반 순종이 아니라, 모두 다 불순종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지만, 아브라함도 처음부터, 믿음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갈데아 우르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서 말했다. (창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은 4가지 명령을, 말씀했다. ① 고향을 떠나라. ② 친척을 떠나라. ③ 아버지(아비카)를 떠나라. ④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네 가지 명령을 받고,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는가? 고향을 떠났다. 그러나 친척 롯을 데리고 갔다. 아버지도 모시고 갔다. 지시한 가나안으로 가지 않고, 하란으로 갔다.
4가지 중에, 한 가지만 지켰다. 3가지를 지키지 않았다. 4분의 1의 믿음이었다. 한 가지 순종, 3가지 불순종이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친척을 떠나라고 하였는데, 롯을 데리고 갔다가 골칫거리가 되었다. 심지어 싸우고, 헤어진 적이 있다.
롯 때문에 위안을 받거나, 도움이 된 기사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데리고 왔다가, 내내 고생이었다. 아버지를 떠나기 싫어서 모시고 나왔다가, 결국 하란에서 돌아가서 장례를 치루고 혼자 떠나야 했다. 지시한 가나안으로 가지 않고, 하란으로 갔다고 고생만 하였다.
결국은 싸운 후, 친척을 떠났다. 결국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를 떠났다. 하란에서 살지 못 하고 가나안으로 가야 했다. 결국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되었다. 순종한 것은 순조롭게 되었고, 불순종한 것은 고생만 하다가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순종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하나님의 명령은 처음부터, 듣는 것이 좋다. 처음부터 말씀대로 사는 것이 좋다. 순종하는 것이, 최대의 미덕이다. 처음부터 순종함이, 신상에 좋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순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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