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8년 6월 17일 - 예수님의 사역(막1:32-39)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8-06-17 |
첨부파일: 예수님의 사역.hwp(22K) |
예수님의 사역(막1:32-39)
지난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안식일을 맞아, 가버나움에 있는 한 회당에 들어갔다. 그 곳에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읽고, 가르쳤다. 마침 그 곳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자, 더러운 귀신은 두려움에 떨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때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며, 그 사람에게서 더러운 귀신을, 내쫓았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과, 귀신을 쫓아내는 예수님의 능력에, 모두가 크게 놀랐다. 안식일 예배를 마친 후에, 예수님은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의 초대를 받고, 안식일 만찬을 들기 위해, 그들의 집에 들어갔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열병으로 누워 있는, 시몬의 장모에 대해 말씀드렸다. 예수님은 시몬의 장모를, 낫게 해주었다. 시몬의 장모는, 완전히 건강을 회복했고, 즉시 일어나서, 예수님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수종을 들었다. 오늘 본문은 그 뒤를 이어서, 계속되는 내용이다.
1. 이적을 행하는 예수님(32).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오전에 회당에서, 더러운 귀신을 내쫓았고, 오후에 예수님은, 시몬의 집에서, 열병으로 누워 있던,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었다.
이와 같은 소문은, 삽시간에 온 동네에 퍼져나갔다. 이제 저물어 해 질 때가 되었다. 사람들은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들을 예수님에게 데리고 왔다. 왜 사람들은 일찍, 그들을 예수님에게 데리고 오지 않고, 저물어 해 질 때가 되어서야, 데리고 왔나? 안식일이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의 규정은, 매우 까다로웠다. 안식일에는 멀리 걸어갈 수 없었고, 무엇을 들고 갈 수도 없었다. 심지어 안식일에는, 병을 고칠 수도 없었다. 이러한 안식일의 규정 때문에, 사람들은 안식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유대인의 하루는, 해질 때 시작해서, 그 다음날 해질 때에, 끝이 난다.
안식일은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안식일이 끝이 나기를 기다렸다가,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즉시 행동 개시했다. 사람들은 모든 병자와, 모든 귀신 들린 자들을 다 데려왔다. “데려오다”의 시제는 미완료형이다. 계속되는 동작을 말한다. 쉬지 않고, 계속 데려왔다.
그 결과는 어떠했나? (33)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여기에서 “그 문”은, 시몬과 안드레의 집 문을 말한다. 시몬과 안드레의 집은, 상당히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병든 사람들과 귀신들린 사람들, 그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 그리고 구경하러 모인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34)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그러나 같은 내용인 (눅4:40)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일일이, 많은 사람들 위에, 손을 얹고, 병을 고쳐주며, 더러운 귀신들을 내쫓아주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 이전에, 병을 고쳐준 기록은, 많이 나오지 않는다. 치유의 역사는 복음서에서만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창20: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이 때 하나님은, 처음으로 치유의 역사를 행했다.
에덴동산에서 사람이 타락한 이래, 사람의 몸은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질병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아브라함 때 처음, 치료의 이적을 베풀었다. 그 때로부터, 선지자 이사야 때까지, 대략 1300년 정도다. 그 기간 동안도 사람들은, 역시 병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오랜 기간 동안, 이적을 통한 치유의 역사는, 불과 20여 차례 나타났을 뿐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전739년에 태어난 인물이었다. 그 때로부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오기까지, 약700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는데, 그 오랜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이적을 통한 치유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병들을 고쳐주고, 귀신들을 쫓아냈을 때,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 과거에 이런 일들이 없었기에, 예수님이 행한, 치유의 이적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마9:33)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그러면 예수님이 빈번하게, 치유의 이적을 행한 목적은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일시적인 건강을 주기 위함이 결코 아니었다. 예수님은 이적들을 통해서, 그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임을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나타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구세주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심을 알고 있었다. (사35:5-6)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잘 알지 못했지만, 귀신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귀신들은 본시, 하늘나라에서 예수님을 섬기는, 천사들이었다. 타락해서 하늘에서, 내쫓긴 자들이다. 그러기에 귀신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 왜 귀신의 증언을, 허락하지 않았나?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사탄이나 그의 사자인 귀신들은, 모두 다 거짓말쟁이들이다. 그러니 거짓말쟁이인 귀신들이, 증언한들 거기에 무슨 효력이 있겠는가? (막3:22) 말씀과 같이, 예수님을 배척하는 자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귀신들이 계속해서, 예수님을 증언하면, 그들은 더욱 거세게, 예수님과 귀신들이 한 패라고 비난할 것이다. 아울러 귀신들이 노리는 바가 있었다. 귀신들은 사람들을 선동해서, 예수님을 정치적인 왕으로 세워보도록 꾀했다. 귀신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지 못하도록, 기를 쓰면서 막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귀신들을 꾸짖으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아니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예수님이 귀신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있음을 우리에게 밝히 보여주었다. 진실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은 전혀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많은 이적들을 행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밝히 보이기 위해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사실을 우리에게 밝히 보인,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로 하여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확실하게, 지켜나가기를 바란다.
2. 기도하는 예수님(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예수님은, 늦게, 잠들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눅4: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 다음날 새벽에, 아직도 밝기 전에 일어났다. 예수님이 “일어나셨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일단 잠이 들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예수님의 인성을 뜻한다.
사실 예수님도 육체를 가졌기에, 매우 고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새벽에, 일찌감치 일어났고,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했다. “기도하다”도 미완료이다. 예수님은 계속 기도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으러 올 때까지, 그 곳에서 계속해서, 오랫동안 기도했다. 본문이 말씀하고는 의도는 분명하다.
예수님은 이적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적을 행하는 능력의 원천은, 어디에 있었나? 한 마디로 끊임없는 기도에 있었다. 예수님도 인성을 가졌기에, 때로는 심신이 피곤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은, 늘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했다.
복음서를 보면, 기도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계속 발견할 수 있다. 침례를 받으면서, 기도했다(눅3:21). 열두 제자를 부르기 전에도, 예수님은 먼저 기도했다(눅6:12-13). 기도를 가르쳐주기 전에도, 예수님은 먼저 기도했다(눅11:1-4). 예수님은 변화 산에서도 기도했다(눅9:29).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기 전에도 기도했다(요11:41-42).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전날 밤, 마가의 집에서 유월절 음식을 들면서 기도했다(마26:26-27). 같은 날 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가서, 계속해서 기도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도 기도했다.
본문 말씀처럼, 예수님은 새벽에 일찍이 일어나, 하나님께 기도했다. (마14: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해가 저물었어도, 하나님께 기도했다. (눅6: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그러면 왜 예수님은, 이처럼 늘 기도했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늘 기도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온전히 순종했다. 순종할 수 있는 힘은, 순전히 기도에서 나온다. 왜 순종하지 못하는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하다’(팔랄)은 ‘중재하다, 개입하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판단해 달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나의 생각을 포기하고, 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이다. 또 예수님은 늘 기도함으로, 성령의 능력을 힘입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님이 임하면, 그들이 권능을 받게 되리라고 했다(행1:8). 예수님은 자신이 말씀한 대로, 늘 기도하면서,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힘입어서, 더러운 귀신들을 내쫓았다(마12:28).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죽음도, 성령님을 힘입은 것이고, 예수님이 부활한 것도, 성령님을 힘입은 것이었다(히9:14). 늘 기도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항상 기도함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온전하게 이루고, 언제나 성령을 힘입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기도의 본을 보여준 그대로, 우리도 늘 기도에 힘쓰자.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늘 그 뜻을 따라서 살자. 아울러 성령님을 힘입고, 날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기 바란다.
3. 전도하는 예수님(36-37).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 그리고 함께 했던 야고보와 요한도, 늦게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 다음날 아침, 늦게까지 자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새벽이 밝아오면서, 그들은 와글와글하는 소리에, 절로 잠에서 깨어났을 것이다. 시몬의 집 앞에는, 다시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들었다. 이미 예수님은, 모든 병자들을 다 고쳐주고, 모든 귀신 들린 자들도, 더러운 귀신을 모두 내쫓아주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다시 그 곳으로 모여들었나? 예수님에게는 못 고칠 질병이,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아서, 자기들의 사소한 질병까지도, 예수님이 고쳐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아울러 그 전날 저녁에, 이처 오지 못했던 사람들도, 그 날 아침에는 다 찾아왔을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구원받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원하는 바는, 예수님이 그들의 병을 고쳐주고, 귀신들을 내쫓아주기를 원했다. 그들은 계속 떠들면서, 예수님이 자기들에게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 소리에 시몬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은 잠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예수님을 찾아보았지만, 예수님은 집안에 계시지를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 집밖으로 나섰다. 그러다가 한적한 곳에서, 홀로 기도하던 예수님을 만났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답변하셨는가?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나는 그들에게, 내가 누구인지 충분하게 보여 주었으니, 이제는 다른 마을들로 가자. 그래야 그 곳 사람들도,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나를 믿고 구원을 얻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예수님은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이 행하는, 사역의 최우선 순위가 무엇이며, 예수님이 행하는 모든 사역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를 밝혔다. 그것은 전도, 즉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온 목적이 무엇인가? 병을 고쳐주고, 귀신들을 내쫓아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이 보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 사람은 구원을 얻는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에서 영생한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그 사람은 멸망한다. 그는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한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는 지옥은 어떤 곳일까? 예수님은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들이 영원토록 당해야 하는, 그 끔찍한 고통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단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 쉬지 않고 전도했다.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가버나움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고, 온 갈릴리에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밝히 보여주기 위해, 계속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며, 더러운 귀신들도 내쫓았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온 목적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왔기에, 전도하고 귀신도 내쫓았다. 본문에서 예수님의 사역, 3가지를 차례대로 살펴보았다.
① 예수님은 이적을 행했다. ② 기도했다. ③ 전도했다. 마가복음을 차례대로 살펴보는 목적은, 우리가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예수님을 더욱 본받기 위함이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이적을 행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힘써 기도할 수 있고, 예수님처럼 힘써 복음을 전할 수는 있다.
늘 기도함으로,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성령님을 힘입어, 힘써 복음을 전하며, 영혼 구원을 위해 우리의 최선을 다하자. 그래서 예수님의 칭찬을 받으며, 크고 영원한 상을 받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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