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8년 6월 3일 - 성령님과 기도(롬8:26-27)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8-0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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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과 기도(롬8:26-27)
이 세상을 살다 보면, 고통과 고난을 당할 때가 있다. 이때 마음이 약하여,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를 때가 있다. 그럴 때 하나님께 기도해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하지도 못하면, 성령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기도해 준다고 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도와 성령의 역사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고난당할 때에,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때이다.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 도와준다. 능력을 주고, 깨닫게 만들어준다.
또 우리는 연약하기에, 때때로 죄를 짓고, 넘어질 때가 있고, 낙심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순간에 절망하거나 포기하면 안 된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 우리를 도와준다. 기도하게 만들어서,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능력을 주기에,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삶을 성령님께 의탁하면,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된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성령님의 역사를 제한하지 말라. 또한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은, 인격이다. 따라서 도깨비 방망이처럼, 이용할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성령님은 인격이기에,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성령님을 붙잡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성령님이 나와 아름다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에, 관심을 둬야 한다. 그래서 성령님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기 바란다. 성령님은 우리의 과거, 우리의 아픔과 문제, 우리의 미래를 다 알고, 준비하는 분이다.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아파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성령님의 도움이 없다면, 우리는 천국에 이를 수 없는 존재들이다. 우리는 죽음의 문제도, 죄악의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인생의 어떤 문제도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알기에, 성령님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준다.
1. 성령님은 우리 연약함을 돕는다.(26上).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 성경에는 ‘연약함’이 단수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아스네이아이스) 복수로 되어있다. 우리의 연약함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말이다.
인간은 연약함을, 많이 가진 존재이다. 영화 타이타닉을 보면, 배가 금이 가자, 쥐들이 기어 나왔다. 쥐는 벌써 파선을 예견하고 있었는데, 인간은 모르고 행동했다. 쥐들이 볼 때, 재난이 다가옴도 모르니, 얼마나 웃긴가? 개미도 홍수가 날 것을 미리 알고, 집을 나무꼭대기로 옮긴다고 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홍수를 예측하지 못해서, 큰 재난을 겪는 모습을 본다면, 개미가 얼마나 비웃을까? 이처럼 한 마리, 미물만도 못한 게, 인생이다. 우리는 내일을 모른다. 한치 앞도 모른다. 육체적으로도 연약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병균에, 평생 병원신세를 지지 않았던, 젊은이가 쓰러진다.
정신적으로도,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 타인의 눈짓에, 상처를 받는다. 걱정 때문에, 잠도 못 잔다. 강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정서적으로 약하다. 인간은 넘쳐도 문제이고, 모자라도 문제가 된다. 사랑이 많아도, 사랑을 받지 못해도, 문제가 된다. 돈이 너무 많아도 타락한다. 너무 적어서 비굴해진다.
인간은 영적으로도, 연약한 존재다. 시험과 도전을 받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나? 반듯한 사람인데, 돈 앞에 꼼짝 못하고, 시험에 드는 사람이 있다. 돈에는 아주 의로운데, 이성 앞에서 무너지는 사람이 있다. 이성에는 강한데, 명예에 무너지는 사람이 있다. 지혜로운데, 영적이지 못하고, 기도하지 않는다.
열심히 기도한다 생각했는데, 교만하기 짝이 없다.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데, 언어생활에서 실패하고, 삶이 따라주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연약한 존재들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나무라지 않는다. 연약함 때문에, 오히려 더 역사한다.
따라서 연약함 때문에, 실패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낙담하지 말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다고 염려하지 말라. 염려는 불신앙이다. 염려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실제적인 부분을, 돌아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불신앙 외에는, 우리를 염려하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하기에, 오히려 우리를 도와주기 원한다.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서,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따라서 연약함 때문에, 오히려 도우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도우시나니’(쉰안티람바노마이), ‘쉰’(함께), 안티(반대편, 내가 할 수 없는 곳, 내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람바노마이(잡아준다, 번쩍 들어 옮겨준다)는 뜻이다. 즉 ‘내 곁에서, 함께 하며, 나의 반대편, 내가 할 수 없는, 건너편에서, 나의 문제를 번쩍 들어서, 옮겨 주신다.’는 뜻이다.
하나님 아버지도, 우리를 도와주고, 예수 그리스도도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과 영생을 얻게 만들지만, 특별히 우리가 연약할 때에, 성령님이 도와준다. 여기서 성령님이 돕는 사건이 얼마나 신비한지, 헬라어의 세 단어를, 한 단어로 묶어서, 성령님은 지금 곁에는, 함께 하며, 우리를 도와준다.
우리의 삶을 형통하게 만들고(스7:6), 환난에서 도와주고(시46:1), 가난과 궁핍에서 도와주고(시70:5), 질병에서 치유되게 도와주고(막9:22), 복음을 전파하도록 도와준다(행26:22).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맡은 사명을, 감당하도록 한다.
우리 인생은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고 살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 “나는 남의 도움 받는 것도 싫고, 내가 남을 도와주는 것도 싫다, 내 인생 내가 산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다. 외로운 사람이다. 실패한 사람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하나님께 생명을 받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의사의 도움을 받고, 학교나 직장이나, 가정에서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자랐다. 성령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울 때에, 겸손하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
국가적으로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은 나라들은, 다 부강하고, 선진국을 이뤘다. 그러나 무신론 국가들, 하나님의 도움을 안 받겠다고 하다가, 국가적으로 어려움을 당한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인도함을 받기 바란다.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를 돕는 성령님의, 도움을 받기를 바란다.
2.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해준다(26中).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님이 우리 연약함을 어떻게 돕고, 돕는 이유를 잘 말씀한다.
① 우리가 마땅히 빌 바(기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때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해 준다고 했다. 기도는 만사를 해결하는 능력인데, 우리는 조금만 열을 받아도, 기도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상심되고, 걱정되는 문제에 부딪히면, 기도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영적으로 실패하는, 가장 뚜렷한 징후는,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인식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심각한 문제에 부딪혀도, 기도할 마음이 생기면, 성령님의 도움을, 힘입고 있는 것이다. 성령님은 성도에게, 기도할 힘을 제공한다.
②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한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할 때, 성령님은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한다. 죄지은 사람, 교만한 사람, 방탕한 사람과, 불신앙에 빠진 사람을 보고, 성령님은 탄식으로, 하나님께 중재해준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하는데, 오히려 하나님을 탄식하게 만든 사람이 있다. (눅22:31-32)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를 위하여,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했다. 교회는 부흥하고, 발전하기 위해, 특별히 재직들을 세우고, 위해서 기도한다. 하나님의 축복과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께 충성된 종이 되기 위해, 교회와 주의 종들이, 탄식 가운데 기도하고 있다.
목회자의 시각에서, 성도들을 볼 때, 때때로 안타까울 때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기만 하면, 새벽기도회와 철야기도회에 나오고, 봉사 충성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큰 복을 받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목회자의 마음이 안타까운 것이다.
교만하고, 게으르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해서, 목회자의 마음을 탄식하게 하는 성도가 되면, 안되겠다. 우리는 믿어도, 올바른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선생님이 학생을 보고, 탄식할 때도 있다. 학생이 말을 잘 들으면 좋을 텐데, 제멋대로 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안타깝다.
가정의 자녀들도 그렇다. 부모님이 가만히 보면, 어려서부터 착실하게 공부하고, 말도 잘 들으면 다 훌륭하게 될 텐데, 그렇지 않고 부모님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자녀가 있다.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안타까워하고, 어머니가 딸을 보고 안타까워한다. 얼마나 안타까운가?
이미 경험했고, 그렇게 살았기에, 도움을 주려고 하는데, 자녀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내 인생 내가 사는데, 왜 간섭하느냐? 잔소리하지 말라’고 하고, 오로지 돈만 달라고 한다. 돈보다 더 중요한 교훈과 말씀, 또 부모님의 훌륭한 인생은 생각지 않는다.
자녀들이 ‘내 인생, 내 마음대로, 내 고집대로 살겠다.’고 할 때, 부모님의 마음이 탄식하고, 답답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안다면, 부모님을 안타깝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철들었고 말한다. 이런 안타까움을 아는 그리스도인이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안타까움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성령님을 탄식하게 해서는, 결코 안 된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께 충성된 믿음과 신앙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하나님이 다른 길을, 예비할 때가 있다. 이때 자기 고집과,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로 가면, 놀라운 복을 받게 된다.
3.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한다.(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성령님은 사람의 마음, 중심을 살핀다고 했다. 이것은 성경의 일관된 사상이다.
(시7:9中)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또 (렘17: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하나님은 인간과 같이 유한한 존재가 아니다. 창조주로 전지한 분이다.
따라서 인간의 드러난 행위는 물론, 마음의 생각까지도 다 안다. 이것은 분명히, 악인에게는 두려운 사실이다. 악인은 아무리, 겉으로 거룩한 척해도, 자신의 불의함이 드러나,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살핀다는 사실은, 진실한 성도들에게는 큰 위로가 된다.
왜냐하면 진실한 성도는, 비록 연약하여 죄를 범할지라도, 그 마음만은 그렇지 않음을, 하나님이 다 알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 마음을 살피는 하나님은, 성도의 마음을 알고, 응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위선적인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바리새인과 같이, 겉으로는 경건한 척하면서, 마음으로는 악독을 품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진심으로 기도했다면, 비록 유창하게 말하지 못해도, 그저 마음으로 탄식하며, 소원만 해도, 하나님이 들어줄 줄, 믿어야 한다. 한나는 유창한 말로, 아뢰지 못했다. 그저 괴로운 마음으로, 통곡하며 마음으로 소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응답을 받았다. 하나님이 그녀의 소원과 생각을 알고, 응답했다(삼상1:9-18).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살피는 분임을, 항상 기억하자. 언제나 하나님 앞에, 위선적인 마음을 품지 말고 또 마음에 소원한 것은, 하나님이 들어주실 줄로 확신하자.
하나님은 성령의 생각은 안다. 하나님은 성령님의 무슨 생각을 아는가? 성령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함을’(엔튕카노, 호소한다, 간청한다.) 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은 성령님의 생각을 안다, 하나님의 구원의 뜻과 계획을 바탕으로, 성도와 함께 간구하고 있음을 안다.
우리의 뜻대로 사는 것보다,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과거는 알지만, 현재 일과, 미래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사는 우리가, 우리 생각과 주장만을 외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의 뜻과 은총을 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함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성도들을 계획대로, 이 땅에서 보존해서, 천국에 들여보냄이,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사다. 또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도,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 땅에서 잘 보전되어, 저 천국에 입성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성도들과 하나님께, 가장 큰 관심사요, 궁극적인 목표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이런 하나님의 관심사를 잘 알고, 성도와 함께 간구한다. 즉 하나님의 관심사와 성도의 관심사가 하나 되도록, 기도를 이끈다. 그러므로 성도가, 성령 안에서 드리는 기도만,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하나님께 열납 된다. ‘나흘로’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는다.
하지만 성령님 안에서 하는 기도는, 다르다.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는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를 드린다. 늘 지켜주심을 믿고 감사한다. 어떻게 사느냐고 묻는다면 성경말씀대로 믿고 감사하며 산다고, 말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
말씀대로 살 때,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뜻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좌우된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최고의 지식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함이, 최고의 성취며, 축복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성령님이 탄식하는 기도로, 우리는 도움을 얻고, 고난 중에 낙심하지 않고, 기도로 응답받고, 승리하게 된다. 성령님은 하나님 뜻대로, 성도를 위해 간구한다고 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느냐, 살지 못하느냐,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느냐, 구하지 않느냐, 말씀대로 사느냐, 살지 못하느냐에 달렸다.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만, 올바로 되어 있다면, 수평의 인간관계와 환경의 관계는, 하나님이 다 해결하여 준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가장 좋은 길로 응답한다. 지혜를 준다. 높여주고, 풍족하게 하고, 삶을 보람되게 만들어 준다. 성령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믿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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