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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8년 5월 27일 -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삶(엡5:18-21)
  작성자 : 이건기 작성일 : 2018-05-27
  첨부파일: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삶.hwp(21K)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삶(5:18-21)

 

본문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의 일부다. 그 당시 에베소에는, 풍요의 여신 아데미를 섬기는 신전이 있었다(19:28). 에베소 사람들은 수시로, 아데미 신전에 올라가, 그들의 풍요로운 삶을 기원했다. 당시의 이방종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나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사람들이 신전에 올라가서 제사할 때, 완전히 취할 정도로, 술을 마셨다. 그래야 자신들이 믿는 신과, 하나 될 수 있다고 여겼다. 술에 취하고 나면, 그 뒤를 따라, 온갖 방탕한 일들을 하고, 사람들은 술에 취해서, 고성방가를 일삼았다. 또 거친 말을 하며, 서로 간에 원망하며, 다투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런 배경에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했다. 성도는 이교도들처럼, 술 취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그러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무슨 말인가?

명령형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린 명령, 절대로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다. 하나님이 명령한 대로,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겠다며, 온전히 순종할 따라야 한다.

현재형이다. 현재형은 계속적이고, 반복해서,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과거에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았더라도, 오늘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수동태이다.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라는 말이 아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했다. 성령으로 충만함은,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이 성령님으로, 우리를 충만하게 만들기 원하니, 성령님이 나를 다스리고 지배하도록, 저항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복수형이다. 우리 성경에는 너희는이라는 단어가, 빠져 있다. 여기서 너희는, 그리스도인 전부를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인 가운데,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면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는다는 무슨 뜻인가? 성령님이 나를 온전히, 지배하는 상태를 말한다. 성도가 구원받고, 신앙생활을 할 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과, 은혜를 하나님이 반복하여 부어준다. 이를 성령님으로 충만하다고 한다. 특별히 술 취하는 것과,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서로 대조했다.

술이 취했을 때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성령님으로 충만 받았을 때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이 술에 취하면, 술이 그 사람을 지배한다. 성령 충만의 원리도, 이와 같다.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으면, 성령님이 우리를 다스리고, 지배한다. 즉 성령님이 우리의 삶을 온전히 주관한다.

본문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은 삶을, 3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 모두 늘,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아, 성령님에게 이끌리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

1. 성령님은 우리에게, 새 노래를 심어준다(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성령님으로 충만하면, 산을 옮길 만큼, 큰 믿음이 우리에게 생기는가? 천사의 말, 방언을 하는 것인가? 아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새 노래를 준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에, 우리 안에 있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새 노래를 부르게 한다. 새 노래라는 용어가, 모두 9번 쓰였다. 시편에 6이사야서에 1, 계시록에 2, 사용되었는데, 언제나 구원받은 성도들이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이것들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은 사람이 부르는 새 노래.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으면, 성령님은 우리 마음과, 우리 입술에 새 노래,” 곧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심어준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억지로 구분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께 드리는 시가, 찬송이며,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부르는 노래가, 신령한 노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신령하지 못한 노래들, 방탕한 노래들을 즐겨서는, 안 된다.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아, 새 노래, 곧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늘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려야만 한다.

서로 화답하며새 노래로, 서로 화답하라. “서로,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로, 구속함을 얻은 성도들을 말한다. 성도들은 새 노래로, 서로 화답하면서, 하나님에게 영광 돌린다.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새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다. 불신자들이 들으라고, 새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다.

성도가 새 노래를 부르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다. 성경에는 찬양이, 전도용으로 사용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성경은 언제나 복음을 전하라고 했다. 복음을 노래함은, 찬양이 아니라, 복음성가이다. 불신자에게 노래를 들려주어서, 전도하겠다는 생각은, 복음성가이지, 찬양은 아니다.

착각하면 안 된다. 복음성가가 불신자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고, 하나님께 관심을 두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는,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찬양은 성도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높여드리는, 말과 행동이다.

너희의 마음으로마음으로, 새 노래를 불러야 한다. 새 노래를 부르는 이유는, 성령님이 마음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지 못한 사람이 부르는 노래는, 입술로만 부르는 노래일 뿐이다. 찬양은 마음으로 부르는 것이지, 입술로 부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우렁찬 목소리나, 아름다운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음악적으로는 완벽할는지는 몰라도,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지 못한,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면,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는다. 우리 입술로만 부르는 노래를,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니(5:23),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새 노래를 하나님께 드리자.

주께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아, 우리가 마음으로 부르는 새 노래를, 받아야 할 분은 누구인가? 오직 한 분, 우리 주 하나님이다. 찬양은 우리의 만족을 위해서, 부르는 것이 아니다. 찬양의 목적은, 인기를 얻기 위한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오직 주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다. 따라서 혼자 찬양을 하든지, 찬양대의 일원으로, 찬양을 부르든지, 온 회중이 다함께 찬양 드리든지 간에, 우리의 시선은 오직, 주님을 향해야 한다.

노래하며 찬송하며하나님께 찬양하는 방법은 2가지다. 노래는 육성으로 부르는 노래요, 찬송은 악기를 이용한, 찬양을 말한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식을 거행했다(대하5:13). 그 때 육성으로 노래하는 자들과, 악기를 사용하여 찬송했다.

하나님은 그들이, 성령 충만한 마음으로 드리는 노래와, 찬송을 기쁘게 받았다. 우리도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아,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우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자. 그리함으로,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드릴 때마다, 늘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2. 성령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한다(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성령님으로 충만하면,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이는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기 바란다.

범사에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범사에 감사한다.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다. 욥은 하나님이 줄 때도 감사했다(1:21). 반면에 욥은, 하나님이 거두어 갈 때에도 감사했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던 이유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와는 달리,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지 않은 사람은, 범사에 감사할 수 없다. 마음이 교만해서, 자기가 항상 더 많은 것을, 누려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지 않은 사람은, 범사에 불평하며, 원망할 수밖에 없다. 감사하는 마음은, 환경 문제가 아니다. 감사할 일이, 없어서도 아니다. 교만하기 때문이고,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능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야 한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14:13), 예수님이 친히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된다.

(2:12)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라고 했다. 예수님은 친히 교회 중에서, 곧 성도들이 모인 곳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리라고 말씀했다. 무슨 뜻인가?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송할 때,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 자신이 친히,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행하는, 중보의 역할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때도, 중보자인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를 드려야 한다. 그리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된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예수님이 드리는 감사를, 기쁘게 받는다.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성령님으로 충만하면, 항상 감사하게 된다. 성경은 3종류의 감사와 수준을 말한다. 은혜를 받고 난 후, 드리는 감사가 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들, 10명을 고쳐주었다. 그들은 예수님께 감사하지 못했지만, 사마리아 한 사람은, 돌아와서, 예수님께 감사했다(17:16).

미리 드리는 감사가 있다. 유다 왕 여호사밧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노래하는 자들을 택해,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드렸다(대하20:21). 하나님은 그들이, 미리 드리는 감사를 받고, 은혜를 베풀어서, 유다 백성들은 싸우지도 않고,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항상 드리는 감사가 있다. 다니엘이 곤경에 처했지만(6:10), 이전에 하던 대로 변함없이 하나님께 감사했다. 눈앞에 보이는 상황과 전연 관계없이, 하나님은 항상 감사를 받아야 할, 분이기 때문이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다니엘처럼, 형편과 처지와 상관없이, 항상 주님께 감사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는다. 성령님이 그 사실을 증언하기 때문이다(8:16). 그러면 아버지 하나님께, 왜 감사를 드려야 하나?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는 분은, 아버지 하나님이다(1:17).

따라서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드리는 감사를, 받아야 할 분은 하나님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궁극적인 감사를 드려야 한다.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우리가 드리는 감사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게 되기를 축원한다.

3.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피차에 복종하게 한다(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늘 하나님을 마음속에 두고 살기에, 하나님을 의식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사람들 사이에, 아름다운 관계가 이루어진다(5:21-6:9).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아름다워진다(5:22-33).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아름다워진다(6:1-4).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름다워진다(6:5-9).

성도들의 영적인 무장이, 이루어진다(6:10-20). 악한 영들이 활동하는, 적그리스도의 세대를 사는 우리는, 성령님으로 충만하도록 사모하고, 깨어있어야 한다. 악한 영은, 먼저 머리를 공격한다. 따라서 특별히 교회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대통령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성령님으로 충만한 사람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간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본을 보여주었는가? (2:6-7)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하나님의 본체지만, 죽기까지 복종하는 겸손을 보였다.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된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늘 자신을 낮추며, 즐겨 다른 사람들에게, 복종하는 삶을 살게 된다.

피차 복종하라성령님은 우리 모두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했다. 그 결과 예수님은 성도들로 이루어진, 교회의 머리가 된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는 지체들이다. 우리 몸에는 여러 지체들이 있다. 우리 몸의 지체들은, 결코 서로 다투지 않는다.

이들은 언제나 피차 복종한다. 이 원리는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는 다투지 말고, 피차에 복종해야 한다. 만일 우리 각자가,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다른 지체들에게서, 섬김만 받으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 단 한 사람에게서만, 섬김을 받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우리 모두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피차 복종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섬기면 어떻게 되겠는가? 수많은 사람의 섬김을, 받게 될 것이다. 자연히 우리 모두, 든든히 서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아,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기를 바란다.

같은 내용의 골로새서는, 성령 충만함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골로새서의 말씀을 통해, 성령 충만한 삶의 비결을 깨닫자!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는다는 것을, 다른 말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한 대로, 순종하며 살자.

이처럼 순종과 결단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삶을 책임질 것이다. 우리 모두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자. 그래서 이제부터 새 노래로 찬양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피차에 복종함으로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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