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8년 4월 29일 - 귀신을 쫓아낸 예수님(막1:25-28)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8-0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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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을 쫓아낸 예수님(막1:25-28)
예수님은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쳤다. 가르치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다.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칠 때, 귀신 들린 사람이 소리쳤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귀신은 당신이 누구인줄 안다고 했지만, 지식으로 알 뿐이다. 삶과 연결되지 않는다. 하나님과 상관없게, 행동하고 행동하게 만든다. 자신이 멸망할 것은 알지만, 돌이키지 않고, 돌이킬 수 없다. 그리고 거룩한 하나님과는 반대로, 더러운 삶을 살게 만든다. 귀신은 악하고, 더러운 영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이,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할 때, 가타부타 말씀하지 않고, 더러운 귀신을 꾸짖었다. 여기서 예수님의 권위가, 잘 나타난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의 질문에, 아무 답변을 하지 않고, 더러운 귀신을 내쫓았다.
1. 귀신(더러운 영)을 꾸짖은 예수님(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더러운 영은 사람 안에 들어가, 그를 사용하고, 지배할 수도 있다.
귀신은 무엇인가? (마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했다. 예수님은 마귀와, 그의 사자들에 대해 말씀했다. 마귀는, 사탄과 동일한 존재다(계20:2). 마귀의 사자들은, 귀신들을 가리킨다.
본래 사탄이나 귀신들은, 모두 천사로 지음 받았다. 천사의 수는 만만이요, 천천이다(계5:11). 하늘의 별과 같이, 무수하게 많다. 그들은 하늘에 거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일을 맡았다. 그러던 중 천사장 가운데 하나인 루시퍼가 교만해서,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고자 했다.
(계12:4)에 의하면, 그 때 천사들의 삼분지 일이 그를 따랐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하늘에서 내쫓기고 말았다. 이 때 하늘에서, 내쫓긴 천사장 루시퍼가, 바로 사탄이다. 천사장 루시퍼와, 하늘에서 내쫓긴 천사들, 타락한 천사들이 귀신들이다. 그들이 마귀의 사자들이다.
영적 존재이기에, 사람처럼 죽는 법이 없다. 사람처럼 장가가거나, 시집가는 법도 없다. 그러기에 그 수가, 줄지도 않고, 늘지도 않는다. 처음 창조되었던 수에서, 조금도 변함없이, 그 수만큼 영원히 유지된다. 아울러 사람처럼, 육신을 가진 존재가 아니기에, 쇠약해지거나, 고단함을 느끼는 법이 없다.
끊임없이 악한 일만 계속, 행할 뿐이다. 더러운 영이 그 사람의 발성기관을 사용해서, 소리 질렀다. (마12:22) 귀신이 그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말도 못하게 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의지로 귀신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귀신에게 완전히 억압된 사람은, 귀신의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거부하지 못하고,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런 귀신을 꾸짖고, 내쫓을 수 있다. ‘꾸짖다’(에페티메센, 에피티마오)는 ‘에피’(위에, ~대해) + ‘티마오’(가격을 정하다.) = 비난하다, 벌하다. 당시 마술사들은, 독특한 도구를 사용하여, 주술적 행위로, 귀신을 나가게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악한 자로부터 구원하러 온,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다(마25:41). 예수님은 자기 권위만으로 귀신을 쫓아냈다. 예수님의 귄위로, 바람을 잠잠하게 하는 일, 병든 자를 고치는 일에 사용했다. 물론 예수님도,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손을 잡아 일으키고(31), 손을 대며 말씀했고(41), 침으로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기도 했다(요9:6). 그러나 이 모든 행위는, 사람의 믿음을 돕는 행위며, 말씀의 권위로만 회복시켰다. 그에게서 나오라고 하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를, 소유한 권위 앞에, 귀신들은 순종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① “잠잠하라.”(피모티, 피모오)는 ‘입에 재갈을 물리다.’이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이, 예수님에게 질문하는 것도, 더러운 귀신이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 생각에는, 더러운 귀신이라도, 예수님에 대해서 바르게만 증언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예수님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왜 예수님은, 귀신들이 자신에 대해, 증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나? (요8:44)에서 예수님이 말씀한 바와 같이, 사탄도 귀신들도, 다 거짓말쟁이다. 그러니 거짓말쟁이인 귀신이 증언한들, 그 증언에 무슨 효력이 있겠는가? 게다가 예수님을 배척하던 자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힘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런 가운데 귀신들이 예수님을 증언하면, 그들은 더욱 거세게, 예수님과 귀신들은, 한 패라고 비난할 것이다. 귀신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또 귀신에 의해, 메시아 예수님의 정체를 알려지면, 사람들은 정치적 메시아로 세우려 하기에, 사역에 지장 받을 수 있다.
(34)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그래서 예수님은, 다른 귀신들이 예수님의 정체를 말하려고 할 때도, 허락하지 않았다(34). 또 나병을 치유한 이후에도, 이를 경계했다(43).
② “그에게서 나오라”(엑셀, 엑세르코마이)는 ‘엑크’(~로부터) + ‘에르코마이’(가다) = 밖으로 나가라.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내쫓기 위해, 어떻게 했나? 더러운 귀신과 대화를 하면서, 귀신을 설득하지 않았다. 귀신 들린 사람의 몸을, 밧줄로 단단히 묶으라고 하거나, 책망하지도 않았다.
회당 관리인에게, 그를 밖으로 끌어내라고, 하지도 않았다. 예수님은 아무 도구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 어떤 주문도, 외우지 않았다. 그 곳에는 안찰도 없었고, 안수 기도도 없었다. 단지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향하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했다. 이것이 전부였다.
예수님이 말씀으로 명령할 때, 천지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들이, 창조되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천지와 만물을 향하여, 명령할 수 있는 귄위가 있다. 모든 피조물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할 따름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성령을 힘입어서, 악한 영들을 쫓아낼 수, 있음을 믿기 바란다.
귀신을 향한 예수님의 선포는 ‘잠잠하라’(피모티)와 ‘나오라’(엑셀)는 2가지 명령이다. ‘나오라’는 명령은, 직접 치유하는 행위와 관련된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항변하는 귀신을, 잠잠하게 하는데 놔두지 않고, 귀신 들려 고생하는 자로부터, 귀신을 쫓아냈다. ‘나오라’
예수님이 ‘회당 안으로 들어옴’은, 귀신의 ‘회당 밖으로(사람 밖으로) 쫓겨남’의 원인이 되었다. 서로 대조되고 있다. 예수님이 들어옴과, 귀신의 쫓겨남의 가운데,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의 선포가 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온 이유는, 사단의 세력의, 멸망을 가져온다는 메시지가 있다.
2. 귀신을 쫓아낸 예수님(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더러운 귀신은 그에게 빠져 나오면서, 그가 사로잡았던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켰다.
‘경련을 일으키다’(스파랏소)는, ‘숨이 차다, 찢다, 발작하다“는 말이다. 더러운 영은 본질적으로, 죄를 짓게 만들고, 악하기에 사람에게, 괴로움을 끼친다. 그래서 (행5:16中)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이라고 했다. 더러운 귀신은, 자신이 영원한 불 못에, 던짐 당할 것을 알기에 두려워한다.
(고전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했다. 우리 몸은 성령의 전이지, 귀신들이 거하는, 귀신들의 전이 아니다. 귀신은 예수님의 명령 앞에, 큰 소리를 지르고 나왔다.
(갈2:20上)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우리 안에는, 거룩한 예수님이 살기에, 더러운 귀신들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더러운 귀신이, 우리를 무서워할 수밖에 없다.
우리 안에, 거룩한 예수님이 산다. 따라서 늘 거룩한, 예수님으로 충만해서,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기 바란다. 더러운 귀신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능력과, 귄위가 있는 그리스도인이, 다 되기를 바란다.
“나를 따라오라”는 예수님의 명령에는,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 “잠잠하라, 고요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바람과 바다와 물결도, 순종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더러운 귀신도 예수님의 명령에는, 그대로 순종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의 명령에, 더러운 귀신은, 그 사람의 몸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오기 싫었지만, 예수님이 명령하니, 어쩔 수 없이 나왔다. 그러나 귀신의 본질이, 더럽고 악하기에 마지막으로 나가면서, 한 번 더, 그 사람을 괴롭혔다. 경련을 일으켰다. (눅4:35中)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그 사람을 넘어뜨리고 나왔지만, 그 사람은 상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상하지 않도록, 보호해주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더러운 귀신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그 사람 몸에서 내쫓겼다. 말하자면 더러운 귀신은 또다시, 두려움에 떨었다.
‘경련을 일으키고’는, 귀신들이 몸부림치는 의미이며, ‘큰 소리를 지르며’는 강한 비명의 의미다. 두 단어를 사용하여, 귀신이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 아래에서, 저항하지 못하는 모습을, 시각과 청각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사용하여 묘사했다.
귀신이 나오면서, 경련을 일으키는 모습을, 실감나게 그리면서도, 그가 소리를 지르는, 통곡의 소리를 동시에 표현하여, 귀신의 극한 상실감과, 더불어 마지막 저항을 그렸다. 이런 표현은, 인간을 지배하여 왔던, 악한 영으로부터, 승리하는 예수님의 귄위를, 더욱 훌륭하게 부각시킨다.
더러운 귀신은, 무엇에 떨었는가? 그를 내쫓는, 예수님의 귄위에 떨었다. 예수님은 사탄과 귀신들을, 하늘에서 내쫓았다. 더러운 귀신을 귀신들린 사람의 몸에서 내쫓았다. 장차 예수님은, 사탄과 귀신들을, 영원한 불못으로 내쫓을 것이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귄위가, 더러운 귀신을 떨게 만들었다.
3.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귀신들(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 도다 하더라.” 회당에 있던 사람들은, 또다시 놀랐다.
그들은 이미 22절에서,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에, 뭇 사람들이, 한번 놀랐다(에크플렛소). 그러나 이번에 그들은 더 크게, 다 놀랐다(베오, 마비시키다, 경악하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더러운 귀신을 내쫓았기 때문이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점층법이다.
더러운 귀신이, 예수님에게 보였던 반응은, 무엇이었나? 예수님이 누구인 줄 알고, 떨었다.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심판과, 예수님의 거룩함과, 예수님의 귄위에 계속해서 떨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회당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보였던 반응은 무엇이었나? 그들은 계속해서 놀랄 뿐이었다.
그들은 놀라면서 “이는 어찜이냐?, 이것이 무슨 일이냐?”고 서로 물었다. 말하자면 아직도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인 줄을 제대로 깨닫지를 못했다. 더러운 귀신은, 예수님을 알고 떨었지만, 그가 가야할 곳은 영원한 불 못이다.
회당에 있던 사람들은 어떤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알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했다. 따라서 그들이 가야할 곳도, 영원한 불 못일 수밖에 없다. 표적만으로는 진정한 믿음에, 이를 수 없다. 예수님의 능력을 인정했어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귄위는, 기적을 본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예수님이 가르치는 현장에, 빠짐없이 있었으며, 예수님이 행하는, 놀라운 일들을, 다 봤어도, 그것이 믿음을 가져오게 하지 못한다. 표적에 관심을 기울이는 자들은, 이 점에 유의해야 한다.
기적만 행한다면, 성도들의 신앙이 성장하고, 교회에 부흥이 일어날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신유의 역사와, 이적만을 따라다니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을 인격적으로 만나, 영접할 때, 일어난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귄위를 주셨으니.”
(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예수님의 소문은, 어떠한 내용인가? 예수님의 가르침이, 권위 있는 새 교훈이었다. 예수님이 더러운 귀신에게 명하면, 더러운 귀신도 그대로 순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소문은, 그 즉시 온 사방에 퍼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내쫓음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밝히 보여주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알고, 영접하여 지배를 받자. 날마다 그 앞에 떨며 나아가자. 우리를 악의 세력에서 구원해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깊이 감사와 찬송으로 영광 돌리자.
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주님으로 영접하여, 성령의 놀라운 지배를 당함으로, 주님을 더 사랑하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본받으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널리 증거 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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