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8년 4월 22일 - 예수님의 사역(막1:21-24)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8-04-29 |
첨부파일: 예수님의 사역.hwp(22K) |
예수님의 사역(막1:21-24)
예수님은 메시아로, 사역을 시작했다. 침례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했다.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다가,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불렀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사역했다. 왜? (눅4장)을 보면,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 심지어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낭떠러지에서 예수님을 떨쳐, 떨어뜨리려 했다(29).
그러므로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으로 왔다. 가버나움이 예수님의 사역 중심지가 되었다. 예수님은 가르치고, 귀신을 내쫓아내고, 병든 자들을 고쳐주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3대 사역이다. 따라서 이제 가버나움에서의, 예수님의 안식일 사역을 생각해보자.
1.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쳤다(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가버나움은 갈릴리 바다 북서쪽에 있는, 해변 마을이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사람들을 가르쳤다.
예수님이 무엇을 가르쳤는지, 본문에서 밝히지 않았지만, (눅4:16)을 보면, 성경을 가르쳤다. 성경을 읽고 가르쳤다(눅4:16, 눅24:27). (15)에서 침례 요한이, 투옥된 후에, 갈릴리에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쳤고, 올바른 삶과, 복음을 가르쳤을 것이다. ‘회당’(시나고게)은, 예배드리는 유대인들이. 공식적으로 모이던 장소다. ‘회당’은 바벨론 포로 당시에, 성전을 상실했기에, 유대인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토라를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렇게 시작된 회당은, 예수님 당시에는 물론, 초대 교회 당시에도, 유대인들이 사는 곳이면, 반드시 세워져야 했기에, 복음을 증언하는 중심지로 삼았다. 평일에는 회당에서, 율법 교육을 하고, 안식일에는 기도, 찬양, 성경 봉독과, 랍비의 권위를 가진 사람이, 강해와 설교로, 예배를 드렸다.
(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이 성경을 가르쳤을 때, 뭇 사람의 반응은 놀랐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의 서기관들은, 성경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자들이었다. 율법에 박식했기에, 율법사라 불리며, 또는 많이 아는 랍비, 곧 선생이라고 불리면서, 성경을 가르쳤다. 그러나 당시 서기관들은, 권위 있게 성경을 가르치지 못했다. 그들은 과거의 이름난, 랍비들의 견해를 인용해서, 성경을 가르칠 뿐이었다.
예컨대 이 구절에 대해, 어떤 랍비는 이렇게 보았고, 어떤 랍비는 저렇게 보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달랐다. 다른 사람의 말을, 전연 인용하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의 권위로 말씀했다.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언제나 분명하고 확실하여, 모든 사람이 그대로, 납득할 수 있었다.
성경의 저자가,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권위로, 성경을 가르쳤다. ‘놀랐다’(엑세플레쏜토)는 ‘에크’(안에서 밖으로) + ‘플렛소’(때리다) = “깜짝 놀라서 쳤다, 예상 밖이다.” 뜻을 가진 말이다. 뭇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가르침을 듣고, 놀랐음은 당연했다.
2. 말씀을 들을 때,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소리 질렀다(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마침’은, 예수님이 회당에서 성경을 읽고, 가르칠 때다. 그 회당 안에는, 더러운 ‘귀신’(프뉴마,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 있었다.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회당에 있었음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탄은 광명의 천사로, 가장을 한다(고후11:14). 귀신들도 광명의 천사들로 가장하며, 사람들 안에 숨어서, 은밀하게 역사한다. 당시 유대교는, 진리에서 벗어나 있었다.
따라서 더러운 귀신은, 아무 거리낌이 없이, 회당 안으로 들어가서, 아무 방해를 받지 않고, 그 곳에 머물 수 있었다. 여기서 귀신의 정체를 알 수 있다. 여기 ‘귀신’(프뉴마)은 ‘영’이다(26, 27). 그런데 (32) ‘귀신들린 자’(다이모니조메누스)는 ‘다이몬, 나쁜 성질의 초자연적인 영’이다.
‘귀신’(다이모니온, 다이몬)은, 인간의 능력 밖에 있는 초월적 존재라는 뜻이다. 인간에게 적의를 가진 악령으로, 인간을 지배하는 능력을 갖고, 공격하고 파멸시킬 수 있는 존재다. 사람이 볼 때, 신적능력을 가진, 악한 영의 중간태다.
‘더러운 귀신’은, 귀신들 가운데, 더러운 귀신이 있고, 상대적으로 조금 깨끗한 귀신도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귀신의 본질은, 더러움 자체라는 뜻이다. 귀신은 항상 더럽고, 악한 짓만 행할 뿐이다. 사탄과 귀신에게는, 깨끗함과 선을 행함이 전혀 없다. 회개도 없고, 죄 사함도 없고, 구원도 없다.
따라서 영원한 불 못에, 던져짐을 당할 수밖에 없다. ‘들린’(엔)은 ‘안에’다. ‘귀신 들린’은, ‘죄 짓게 만드는 영,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더러운’(아카르토)는 ‘아’(부정어) + ‘카이로’(정결하다, 속죄되다.) 죄를 지어 부정한 존재가 되어, 하나님이 받아줄 수 없는 상태이다.
또 도덕적으로 추잡하고, 불결한 상태를 가리킨다(계17:4). ‘귀신 들린’은, 악한 영에 잡혀, 하나님을 떠나 반역하게 만드는, 악한 인격 상태를 묘사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회당에서 성경을 읽고, 가르치자, 더러운 귀신은, 쓰고 있던 가면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더러운 영은, 예수님의 권위에 압도되어, 위협을 느끼고, 크게 소리 질렀다. 더러운 귀신은, 정체가 드러나자, 두려움 속에 떨면서, 소리 지를 수밖에 없었다. 더러운 귀신이, 언제 떨며 소리 질렀는가? 예수님이 성경을 읽으며, 성경을 가르칠 때였다.
우리가 무엇으로, 더러운 귀신들을, 떨게 만들겠는가? 세상의 학문이 아니다. 신비한 체험이 아니다. 열심 있는 봉사도 아니다. 특별한 은사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더러운 귀신을 떨게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언제나 성경만이 순전하게 전파되어야 한다.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에게 하는 말이다. 물론 귀신들린 자가, 하는 말은 아니었다.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의 성대와 입술을 사용해, 하는 말이었다.
더러운 귀신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했다. 당시에는 예수라는 이름이,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기 위해, 종종 ‘나사렛 예수’라 불렀다. 물론 예수님은,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마2:23)같이,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오래 사셨기에 ‘나사렛 예수’라고 불렸다.
더러운 귀신은, 예수님에게 2가지를 물었다.
①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이다. 더러운 귀신은 ‘우리’라는 복수형을 사용했다. 따라서 다른 모든 귀신을 대신해서, 더러운 귀신이, 예수님에게 물었던 셈이다.
우리는 당신과 상관(관계)가 없기에, 연결시키려고 해서, 괴롭히지 말아달라는 말이다. 더러운 영은, 주님이 누구인지 알았지만, 지금 주님과, 자신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주님과 상관없이, 그대로 두기를 원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와 연결시켜야, 더러운 귀신이, 교회 밖으로 내 쫓긴다.
②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더러운 귀신은 예수님이, 그들을 영원한 불 못에, 던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옛날 사탄과 귀신들이, 하늘에서 내쫓겼다. 누가 하늘에서, 그들을 쫓았나? 하나님이었다. 따라서 귀신은, 앞으로 때가 되면, 예수님의 심판으로, 영원한 불 못에, 던짐을 당할 것을 알았다.
사단은 예수님이, 악한 영들을 멸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예수님이 회당에서 성경을 가르칠 때,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소리 질렀다. 더러운 귀신이, 소리 지른 것은, 그가 두려움에 떨었다는 의미다. 여기서 귀신의 정체를 알 수 있다.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호 하기오스 투 데우)이다. 이는 예수님을 말한다. ‘귀신 들린’은, 악한 영에 사로 잡혀서, 하나님을 떠나, 반역하게 만드는, 악한 인격 상태를 묘사하는 것이다.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회당에 있었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될 수 없다.
사탄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후11:14). 귀신들도 광명의 천사들로 가장하며, 사람 안에 숨어서, 은밀히 역사한다. 당시 유대교는, 진리에서 벗어나 있었다. 따라서 더러운 귀신은, 아무 거리낌이 없이, 회당 안으로 들어가서, 아무 방해를 받지 않고, 그 곳에 머물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회당에서 성경을 읽고, 가르치자, 더러운 귀신은, 쓰고 있던 가면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더러운 귀신은, 정체가 드러나자, 두려움에 떨면서, 소리 지를 수밖에 없었다. 더러운 귀신이, 언제 떨며 소리 질렀는가? 예수님이 성경을 읽으며, 성경을 가르칠 때였다.
우리가 무엇으로, 더러운 귀신들을, 떨게 만들겠는가? 세상의 학문이 아니다. 신비한 체험이 아니다. 열심 있는 봉사도 아니다. 특별한 은사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더러운 귀신을 떨게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언제나 성경만이 순전하게 전파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와 연결시켜야, 더러운 귀신이, 교회 밖으로 내 쫓긴다. 오늘 우리가 능력을 잃는 이유는, 거룩함을 잃었기 때문이다. ‘거룩함’(하기오스)은, 하나님을 위해 구별되고, 결백한 삶을 말한다. 더러운 귀신은, 하나님이 거룩하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거룩함을 알았다.
예수님은 거룩하지만, 귀신은 더럽다. 언제나 더러움은, 거룩함 앞에서 두려워하며, 떨기 마련이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더러운 귀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인, 예수님의 거룩함 앞에, 두려워하며 떨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거룩함이 능력이다. 거룩함을 잃어버리지 말자.
왜 거룩함을 잃어버리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나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성경을 나와 연결시켜야, 능력의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래야 더러운 귀신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이 자리에 들어오지를 못한다. 악한 영들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고, 쫓겨나게 된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3. 귀신들림과 정신병의 차이.
사람이 귀신들렸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우선 이것은, 정신병과는 다르다. 신약 성경에는, 전형적인 귀신들린 현상을, 잘 보여준다. (눅8:26-39)을 보면, 거라사인의 땅의, 귀신들린 사람이다.
다음 같은 특징을 나타낸다. ① 본인의 인격과, 다른 인격이, 발견되고 있다. ②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았다. ③ 예수님께 거부 반응을 하였다. ④ 다른 3인격의 목소리로 대화했다. ⑤ 무저갱에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⑥ 다른 동물로, 전이 현상이 일어났다. ⑦ 급속한 치유가 일어났다.
물론 정신병과 귀신들림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기존의 정신질환에, 귀신들림이 겹쳐질 수 있다. (마17장)에 나오는 아이처럼, 귀신이 비정상적인 행동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께 말할 때 보면, 언제나 멀쩡하고도, 정상적인 말을 했다.
그런 점에서 귀신 들린 것과, 정신병은 구별해야 할 것이다. 귀신 들린 것과, 귀신에게 영향을 받는 것은 다르다. 귀신들이 사람들을 미혹한다. 그 결과 귀신에게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더러운 사상을 더러운 태도, 더러운 행동을 하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귀신들림과 정신병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1) 정신병. - 정신적 장애가 있음을 의미한다.
① 말에 조리가 없고, 횡설수설하다. ② 신경성과 정신적으로, 질환을 가지고 있다. ③ 지나칠 정도로, 자기 속에 악령이 산다고 주장한다. ④ 목회자의 상담에, 거부하지 않고, 예배참석도 어려움이 없다.
⑤ 비교적 약물에, 치료 효과가 있다. ⑥ 파괴적이 아니다. ⑦ 눈의 초점이 흐리다. ⑧ 초능력이 없고, 나약하다. ⑨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특별한 거부반응이 없다. ⑩ 자신의 목소리로 말한다. ⑪ 남에게 전이되지 않는다. ⑫ 치유가 장기적이다.
(2) 귀신들림.
① 뚜렷한 의식이 있고, 합리적인 말을 한다. ② 때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여도, 실제로는 신체적으로 건강한 상태다. ③ 자신이 귀신들린 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귀신의 존재를, 노출시키려 하지 않는다.
④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님의 임재 앞에서 거부반응하고, 목회자의 상담에, 거부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⑤ 약물에 의한 치료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⑥ 파괴적이다. ⑦ 눈에서 사악한 광채나, 음침한 빛을 발한다. ⑧ 투시, 예언, 괴력 등, 초능력을 발휘한다. ⑨ 남의 목소리를 내거나, 이상한 말을 한다.
⑩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적대감이나 거부행위를 들러낸다. ⑪ 남에게 전이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⑫ 급속한 치유가 일어난다. ⑬ 자주 자살을 한다고 말하며,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요즘 주위에 우울감정이나, 정신적 불안감정으로, 고통 받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고통 받는 분들을 도와주면 도움이 될까? 신앙인 신경 정신과 전문의사의 조언을 들어보면, 먼저 고통 받는 환자가, 귀신들림(영적)인지, 정신병인지를 구분해야 된다. 또 정신적인 문제와, 신앙적(영적)인 문제가 공존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정신적인 방법과 영적인 방법이, 동시에 필요하다. 영적이라고 해서, 귀신을 쫓는 일에만, 관심 가지고 힘쓴다면, 적절하지 않다. 영적이란 말에는, 더 깊은 의미와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해야 한다. 어둠의 세력의 술수와 전략을, 쉽게 생각하거나, 두렵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어둠의 세력은, 정체가 밝혀지면, 빛 앞에 도망한다. 하나님이 치료할 때, 환자가 고통 받았던 기간은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능력은 시간을 초월한다. 정신병에 걸린 사람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기에, 그의 말과 행동이, 비정상적일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어떤 점이, 귀신들을 떨게 했나? 예수님이 더러운 귀신들을, 떨게 만들었는지, 3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① 예수님의 말씀이, 더러운 귀신을 떨게 했다(21-23) ② 예수님의 심판함이, 더러운 귀신을 떨게 만들었다(24上). ③ 예수님의 거룩함이, 더러운 귀신을 떨게 만들었다(24下).
그러므로 주님과 나를 연결시키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암송하고, 자신에게 적용하자. 또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반드시 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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