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8년도 4월 15일 - 복음을 전파하신 예수님 | |
작성자 : 이병진 | 작성일 : 2018-0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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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전파하신 예수님(막1:14-20)
그 동안 예수님이, 메시아로서의 3가지 준비들(침례요한, 침례, 시험)에 대해서 생각했다. 구약에서 예언된 사자, 침례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아,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증언했다. 예수님은 침례를 받은 후에, 성령님의 기름 부음을 받고, 공식으로 메시아 직분에 취임했다.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류를 위해 세움 받은, 메시아로 증언했다. 예수님은 성령님이 광야로 몰아내어, 사탄의 시험을 이김으로, 아담이 잃은 낙원을 회복했다. 사탄의 시험에서 승리한, 하나님의 종 예수님의 본격적인 공생애 사역을 보도한다.
이제 구약성경에 예언된, 하나님 나라가 올 때가 되었다.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사탄의 왕국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오게 하는, 사역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예수님의 메시아 첫 사역은, 팔레스타인 북부, 갈릴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 메시아의 복음 사역의 시작(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때는 ‘요한이 잡힌 후’였고, 시작한 장소는 ‘갈릴리’였다. 그 때 그 곳에서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했다.
여기서 요한은, 침례 요한이다. 침례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였다. 침례 요한은 예수님에게 침례를 베풀고 난 후에도, 사역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침례 요한은, 헤롯 왕에 의해, 옥에 갇히고, 결국 헤롯 왕에 의해, 목 베임을 당하는 장면이 (막6장)에 나온다.
침례 요한은, 왕인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왕의 사자다. 침례 요한은 자신과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요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태양이 떠오르면, 밤하늘에 있는 별들은, 자취를 감추기 마련이다.
침례 요한은, 왕의 사자로서 해야 할, 사역을 완수했다. 이제 침례 요한은, 옥에 갇혀, 그의 사역은 끝났다. 그가 말한 대로, 그는 쇠하여졌다. 이제는 예수님이, 흥해져야만 한다. 침례 요한은 7절에서, 자기보다 능력이 많은 이가, 자기 뒤에 올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말한 대로, 마침내 왕인 예수님이 오셨다. 예수님은 침례 요한이 활동하는 동안에, 메시아로서 본격적인 사역을 자제했다. 침례 요한의 사역이 끝나고, 예수님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전환점이다. 침례 요한이 투옥된 후에, 갈릴리에서 행한 사역을, 예수님의 사역의 시발점으로 보았다.
바로 이때 예수님은, 갈릴리에 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했다. 예수님은 유대광야에서, 침례 받고, 더 깊은 광야로 들어가서, 사탄에게 시험도 받았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예루살렘이나, 유대에 머물지 않고, 갈릴리에 오셨나? 예수님이 갈릴리에 온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마4:14-16)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이는 (사9:1-2)에서 인용되었다.
그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 그만큼 예루살렘은, 부패하고 타락했기에,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메시아에 의한 복음의 빛은, 먼저 이방의 갈릴리에 비치도록 되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 왔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무엇을 전파했는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다.
복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나온 복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음을 그대로 전했다. (요12: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음만을, 순수하게 전파했다.
당시의 갈릴리는,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서, 천시를 받는 땅이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바로 이처럼 천대받는 땅에, 생명의 빛을 전하기 위해, 빛을 비추기 위해 오셨다. 복음은 생명의 빛을, 비치게 하는 삶이다.
2. 예수님이 전파한 복음의 내용(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예수님이 전파하신 말씀이, 두개의 쌍으로 이루어져있다.
① 때가 찼다. 예수님은, 때가 찼다고 했다. 여기서 ‘때’(카이로스)는, 인간의 역사에 존재하는, 일반적인 시간(크로노스)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에 개입한, 특별한 구속사적인 시간이다. (갈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때가 차매, 이 땅에 보냈다. ‘찼다.’(페플레로타이)는, 작정한 기간이. 다 찼다는 의미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때를 따라 행하는 분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전3:1-2)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라고 했다. 우리는 때를 잘 분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특별히 우리가, 분별을 해야 하는 때는, 언제인가? 하나님이 역사에 개입하는 때다. 그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했다. 완료형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왔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만왕의 왕인 예수님이, 통치하는 나라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되는 예수님이 왔으니, 당연히 하나님 나라도, 이미 왔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구원의 때를, 놓치면 안 된다. 신앙생활에 더 매진함으로, 구원을 완전히 이루어가야 한다. 이 때를 놓치면, 후회만 남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
② 회개하라(현재 분사). 그리고 복음을 믿으라(현재 분사). 계속해서 반복해서 할 일이다. (행20:21中)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요, 죄를 회개함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이다.
또한 복음을 믿는 것은, 하나님이 보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복음 곧 하나님이 보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면 그는, 모든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또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예수님은 죄에 대한 권세가 있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그의 죄 사함을 받는다. 이와 관련해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막2: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지은 죄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는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기 바란다. 예수님은 죄 사함의 권세가 있기에,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한다. 지은 죄를 그대로 가지고, 괴로워하지 말고, 모든 죄를 사함 받아, 자유를 누리기 바란다.
예수님은 순수하게, 하나님의 복음만을 전했다.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순수하게, 전하도록 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론에게 금송아지를 만들 것을 요구한 것처럼, 말씀 듣는 자는,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가려운 귀를 긁어주기를, 요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말씀을 전하는 자들도 죽고, 말씀을 듣는 자도 죽고, 다 죽게 된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강단에서는, 언제나 하나님 말씀만, 전해져야 한다. 그것만이 모두가 사는 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는, 세상의 허탄한 이야기로,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3.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제자들을 부른 예수님(16-17).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주님은 오직, 죄 아래 있는 영혼들을, 구원하려고, 제자들을 불렀다. 여기서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가 무엇인지 확인하게 된다.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는, 영혼 구원에 있다. 하나님의 최대 관심은, 바로 우리 영혼의 구원이다. 예수님은 사람을 낚기 위해,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제자들을 불렀다.
정치 집단이나, 사회단체를 만들기 위해, 제자들을 부른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해방시키고, 왕이 된 후에, 신하로 삼기 위해, 제자들을 부르신 것도 아니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는 이유는, 자신의 영혼과, 많은 영혼을 구원하라고, 준 것이다.
(요1장)을 보면,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는, 침례 요한의 제자였다. 침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요1:29下)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는 말을 들었다. 침례 요한의 말을 통해,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고 믿었다.
그로부터 여러 달이 지났다. 그들은 어부기에, 갈릴리 바다에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고 있었다.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던 예수님이,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명령했다. “나를 따라오라.” 그런데 이것은 왕인 예수님만이 내릴 수 있는, 절대적이고도 독특한 명령이었다.
과거에 그 어떤 선지자들도, 어떤 랍비들도, 이 같은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그들은 그저 “하나님을 따르라,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라.”고 명령했을 뿐이다. “나를 따라오라.” 이는 하나님 예수님만이, 내릴 수 있는 명령이었다. 곧이어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했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원문에는 ‘낚는’이 없다. 무슨 뜻인가? 예수님은 그들을 부르시되, 그들이 지금까지 하던 모든 것을 온전히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도록 부른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부름에,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가, 어떠한 반응을 보였는가?
(18)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참 제자가 되려면, 버려야할 것이 있다. 예수님의 명령에, 즉시 그대로 순종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배를 가지고 있을 만큼, 당당한 어부였다(눅5:3). 그러나 그들이, 그 자리에서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예수님의 권세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권세가 주권적으로,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왕이신 예수님은, 이처럼 죄인들에 대하여 권세가 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죄인들을 불러서, 그들을 변화시키며, 그의 나라를 위하여, 그들을 귀한 일꾼으로 사용한다.
이러한 사실은, 세배대의 두 아들을 부른 장면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19-20)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은,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었다(막3:17). 한 마디로 그들은, 성깔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아무에게나, 호락호락 쉽게 넘어갈,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러면 그들은, 예수님의 부름에, 어떠한 반응을 보였나? 아버지 세배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아마 이 때, 그들의 아버지 세배대는, 몹시 황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감히, 왕인 예수님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권세 앞에, 모든 사람들은 순복할 뿐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죄인들에 대한 권세가 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변화시켜서, 그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간다.
지금도 예수님은, 하늘의 천사들이 아니라, 변화된 죄인인 우리를 통해, 계속적으로 그 일을 이루어나간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혼자서만 감당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적절한 사람들을 택해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맡겼다.
(딤후2: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바울이 디모데에게 진리를 전했다. 디모데는 자기가 들은 진리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전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이 들은 진리를, 가르칠 수 있다.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더 든든하게 세워질 것이다. 혼자만 일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힘을 합쳐서, 동역하라는 것이다. 예수님도 사도 바울도, 팀워크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함께 일할 때, 기쁨으로 일할 수 있고, 오래간다.
복음을 올바로 알고 전하자.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다. 가까이 이미 와 계셨으니,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예수님은 죄에 대한 권세와, 죄인들에 대한 권세가 있다. 복잡하게 살지 말고, 순수하게 하나님 말씀만 붙들고 살자. 주님을 위해 포기할 것은 포기하자.
또한 다른 사람과 더불어, 함께 일하는 것을 기뻐하자. 예수님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린 것과 같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과 사역이 되기를 바란다.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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