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8년도 4월 8일 - 광야로 간 예수님 | |
작성자 : 이병진 | 작성일 : 2018-0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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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로 간 예수님(막1:12-13)
지난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침례를 받는 장면이었다. 예수님은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았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침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이 요구하는 의를 이루었다. 하나님은 친히 예수님을, 만백성의 왕으로 세웠다. 그 때 성령 하나님은, 비둘기 같이 예수님에게 내려왔다.
예수님은 성령 하나님에 의해, 기름 부음이 된 것이다. 또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을 향하여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왕이 됨을 공포했다. 오늘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고, 갈릴리에서 복음전파 사역을, 시작하는 내용이다.
다른 복음서에 비해, 마가복음의 내용은 간결하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사탄에게 어떤 시험을 받았으며, 어떻게 그 시험을 이겼는지 설명한다. 그러나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사탄에게, 시험받았다는 사실만, 기록할 뿐이다. 마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있는 내용을, 많이 생략하고 있다.
마가복음은 로마인들을 위해 기록되었다. 로마인들은 언제나, 박진감 있는 행동을 중시했다. 따라서 보다 간결하며, 생동감이 있는 묘사를 선호한다. 마가는 왕이 되는, 예수님의 권세를, 실제로 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사탄의 시험을 이김으로, 사탄에 대한 권세가 있음을 보였다.
1. 광야로 간 예수님(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예수님은 침례를 받고, 곧 물에서 올라왔다. 그 때 하늘이 갈라지면서,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에게 내려왔다.
그 때 성령님은, 곧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다. 세상의 왕들은 세움을 받으면, 곧이어 성대한 축하예식이 거행된다. 그러나 예수님이, 왕으로 세움 받았을 때는, 사정이 달랐다. 그 곳에는 나팔소리도 없었다. 천사들의 노랫소리도 없었다. 성령님은 ‘곧’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고 온, 왕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섬기며,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 왔기에, 세상 왕들이 하는, 축하 행사도 없이, 성령님은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냈다. 물론 예수님이 침례 받은 곳도, 유대 광야에 속한 곳이었다. 더 깊은 광야로, 몰아냈다.
※ 왜 성령님은,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낸 목적이 무엇인가?
① 구속의 목적에서 보면,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내진다(레16:10).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이처럼 그리스도가 앗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내보내져, 속죄의 대상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아사셀을 위하여’(라아자젤)이다. ‘아자젤’은, 속죄일 의식(레16:8, 레16:10, 레16:26)에 나온다. 제사장은 자기 자신과 자기 집을 위하여, 속죄를 한 후에, 이스라엘을 위하여, 두 마리의 염소를 취해야 한다.
한 마리는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지고, 다른 한 마리는 ‘속죄의 염소’ 즉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된다. 하나님이 우리 죄와 과실를, 옮겨준다는 개념은 (시103: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에서 볼 수 있다.
신약에서 침례요한은, 예수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과 동일시했다(요1:29, 요1:36). ‘아자젤’은 민족의 죄를, 그 염소가 짊어지고, 사람이 사는 곳과 완전히 분리된 땅으로 보내진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의 죄악을 지고, 고난의 길로 보내져서, 십자가를 지고, 죽게 되는 것이다.
② 훈련의 목적으로 보면 ‘광야’는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사람들이 살지 않는 황폐한 곳이며, 타인과의 교제가 없는 고독한 곳이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아무것도 없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과, 밤에는 극심한 추위가 있는 장소다. 불뱀이 있고, 전갈이 있는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음성만 듣게 된다. ‘광야’(미드바르)는 ‘하나님 말씀이 있는 곳이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계12: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광야는 양육을 위해, 예비 된 곳이다. 부족한 곳이요, 제한 받는 곳으로, 고통이 있고, 기다려야하고, 안타까운 곳이지만, 이 광야에서 변해야 하는 곳이다. ‘몰아내셨다.’(에크발로) ‘에크’(밖으로) + ‘발로’(던지다) ‘밖으로 던지다, 쫓아냈다.’는 강한 표현이다.
이는 예수님이 마지못해, 광야로 갔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충만해, 전적으로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말이다. 주님의 시각으로 보면, 저주의 장소가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곳이다. 그러므로 힘든 광야의 삶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기 바란다.
2. 광야에서 시험을 받은 예수님(13上).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왜 광야로 예수님을 몰아냈나? (마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광야는 폭풍과 비바람이 끊이지 않고, 서로 속이고 속는 세상이다. 성령님이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낸 목적은, 예수님이 시험받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하나님이, 예수님을 시험하지 않았다. (약1:13中)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예수님을 시험한 자는, 사탄이다. 그러나 사탄이, 예수님을 임의로, 시험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 안에서,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이 때 하나님은,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도록 허락했다. 예루살렘에서는 예수님을, 시험하지 못하기 때문인가? 아니다.
사단은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는, 뛰어내리라고 시험했다(마4:6). 그렇다면 왜 ‘광야’이어야 했나? 광야는 아무도,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왕으로서, 사탄을 이기는 권세가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예수님은 아무의 도움도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사탄의 시험을 이겨야만 했다. 예수님은 어디에서, 시험을 받았나? ‘광야에서’, 며칠 동안, 시험을 받았나? ‘사십 일’동안, 누구에게 시험을 받았나? ‘사탄에게’, 이러한 시험을 통해, 진짜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받게 되었다.
(신8:1-2)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다.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지를 본다.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면, 자신의 실수는 보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실수하는 모습만, 보이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과, 말씀이 중심이 되면, 자기 잘못이 보인다. 이 시험을 통과함으로, 인정받게 된다. 그러므로 광야는, 축복의 장소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심판과 멸망이 아니라, 영생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모르기에, 원망하고 불평했다.
지극히 작은 문제만 생겨도, 불평을 하고, 배만 고파도 원망했다. 하나님이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는 보았지만, 원망하고, 우상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 진짜와 가짜가 구별되는 곳은, 광야에서 이루어진다. 광야의 길을 걸을 때, 하나님이 교만하지 말라고, 나를 낮추고 있음을, 깨닫기 바란다.
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기 바란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마음을 다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만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리로 나와야 한다. 그러면 살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원망 불평하는 사람이, 되지 말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고, 이 시험을 통과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고, 복을 준다. 인생의 가장 큰 문제는 교만이다. 교만한 사람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가르칠 수 없다. 자신이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을 정죄하고 비판한다. 그래서 겸손하게 하기 위해, 훈련시킨다.
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지, 안하는지 시험하기 위해, 광야의 길을 걷게 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시험 받을 때의 상황은 어땠나?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예수님을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이 예수님 홀로, 시험을 받았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시험 받았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이, 보고 듣는 가운데, 하나님께로부터 왕으로, 세움을 받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도 없는 광야로 가서, 사탄에게 시험 받았다. 예수님은 왕이지만, 섬김을 받기 위해, 왕으로 세움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예수님은, 우리를 섬기기 위해, 왕으로 세움 받았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아무도 없는 광야로 나가서, 고난 가운데 시험을 받았다. 예수님은 사십 일을, 광야에 계셨다. 마4:2에 의하면, 예수님은 그 기간 동안, 금식했다. 물론 사십 일의 금식이, 예수님에 의해서, 처음으로 행해진 것은 아니었다.
(출34:28)에서는 모세가, (왕상19:8)에서는 엘리야가, 사십 일을 금식한 적이 있었다. 예수님은 사십 일을,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금식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고, 가장 약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왕이기에, 힘든 상태에서도, 그의 대적인 사탄의 시험을 이겨야 했다.
그러면 사탄은 예수님을, 어떻게 시험했나? 사탄은 예수님을, 3가지로 시험했다. 그런데 그 3가지 모두, 사탄이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 시험은 아니었다. 정반대로 사탄은, 예수님이 낮아지지 못하도록 시험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로, 만백성의 왕이지 않느냐?
그러니 네가 굶어서는 안 되다. 돌로 떡을 만들어라.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니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너의 능력을 보여주어라. 왕으로서 세상을 다스려야 하지, 않느냐? 그러니 내게 엎드려 경배해라. 그리하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네게 주리라.”
이와 같이 사탄은, 예수님이 스스로 낮아지지 못하도록, 막으려 들었다. 사탄의 시험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왕의 권세를 행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사탄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목적은, 앞으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다. 사탄의 시험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대응했나?
예수님은 3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인용했다. 예수님은 매번, 신명기에 나오는 말씀을 인용해서, 사탄의 시험을 단호하게 물리쳤다. 예수님이 시험 받았을 때의 상황은 어떠했나? 예수님은 광야에서 들짐승과 함께 계셨다.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사는 짐승들이, 들짐승들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사람들과는 완전히 격리되어, 예수님만 홀로 그 곳에 계셨다. (신8: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이와 같이 광야는, 불뱀이 있고 전갈이 있는 곳이다. 이렇게 위험하고, 외로운 곳인 광야에서, 사십 일을 있으며, 사탄에게 시험을 받았다.
사실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셨을 때의 상황은, 첫 사람 아담이 시험을 받았을 때와는, 너무 달랐다. 아담과 하와는, 모두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시험을 받았다. 그 때 그들은 에덴동산에 함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시험에 빠졌다. 그러나 예수님은 광야에 계셨다. 위험한 곳이었다.
아무도 없는 외로운 곳이었다.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곳이었다. 사십 일을 주렸기에, 육체적으로는 가장 힘든 상태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시험을 이겼다. 예수님이 시험을 이긴 결과는 무엇인가?
3. 천사들의 수종을 받는 예수님(13下).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하나님이 보낸 천사들이, 예수님에게 수종을 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빌어서 표현하면,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사탄의 시험을 이긴 예수님을 기뻐했다. (마4: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예수님이 사탄의 시험을 다 이기고 난 뒤에, 사탄은 예수님을 떠나갔다. 그 때 하나님은, 천사들을 예수님에게 보내서, 예수님을 수종을 들도록 하였다.
천사들은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기쁨을 전하면서, 그 동안에 주렸던 예수님이, 드실 양식도 제공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사탄이 제안하는, 유혹의 떡을 물리치고, 천사들이 전하는, 신령한 양식을 들었다. 예수님은 사탄이 제안하는, 그릇된 공명심 대신, 천사들의 보필을 받았다.
예수님은 사탄이 제공하는, 헛된 영광 대신에, 천사들의 경배를 받았다. 살펴본 대로, 예수님은 이 세상의 임금인 사탄을 이겼다. 그러므로 왕인 예수님은, 사탄에 대해 권세가 있음을 보였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귀신들을 쫓아내기도 하고, 더 나아가 자기 백성들을, 사탄에게서 해방시켰다.
여기서 우리가, 예수님에게 본받아야 할 점이 무엇인가? 우리도 사탄의 시험을 이겨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얼마든지 사탄의 시험을 이길 수 있다. 우리가 사탄의 시험들을 이기며, 사탄을 물리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할 것이다.
그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우리가 해야 할 모든 사역을, 효과적으로 또 능력 있게, 감당하게 될 것이다. 날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탄의 모든 시험을 이기자.
(딤후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그릇 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주께서 귀히 쓰는 그릇이 되자. 우리 모두 거룩한 삶을 살아서, 주님이 쓰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죽기까지 겸손하게 순종했다. 우리도 겸손하여, 하나님께 쓰임받기 바란다.
예수님은 구속을 이루기 위해, 광야로 간 속죄의 아사셀이 되었다. 또 훈련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해야 함을 보여주었다. 시험당할 때에, 죄를 범하지 않는 성도들이 되어, 하나님의 이름을 더욱 높이는 성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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