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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8년도 3월 18일 - 침례를 받은 예수님
  작성자 : 이병진 작성일 : 2018-04-15
  첨부파일:   침례를 받은 예수님.hwp(23K)

침례를 받은 예수님(1:9-11)

 

지난 말씀에서, 왕의 사자 침례 요한은, 왕인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며, 자기는 왕이 아니라, 사자일 뿐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침례 요한은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와, 죄를 자복하며, 요단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았다.

침례 요한의 삶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어 검소했다. 자신은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한다면서, 나는 물로 침례를 베풀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침례를 베푼다면서, 오직 예수님만 높였다.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일에만, 전심전력을 기울인, 믿을 수 있는 삶이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침례를 받는 광경이다. 따라서 세상의 왕들처럼, 사람들이 그에게 기름을 붓거나, 머리에 왕관을 씌워줄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 이 일을 할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고, 만 백성의 왕으로, 세움을 받았다.

1. 성자 예수님이 침례를 받음(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그 때에는 침례 요한이 침례를 베풀 때다. 예수님은 침례요한이, 사역하는 곳으로 왔다.

북쪽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왔다. 나사렛은 무명의 작은 마을이었다. 구약에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 지명이다. 예수님은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했지만, 예수님을 죽이려는 헤롯 왕을 피해, 애굽으로 피난 갔었다. 헤롯 왕이 죽자, 갈릴리 나사렛으로 와서, 삼십 세가 되기까지, 거기서 살았다.

예수님은 공식적으로, 사역하기 위해, 갈릴리 나사렛을 떠났다. 침례 요한이 사역하고 있는 곳으로, 침례를 받기 위해 왔다. (1)을 보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침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서로 친족이었기에, 예수님과 침례 요한은 친척으로,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애굽에서 돌아온 후에, 갈릴리의 나사렛에서 살았고, 침례 요한은 어릴 때부터, 줄곧 광야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이고, 침례 요한은 광야의 사람이다. 성경에 기록된, 이때가 최초의 만남이자, 유일한 만남이었다.

침례 요한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1:30-31), 실제로 만날 기회가 없었기에, 예수님의 얼굴과 외모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두 사람이, 서로 만나는 역사적이고, 기념비적인 날이다. 그러면 왜 예수님이 침례를 받았나?

침례요한이 주는 침례는,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였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아무 죄가 없기에, 회개할 필요가 없는데, 왜 요한에게 침례를 받았나? 만일 예수님이, 죄가 있다고 주장하면 이단이다. 이 일은 예수님에게, 침례를 베풀었던 침례 요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래서 그도 처음에는, 예수님에게 침례를 베푸는 일을, 극구 사양했다. (3: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말려는 미완료로, 계속 말렸다. 침례 요한도 죄인이기에, 죄 사함을 받는 회개의 침례가 필요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기에, 침례 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침례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침례를 베풀었다. 무엇을 말씀했나? (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님에게는 전혀 죄가 없지만, 왜 예수님이 침례를 받았는가? 예수님이 받는 침례로,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했다. 그러면 예수님이 받은 침례와, 하나님이 요구하는 의는, 무슨 상관이 있나? 3가지이다.

예수님이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은 것은, 친히 침례 요한의 사역을, 인정하기 위해서다. 주님은 친히 요한의 침례에 참여하여, 침례 요한의 사역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정당한 사역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해 주셨다.

예수님이 침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했다. 전혀 죄가 없지만,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었기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침례를 받았다. 예수님의 순종은,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에 대한, 결과로 잘 설명된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갈,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이 세상에 왔다. 그러기에 세상의 모든 죄를 담당해야만 했다. 따라서 자신이 겪을, 대속의 죽음을 상징하기에, 기꺼이 침례를 받았다. 세상의 모든 죄를 담당하는 모습이다.

예수님은 침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었다.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어서,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침례’(밮티스마)밮토’(βάπτω)에서 파생되었다. 그 뜻은 물에 완전히 잠그다, 옷감을 염색하기 위해 잠근다.’는 뜻이다. 따라서 침례의 의미는, 하나가 되다(연합)는 뜻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했다. 우리 죄를 짊어지고, 대속하여 죽기 위해, 침례를 받았다.

그 결과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음으로, 예수님과 연합된 우리는, 예수님이 이룬 그 의를 힘입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하나님은 마치 예수님이, 우리의 삶을 살았던 것처럼, 예수님을 벌했다.

그 대신 하나님이, 우리를 대할 때, 예수님의 온전한 삶을 산 것처럼, 우리를 대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뜻에, 온전하게 순종하자.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한 것처럼, 우리도 힘들어하는 형제들의 짐을, 함께 나누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2. 성령 하나님이 비둘기 같이 임함(10).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침례를 받은 예수님은 ’(즉시) 물에서 올라왔다. 왜 예수님은 곧 물에서, 올라왔는가?

예수님은 많은 백성들의 죄를 담당하고, 물속에 잠기는, 침례를 받았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고, 곧 물에서 올라왔다. 예수님은 침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이 요구하는 의를 모두 이루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공적으로, 예수님을 만백성의 왕으로 세웠다.

그 때 하늘이 갈라졌다. ‘갈라지다는 동사의 시제가, 현재 분사형이다. 계속 동작이, 진행되었음을 뜻한다. 그러니까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하늘이 점차로 갈라지고 있었다. 놀라운 현상이었다. (64:1)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린 간구였다. 그들은 하나님이 하늘을 가르고, 그들에게 강림하기를(야라드) 기다리고 있었다. 메시아가 하늘에서 강림하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런데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래, 하나님은 그 어떠한 선지자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지 않았다.

하나님은 아무 말씀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침묵했다. 지난 400년 동안, 하늘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은, 오랜 침묵을 깨뜨리고, 제사장 사가랴에게 천사를 보내 말씀했다. 이어 마리아와 그의 남편 요셉에게도 천사를 보내, 말씀했다. 이 경우는 당사자에게만, 사적으로 주어진 경우였다.

그런데 예수님이 침례를 받을 때는, 그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이 갈라졌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구한 대로, 하나님이 하늘을 가르고, 공식적으로 강림했다. 정말 그토록 갈망하던 메시야가, 그들에게 도래했다. 이 때 하나님은, 하늘을 가르고, 어떤 식으로 그들에게 임했나?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위이신 성령 하나님이 내려왔다. (1: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예수님만 본 것이 아니었다.

침례 요한도, 분명히 보았다. 따라서 그 곳에서, 침례를 받던 다른 사람들도, 이 놀라운 현상을 함께 목격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다. 따라서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이처럼 아주 특별한 경우에는, 성령 하나님은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옴을 바라볼 수 있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옴은 무슨 뜻인가? 성령님의 모양이, 비둘기 같이 생기셨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영이기에, 눈에 보이는 어떤 모양을, 가진 것은 결코 아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바는, 모양이 아니다. 내려온 방식이다. 성령님이 큰 소리를 내면서, 요란하게 강림한 것이 아니다.

비둘기 같이 부드럽고, 우아하게 내려온 사실을 말한다. 아무튼 이때 성령님이, 예수님에게 내려온 것은, 하나의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내려왔다. 성령님이 예수님에게 내려와서 머물렀음을, 모든 사람에게, 공적으로 알렸다.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이처럼 구약 성경은, 메시아에게 하나님의 영, 곧 성령님이 내릴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이 메시아에게, 기름을 붓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메시아는, 그 이름이 뜻하는바 그대로, 명실공이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된다.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이와 같이 예수님은, 메시아에 관한, 구약 성경의 말씀이, 예수님 자신에게 성취되었음을 밝혔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메시아, 곧 그리스도다. 그러면 언제 예수님은 공적으로,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았나? 본문에 기록된 대로, 침례를 받은 후였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침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드렸다.

그 때 하늘이 갈라지면서,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에게 내려왔다. 이 때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기름을 붓고, 왕의 권세를 주어졌다. 이 때부터 공식적으로, 복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예수님이 온 백성을 다스리되, 하나님의 은혜로 다스리는, 새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되었다.

예수님은 모든 일에, 성령의 인도함을 받았다. 예수님의 말씀도, 예수님의 행함도 모두 다, 성령님을 힘입어 한 것이다. 아울러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도, 예수님이 부활한 것도, 다 성령님을 힘입은 것이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침례를 베푼다. 그러면 언제 예수님이,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는가?

예수님은,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었다.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할 때다. 그리해서 우리 모두 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마귀의 시험을 이긴다. 아울러 의의 면류관을 쓰는 그 날까지, 맡겨진 각자의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3. 성부 하나님이 공포함(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다(1). 이 사실은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내려옴으로, 입증되었다.

또 하늘로부터 소리가 남으로, 청각적으로도 입증된다. 여기서 하나님은 예수님에 대하여, 두 가지를 증언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먼저 하나님은 예수님을 가리켜,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그 어떠한 선지자에게도, 이와 같이 부르지를 않았다.

선지자들은 그저 하나님의 사람,’ 또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렸을 뿐이다. (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2편은 메시아 시인데, (2)은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을 말씀했다. 대관식에 사용되었다.

이 예언의 말씀 그대로, 복음서에서만 예수님은 50번 이상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렸다. 하나님의 아들은 무슨 뜻인가? “본질상 하나님과 같다, 하나님과 동등하다, 바로 하나님 자신이다.”라는 뜻이다. 사도 바울의 표현에 따르면, 예수님의 근본은, 하나님의 본체로서, 하나님과 동등하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아들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하는아들이라고 칭했다. 유대인의 표현에 따르면, 아들이라는 단어 앞에 사랑한다.’는 단어가 덧붙으면, 그의 독자임을 가리킨다. (22)에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린다. 그 때 이삭은, 아브라함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했다.

이삭은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태어난, 독자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하나님의 독생자이기에, 하나님에게는 예수님 이외에, 본질상 하나님과 동등한, 다른 아들이 있을 수가 없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예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먼저 증언했다.

곧이어 하나님은,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면서, 예수님을 기뻐한다고 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대속의 죽음을 감당하겠다는 뜻으로, 침례를 받았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기뻐하면서, 예수님에게 기름을 받고, 예수님을 만 왕의 왕으로 세웠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는 예수님이 홀로. 증언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친히 증언했다(8:18). 그러면 하나님이 언제, 이 사실을 증언했나? 예수님이 침례 받고, 하나님에 의해서 왕으로 세움을 받았을 때다. 침례를 받고 난 뒤, 세상 만물을 다스리는 왕으로서의, 권위를 확립했다.

이 때 성령님이 내려와서, 예수님께 기름을 부었다. 이 때 하나님이, 예수님의 왕이 됨을 공포했다. 이 때부터 예수님은 왕으로서, 죄를 사하는 권위, 병자들을 고치는 권위, 죽은 자를 살리는 권위, 또 진리를 가르치는 권위를 받게 되었다.

예수님이 침례 받은 후에, 하나님은 시각적으로, 또한 청각적으로 예수님이 왕으로 세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분명하게 증언했다. 메시아로 세워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다.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예수님은 친히 우리에게, 침례의 본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침례를 베풀라고 명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명에 순종해서, 성삼위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푼다.

침례를 받지 않아도 될 예수님이, 침례를 받은 이유가 무엇이며, 이 사건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예수님처럼 우리도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해서, 성령으로 충만해,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우리 모두의 삶과, 사역이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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