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8년도 1월 28일 -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2 | |
작성자 : 이병진 | 작성일 : 2018-0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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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2(요일5:4-8)
사람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나름대로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 불교, 이슬람교, 유대교, 힌두교…, 이런 사람들도, 하나님에 대해 믿음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있다. 그러면 이런 지식이 참되고 바른 지식인가? 하나님의 뜻인, 성경에 맞지 않는, 믿음은, 올바르지 않다.
(출32장의 금송아지) 사건을 보자.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자,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면서, 금 고리를 가지고 왔다, 아론은 우상을 만들고, 조각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 우상에 불과했다.
이처럼 잘못된 주장을 하는, 적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오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이런 거짓교사들을 염두에 두었기에, 이 문제를 계속 반복해서 말함으로, 끈질기게 성도들을 괴롭히는, 구원관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하여, 성도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세우려고 했다.
그래서 지난주에,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이, 누구인지 말씀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임을 믿는 자라 했다.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데, 무겁지 않다고 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긴다고 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믿음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자가, 세상을 이긴다고 했다. 예수님은, 물과 피로서 임했는데, 성령이 증언했고, 성령은 진리이다. 성령과 물과 피, 이 셋은 합하여 하나라고 했다.
1.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다(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긴다.’고 했다.
그렇다면 세상을 이긴다(니카오, 정복하다.)는 말은 무엇인가? 세상을 이긴다는, 세상을 외면한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 우주를 정복한다는 말도 아니다. 하나님이 사랑한, 죄에 빠진 이 세상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겨야 할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적그리스도의 세력에 의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대적하는 세상,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하여 인간적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다(2:15-17). 이 세상은 어디에나, 세상 정신이 만연되어 있다. 세상 정신은,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온갖 TV와 매체들에도, 다 숨을 쉬고 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원수인, 사단 마귀가 지배하는 곳으로, 성도들이 승리하는 삶을 살기에는, 매우 벅찬 곳이다. 이것들을 피해, 살아갈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세상에서 부르심을 받았고,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터전은 세상이다.
세상정신이 활개치고, 왕 노릇하는 세상에서, 이겨야 한다. 세상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다. (레18:3)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따르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라고 했다.
하나님은 세상 풍속을 따르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씀했다. 세상 풍속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은, 우리 혈관 속에 꿈틀거리는, 육체의 정욕이었다. 애굽 풍속과, 가나안 풍속이 얼마나 악한지 (레18:6) “각 사람은, 자기의 살붙이(바사르)를 가까이 하여, 그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고 했다.
살붙이를 정욕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처럼 이들의 정욕은, 무섭게 타올랐다. 하나님께로부터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이기되, 정욕을 이겨야 한다. (레18:21)에는, 자녀를 몰렉에게 불태워 드리는, 복에 빠져 있는, 부모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복 받기 위해서면, 무슨 짓이라도 했던 사람들이다.
우리가 이겨야 할 세상이다. 거기는 변태성욕도, 동성애도 포함되어 있다(22-23). 쾌락과, 돈을 잘 벌기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상정신이, 우리가 이겨야 할 세상이다. 더 높아지고, 이름을 내려는 욕망이 꿈틀거리는, 세상적인 것들을, 우리는 이길 수 있는 힘이 없기에, 무너지게 된다.
그러면 세상을 이길 힘은, 어디서 오나? 믿음으로부터 온다고 말씀했다. 성도들의 힘으로는, 도무지 사단 마귀를 이길 수 없다. 우리 힘으로만 대적하면, 백전백패 한다. 그러나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리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했다.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만 있으면, 세상을 이긴다고 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믿음인데, 우리를 위해 죽은 그리스도를, 굳게 믿는 믿음이, 세상을 이기게 한다.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전선으로, 왜군 전선 133척을 물리침으로, 세계 해전사에 유래 없는, 엄청난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쟁에 임할 때, 이순신 장군이 한, 유명한 말이 있다. “必死則生, 必生則死”(필사즉생, 필생즉사)라고 했다. ‘則’(곧 즉)이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뜻이다. 이순신장군과 그 부하들은, 죽기를 각오하는 마음으로 싸워서, 승리를 했다.
그런데 이 말은 예수님이, (막8: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한 말씀과 같다.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자기 목숨을 위해, 살길을 찾기에 급급하면, 전쟁은 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죽을 각오로 싸우면, 그 힘이 몇 배 되어, 승리하게 된다는 말이다. 믿음생활도 마찬가지다. 목숨을 위해서, 잘 먹고, 잘 살기만을 구한다면, 주님을 따르지 못해, 결국 영원한 생명을 잃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를 사랑해서, 십자가에서 죽은 사랑을 믿으면, 다 해결해 줌을 믿기에, 이기게 된다.
따라서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다면, 어떤 마귀사탄의 도전이나, 유혹이나 핍박에도 끄떡없이 견딜 수 있고, 또한 주님의 거룩한 역사를 이루어가는 일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임하게 된다. 그러면 주님께서 힘과 능력과 은혜를 더해 주어, 더욱 생명의 은혜가 넘치는, 삶이 된다.
그러므로 주님의 자녀로서, 영원한 나라를 소유한 자로서, 육체적 물질적, 정신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소중한, 진정한 생명과,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주는, 영적 가치를 아는 자로서, 주님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겠다는 복된 믿음의 삶이 되기를 바란다.
2.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자가, 세상을 이긴다(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아들 예수 안에 있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능히 이기고도 남는, 능력이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따라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으면, 하나님의 사랑의 믿기에, 세상을 이길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세상을 ‘이기는 자’(호 니콘)는 ‘니카오’의 현재 분사로, ‘승리를 거두다, 극복하다.’는 말이다. 즉 완성적 차원의 승리가 아니라, 계속되는 전투에서, 계속적인 승리한다는 말이다.
이는 성도들이, 계속되는 사단의 유혹을 극복하면서, 승리함을 뜻한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못하도록 유혹하는, 많은 이단들의 미혹이 있었는데, 주님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믿음과 신앙을 끝까지 지켜나감으로,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이다.
‘믿는 자’도 현재 분사로, 계속적인 행동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변하지 않는 신뢰가, 세상을 이기는 힘이다. 이러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 믿는 자이다. 세상과 싸워 이기는 주체는, 믿음이 아니라, 그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다.
(약4: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세상과 벗된 것이, 간음을 하는 모습이며, 하나님과 원수된 것이라고, 명확하게 선언한다.
하나님과 세상, 둘 다 사랑할 수 없다. 우리에게 세상은, 이겨야 할 대상이다. 사도 바울도 (롬12:1上)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라고 했다. 구원받은 성도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분명하게 선언한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세상을 이겨야 한다. 세상을 본받으려는 시도를 중단하자.
구약 사무엘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공공연하게 이방 왕 제도를 따르겠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하나님은 어떻게 했나? (삼상8:6-7)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19-20)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고 했다. 결국 열방을 따라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림으로, 멸망하는 길을 걸어갔다.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면, 하나님과는 바로, 원수가 되고 만다.
세상을 닮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노력이 있다면, 구원 받은 성도다. 그러나 성령님의 도움이 없이는, 할 수 없다. 내 의지만 가지고, 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도도 필요하고, 성령 충만한 은혜도, 필요하다. 우리가 말씀으로 충만하고, 은혜로 진리로 충만했을 때 세상을 이기는 힘이, 주님으로부터 공급된다.
세상을 단순화시켜서, TV를 안 본다. 영화를 안 본다, 술과 담배를 안 한다는 정도로, 축소시키지 말라. 세상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정말 위험한 세상 정신은, 우리 속에 감추어져 있는 위험한 생각과 본능들이다. 그것들을 미워하고, 이기고 있다면,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이다.
왜 하나님의 대한 사랑이 흔들리는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믿음이 흔들리기 때문이 아닌가? 상황이 조금 안 좋거나, 내가 원하는 응답이 늦어지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음을 잃어버리기에, 불안해지게 된다. 따라서 흔들리지 말고,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3. 세상을 이긴 구세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로, 성육신했다(6-8).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여기서 ‘물과 피’가 무엇이냐에 대해, 많은 이견들이 있다. ① 물과 피가, 침례와 성찬을 의미한다는 견해이다. 종교개혁자 칼빈과 루터는, 물과 피를 성례전이라 했다. ② 물과 피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물과 피로, 고난을 상징한다는 견해이다. 어거스틴이 이렇게 해석했다.
③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침례 요한에게 침례 받은 사건과, 마지막 생애를 마감할 때, 십자가에서 피를 흘린 사건이라는 견해로,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용서받기 위해, 침례를 받았고, 인간의 죄를 심판하는 십자가에서, 피를 흘림으로, 죄인들의 모든 죄를, 대속했다는 해석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의 시작을 상징하는 물과, 공생애 사역의 완성을 상징하는, 피라는 표현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행한, 사역 전체를 포괄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임하신 이’는,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라는 말로, 역사적 사실을 말한다. 와서 생명을 주었다. 이 증표는 확실하다.
그 당시 이단들 가운데,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이 땅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부정하는 자들이 있었다. 요한은 그들의 잘못된 주장을 염두에 두고, 예수가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의 아들 됨이, 침례와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증명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다. 복음서 저자들은, 이런 사실을 자세히 기록했다.
(마3:16-17)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막1:11 참조).
(막15: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백부장의 입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라는 고백이 있었다.
‘물로만 아니라, 물과 피로, 임하셨고’ 영지주의 이단 가운데, 예수님이 침례 받을 때에, 그리스도의 영이 임했다가,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떠났다는, 잘못된 견해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물로만 아니라, 피’로도 임했다. ‘물과 피’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결정적 증언이라는 말이다.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원문은 “성령은 증언하는 이시다, 성령은 진리이다.” 성령님이 증언하는데, ‘증언’(마르튀룬)은, 공적으로 증언할 때 쓰는, 법적 용어다. 성령이 친히 예수가 그리스도이시오,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언하는, 사역을 한다는 말이다.
‘마르튀레오’(증거, 증언하다, 깨우치다, 내보이다, 입증하다.)의 현재 분사다. 증거 사역이,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예수님이 침례를 받을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했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구원받은 강도와, 백부장의 고백은, 성령의 보이지 않는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일이다.
그리고 사도들과, 전도자들의 복음전파도, 성령의 권능에 의해, 이루어진 사역이다. 이처럼 성령은 전도자들을 통해, 계속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으로 드러나는 것은, 성령의 증언을 통해 가능하다.
성령의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의 고별 설교에서, 가장 확실하게 나타나는데, 곧 진리 되신 보혜사, 성령이 예수를 증언하는 분으로 소개되었다(요15:26, 16:13-14). 왜냐하면 성령은 진리이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진리이기에, 예수님을 증언한다. 이○희는, 자기가 보혜사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예수님을 증언하지 않기에, 거짓 그리스도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한 일은, 결코 우연히 되는 일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짐은,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언이다. 따라서 믿어지지 않는다면, 성령님이 임하시어, 깨닫게 해주기를 사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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