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7년 12월31일 - 하나님이 칭찬하는 교회(고전4:1-5)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7-1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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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칭찬하는 교회(고전4:1-5)
2018년 우리 교회의 표어는 ‘하나님이 칭찬하는 교회’이다. 따라서 해, 우리 모두 하나님께 칭찬을 받자. ‘하나님이 칭찬하는 성도’가 되고, 하나님이 칭찬하는 교회’가 되자. (눅10장)의 베다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었다(39). 언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서, 마음이 분주했다.
동생이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도와주지 않자, 자기 동생 마리아에 대해, 예수님께 원망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했다고 칭찬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위해, 옥합을 깨뜨렸다(막14:3). 그 때 사람들은, 마리아가 한 일에 대해 불평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내게 좋은 일을 했다고 하면서, 마리아를 적극 칭찬했다. 베다니의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칭찬을 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칭찬받는 일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불평이나, 원망을 들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칭찬해주면, 모든 것들을 이겨낼 수 있다.
1.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는 교회(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①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도였지만, ‘그리스도의 일꾼’(1a)으로 여기라고 했다.
바울은 자신을 ‘일꾼’(휘페레테스)으로 여겼다. ‘휘페레테스’는 ‘휘포’(아래에) + ‘에레테스’ (뱃사공) = 노예선 가장 밑바닥에서, 노 젓는 노예다. 옛날 노예 선에는, 노 젓는 곳이, 이단 또는 삼단으로 되어 있었다. 영화 벤허에서, 가장 밑바닥에서, 노를 젓는 노예가 바로 ‘휘페레테스’다.
벤허는 억울하게, 죄수로 끌려가, 어쩔 수 없이 노예가 되어, 노를 저었다. 이처럼 일꾼은 종 또는 노예다.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요,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불렀다. 바울은 자신을 낮추며, 예수님을 그의 주인으로 높인 것이다. 헬라어에서 ‘종’은 주로 ‘둘로스’(묶여 있다)를 쓴다.
노예선의 가장 밑바닥에서, 노 젓는 노예가, 무엇을 내세우며, 자랑할 수 있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들, 그리스도의 노예들이다. 자신을 낮추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여야 마땅하다. 이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교회를 섬기며, 봉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한다.
②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1b)로 여겼다. 바울은 사도로, 하나님께 받은 비밀을 전했지만, 자신이 높아질 이유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하나님의 비밀(뮈스테리온)은, 그리스도다(골2:2中).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골1:17中)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맡은 자’(오이코노무스)에 불과했다. ‘맡은 자’는 청지기이다. 영어로 ‘스튜어드’라고 한다. 그 여성 명사가 ‘스튜어디스’다. 비행기를 타면, 스튜어디스가 쉬지 않고, 손님에게 시중든다. 식사시간이 되면, 스튜어디스는 부지런히, 승객들에게 음식을 제공한다. 그렇다고 스튜어디스가, 자기를 높이지 못한다.
손님들에게 자기 것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비행기회사로부터 자기가 맡은 것을, 전해줄 뿐이다. 배 안에서 노예가, 열심히 노를 저었다고, 자기를 자랑하거나 높일 이유가 전연 없다. 노를 젓는 일은 노예가, 부득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만일 노예가, 노 젓는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 태만히 한다면, 그에게는 가차 없는, 채찍이 가해질 것이다. 따라서 노예는 어쩔 수 없이,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감당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다. 그 결과 고린도교회가 세워졌다.
그럴지라도 바울은, 자랑할 것이 없었다. (고전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 복음을 전해야 할, 책임이기 때문이다. 만일 전하지 않으면, 그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노 젓지 일을, 하지 않는 노예에게, 채찍이 가해지듯이, 복음을 전하지 않는 바울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이 있게 된다. 마찬가지다. (벧전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은사를 맡겼다. 그 은사를 사용하여, 섬기지 않으면, 우리에게 화가 있으니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열심히 봉사해야 한다. 아울러 봉사를 하더라도 우리 자신을 드러내면 안 된다. 우리가 부득불 해야 할 일이지, 우리가 자랑할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낮은 자리에서, 겸손히 섬길 수 있어야 한다. 교회에서 어떠한 직분을 가졌든지,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말자. 언제나 우리를 낮추자. 그러면서 오직 교회의 머리인, 그리스도만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에게만 모든 영광을 돌리자.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할 것이다.
2.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오직 충성을 다해야 한다. ‘충성’(피스토스, 믿을 만한, 신실한)은, 신실한 자, 믿을 만한 자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
(마25장)에서,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와, 두 달란트 받았던 자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주인에게서 받았다(21, 23). 그러나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주인의 책망을 받았다(26).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하나님이 칭찬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맡은 자, 곧 하나님의 청지기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에게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건강도 필요하다. 물질도 필요하다. 시간도 필요하다. 유창하게 말을 하면, 참 좋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것들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맡은 일에 대한 충성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였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로 부름을 받았다. 그래서 바울은, 온갖 박해와 환난에도 굴하지 않고, 순교하는 그 날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충성을 다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맡겨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전하게 전했다. 많이 맡고서 적게 전하면, 그것은 중간에서 횡령하고, 착복하는 셈이다. 반면에 맡지도 않은 것을 전하면, 그것은 거짓이 되고 만다. 그리스도의 종은, 주인의 뜻을 살펴, 적극적으로 충성해야 한다.
(고후2: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당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전하지 않고, 혼잡하게(카펠류오, ~을 섞어서) 전했다.
그들은 맡은 것을, 그대로 전하지 않았다. 그리고 맡지도 않은 것을, 맡은 것처럼 말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맡은 것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말씀보다, 그들의 이야기나, 세상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려고 했다. 그들은 그들의 말로, 사람들에게서 인기를 얻고 싶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생각하기보다는, 사람을 먼저 생각했다. 이는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서, 충성스럽지 못한 태도였다.
그들과는 달리 바울은 (행20: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바울은 언제 어디서든지, 항상 ‘유익한 것’만을 전하며 가르쳤다. 그러면 이 때, 바울이 말한 ‘유익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유익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말한다. 사실 바울은, 많이 배운 사람이었다. 체험도 많이 한 사람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것들을 전하며 가르치지 않았다.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 전하고 가르치라고, 바울에게 맡긴 것은, 것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오직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며, 가르치기를 고집했다. 하나님이 그에게 맡긴 일들에, 충성을 다하기 위해서였다.
과연 바울은,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었다. 우리도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가 되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긴 일에, 충성을 다하자. 그래서 하나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3. 하나님의 판단이 중요하다(3-4).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3가지 ‘판단’(아나크리노)이 나온다. ‘판단하다’(아나크리노)는 ‘아나’(위에, 각각) + ‘크리노’(구별하다, 결정하다, 정죄하다) = ‘각각 결정하다, 위에서 결정하다(심판하다).’는 말이다.
① 다른 사람에게 판단 받는 경우다(3上).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사람은 불완전하다. 따라서 사람이 내린 판단은, 잘못될 수 있다. 유대인은 예수님을, 잘못 판단했다. 이들이 내린 잘못된 판단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로마 원로원은, 바울을 잘못 판단하여, 바울의 목을 베었다. 사람들의 판단은, 온전하지 못했기에, 다른 사람들의 판단은, 매우 작은 일이라 했다. 최상급, 가장 작은 일이다. 그러므로 남들의 판단에서 자유하자. 남들이 알아준다고, 우쭐하지도 말고, 몰라줘도 낙심하지도 말자.
② 자기 자신의 판단이다(3下).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바울은 자신을 판단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판단이, 온전하지 못한 것처럼, 자신의 판단도, 잘못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4上)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과거에 자신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의 원수였다. 이제 바울은 달라졌다. 자신을 낮추며, 맡은 일에 충성했지만, 자신이 섰다고 생각하지 않고, 넘어질까 조심했다. 그러면서 남들의 판단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또 자신을 판단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고후10: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남들이 칭찬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칭찬할 때만, 진짜 칭찬이 되기 때문이다.
③ 하나님의 판단이다(4下).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헬라어로는 심판이나, 판단이나 똑같은 단어(아나크리노)이다. 다른 사람의 판단과, 자신의 판단은 절대적이지 못하다. 오직 하나님의 판단만이 절대적이기에, 바울은 하나님의 판단만을, 절대적으로 여겼다.
그러니까 바울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자기를 판단하기를 바랐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다. 그러면 누가 우리의 충성을, 판단하는가? 남들이 우리의 충성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판단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충성을 판단한다.
그래서 바울은, 남들의 판단이나, 자기 자신의 판단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다만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판단할지를 생각했다. 각 사람에 대한 판단은, 오직 주님만이 가졌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바라보며,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자. 그리하면 하나님이, 칭찬할 것이다.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5上)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기까지, 왜 우리는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가?’
우리의 판단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온전하게 판단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판단만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함부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지 말자. 또 스스로 잘했다고, 자랑하지도 말고, 힘들다고 쉽게, 낙심하지도 말자.
다만 우리를 판단할 분은, 하나님뿐이다. 늘 하나님만 바라보며, 각자가 맡은 일에, 변함없이 충성을 다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들이다. 따라서 장차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셈을 해야 한다. 하나님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우리를 판단하는가?
(5中)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숨어있는 뜻으로, 우리를 판단한다. 하나님이 판단하는 기준은, 우리의 마음에 숨어있는 동기다. 과연 어떤 동기로 교회를 섬겼는가? 하나님은 이것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섬기는가? 인기와 명성을 얻기 위해서인가? 우리 자신의 만족을, 누리기 위해서인가? 물질적 유익을, 바라보기 때문인가? 만일 이러한 동기로 섬긴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섬김은, 순수한 동기,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했다. 우리의 섬김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한다. 그 때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하며, 우리에게 큰 상을 내릴 것이다. (5下)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 했다.
남들에게 칭찬 받는 것도, 좋은 일이다. 스스로도 최선을 다해서, 마음에 들면, 또한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판단하고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할 때, 우리의 기쁨과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으니, 우리를 낮추자. 맡은 일에 충성하자. 하나님만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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