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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7년 10월 22일 -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요일3:4-8)
  작성자 : 이건기 작성일 : 2017-10-22
  첨부파일: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hwp(23K)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요일3:4-8)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러나 세상은, 성도들을 알지 못하고, 주님도 알지 못하기에 오해한다.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지만, 연약하기에 예수님처럼 살지 못하기에, 오해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타나면, 우리가 예수님같이, 죄를 떠난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

성도는 예수님과 같이, 완전하게 되는, 소망을 가진 자이에, 예수님처럼 죄 없이,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 불신자와는 신분이 다르고, 삶의 목표가 다른 존재이니, 성도들의 삶은, 하나님께 불법을 행하지 않아야 한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을 대조하여 말씀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불법을 행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강력하게 말했다. 그리고 죄를 지으면서도, 이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던 이단들에게, 마귀의 자녀들은 어떤 모습인가를 말씀한다. 예수님은 죄가 없기에,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죄를 범하지 않음이, 당연하다고 한다.

1. 죄에 대한 태도(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요한은 죄를 지으면서도, 죄가 아니라고 했던, 이단 영지주의자를 염두에 두고,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불법’(아노미아), ‘’(아니다) + ‘노모스’(, 율법) = 하나님의 법이 없는 상태, 즉 하나님이 주신 계명에 대한, 불순종을 말한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고 있다.’, 분명히 밝히고, 더 분명히 죄는 불법이다.’이라고 했다. 죄와 불법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다.

그 당시 영지주의 이단은, 신은 영적 세계에만 관심을 가지며, 악한 물질로 구성된, 육체의 죄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죄와 불법의 관계를 부정하기에, 영지주의 이단들은, 그들의 죄가, 하나님의 율법을 깨는 불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마르티아), 과녁에서 빗나가는 것으로, 하나님이 정한 법으로부터, 벗어나는 모든 행위들과 상태들을 말한다. 인간 본성대로 살아가는 것이, 곧 하나님의 법을 위반하는 죄다. 어떤 사람은, 죄를 범죄행위라고 생각한다.

살인, 간음, 사기, 거짓말, 구체적인 행동들을 말한다. 이렇게 죄를 정의하면, 의인들이 많이 생기게 된다. 이 세상에도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나는 죄를 범한 일이 없으니, 지옥갈 일도 없다고 한다. 물론 잘못된 행위가, 죄의 열매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명확하게, 죄는 표적에서 빗나간 것이다. 하나님이 의도한 삶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한다. (1:28-31) 보면, 죄의 뿌리는 자기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 소속되기 싫어하는 마음이, 죄의 본질이다.

(5)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왔고(1:29), 모든 죄를 친히 자기 몸에 짊어지심으로, 우리 죄를 없이 했다(53, 9:28, 벧전2:24).

죄가 없다, ‘깨끗하심’(3)의로우신’(2:29; 3:7)과 의미가 같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죄를 탐닉하지 않는다. ?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설명하는데, 죄 없는 그분이,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나타나신’(에파네로)파네로오’(나타나다, 명백히 선언하다, 밝히 보이다.)의 부정과거 수동태로, 신적 수동태다. 동사가 수동태이고, 동사의 감추어진 주어가 하나님과 연결될 때, ‘신적 수동태라고 한다. 히브리어에서는 히필’(사역)형이다. 하나님에 의해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나타났음을 말한다.

이 땅에 이미 나타나신 초림의 예수님을 말한다. 하나님이 했기에, 사람들이 모를 수 있다. ‘없애’(아이로)들어 올리다, 치워버리다, 가져가다.’어떤 물건을 손에 들거나, 어깨에 메고 가는 것(16:24, 19:38), 어떤 것들을, 제거해 버리거나(15:2), 빼앗아 버리는 것(11:48)을 표현한다.

여기에는 2가지가 모두 다 포함되었다. 예수님이 죄를 대신 짊어졌고, 죄 범한 인간들에게서, 죄를 완전하게 제해버렸다.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죄를, 대신 담당하여 제거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오셨다. 사실 그리스도는, 인간의 모든 죄를 젊어지기 위해, 이 땅에 왔다(1:29).

십자가에서 흠 없는 어린양으로서, 화목 제물이 되기 위해서 오셨다(고전5:7, 2:16). 그리스도는 이 사역을 완성했다.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도록, 그 죄 값을 대신 치러, 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인간의 모든 죄를, 빠짐없어 용서해주었다. 십자가는 죄에 대한, 승리를 포함한다.

요한은 그리스도가 온 목적이, 죄를 용서하기 위한 것만 아니라, 죄에 대한 승리의 목적도 포함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묘사했다.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죄 없는 존재만이, 죄를 범한 인류의 죄 값을 대신 담당하므로, 속할 수 있는데, 그 일을 담당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그에게’(엔 아우토)에서, 그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에게는’(), ‘~안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그리스도 안에라는 뜻이며, 그리스도는, 죄가 없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들도 죄가 없다는 중의적인 표현이다. 무죄한 자만이, 우리 죄를 속할 수 있다.

무죄한 자만이, 우리 죄를 속죄할 수 있다. ‘없다’(우크 에스틴)에이미3인칭 단수 현재형이다. 그리스도가 지상에서, 사역할 때, 무죄했을 뿐 아니라, 영원히 무죄한 본성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요한이 강조하는 무죄성은 3가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무죄성은, 죄의 근본 원인인 마귀를, 파멸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악을 파멸할 수 있는 힘은, 거룩함과 깨끗함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법으로, 그리스도의 거룩함은, 사단의 어두움을 물러가게 하는, 직접적인 원동력이 된다.

그리스도가 무죄해야만, 인간을 위한 완벽한 화목제물이 될 수 있다. 인간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공의로운 하나님의 속성을, 만족시킬 수 있는, 완벽한 제물이 필요하다. 인간과 동일한 본성을 지닌, 육체를 가졌으나, 동시에 죄가 전혀 없는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분이 무흠한 예수님이다.

그리스도가 무죄해야만, 그 안에 거하는 자에게, 죄를 극복할 수 있는, 궁극적 승리를 줄 수 있다. 그리스도가 무죄하지 않다면, 그 안에 거하는 자들은, 죄에 대해 승리할 수 없다. 그리스도가 무죄하기 때문에, 그 안에 거하는 자는, 죄에 대한 승리를 경험하게 된다.

2. 주님 안에 거하는가?(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사도 요한은, 범죄 하지 않을 수 있는 조건을,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죄를 없애려고 온, 무죄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 하지 않게 된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어떤 사람도 예외 없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만 하면, 죄로부터 승리할 수 있다. 이는 (1:8-10)과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습관적인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이다.

무죄한 그리스도와 지속적이고 친밀한 관계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범죄를, 행하지 않도록 막아준다. 직설법 현재 시제로, 습관적이고 상습적으로, 범죄 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면 고의적이고, 습관적인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이다. 습관적인 범죄로부터, 자유롭다는 말이다.

물론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일시적인 실수와, 옛 본성대로 행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의도적이고, 습관적인 죄짓는데서, 벗어날 수 있다. 성도는 같은 죄를, 계속해서 범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실제 모습은, 예배를 드려도, 기도를 해도, 죄를 짓는 연약한 존재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지만, 계속해서 범죄 하는 자는, 예수님을 보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다. 부정어를 거듭해서 사용하여,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를 거부함으로, 범죄 하는 자는, 깨끗하고 의로우며 무죄한 그리스도와 교제 하는, 경험을 가질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당시 영지주의자는, 하나님의 비밀스런 지식, 즉 영지를 깨닫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했으며, 영지를 깨달은 자는, 육신에서 자유로워져 도덕적인 방종이,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했기에, 미혹을 당하지 말라고 했다.

(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혹하다.’(플라나토)플라나오’(방황하다, 헤매다, 속다, 죄를 짓다, 넋을 잃다, 길을 벗어나다.)는 뜻이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죄에 빠지도록, 미혹당하면 안 된다.

이단이 성도들을 미혹하여, 죄악의 세계로 이끌어가지 못하도록, 성도들에게 경계를 촉구하고 있다. 거짓 선지자나 교사들, 적그리스도가, 성도들을 미혹하는데, 많이 사용되는 단어다. 사단의 지배하에 이단들은, 성도에게 접근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의심을 불러일으키도록 미혹한다.

사단은 하와를 미혹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켜, 하나님의 말씀을 등을 지도록 만들었다. 그를 교묘히 속여서,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는, 불순종의 결단을 하도록 했다. 마찬가지로 그 사단의 영을 소유하고 있는, 영지주의 이단들도,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교묘히 속였다.

요한은 이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역사 가운데 뿌리를 내리는 때에, 맹렬하게 방해하는 사단의 사주를 받은, 영지주의 이단들의 주장에 대해, 큰 경계심을 일으켰다. 영지주의 이단들은, 그리스도인을 교묘히 속였기에, 의로운 예수님처럼, 의를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면서, 매우 강한 의미의 현재명령형이 사용되었다. 영지주의자들의 미혹이, 당시 초대교회에 계속되었음을 암시한다. 의로운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의 유혹에, 넘어가면 안 된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의 배후에서 움직이는 영은, 미혹하는 영이기 때문이다.

3. 마귀의 자녀인가? 하나님의 자녀인가?(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죄가 마귀에게서 시작되었기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이다. 여기서 마귀에게 속한 자와, 하나님께 속한 자를 대조시켜, 전자는 죄를 범하나, 후자는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밝힘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의를 행하는 자’(7) ‘죄를 짓는 자를 대조시켰다. 마귀에게 속하여, 죄를 짓는다는 사실을 비교하여, 성도들은 의를 행해야 함을, 부각시켰다. 죄짓는 자들은, 마귀에게 속했다. ‘속하나니’(에크에스틴)은 현재형으로, 앞으로 속하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재 속해 있다.’는 의미다.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호티 아프 아르케스) 죄를 짓는 자가, 왜 마귀에게 속하였는지, 그 이유를 설명한다. 마귀가 처음부터, 범죄 하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아르케), 어떤 일의 시작을 말한다. 천지의 시작을 가리키는 태초, 어떤 일의 처음 시점을 가리키는 시작의 뜻으로 사용된다.

다른 어떤 수식어도 없어 처음부터’(아르케스)를 단독으로 사용하여, 모든 것의 시작점인 태초를 가리키고 있다. 즉 인간이 창조되기 전에, 벌써 영계에 교만하여, 타락한 마귀가 있었고, 이들에 의해 범죄는 먼저 선행되었으며, 이들에 의해서, 인간의 타락이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마귀는, 모든 인간 범죄의 근원이 되고, 현재 죄를 범하는, 모든 자들의 아비가 되어(8:44), 세상의 어두움을 주관하고 있다(2:2, 6:12). 그렇다면 마귀가, 지은 범죄는 어떤 것인가? ‘범죄하다.’(하마르티안) 의미는 과녁을 빗나가다.’인데, 마귀가 과녁을 빗나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본래 하나님은 마귀를, 악한 존재로 창조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악한 존재를 창조했다면, 하나님이 죄를 창조했다는 말이 되는데, 절대 선하며, 악은 모양도 없는, 하나님의 속성에 위배된다. 하나님이 창조한 천사들 중의 일부가, 스스로 타락하여 마귀가 된 것이다.

본래 천사들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창조되었다(3:24, 38:7).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적인 존재로, 하나님만을 위해 살아가도록 지음 받았다. 그런데 헬렐(루시퍼)천사가, 하나님과 대등해지고 싶어, 자기 왕국을 세우려고, 하나님을 대항했다(14:13).

이것이 마귀가 지은 범죄다. 그러므로 모든 죄는, 하나님께 등을 돌리려는, 죄악 된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기만의 왕국을, 구축하려는 독단적인 의지와, 행동의 걸과물이다. 최초의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망으로 인해,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으며(2:17, 3:1-7),

최초의 살인자 가인은, 죄를 범한 후에,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 앞을 떠나, 자기를 보호할 성을 쌓았다(4:16-17). 원죄로 인해, 그 죄를 타고난 모든 인간들은 본성적으로, 주권자 하나님에게 대항하고자 하는 기질을 품고 있으며, 자기 고집을 꺾기 싫어한다.

그러므로 죄인들을 중생하게 하는, 성령의 가장 중점적 사역은, 죄인의 그 강퍅하고, 완악한 본성을 꺾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였다. ‘나타나신 것은멸하려 하심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에르가), ‘에르곤’(행위, 행실, 역사)라는 뜻이다.

복수형으로 사용되어, 마귀가 여러 측면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범죄를, 일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마귀의 일들을 요약하면, 사람으로 하여, 하나님의 뜻에 대항하여, 죄를 범하도록 한다. 마귀는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일을 한다. 다른 하나님과 복을 전한다.

그리스도는 바로, 그런 악을 궤멸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멸하려’(뤼세)는 보통 풀다, 놓아주다.’의 의미로 사용되지만 파괴하다, 헐어버리다, 폐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가정법 부정 과거 능동태로 사용되었다.

이는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서, 마귀의 일을 파괴하되, 매우 적극적이고도, 완전하게 파괴함을 보여준다. 사단에 대한, 주님의 완전한 승리는, 시간문제다. 완전한 성취는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 하나님 나라가 선포될 때 이루어진다. 그 약속을 기억하고, 항상 성령님을 의지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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