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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7년 7월 2일 - 바울이 자랑하고 싶은 부부(롬16:3-4)
  작성자 : 이건기 작성일 : 2017-07-02
  첨부파일:   바울이 자랑하고 싶은 부부.hwp(39K)

바울이 자랑하고 싶은 부부(16:3-4)

 

사도 바울은 3차전도 여행 끝에, 고린도교회에서, 로마교회를 향해 편지를 썼다(20:3). 사람은 무엇을 믿어야 하고,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바른 교훈을 기록하였다. 자신의 복음전도계획을 기록하여 전달하는데, 누구를 통해서,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전달할 것인지, 그의 과제였다.

바울은 겐그레아 교회의 여집사 뵈뵈를 선택했고, 로마교회에게 그녀가 오면, 주 안에서 합당한 예절로 그녀를 영접해주고, 그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해달라고 부탁한다(1-2). 위대한 로마서의 전달자로, 아가야의 작은 소도시, 겐그레아의 여집사가 선택되었나?

그녀가 많은 사람과, 바울의 후원자로 활동했기에, 신임을 얻었다. 주변의 많은 교회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삶을 살았다. 그 당시 유대인과 로마인은, 여자는 사람대접을 하지 않았지만, 바울은 중요한 일을, 겐그레아 교회 여집사에게 시켰다.

이는 주 안에서, 남여의 차별은 존재하지 않으며, 누구든지 합당한 사람이라면, 그도 쓰임 받을 수 있음을 말해준다. 바울은 (16)에서, 많은 성도들을 소개한다. 대부분 선교여행에서 만났는데, 바울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도 있고, 함께 선교사역에 참여한, 자들도 있었다.

또한 바울과 함께, 옥에 갇혔던 사람들도 있다. 바울은 그들을 매우 사랑했고, 그들의 형편을 잘 알았다. 바울은 혼자 일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동역했다. 하나님의 위대한 일은, 함께 이루어야 한다.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할 때, 걸작 인생이 되었다.

모세는 아론과 함께 만들어진, 하나님의 위인이다. 바울은 기독교 역사에 있어, 최고의 걸작이다. 그런데 바울은, 혼자 만들어진 사람이 아니다. 함께 일했던 동역자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다.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였다. 그러니 예수님이 함께 함을 믿고, 옆에 사람에게 서로 고마워해야 한다. 사도 바울에게는, 어떤 동역자들이 있었나? 바울의 동역자들을 보면서, 나와 가장 비슷한 사람과, 가장 본받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지 생각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바란다.

1. 나의 동역자 브리스가와 아굴라(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에게, 문안하라고 했다. 성경에 이 부부 이름이, 6번 나온다. 늘 바울과 함께 일했다.

브리스가’(ancient, 고대인)부인, ‘아굴라’(아퀼라스, 라틴어로 독수리)는 남편이다. (18)브리스길라로 말했다. 아굴라는 디아스포라 본도 출신의 유대인이다(18:2). 부인 브리스길라는 로마의 여성이었다. 아굴라는 로마영토인, 본도에서 온 유대인이었다.

브리스가는 아굴라와 결혼하면서, 남편 아굴라를 통해, 주님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49년에 내린 로마황제 글라디우스의 유대인 추방명령에 의해, 로마를 떠나, 고린도지역로 피난 왔던 사람이다. 거기서 천막 만드는 일을 하다가, 사도 바울의 일행을 만났다(18:1).

일평생 사도 바울의, 복음사역을 후원한다. 바울처럼 천막을 만드는 자였기에, 고린도에서 바울과 함께 일하며, 선교사역을 도왔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동역을 위해, 이들을 이사를 같이 다녔다. 바울이 전도하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이사했다.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이사를 했다.

우리는 결혼한 후에, 이사를 몇 번 했나? 이사할 때에, 이사의 기준은 무엇이었나? 일터? 회사? 자녀의 학교? 아굴라 부부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한 이유로, 이사하기를 축원한다. 그게 믿음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을 동역자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동역자’(쉬넬고스), (함께) + 에르곤(노력, 수고, ) = 함께 일하고, 수고하는 자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위해, 함께 일하는 사람이 되자. 이 일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함께 했다.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함께 했다.

(16:3-16)을 보면, 사도 바울의 문안 인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많이 나온다. 거기에는 여자성도가 9명 이상이 나오고, 유대인, 로마인, 헬라인 그리스도인들도, 등장한다. 그들의 신분은, 어떤 이는 귀족도 있고, 어떤 이는 노예였다.

하지만 이들은, 주 안에서 신분과, 계층과, 성별과 인종을 초월해서 하나였다. 주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가 되었다. 한 가족처럼, 서로를 위해, 기쁨으로 일하고, 봉사하였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로 기꺼이, 다른 지체들을 위해서, 나눌 줄 아는 자들이었다.

어떤 이는 물질로 섬겼고, 어떤 이는 기도로 섬겼으며, 어떤 이는 봉사로 섬겼다. 어떤 이는 많이 섬겼으며, 어떤 이는 지도력으로 섬기는 자도 있었다. 이렇게 사도 바울 곁에서, 도와준 사람들이 참 많았다. 실라, 누가, 디모데, 디도함께 일하는, 교회 공동체였다.

그들 중에, 부부가 함께 도운 자는,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였다. 너무 아름다운 가정이 있었다. 이 부부는 어떤 사람이었나? 항상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부부였다. 여기서 제일 눈에 띄는 단어가 동역자라는 단어다. ‘함께 일하는 자. 영어로 Co-worker.

이들 부부의 이름이, 나란히 나온다.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 그만큼 함께 하나님을 섬겼고, 행복한 부부로 인정받았다. 신앙생활은 부부가 함께할 때, 행복하다. 요즘 기러기 아빠들이 많다. 남편은 국내에서 혼자, 열심히 돈을 벌고, 아내와 자식들은 외국에서,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이 모습은 그리 좋지 않다. 자식이 중요해도, 더 중요한 것은 부부다. 신앙생활도 혼자 외기러기처럼 하지 말고, 속히 함께 하기 바란다. 어떤 교회에는, 남편이 예수님을 믿을까봐, 겁을 내는 사람이 있다. 남편이 교회에 나오면, 부끄럽다면서, 달가워하지 않는다.

자기 체면이 깎일까 봐, 교회에 가자는 소리를 안 한다. 남편을 진짜 사랑하면, 구원받도록 해야 한다. (딤전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했다.

어떤 책에 예수님을 10년 넘게 믿었는데, 배우자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있다.” 했다. 이는 그의 행함이, 변화가 없었다는 뜻이고, 천국을 믿지 않았기에, 전도를 안했다는 말이다. 확신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항상 같이, 함께 하나님을 섬겼다.

2. 나의 동역자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문안하라(3).

문안하라.’(아스파조마이), 존경하는 태도로 환영하라는 말이다. (16)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가, 문안하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존경하는 태도로, 서로 환영해야 한다.

성도들은 서로가, 출신이 다르다고, 공부를 많이 했다고, 돈이 있다고, 성별이 다르다고, 나이가 많다고, 적다고, 어떤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태도이다. 서로를 문안하는 태도를 갖기 바란다. 동역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문안하는데 있다.

주 안에서 힘들고 어려워도, 환영하는 태도로 서로 문안하자. 그러므로 바울이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거명하면서, 문안함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서로 안부를 묻고, 함께 일하며, 함께 안아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좋은 교회는, 어떤 느낌을 갖는가?

우리를 존경하고, 환영하는 태도를 보일 때가 아닌가? 그런데 전도는커녕,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저 사람이 왜 왔느냐는 식으로 행동한다면, 이는 하나님이 절대 기뻐하지 않는 태도다. 성도들은 서로 존경하는 태도로 환영해주며, 문안하기를 바란다. 문안이, 동역의 기본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일하고 돌아왔을 때, 가정에서 함께 피로를 풀며, 쉼을 가질 수 있는, 가족이 필요하다. 사회에서 힘을 다 쓰고, 지친 몸으로 이끌어 집에 들어갔을 때, 존경하는 태도로 환영해줄 수 있는 가정이 있다면, 힘을 다시 충전해서, 다시 사회로 나가, 열심히 일할 수 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 영적 전쟁을 하고 왔는데, 나를 존경하고 환영해주는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는 천국의 모습을 이루어가게 된다. 그런데 나를 무시하는 태도이거나, 나를 거절하는 느낌을 받는다면, 더욱 분쟁은 커지게 된다.

신앙생활은 혼자 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서로 협력하고, 함께 공동의 선을 이루어야 할, 동역자들이 꼭 필요하다. 그 동역자들과 함께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가정으로 직장으로, 사회로 나가, 열심히 일하기 위해, 교회에서 서로가 서로를, 문안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하나님은 모든 부분에서, 필요한 동역자를 허락해주었다. 교회 나와서 힘을 얻고, 세상으로 나갈 때에, 복음이 단숨에 이스라엘과 터키, 그리스, 로마, 유럽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것은 복음을 먼저 받은 자들이, 힘써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세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깔려 있다. 이 위대한 사역자들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분들이 있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다.

21세기를 맞이해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 앞에, 가장 위대한 선교전략은, 항상 함께하는 동역자 선교다. 선교사의 대명사인, 바울의 사역에 나타난 내용을 보면, 동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들이, 동역자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3.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바울을 대신 할 수 있었다(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트라켈로스)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1)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바울의 목숨을 위해서, 자기들의 목(생명)까지도, 내어 놓았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자기를 위해 목숨을 건 부부가 있었음은, 행복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누가 나를 위해, 목숨을 걸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이런 복을 이미 받았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목숨을 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인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목숨 걸고 일하는가? 바울이 위험에 빠졌을 때, 바울의 목숨을 위해, 그들의 목까지도 내어놓았던 부부이기에, 바울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여러 교회들도, 그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브리스가도 훌륭하지만 아굴라도 훌륭한 사람이다. 알다시피 바울은 독신이다. 그런데 아굴라는 자기 아내, 브리스가가 바울을 따라다니며, 돕는 것을 보고도, 시기와 질투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 협력했다. 이것은 아굴라의 인격과 신앙이, 대단한 것임을 말해준다.

(2) 항상 겸손했다. 이들 부부는 바울에게, 복음을 제대로 배웠다. 어느 날 성경을 가르치는 학자, 아볼로의 강의를 듣고, 그가 제대로 복음을 알지 못했음을 알았다. 그래서 아볼로의 부족한 부분을, 바로잡아 줬다(18:24-28). 요한의 침례만 알뿐,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그때 그들은, 지혜롭게 행동한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볼로에게 면박을 주지 않았다. 아볼로가 성경을 잘못 알고 있다고, 정죄하지도, 틀렸다고 배척하지 않았다. 아볼로는 침례 요한의 가르침만을 가지고서도, 히브리 성경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었다.

요한이 증언한 예수님은, 이미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아요, 그가 건설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오고 있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에베소 회당에 모인 유대인들이, 아볼로의 깊이 있는 예언서 지식과, 해박한 헬라 철학적 사고를 펼침에 탄복했다.

그런데 아굴라 부부는 아볼로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금방 알았다. 바울에게서 배운 바 있는, 부활의 신앙과 성령의 역사가 빠져있었다. (18: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이 부부는 아볼로를, 자기 집에 초청했다. 그리고 바울에게 배운 대로, 성경을 풀어 주었다. 그 사건 이후, 아볼로는 변화되었다. 그리고 에베소 교회에 목회자가 되어, 크게 부흥시키고 여기 저기 부흥회를 다니는, 전도자가 되었다.

아굴라 부부의 직업은, 텐트 수선공이었지만, 진짜 직업은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일꾼이었다. 그래서 성경에 능통한 아볼로를, 새로운 시각에서 성경을 보게 한, 대단한 부부였다. 우리는 뭔가를 조금 알면, 사람을 얼마나 무시하는가? 그러나 이들 부부는, 겸손하게, 상처받지 않게 말했다.

소형교회에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같은, 성도들이 필요하다. 대형교회에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소형교회에는 사람들이 없다. 현대 성도들은 예전과 다르다. 이권에 민감하다. 작은 교회는 할 일만 많다고 한다. 따라서 브리스가와 아굴라 같은, 성도들이 절실하다.

목사는 이러한 성도를, 자랑하고 싶어 한다. 브리스가 아굴라 부부처럼, 함께 하나님을 섬기며, 지도자에게 영적 조언을 하며, 주의 종을 위해, 목이라도 내어 놓을 수 있는 성도, 이러한 성도는 목사에게, 자랑거리지만, 하나님 앞에서도 자랑거리다.

이들의 이름을 성경에 기록해 놓음은, 하나님 나라에 상급이 있음을, 분명하게 있음을 보여준다. 주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한 자에게, 주님이 칭찬하고 갚아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러한 성도가 될 것인가? 제가 이렇게 칭찬받는 자가 되겠다고 말하는,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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