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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7년 3월 5일 - 믿음으로 행하라(롬14:19-23)
  작성자 : 이건기 작성일 : 2017-03-05
  첨부파일:   믿음으로 행하라.hwp(71K)

믿음으로 행하라(14:19-23)

 

믿음이 강한 자들에게, 음식이나 날짜 문제로, 그리스도가 대신하여 죽은, 연약한 형제를, 근심하게 하여, 망하게 하지 말라고 했다.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하나님 나라는, 죄인을 의롭게 하고, 불화 자를 화평하게 하며, 근심하는 사람을, 성령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성도들은 무슨 일을 할 때, 자기의 입장이나, 이익보다, 의와 평강(평화, 평안, 화평), 희락(기쁨)을 세우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 성도들은 매사에, 품어주는 정신을 가지고 일하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칭찬받을 수 있다고 했다.

1.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라(19).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바울은 성도들에게, 화평의 일을 하고, 서로 세워줄 것을 힘쓰라고 했다.

화평’(솰롬)죄를 용서받고, 온전한 관계로 회복됨을 말한다. ‘덕을 세우는 일’(오이코도메)로 오이코스(거주, 일가족) + 도마(건물, 지붕, 꼭대기) = 건축(), 교회를 말한다. 따라서 덕(아레테, 아름다운 용맹)은 나오지 않기에 의역이다. 일가족이 살 수 있는 (공동체)을 세우라.’는 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평화를 위해, 서로 사랑과 격려와, 양보를 통해 교회나, 공동체를 세워가라는 말이다. 나와 조금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정말 그리스도인 맞아? 이렇게 싸우지 말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교리를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복음과 비 복음은, 분리되어야 한다.

성도들 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면, 서로 이해하면서, 참고 포용하라는 말이다. 교회에서 강한 사람은, 자기 입장을 강요하지 말고, 화평을 추구하며, 서로 서로 세워주는 일을 해야 한다. 사람들마다 자기의 생각이 있다.

자기 생각이 고착화되면, 편견이 된다. 편견은 분리를 낳는다. 우리의 신앙을 살펴보면, 사소한 일에는 다투고, 중요한 일에는, 용서하는 경우가 많다. 진리 문제에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그냥 지나치고, 사소한 일로 다툰다면,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공동체를 세울 수 있나?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인정해 주는 태도가 필요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믿어야 한다. 나 같은 사람도 고친 하나님, 나에게 역사한 성령님의 능력이, 다른 사람에게도, 역사한다고 믿어야 한다. 성령님이 그를 고쳐, 변화시킬 것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하나님이 그를 고쳐서, 아름답게 사용한다는, 믿어야 한다. 역사하는 예수님과 성령님이, 있음을 믿어야 기다릴 수 있다. 하나님이 저 사람에게는, 어떻게 역사할까?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면, 비방과 판단과 비판이, 없어질 수 있다.

힘쓰다(디오코, 박해하다, 추적하다.) 성도기 가족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위한, 평화의 제물이 됨을 말한다. 우리는 교회와 세상에, 덕을 끼치고 있는가? 문제를 만들고 있는가? 교회와 세상에, 덕을 세우는 성도들의 모습이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아름다운 일에, 힘을 쓰기를 바란다.

우리의 헌신과 희생을 통해, 교회와 공동체를 세워나가야지, 하나님의 사업들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전통과 제도,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무너뜨리지 말라. 형제를 시험에 들게 말라. 이것이 중요하다. 왜 형제를 미워하고 비판하나? 자기를 위해 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

(20)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강한 자들에게 음식문제로 하나님의 일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고 했다. ‘무너지게 하다.’(카탈뤼오)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건물임을 전제로, 비유하고 있다(고전3:9).

카타(아래로) + 뤼오(파괴하다, 풀다) = 분쇄하다, 파괴하다, 건물을 무너뜨리거나, 손상시킨다는 의미다. 예수님은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고 했다.

강한 자가 연약한 자를, 감싸 안지 못하고, 시험에 들어서, 넘어지게 한다면, 차라리 바다에 빠져 죽으라는 말이다. 남을 쓰러지게 만드는 일은, 악한 일이다. 강한 자들은 자기 입장을 강요하다가, 공동체를 분열시키거나, 연약한 형제들을, 넘어뜨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강한 자들은, 사소한 문제로 다투기보다, 교회의 평화와 형제를 세우려고, 힘써야한다. 하나님은 주신 음식은 모두, 정결하다고 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강한 자들은, 자기 자유를 연약한 자들을 위해서,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성도들 중에는, 일부 음식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음식을 먹으면, 양심에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강한 자들은, 자기 입장을 강요하지 말고 자기 자유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참음으로, 덕이 되기에 참는다.

2. 아름다운 일을 하라(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아름답다(칼로스)선하다, 가치가 있다, 덕스럽다.’이다. 원문은 말이 제일 먼저 나와, 강조를 했다. 먹는 문제로 형제를 넘어지지 않게 하는 일이, 아름답다는 말이다. 성경은 우상 앞에 드려진 고기가 아니다, 부정하게 여기는 고기다. 이는 율법에서 금지한 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말이다.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일로, 형제를 거리끼게 하지 않음이, 아름다운 일이라고 했다. 무엇이든지 형제에게 거리끼게 하지 않는 것이 아름답다고 했다. 여기서 거리끼게’(프로스콤마)그루터기로, (의도하지 않은) 범죄, 실수, 거침돌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은, 아름답지가 못하다. 그러므로 약한 자에게 꺼리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아름답다고 하였다. 거리끼는 것이 무엇인가? KJV에는 넘어지게 하는 것이나, 약하게 하는 것이 첨가되어 있다.

넘어지게 하는 것’(스칸달리조) ‘걸려서 넘어지게 하다, 함정에 빠지다, 죄를 범하게 되다.’이고, ‘약하게 하는 것’(아스네오) ‘병에 걸리다, 무력한 사람이 되다.’이다. 우리의 행동이 의도적이든, 의도적이 아니든, 다른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일과, 약하게 만드는 일은, 아름답지 못하다.

나에게 자유가 있다고, 약한 자들을 배려하지 않으면, 이것은 폭력이다. 따라서 자신의 자유를,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성령의 열매 중에, 절제의 열매요, 절제가, 성숙이요, 아름다운 일이다.

(22)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바울은 각자가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님 앞에서 자기 믿음을 자기가 가지고 있으라고 했다. 남에게 자꾸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할 수 없다.

(22) ‘정죄하다’(크리논) ‘결정하다, 심판하다.’는 말이다. 내가 하나님의 위치에 올라, 심판하는 자세는 잘못이다. 따라서 자기 신앙 양심을 따라 행동하고, 그 일로 자기를 정죄하지 않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먹고 마시는 것 때문에, 그리스도가 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빼앗기지 말라.

성도들은 어떤 일에 대해서, 서로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이는 각자가, 자기 신앙의 양심을 따라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옳다고 믿는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무조건 적용하거나, 강요하면 안 된다.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려고 할 때, 정죄하게 된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새벽기도가 중요하다. 그렇다고 새벽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믿는 사람이 아니라든지, 믿음이 연약하다고, 함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거나, 권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나와 다른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정죄하면 안 된다. 이때 우리는, 자신을 살펴보고, 나만 잘하면 된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연약한 형제들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금할 수 있다. 자신이 부정적으로 생각했다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면 안 된다.

정죄하면 실족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대로 하지 않았다고, 저 사람은 육신의 사람이니,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판단하지 않으면, 실족시키는 일이 없게 되기에, 복이 있다고 했다. 은혜롭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은, 정죄하지 않는다.

부정하다고 여기면, 자기 확신을 따라 먹지 않는 것도, 복된 사람이다. 내 확신에 근거해서,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말라. 그러나 양심상 어떤 음식은 부정하다고 여기면서, 그런 음식을 먹게 되면, 스스로를 정죄하게 된다는 말이다.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음이, 은혜이고 사랑이다. 믿음의 법이다. 신약의 죄는,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이 죄가 된다고 했다.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기에, 먹고 마시는 문제로, 문제를 일으키지 말기를 바란다.

3. 믿음으로 하지 않은 모든 것이, 죄가 된다(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의심하다(디아크리노) 디아 + 크리노 = ‘사이’ + ‘분리하다, 반대하다.’이다. 어떤 사람은, 특정한 음식들, 새김질을 못하거나, 굽이 갈라지지 않고, 부정하게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그 음식을 먹으면, 양심에 해를 입을 수 있다. 자신을 정죄하게 된다.

따라서 특정한 음식을, 부정하게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그 음식을 먹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다. 술을 아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술을 먹을 수 있어도, 먹지 않는 것이 은혜와 사랑이다. 그런 사람 앞에서 술을 먹으면, 어떻게 술을 먹을 수 있느냐면서, 실족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죄가 되지 않는다면, 상대방의 기준에, 맞추어 살려고 하라는 말이다. 연약한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다. 그것이 믿음의 삶이다. 믿음은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자를 생각하며, 양보할 줄 아는 행동이 믿음이다.

이런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면, 다른 사람을 넘어뜨리는 죄가 된다. 그러므로 바울은 믿음을 따라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라고 선언한다.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죄가 된다. 믿음이 없으면, 자책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많다. 연애도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죄다.

믿음으로 가구도 사야 되고, 믿음으로 이사도 해야 되고, 믿음으로 학교를 선택해야 한다. 신앙양심을 따라 행하지 않는 모든 일이, 죄라고 했음을 기억하자. 우리의 양심은 타락했기에, 완전한 판단을 하지 못한다. 그래도 여전히, 양심은 옳고 그른 일을 판단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나님은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양심의 기능을 주셨다. 우리가 스스로 정죄하는 일을 하면, 우리 양심은 스스로 정죄하고, 불안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양심을 거슬리는 일을 하면, 자유를 잃고, 정죄 받게 될 것이다.

바울은 양심을 거슬러 하는 행동은, 믿음을 따른 행위가 아니라고 했다. 믿음으로 해야만 한다. 항상 우리가 죄인임을 아는 것이, 믿음을 좇는 것이다. 그래야지 내가, 연약함을 용납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의 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함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큼, 형제에게 거리끼는 일을, 하지 않음이 아름답다고 했다.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하자. 내가 100% 죄인임을 인정한다면, 누구도 나에게, 손가락질 할 수 없다. 우리 인생은 다 같이 죄인이기에, 기다리고, 용서해야 한다.

우리가 언제나 무엇을 행하든지, 믿음을 따라 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삶의 기준을 바꾸자. 내가 중심 되는 생활이 아니라, 예수님이 중심이 되고, 예수님께 영광이 되는 삶, 교회가 중심이 되고, 교회가 아름답게 세워지는 삶, 다른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라. 형제자매 앞에, 거리끼게 하는 자들이 되지 말라. 믿음으로 하지 않은 모든 것이, 죄가 된다. 의심이 가는 일을 결코 하지 말라. 말씀과 성령님이, 양심에 주는 확신을 따라, 행동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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