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7년 1월 29일 - 자다가 깰 때(롬13:11-14)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7-0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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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깰 때(롬13:11-14)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는, 헌신을 해야 한다. 성도들은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이 준 은사로 섬기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워야 한다. 형제와 이웃, 원수들도 사랑해야 한다. 국가에 대한 의무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며,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다가, 갑자기 마지막이 다가오는 때에,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를 말한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한 가지 필요한 요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성도들에게 이 시기를 분별하고, 시기에 맞게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말세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졸다가 버림받은, 미련한 다섯 처녀들처럼 되지 말고, 깨어서 예수님을 기다리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이 되어야 한다.
1. 이 시기를 알라(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이 시기’(카이로스, 정해진 때, 시기, 순간, 가장 중요한, 결정적인 시점)를 ‘알거니와’(에이도테스 ; 에이도 : 보다, 알다, 경험하다.)’ 현대인은 시간의 노예가 되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산다.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분주하게 뛰어다닌다.
그러나 성도들은 분주함보다 ‘이 시기’를 이미 알고 있기에, 시기에 맞게 사는, 분별력과 지혜가 더 필요하다.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다고 했다. 우리가 사는 시기는, 메시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어, 완성되어 가는, 중요한 때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기의 중요성을 알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지혜롭게 살아가야 한다. 성도들이 이 시기를 사는, 지혜로운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시기를 알고 있는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① 이제(눈, 현재, 여기서, 이후로)는 ‘자다가 깨어, 일어날 때’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어 가는 마지막 시대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영적인 잠을 잘 때가 아니다. 성령님 안에서 깨어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부지런히 일해야 할 때다.
②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워졌다.’고 말한다. 우리는 과거에 구원을 받았고, 현재 주님을 닮아가고 있으며,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게 된다.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따라서 이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날이, 더 가까워졌다.
구원은 3가지 시제를 가진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현재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성화하고 있으며, 마지막 날에 완전한 구원인, 영화에 이르게 된다. 3가지 시제에,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을 때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않아도,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용납해 준다.
처음에는 성경도 잘 알지 못하고, 교회생활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예수님을 믿은 지, 수십 년이 지났으니, 장난하지 말고, 감정놀이 하지 말라고 한다. 또 변명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이제는 처음 믿을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믿음은, 성숙을 지나, 완성단계에 들어가야 한다. 초보단계가 아니라, 이제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을 책임지는,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 구원을 완성하는 단계에, 가까이 있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빛이 오면 어두움은 떠난다.
우리는 어두움을, 몰아낼 능력이 없다. 그러나 빛을 받아들일 능력은 있다. 내가 어두움을 몰아낼 수 없지만, 빛이 내 안에 오면, 그 빛이 어두움을 몰아내는 줄 믿는다. 예수님을 영접하기 바란다. 예수님 앞에서 겸손하기 바란다. 주님이 오시면, 어두움의 세력을, 모두 몰아내 주기 때문이다.
2. 낮에는 빛의 갑옷을 입자(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다.(엥기켄, 엥기조의 완료형, 접근하다, 가까이하다.)’고 했다.
먼저 성도들에게, 이 시대에 알맞은 삶을 요구했다. 이 시기가 어떤 때인지 알고, 이 시기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3가지 면에서, 호소를 했다. 처음 2가지는, 1인칭 복수로(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어 버리자. 우리가 빛의 갑옷을 입자. 이 명령에는, 바울 자신도 포함된다),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권면하고 있다. 성도들의 삶을 밤과 낮, 어둠과 빛을 통해서 설명했다. 지금은 밤이 아니라, 낮이 되었다. 지금 잠에 빠져, 누워있을 때가 아니다. 모두 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힘써 일하면서 싸울 때이며, 열매를 추수할 때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밤에 입고 자는 잠옷을 벗고, 그리스도의 군사처럼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죽었다가, 무덤에 묻힌 후, 부활한 후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빛에 속한 자가 되었기에, 어둠의 일을 벗어버려야 하는, 낮이 이미 시작되었다.
예수님이 이룬 구원의 역사가,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둠속에서, 머뭇거리면 안 된다. 이미 어둠의 시대는 지나고, 영광의 동이 텄다. 사단이 인간을 속이던, 어둠의 시대를 지나, 의와 진리가 승리하는, 역사의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때는 나중이 아니라, 지금이다.
말씀 속에서, 마지막이 가까이 옴을 알 수 있다. 지금 우리의 모든 상황을 돌아볼 때에도, 마지막 때가 온 것을 알 수 있다. 그 날이 다가왔는데, 왜 어둠속에서 머뭇거리며, 잠만 자고 있느냐 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아직도 어둠에 사로잡혀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느냐고 묻는다.
지금 이 땅의 위기는, 정치적 위기만은 아니다. 경제적으로도 빨간 불이 켜지고 있다. 왜 정치가 타락하나? 국민의 도덕성이, 타락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견제할만한, 도덕성이 없을 때 타락한다. 국민의 도덕성은 왜 타락하는가? 도덕성을 지킬만한, 영적인 힘이 없기 때문이다.
도덕의 타락은, 종교의 타락에서 온다. 교회가 자기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목사가 맡은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에, 이단들이 날뛴다. 종교가 물질에 노예가 되고, 양적 성장과 부에 만족하고 있을 때, 국민들의 양심과 도덕은, 타락하게 된다.
하나님이 살아 있기에, 이러한 잘못을 털어버리려면, 재난을 당할 수밖에 없다. 재난을 통하여, 잘못을 떨어버려야 한다. 따라서 잠에서 깨어나, 밝은 아침을 맞은 태도로 살라. 밤의 삶은 볼 수 없기에, 무슨 옷을 입고, 무슨 얼굴을 하고 있는지 볼 수 없다.
그러나 낮에는 잘 보인다. 낮에와 같이 단정한 삶은, 투명한 삶이다. 우리의 삶이 투명해야 한다. 교회는 투명해야 한다. 가리면 안 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가리는 일들이, 너무 많다. 말 못할 일이, 너무나 많다. 우리의 삶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이, 바로 예수님이 원하는 삶이다.
어두움을 벗어버리라는 말은, 우리 안에 숨겨 있고, 어두운 부분을 숨기지 말고, 모두 뒤집어서, 보여 주라는 말이다. 시골집에 가면, 마당에 수도가 있다. 그 수도주변에는, 돌들이 놓여 있는데, 그 돌을 치우면, 그 밑에는 지렁이들이 있다.
지렁이들은, 돌이 덮어 주어야, 안심하고 살 수가 있다. 지렁이는 햇빛을 보면 죽는다. 우리 위에 있는 돌을 치워야 한다. 이것이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는 삶이다. 우리 안에 있는, 어두운 부분을 제거해야만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두움을 제거하라고, 경고했는데, 구약의 거짓 예언자들처럼, 엉뚱하게 말한다. (렘6:14)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이렇게 위로와 평강의 메시지로, 적당히 넘어가라고 유혹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가슴을 찢으며 회개해야 한다. 기독교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이, 어거스틴이다. 신학자로, 영성가로서, 교회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그는 한 동안, 이방종교에 심취해 있었고, 성적으로 심히 타락된 삶을 살았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으로, 회심하게 된다. 참회록을 보면, 그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어느 날 자신의 삶의 방향에 대해, 어거스틴은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때 어디에선가, 한 아이의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아주 단순한 노래 가사였다.
“집어서 들고 읽어라, 집어서 들고 읽어라(Tole lege, tolle lege). 그 순간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러내렸고, 저절로 일어서게 되었다. 그 아이의 노래가,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으로 여겨졌다. 성경을 펼쳤을 때, 첫 번째 나오는 성경구절이, 노래에 대한 해석이라고 믿었다.
어거스틴은 옆에 있던 성경을, 펼쳐들었다. 그때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는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우리 현실이, 어둡지 않은가? 이제는 어둠의 일을, 벗어 버려야 한다. 옛날의 습관에, 사로잡히지 마라.
지금 우리의 현실은, 새벽닭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기상나팔이 울기 시작했다. 깰 때다. ‘이제는 자다가 깰 때다. 지금은 깊은 밤이 아니고, 동이 터오는 새벽이다.’라고 했다. 잠을 잘 때는 잠옷을 입는다. 그러나 일터에 나갈 때는,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나간다.
‘어두움의 옷을 벗고, 빛의 갑옷(호플론, 공격과 방어의 무기, 기구, 도구)을 입으라.’고 말했다. 재림이 가까이 옴은, 허약한 평화가 아니라, 최후의 전투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어둠의 일들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3. 성도답게 살라(13-14).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그래서 3번째는, 2인칭 복수로 명령한다(오직 …옷 입으라). 밤이 지나고, 낮이 가까웠기에, 낮과 같이, 단정하게 행하자고 권면했다. 지금은 재림의 먼동이, 터오는 마지막 때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밤에 하던 일들(방탕, 음주, 음란, 호색, 싸움, 시기 등)을 버려야 한다.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서, 낮처럼 일을 해야 하며(복음전파, 선행…) 우리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성도들은 이 시대에, 그리스도를 좇아 살 것인지, 아니면 정욕을 좆아 살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① ‘단정히’(유스케노모스, 예의 바르게, 점잖게, 정직하게) 행하라.
② 방탕하지(코모스, 술 마시며 떠들기, 반역, 소동) 말라. ③ 술 취하지(메, 중독) 말라. ④ 음란(코이테, 침상, 임신, 동거생활), 하지 말라. ⑤ 호색하지(아셀게이아, 방탕, 방종, 성적 도착) 말라. ⑥ 다투지(에리스, 언쟁, 투쟁) 말라. ⑦ 시기(젤로스, 나쁜 질투) 하지 말라.
악한 것들은 이러한 것들로, 성도들을 공격한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했다. 이 시대에, 입을 옷은 ‘주 예수 그리스도’다. 저의 설교 2016년 8월 7일 : 믿고 시인함(롬10:9-10)을 참조하기 바란다. 주(퀴리오스, 하나님, 주인, 통치자)이다.
‘그리스도를 옷 입고’는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주님의 가르침을 좇아 삶’을 말한다. 회개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 번 기도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빛의 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옷이다. 예수님으로 옷 입을 때, 악한 것들이 공격하지 못한다.
(골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라고 했다. 바울은 앞에서 ‘빛의 갑옷’, 즉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갑옷을 말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성도들을, 어떠한 악한 세력들로부터도, 안전하게 보호해 준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가장 안전한 피난처와 요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살아가야 한다. 또한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옷처럼 입고, 정욕(에피뒤미아, 탐욕, 욕망)을 위해 살면 안 된다.
우리는 구원 받은 후에도, 타락한 본성은 남아 있다. 정욕과 본성은, 우리 안에서, 육신의 길로 가도록 재촉한다. 그러나 성도들은, 정욕을 좆는 삶을 살면, 안 된다. 성도들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정욕의 요구를 과감히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좇아가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 자신의 탐욕을 위하여, 예수님을 이용해 먹는가? 이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의식이 없으면, 예수님을 자꾸 이용해 먹으려고 한다.
정욕과 죄를 멀리하고, 그리스도를 좇아 사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지혜’다. 바울은 (롬13장)에서 성도들이 어떻게 훌륭한 시민(1-7)과, 훌륭한 이웃이 될 수 있는지 설명했다. 이제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을 바라보면서, 교회와 국가, 그리고 원수와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또 성도들은 이 시기가 어떤 때인 줄을 분별하고, 이 시기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 영적인 잠에 빠져서, 어둠의 일을 행하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주님의 재림은, 매일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다. 정욕을 버리고, 그리스도로 옷 입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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