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7년 1월 15일 - 교회와 국민의 의무(롬13:6-7)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7-0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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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국민의 의무(롬13:6-7)
지난번 말씀에,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 때, 질서 있게 잘 살도록, 교회와 국가라는 질서를 허락해주셨다. 성도들은 선한 일을 행하도록, 힘써야만 한다. 잘못한 일로 국가가, 두려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가도 국민들이 선한 일을 행하도록,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국가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기에, 합법적인 정부 권위를, 인정하고 따라야 한다. 하나님은 정부가 질서를 유지하도록, 악을 징벌할 수 있는, 칼(공권력)을 주셨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정부의 공권력을 인정하고, 법을 준수해야 한다.
그러나 처벌이 무서워서, 법을 준수하기보다, 양심이 있기에 법을 준수해야 한다. 하나님은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수 있는 힘, 양심을 주셨다. 양심은 국가권위를 인정하고, 따름이 옳다고 했다. 오늘 말씀은, 바울은 성도들이 국가에 대해, 납세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성도들은 이 땅을 살아갈 때, 2가지 나라에서, 2가지 신분으로 산다. 하늘나라 시민권이 있고, 이 세상에 시민권이 있기에, 하나님의 나라의 법도, 이 세상 법도, 잘 지키며 살아야 한다. (눅20:25)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예수님의 말씀이다. 가이사는 로마의 황제를 말한다. 세상 법도 잘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성도는 2중 신분을 지니고 있기에, 세상 법도 잘 지지고, 하나님 나라의 법도, 잘 지켜야 된다.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는 자는, 세상 법을 안 지킬 수 없다. 그러면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할까?
1. 납세의 의무(6).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디아)가, 제일 먼저 나온다.
앞에서 ‘다스리는 자들에게 복종하라.’는 말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했는데, 구체적인 결론이, 조세로 나타나고 있다. 복종하는 방법이 ‘납세’다. 그들이 독재자라고 해도 세금을 내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금을 내는 일에, 힘쓰라는 말이다.
정부가 권선징악을 잘 하도록, 세금을 내라는 말이다. 세금이 무엇인가? “국가와 지방자치 단체가, 경비충당을 위하여, 재정수입을 확보할 목적으로, 법률에 부과되어있는 요건을, 충족한 모든 자에게, 직접적인 반대급부 없이 제공하는, 금전급부이다.”
수도, 전기, 가스를 이용하고 내는 돈은, 세금이 아니라 요금이다. 앞에서 ‘양심을 따라 하라.’고 했다. 그러므로 세금을 바치는 것을,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성도들은 국가에 대하여 납세의무를, 양심을 따라 이행해야 한다.
고대에는 인두세, 토지세, 농산물에 대한 사용료와 수출입에 대한 관세 등, 여러 가지 과세가 시행되었다.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사원에, 예물을 바쳤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우상 앞에 예물을 바치는 일을, 목숨을 걸고 거절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금에 해당하는 만큼, 양심적으로 세금을 나라에 바쳤다(터툴리안, 교부, 삼위일체). 세금이 있어야, 공동체가 움직일 수 있다. 관리는 하나님의 일꾼임을 기억하고, 백성들이 낸 세금을, 국민들의 유익과 복지를 위해,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의 ‘일꾼’(레이투르고스, 공적인 일꾼,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 봉사하는 자)이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는 자를 말한다. 그러므로 재정집행을 맡은 관리들도, 국민이 낸 세금을, 사적인 목적으로 유용하면 안 된다.
다스리는 자들은, 하나님의 사역자, 일꾼이 되니, 권선징악을 통해, 사회의 안전과 평안, 질서를 위해서 힘쓰는 만큼, 성도들이 국가에 세금을 내는 것이 마땅하다. 어려워도 백성들이 낸 세금으로, 로마에 도로가 건설되었다. 그 길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쓰였다.
그러므로 세금 내는 것을, 아까워하면 안 된다. 내가 낸 세금으로, 나와 이웃이 덕을 보게 된다. 각 정당들은 정부 형태나 역할, 그리고 세금을 늘려야 하는지, 줄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견해를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세금을 내야 하는 점에서는, 모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국세나 지방세, 직접세나, 간접세 등과 같이, 합법적으로 부과되는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할 필요가 있다. 세금을 온전히 바쳐서,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항상 주어진 일에 힘쓰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달라야한다. 조금만 가난하게 살 각오만 있으면 된다.
2. 권위를 인정하는 방법(7上).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줄 것’(오ㅍ헤일레) ‘빚’(마18:32), 의무(고전7:3)을 뜻한다. 정직하게 살라는 말이다.
조세(ㅍ호로스, 속국에게 부과된 조공, 과세, 무거운 짐)을 말하며, 관세(텔로스, 끝, 결론, 목표, 목적)을 말한다. 무엇을 성공했을 때, 능력에 따라내는 세금을 말한다. 이처럼 세금은 올바르게 내고 올바르게 받아 한다. 순리대로 주고받는 것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로마 식민치하에 사는, 히브리 백성들에게 무슨 돈이 있겠는가? 믿음 때문에 박해를 당하며, 지하 공동묘지인, 카타콤에 사는 로마 성도들에게, 먹고 사는 문제가 얼마나, 시급한 일이겠는가? 그런데 부자 나라 로마가, 그들더러 세금을 내라고 한다. 공세, 국세 다 내라고 한다.
그래도 원칙을 지켜야 한다. 세금을 낸다고, 절대 망하는 것이 아니다. 조금만 가난하게, 살려는 각오만 있으면 된다. 위에 있는, 다스리는 자들이, 선을 행할 수 있도록, 세금을 잘 내고, 국가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과도한 세금징수는, 그릇된 일이다.’ 국가도 국민들에게 함부로, 세금을 징수하면 안 된다. 국가는 적정한 수준에서, 국가운영에 꼭 필요한 경비를, 세금으로 징수해야 한다. 국가가 불필요한 세금을, 국민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국민들의 재산을 도둑질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하나님과 백성들에게, 다 악한 일이다. 바울 당시에 황제나 왕들은, 자기 임의로 백성들의 재산을 착취하고, 무거운 세금을 징수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일이 아니다.
정부가 필요 없는 세금을, 징수하지 못하도록 감독하기 위해,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을 국회에 보내고 있다. 그들이 국민을 대표해서, 정부 예산을 심의하고, 부당한 예산을 삭감하는 일을 한다. 국가예산이 정해진 후에도, 정부가 필요한 경우, 추경예산을 편성해서, 국회의 심의를 받기도 한다.
정부가 과도한 예산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키거나, 정치적 타협의 수단으로 삼는 것도, 옳지 않다. 이런 일은, 국민의 대표를 뽑아서, 국회에 보낸 국민들의 뜻을, 무시하는 일이다. 국가는 국민들이 힘들게 낸 세금을 올바른 곳에, 그리고 정직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공적인 재정을 악용한 관리들은, 마땅히 감사를 통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또 야당은 정부가 낸 합법적인 예산안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반대하거나, 막으면 안 된다. 야당도 국민들을 위해, 필요한 예산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동의함으로, 정부가 국민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야당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적절한 정부의 예산 집행을 막는 것은, 백성들을 해롭게 하는, 악한 일이다. 그런데 십일조가, 거룩한 하나님에게 드리는 예물도 되고, 정복한 왕에게 드렸던, 세속적인 예물로 사용되기도 했다. 따라서 십일조는, 하나님이 나의 왕이 되심을 고백하는 예물이다.
3. 권위자를 존중하라(7下).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두려움(ㅍ호보스, 경외, 놀람)은 사람들이나, 사물을 의미하고, 하나님께 사용되었을 때는, 경외로 사용된다.
‘존경’은 (티메-, 댓가, 배상, 위엄, 존귀)이다. 댓가를 지불하라는 말이다. 그러면 누구를 두려워하고, 존경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 부모님, 스승, 어른들, 그리고 교회와, 국가의 지도자 같은 사람들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권위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져가고 있다.
초등학생은 대통령에게 욕을 하고, 젊은이들이 어른에게 막말을 하고, 빈정대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목사님, 선생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고,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이와 같이 현대인에게, 권위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진 것은, 권위의 근원이 하나님임을,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된 권위는, 희생과 섬김을 통해 나타나는데, 지도자들이 희생과 섬김이 없기에, 존경심이 사라진다. 권위를 잘못 쓰면, 지옥이 되고 만다. 욕먹게 된다. 아버지가 타락하면, 자식들도 타락한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진다. 오락실로 향하게 된다.
사람들이 하나님과, 그 말씀을 경시할수록, 권위에 대한 존경심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존경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권위의 근거가 되는 하나님과, 그 말씀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해야만 한다. 성경은 부모님, 교사, 노인, 그리고 지도자들을 존경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벧전2:13-17)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이 세운 권위자들을, 존경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이러한 권위를 무시하고, 반발할 때가 있다.
이러한 태도는, 성도들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성도들은 권위자들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존경해야 한다. 국가는 악을 징벌하기 위해,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당연히, 국가의 공권력을 존중해야 한다. 성도들이 국가의 공권력을 무시하고, 법을 어기면 법의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또 국가에는, 백성들을 위해서 일하는 관리들이 있다. 성도들은 이러한 사람들에게도, 존경심을 표해야 한다. 성도들은 국가 지도자들에 대해, 수동적으로 대응하거나, 마지못해서 복종하지 말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복종하고 따라야 한다.
성도들은 국가의 권위를 인정하고, 수용하고 따라야 한다. 성도들은 국가가 백성들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납세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통치자들이, 국가를 바르게 인도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협조해야 한다.
동시에 국가는 교회가 효과적으로 선교하고,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인정하고 보호해 주어야 한다. 교회와 국가가 이렇게, 서로 협력하며 자기 역할을 담당하면, 교회와 국가는 하나님께 각자 자기가 받은 사명을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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