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6년 12월 25일 - 임마누엘의 예수님(마1:21-23)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6-12-25 |
첨부파일: 임마누엘의 예수님.hwp(37K) |
임마누엘의 예수님(마1:21-23)
메리 크리스마스, 서로 인사하기를 바란다. 성탄절은 전능하고, 거룩한 하나님이 되신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의 몸으로 온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 예수님께 감사하며, 기뻐하는 절기가 성탄절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행사에서, 예수님이 사라진, 성탄절을 많이 보게 된다. 산타크로스와 선물과 추리가 판을 친다. 성탄의 주인공은 예수님임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신 목적을 기억하고, 회복하는 성탄절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왜 성탄일이 이라고 하지 않고, 성탄절이라 하는가?
석가탄신일은 日인데, 예수님의 성탄은, 왜 성탄節인가? 절(節)은 마디, 기간의 단락을 말한다. 예수님 당시에는, 태어난 날보다, 죽은 날이 더 기념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태어난 날을, 기록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는 분명히, 이 땅에 태어났지만, 성탄일은 정확한 날을 모른다.
12월 25일이 ‘크리스마스’로 불리게 되었는데, 4C 무렵부터다. 그래서 역사상 교회들은 12월, 1월, 2월, 3월, 4월, 5월에도, 성탄절을 지킨 기록이 있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탄생하신 날은, 아무도 모르고, 학자들마다 다르다, 누구의 주장이 정확한지도 모른다.
교육방송 다큐멘터리에, 동방박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예수님이 4월 17일쯤에, 태어났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한다. 그 날 유대를 상징하는, 12궁인 양자리에서, 달이 왕을 상징하는 목성을 가리는 현상이 일어났다고 한다. 예수님은 언제 태어났는지 모르기에, 이를 가지고 이단들이 공격한다.
5월 8일이 어버이의 날이지만, 5월 8일만 어버이를 섬기면 안 되고, 항상 섬겨야 한다. 이처럼 12월 25일만이 성탄을 기념하지 말고, 항상 예수님을 기억하고 섬겨야만 한다. 그 날짜를 모르기에, 이를 기념하는 절기가 되었다. 우리는 이 날을 준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고, 감사하며 지내야 한다.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받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운 성탄이 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영광인, 성탄절이 되어야 한다. 땅에서는 기뻐함을 받은 사람들, 즉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평화가 있어야 한다. 이런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한다.
1. 예수님에게 붙여진, 이름은 여러 가지다.
(1) 예수(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했다. 아버지 하나님이, 직접 지어 준 이름이다. 하나님이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다. 예수님의 사역과 관계있는 이름이며, 이름의 뜻은 ‘구원하다.’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는 분이다. 그러기에 예수라는 이름만으로도, 구원자, 구주가 되심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어떠한 유익을 위해, 살아갈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구원을 성취해야 할 사명을 보여준다.
(2) 그리스도(마1:1下).
“…그리스도”는 헬라어 ‘크리오’(기름붓다)에서 파생된 말로, ‘기름 부은 자’라는 뜻이다. 히브리어의 메시아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다. 왕, 제사장, 선지자, 세 직분은 기름을 부어 세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왕으로 오셨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로 오셨고,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는 제사장으로 오신 분이다. 이처럼 세 가지 직분을, 함께 가진 분이 예수님이다. 그래서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가졌다. ‘그리스도’라는 한문 명칭이 基督이다.
(3) 이사야가 예언한 아들의 이름들(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기묘자’는 Wonderful이다. 멋진 분, 훌륭한 분, 놀라운 분이란 뜻이다. 謀士는 영어 성경에서는 Counsellor로 쓰였다. 상담자, 조언자라는 뜻이다. ‘전능한 하나님’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영존하시는 아버지.’ 영원히 존재하시는, 창조주로 아버지가 되신다.
‘평강의 왕’이다. 하나님과 끊어진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자신을 화목제물로 내어준, 평화의 왕이다. 이러한 모든 것이, 예수님의 이름들이다.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이름이다. 이사야는 예수님 오시기, 약700년 이상 전의 선지자다.
우리나라로 치면, 지금부터 2,700년 전이면 고조선 시대에 활동하던 때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700년 이상 전에, 이사야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장차 오실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예언한 이름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놀라운 하나님이다.
(4) 임마누엘이다(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요셉의 꿈속에 나타나서, 예수님의 탄생을 고지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했다. ‘임마누엘’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의미를, 단적으로 표현한 이름이다.
왜 예수님이 임마누엘인가? 예수님은 구원자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어디든지, 모든 곳이 계신다. 안 계신 곳이 없다. 과거에도 계시고, 오늘도 계시고, 온 세계 모든 곳에 계시는 분이다. 역사적으로도 우리 예수님은 창세전부터 존재하신 하나님이다.
천지 창조 때부터 있는 분이고, 지금도 계시고,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다. 또한 ‘無所不在’ 안 계신 곳이 없는 분이다. 그 임마누엘이신 성자 하나님, 사람 몸을 입고 오신 그분은 우리 주님이다.
2. 왜 예수님이 사람의 몸으로, 임마누엘 했나?
(1) ‘자기 백성’을 구하러 오셨다(21中).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남의 백성이 아니다. 모든 백성이 아니다. 자기 백성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임마누엘의 목적은 이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말은 상상하기 힘든 사건이다. 황제가 거지를 구하기 위해, 거지가 되었다는, 의미 이상의 사건이다.
그 거지를 구하기 위해서, 황제가 왕자를 버릴 수 있나?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사건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이 만든 사건이다.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그 거지를 자기 아들 삼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시면서, 자신의 피조물인 사람의 몸으로 오신 것이다.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다.
(2) ‘죄에서’ 구원하러 오셨다.
죄가 문제다. 죄를 해결해야만, 하나님과 타락한 인간의 관계가 회복되는데, 그것을 대신 감당하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다. 그러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요일4:10-11)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 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죄인을 구하러 오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신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우리 죄를 위해, 화목제물이 되셨다. 십자가에 흘린 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죄를 해결했다. 우리 구원이 완성되었다.
그러니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다, 우리 인간은 타락했다. 그래서 죄악으로 눈이 멀고, 귀가 먹어,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였다. 죽은 존재인 줄도 모르고 살았고, 죽음으로 가면서도, 죽음의 길인 줄 모르는 우리였다.
그런 우리를 구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도록’오셨다. 임마누엘의 예수님, 사람이 되심은 다른 목적은, 오직 우리를 죄에서 구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3) ‘약속의 성취자’로 오셨다(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실 것에 대한 예언은, 성경에는 수없이 많다. 그런데 그 예언이, 그대로 다 성취되었다.
‘처녀의 몸에 잉태될 것’이라, 예언한 것도 이루어졌다. 그리고 ‘베들레헴에 태어날 것’이라는 것도 성취되었다. ‘임마누엘의 이름을 갖게 될 것’도 성취되었다. 그리고 ‘자기 백성을 위해 찔려서 피를 흘릴 것’도 성취되었다. 그대로 다 이루셨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뭐죠? ‘다 이루었다.’ 구원을 다 이루었다는 것도 되지만, 하나님이 약속한 예언을 다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약속과 성취의 책이다. 예수님은 약속의 메시아요, 성취의 메시아다.
3. 임마누엘의 예수님.
(1) 예수님은 탄생할 때부터, 임마누엘로 오셨다(마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사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런데 (마1:23)에 그대로, 성취되었다고 하나님이 선포한다. 그러니 우리 주님은, 초림할 때부터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다.
(2)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한다.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부활해서, 승천할 때 약속한 것이 있다.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이다. 세이 끝 날까지, 함께 한다고 약속했다.
(3)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사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지금도 함께 하시니, 더 이상 뭐가 필요한가? 과거에도 함께 했다. 현재에도 함께 한다. 미래에도 함께하실 우리 주님이다. 우리가 힘들 때에, 멀리 떠나계시는 분이 아니다. 그때도 항상 함께 한다. 오늘 이 예배 자리에도 함께 한다. ‘임마누엘’이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
그러므로 주님의 오심을 기뻐해야 한다. 성탄은 인류역사에 최고 사건이다. 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 따라서 특별히, 구원받은 우리는 기뻐해야 할 사건이다. 그런데 성탄절에 기뻐하기보다는, 슬퍼하는 사건들이 많다고, 슬퍼하면 안 된다.
성경을 보라. 목자들도 기뻐하고 달려왔다. 동방박사들도 달려왔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얼마나 기뻐하고 있나? 진정으로 기뻐해야 한다. 항상 기뻐해야 한다. 제일 기뻐해야 할 사람은, 유대 땅에서 보면, 땅 끝인 이 한반도 변방에 살던 우리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분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신 분이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다. ‘임마누엘’ 예수님의 성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한 번 생각해야 할 때다. 임마누엘의 은혜와 복이 넘쳐나는, 성탄절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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