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6년12월 18일 -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롬13:1-2)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6-1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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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들에게 복종하라(롬13:1-2)
바울은 (롬12장)에서, 그리스도인들과 관련된, 4가지 기본적인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이 4가지 기본관계는 ① 하나님에 대한 관계(1-2) ② 자신과 기독교 공동체의 관계(3-8) ③ 공동체 안에서의 상호관계(9-16), ④ 마지막으로 원수에 대한 관계(17-27)다.
이제 (롬13장)에서, 성도들과 관련된 3가지 관계를, 더 추가한다. ① (1-7)에서 국가와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② (8-10)에서 사랑과 율법과의 관계를 언급하고 ③ (11-14)에서는, 재림에 대한 성도들의 처신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오늘은 권세에 대한 말씀이다. 그 동안 수많은 학자들에게 ‘교회와 국가 관계’는, 논란의 주제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국가의 박해 대상이 되기도 했고, 때로 국가의 동반자 역할을 했다. 어떤 때에는 국가 위에서,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역할을, 할 때도 있었다.
이러한 역사를 거칠 때마다, 교회와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계속해서 논쟁했다. 지금도 아주 중요한 문제로 남아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국가와, 동시에 하나님 나라에, 소속되어 있다. 이러한 이중의 구조 속에,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1. 권세를 올바로 알고 따라야 한다(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1) 권세가 무엇인가?(1a).
‘권세’(엑수시아, 지배, 권세)인데, 엑세스티에서 왔다. 에크(~부터) + 에스티(에이미, 있다)의 현재분사 = 존재와 본질로부터 위임된, 힘과 능력을 다스리는 권위다. 학자들의 주장에, 차이가 있다.
① ‘권세들’은 ‘세상 세력을 통제하는, 영적인 세력’을 말한다고 한다. 사도 바울은 (엡6장)에서 영적 전투에 대해 언급하며,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엡6:12b), 어둠의 세상의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따라서 권세는 영적인 세력을 의미한다고, 오스카 쿨만은 말한다.
② ‘권세들’은, ‘세상의 권력을 가진, 국가와 통치자들’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본문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바울이 말하는 ‘권세들’은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국가의 기관과 본질’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③ 하나님이 위임된, 권위와 권리, 즉 주권을 말한다. 대한민국의 헌법 제1장이 총강인데, 제1조를 보면 “⓵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⓶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의 주권과 권력이, 국민에게 있다가, 우리나라 헌법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저는 모두 포함해야 한다고 본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본문은 분명히 국가 기관을 언급한다. 세금문제나, 악인을 처벌하는 공권력은, 국가기관에서 집행하는 일이다.
바울이 말한 권세는, 그 당시 온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제국과, 유대 행정부를 가리켰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정부에 대해서, 여러 번 저항운동을 펼쳤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인이 로마에 대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해 줄 필요가 있었다.
기독교인들은 ‘로마제국에 충성스러운 시민이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제국에, 불복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점에서, 안내가 필요했다.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서‘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고 했다.
신앙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법의 지배를 받고, 세상에서는 이 땅의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세상 정부가 필요 없다는, 무정부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성도는 천국의 백성이요, 이 땅의 백성이다. 그래서 두 세계 사이를, 살아야만 하기에, 번민이 있다.
천국시민이지만, 지상세계를 살아야 한다.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하지만, 죄악의 현장을 벗어날 수 없다. 마음으로는 원하지만, 육신은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신앙과 현실, 믿음과 생활, 혹은 교회와 직장, 교회와 가정, 이 두 세계 사이에서, 번민하고 있다.
(2) 왜 기독교인들이, 세상 정부를 인정해야 하는가?(1bc).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권세를 인정함이 하나님을 인정함이다.
세상 정부도, 하나님이 주셨기에, 합법적인 권세라고, 할 수 있다. 정했다(탓소) 배치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교회만을, 하나님이 세운 기관으로 주장하며, 세상 국가를 부정하려고 하면 안 된다. 이렇게 말하면 ‘악한 통치자도, 하나님이 세웠는가?’라고 항의하고 싶어진다.
역사를 보면, 선한 통치자만 있지 않고, 수많은 악한 통치자들도 있었다. 기독교를 박해한 네로나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 스탈린, 김일성과 같은 수많은 통치자들은, 백성들을 도탄에 빠지게 하고, 기독교를 대적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통치자를 세운 분도, 역시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모든 권세들’을, 하나님이 정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해하기 쉽게 말한다. 이스라엘을 박해한 애굽의 바로를 세운 분이, 하나님이라고 했다(출9:16). 이스라엘을 정복한 앗수르나(사10:5), 유다를 친 바벨론도(겔30:24), 하나님이 세웠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유다와,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기물들을 자기 나라로 가져가기도 했다(단5장). 그러나 그들을 세운 분은, 하나님이다. 그 뿐 아니라, 성경은 고레스 왕도, 하나님이 세웠다고 말한다(사44:28).
하나님은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을 통해, 바벨론과 페르시아와 헬라, 로마가 일어날 것을 예언해 주기도 했다. 우리는 이런 성경적인 사례들을 통해, 선한 왕 뿐만 아니라, 악한 왕도 역시 하나님이 세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때로, 악한 왕을 세워서, 그 백성들의 죄를 심판한다.
또 악한 왕(바로처럼)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함과, 크신 능력’을, 세상에 알리기도 한다. 이들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봐야 한다(외모지상주의, 돈, 쾌락). 우리는 세상 정부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자가 되면 안 된다. 이 세상의 통치자들을 세우고, 넘어짐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2. 권세를 거르지 말라(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이러한 권세를 거스르면, 심판(크리마)을 자취한다(람바노, 취하다, 붙잡다).
우리는 국가의 권세를 인정해야 하지만, 권세에 대해 말할 때, 신중하지 않으면, 오해할 수 있다. 악한 통치자들(헤롯, 네로, 히틀러, 김일성)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 통치자들을 하나님이 세웠다는 말은, 그 권세를 가지고, 악용해도 좋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이 로마 정부에 대해, 어떻게 처신했는지 살펴보자. (요19:10-11)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유대인들은 밤에, 예수님을 불법으로 체포하여, 산헤드린 회의를 열고, 예수님에게 신성모독 죄로 사형을 언도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사형권이 없었기에, 로마의 허가를 받기 위해, 예수님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겼다.
발라도에게 심문받을 때, 예수님은 자신이 옳다고, 변호하지 않았다. 이미 자신을 처형할 권한이, 하나님이 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때 빌라도는 침묵하는 예수님에게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요19:10)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위에서 주지 아니했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다.’(요19:11).했다. 빌라도에게 이 권한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니, 겸손한 마음으로, 권한을 바르게 사용해야 함을,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빌라도는, 경고의 말씀을 듣고도, 겸손하게 행하지 않고, 주어진 권세를, 오용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는 후에,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책임져야 했다. 교회가 때로 국가 기관에 의해서, 무고하게 고난을 받을 때가 있다. 이때 교회는 주님이 하신 것처럼, 그 일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일어난 것인지, 분별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판단되면, 주님과 같이 항거하지 않고,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이때에도, 침묵하고만 있으면 안 된다. 교회는 주님처럼, 국가에 주어진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선포해야 한다. 왕 앞에 나타났던, 선지자처럼 잘못을 외쳐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국가의 통치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겸손한 자세로, 바르게 사용해야만 한다고 선포해야 한다. 교회는 만일 국가가, 권세를 악용이나 남용하면, 그 결과에 대해, 책임져야한다고 경고할 수 있다. 바울은 먼저, 권세를 인정하고, 권세를 거역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권세를 부정하거나, 저항하는 일은, 그 권세를 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일이라고 경고한다. 권세를 부정하는 자는, 심판(크리마)을 자취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 말을 들을 때 ‘그러면 우리는 악한 통치자에도, 무조건 복종해야 하느냐?’고, 항의할 수도 있다.
이 문제에 대답하기 위해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교회와 국가의 관계와 역할’을 설명하는, 4가지 모델로 나눌 수 있다.
(1) 국가 만능론 : 국가의 권세가, 교회 보다 위에 있으며, 따라서 국가가, 교회를 통제해야 한다.
(2) 신정론 : 교회의 권세가, 국가보다 위에 있으며, 따라서 국가는, 교회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3) 타협론 : 국가는 교회가 평안히 활동할 수 있도록 보살피고, 교회는 그 호의를 제공하는 국가의 편익을 도모해야 한다.
(4) 동반론 : 교회와 국가는 둘 다, 하나님에 세운 기관이지만, 각각 맡겨진 역할과 기능이 다르다. 그러므로 국가와 교회는, 서로를 신적 기관으로 인정하고,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를 다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건설적인 협력 관계 속에서, 서로를 지지하고, 격려해야 한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견해는, 네 번째라고 할 수 있다. 국가와 교회가, 상대편을 지배하려 하거나,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얼버무리면, 올바른 태도라고 할 수 없다. 교회와 국가는 둘 다, 하나님이 세운 기관임을 인정하고, 각자에게 주어진, 고유한 영역에서, 자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교회와 국가는, 각자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서로 돕고 격려해야 한다. 그러면 교회는 하나님을 공개적으로 대적하는 정부나, 권력을 남용하는 통치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허락한 시대는, 대통령이 국가가 아니다. 옛날의 황제가 아니다.
일부 독재자들은 (롬13:1-2)을 근거로, 아무리 악한 정부라도, 그 명령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성경은, 악한 정부에 대해서, 무조건 복종하라고 가르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수많은 성경 본문들은, 악한 정부에 대해서, 무조건 복종하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악한 정부의 명령을 거부한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출애굽기를 보면, 바로는 산파들에게, 이스라엘 여인이 아들을 낳으면, 모두 다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아이들을 살렸다(출1:17).
이 경우에 하나님은, 그들을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축복해주었다(출1:21). 또한 다니엘과 세 친구도, 왕이 준 음식으로 자기를 더럽히기를 원치 않아 거절했고(1:8), 또 우상에게 절하라는, 왕의 명령을 공개적으로 거부했다(3:12). 기도하지 못하게 했을 때에도 거부했다(6:10).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더 큰 은혜와 복을 주셨다. 신약에서도 이러한 예는 발견된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복음전파를 엄금하라는, 산헤드린의 결정에 대해 (행5: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했다.
사도들은 복음전파를 금하라는, 국가기관의 결정을 거역했다. 이는 국가기관이 명백히,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도들의 태도는,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정부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바울이 로마서를 쓴 지, 약 30년이 지난 후에, 로마의 도미티안 황제는, 교회를 조직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했다. 이때 기록된 요한계시록을 보면, 국가에 대한 묘사가, 바울의 묘사와 전혀 다르다. 계시록에는 교회를 박해하는 로마 정부가,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나, 붉은 용으로 묘사된다(계13장).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한 교회가, 그들과 싸워서, 결국 승리할 것이라 예고한다. 이러한 예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권세를 악용하는 악한 정부에, 교회가 무조건 복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면 교회는 국가에 대해, 어떻게 처신해야 하나? 이렇게 일해야 한다.
(1) 교회는 모든 권세가,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국가의 권세도 하나님이 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교회는 통치자와 국가가, 그 권세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또 인도해 주어야 한다.
(2) 교회는 정당을 만들거나, 정치 세력을 만들어서,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교회에게 주신,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3) 교회는 복음을 통해, 기독교인들이 양심을 통해, 의를 시행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교회는 성도들이 복음의 힘으로,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할 수 있게,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일은, 국가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4) 교회와 국가는, 수동적인 자세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긴밀한 조화와 협력하고, 이를 통해 서로 자기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격려해야 한다. 우리 몸이 영과 육신으로 되어 있지만, 그 둘이 모두 하나이며, 둘이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함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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