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6년11월 6일 - 믿음의 분량을 따라서(롬12:3)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6-1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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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분량을 따라서(롬12:3)
인생에서 가장 원초적인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는가?”하는 것이다. (롬1-11장)의 말씀은, 이 질문에 대해서 명확한 해답을 준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다는 말이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는 다음 질문은, 구체적인 삶에 대한 질문이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도대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인가? 실천문제가 우리가 물어야 할, 두 번째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롬12장부터 16장)에 말하고 있다.
구원교리만 알고, 삶이 없다면, 이단 영지주의와 같고, 구원교리는 없고, 삶만 있으면, 이단 율법주의와 같다. 따라서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자비를 입은 성도들이, 이러한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며, 하나님께 드릴 진정한 영적예배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자기 몸을 드리는 것이, 진정한 영적예배라고 했다. 진정한 예배는 교회에서만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또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그 뜻을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선하고, 기뻐하고(용납되고), 온전하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하여,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성령으로 새롭게 될 때에, 분별할 수 있다. 이제 바울은 계속해서, 성도들의 처세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구원받은 자의 믿음의 행동요령은,
1. 받은 은혜를 따라 하라(3上).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바울이 받은 은혜는, 이방인의 사도로, 세움 받은 것이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칠 수 있는 권위를 주었다.
그러므로 그는, 이 직분을 ‘내게 준 은혜’라고 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백성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받은 후에, 백성들에게 파송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시고 권위를 주심을 알았다.
(3b)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너희 각 사람’(공동체)에게 말한다고 했다. 내가 예수님을 믿을 때, 나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공동체에 일원이 된다. 공동체의 일부가 되면, 그 공동체에 따른, 합당한 삶이 있다. 그런데 공동체에 합당한 삶은, 자기 스스로는 알 수 없다. 배워야 된다.
회사에 입사한 사람도, 그 회사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모두 다 깨닫고 들어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들어가고 난 다음에, 오리엔테이션을 통해서, 어떤 직책을 맡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회사에서 가르쳐준다. 따라서 배워야 된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믿는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워야 된다. 공동체에 들어온 다음, 그 공동체에서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지를, 배워야 된다. 그 위치로 나를 불러 주신 분의 요구를 따르기 위하여, 그분의 가르침을 배워야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킨 후에, 너희들은 이렇게 살라면서,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었다. 하나님 나라의 성도들의, 삶과 활동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살라면서, 말씀해주셨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포함하여, 복음서 내용을 믿는 자들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서 말씀했다. 그렇기에 내 신분변화에는, 어떻게 살아야 합당한지, 그 가르침이 꼭 따라온다. 그런데 이 가르침은 내 스스로 추리해낼 수 없다. 반드시 나를 불러준 분께, 배워야 된다.
우리가 예수님 믿은 이후에도 내 맘대로 살면 안 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하여 배워야만 한다.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고, 사람들에게 전할, 복음을 받았다. 그가 이러한 직분들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이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엄숙히 권고하고 있다. 그의 말은 다소 ‘명령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다. 원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이르노니)…’(요10:7, 5:22, 28, 32, 34, 39)라는 표현은,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 자주 사용한 표현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중요한 것을 말씀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예수님은 다른 존재가 아닌, 자기 권위로 말씀했다. 이는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됨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 은혜에 힘입어서, 바울은 겸손하게, 공동체 안에서, 로마의 성도들에게 권면했다.
2.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을 하라(3中).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마땅히’(데이)는 ‘반드시~해야만 한다. 필요하다.’는 말이다. 마땅한 생각은, 당연한 생각을 말한다.
(1)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라.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되는 것이 많다.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특징은, 주제 파악을 한다는 점이다. 사람은 자신을, 잘 아는 것 같아도, 잘 모른다. 그래서 자기중심이 되어 살아간다.
자기를 보는 데는, 2가지 관점이 있다. (A) 자신의 관점이다. 여기에는 위험함이 많다. ① 나를 낮게 평가하여, 형편없이 보면, 좌절감, 열등감, 의욕 상실, 자기 학대, 심지어 자살까지 한다. 또 ② 자가 자신을 높게 평가한다. 그래서 오만해지고, 교만해지고, 우월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B) 성경의 관점으로 본다. 그러면 상처를 받지 않을 필요가 없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며, 죄인이며, 내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될 수 있다는 틀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겸손해질 수 있다.
①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주제파악을 하라. 월권하지 말라는 말이다.
교회가 시끄럽고, 가정이 시끄러운 이유는, 월권하기 때문이다. 자기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일에만 간섭하기 때문이다. 남의 일에 상관하지 말라.
충고를 함부로 하지 말고, 그 시간에 기도해 줘라. 충고한다고 변하지 않는다. 기도해야 사람이 변한다. 충고하면 화를 낸다. ‘너는 뭔데?’라고 한다. 그러면 할 말이 없어진다. 내 경험과 능력과 판단과 지식으로 충고하면 실수한다. 은혜 안에서 말해야 한다. 내 생각과 의견을 조심하라.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주님의 은혜 안에서, 보아야 한다. 이런 사람은 명령을 하지 않고, 권면한다. 그래서 바울은 앞에서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한다.’고 했다. 베드로 사도는 (벧전5: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했다.
② 상식적으로 행동하라.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을, 상식, 도덕이라고 한다. ‘로버트 풀검’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누어가져라. 공정하게 행동하라. 남을 때리지 말라. 사용한 물건은 자기 자리에 놓으라.
자신이 어지럽힌 것은, 자신이 치우라. 내 것이 아니면, 가져가지 말라. 다른 사람을 아프게 했으면 미안하다고 말하라. 음식 먹기 전에, 손을 씻으라. 균형 잡힌 생활을 하라. 매일 공부도 하고, 생각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놀기도 하고, 일도 하라.
밖으로 나가면 차를 조심하고, 옆 사람과 손을 잡고, 같이 움직이라. 이런 것이 마땅한 일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동해야 한다. 예수님을 닮아가야 한다. 말과 행동을 닮아가야 한다.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악한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미움 속에서 행동하면 안 된다. 분노와 저주 속에서 행하면 안 된다. 우리는 사랑가운데서 행해야 한다. 원망의 말과 불평의 말은, 마귀의 말이다. 감사의 말은 성령의 말이다. 감사의 말을 해야 한다.
(2) 그 이상의 생각(휘페르프로네오)을 품지 말라.
휘페르(뛰어, 초월하여)+프로네오(이해하다, 생각하다) = 오버하지 말라는 의미다. 남들이 생각하는 만큼 생각하라. 자신을 너무 높이 생각하다, 거만하지 말라.” 여기서 ‘생각하다.’를 3번씩 사용했다.
그런데 ‘지혜롭게’(소프로네오)는, 원래 ‘건전한 생각’(정신 차리다.)을 말한다. 술에 취한 것 같은, 생각이나 판단이 아니라, 온전하고 깨어있는, 건강한 판단을 해야만 한다. 따라서 ‘지혜롭게’(올바른 생각)하라고 했다. ‘생각한다.’는 말이, 4번이나 사용되고 있다.
베드로는 (벧전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다. 공동체 안에서, 술 취한 듯 있으면 안 된다. 깨어야 한다. 혼미한 판단을 하면 안 된다. 성경을 통달했다는, 이단들의 말을 조심하라.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분량을 따라서, 지혜롭게 생각하라!’ 교만한 자세로는,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없다. 겸손이 무엇인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는다. 자신을 높이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다. 겸손한 자세를 가지라. 한 마디로 자기 주제, 자기 분수를, 잘 지키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 내에서, 자기주장을 앞세우지 말고, 각자에게 주어진, 믿음과 분수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말이다. 공동체 내에서 성도들이, 자기 분수를 넘어서면, 교회는 분열되거나, 하나가 되지 못할 것이다. 바울은 성도들이 ‘해서는 안 될 생각들’이 있다고 말한다.
성도들은 자기 분수를 넘어서서,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자신을 비하해서, 과소평가 할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배경이나, 사회적 지위, 재산, 또는 학력이나 지식을 자랑한다. 그들은 이러한 것을 근거로, 자신을 남들보다 높이 평가하려고 한다.
그러나 성도들은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으로, 구원 받았음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생각을 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자랑할 조건이 없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을 지나치게 비하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도 역시,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자세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을 지불하고 산,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과대평가 하거나, 과소평가 하지 말고, 자기에게 주어진, 분수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바울은 성도들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2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3.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3下).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공동체에서 생각해야 할, 또 다른 기준은 ‘하나님이 각자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이다.
‘분량’(메트론)은, 부피를 재는 ‘측량 도구’와, ‘측량한 양, 척도, 제한된 분량’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말은 2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메트론을 ‘측량도구’(측량하는 기준)로 해석하면,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측량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메트론을 ‘측량된 양’으로 보면 “하나님이 각 성도들에게, 각기 다른 믿음의 양을, 나누어 주었으며, 각 성도들은 그 믿음의 분량을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후자의 입장은 대부분 학자들이 지지하는 견해다.
믿음에는 분량이 있다. 이러한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은사도 차이가 있고, 믿음도 차이가 있다. 분량이 다르다. 공동체 내에서, 건전한 판단력을 가지고, 하나님이 각자에게 나누어주시는, 믿음의 분량을 따라서 생각하고, 행동을 해야 한다.
성도들은 영적 잠을 자거나, 술에 취한 듯, 몽롱한 상태로 있으면 안 된다. 성도들은 잠에서 깨어나서, 성령 안에서 건전한 판단력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각자에게 나누어 주신, 은사를 따라서, 믿음의 분량대로, 교회를 섬겨야 한다. 공동체 내에서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각 성도들은, 하나님이 각자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과, 은혜에 따라 행하면, 되기 때문이다. 억지로 강요하면 꼭 문제가 생긴다. 인내하며 기도해주라. 이처럼 바울은, 성도들이 교회 공동체 내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2가지 기준을 ‘건전한 판단력’과, ‘믿음의 분량’을 제시했다.
공동체 안에서, 건전한 판단력을 갖고, 생각하고 행동해야만 한다. 척하고 살지 말라는 것이다. 왜 교회 오기가 힘들고, 예배할 때, 왜 힘든가? 구원받지 못했는데, 척하고 예배드리기 때문이다. 믿음이 있는 척, 기도 하는 척, 찬양 하는 척, 해야 하기에 힘든 것이다.
너무 많은 가면들을 쓰기에, 힘든 것이다. 그러지 말고, 믿음의 분량대로 하는 것이다.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했는데, ‘건전한 마음이 되다, 정신이 온전하다, 술에 취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냉철한 판단, 건강한 판단’이라는 뜻이다. 냉철한 판단에 근거하여 생각하라는 뜻이다.
기독교 신앙은, 감성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성적인 요소가 강한 종교이다. 우리가 삶을 바르게 하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생각이다. 믿음으로 구원받았지만, 용서 받은 자임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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