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6년 9월 25 - 이스라엘이 우둔하게 된 이유(롬11:25-27)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6-1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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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우둔하게 된 이유(롬11:25-27)
하나님은 복음을 거역한 이스라엘을, 약속에서 제외하고, 복음을 믿은 이방인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었다. 감람나무의 접붙임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했다. 그러므로 이방인 성도들은 자만하지 말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버림받지 않도록,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잠시 버림받았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그들이 진심으로 회개하면, 회복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제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을 ‘형제들’이라 부르면서,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넘어짐을 허락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 자만하지 않기 위해 알아야 할 신비(25上).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바울은 감람나무의 비유를 바친 후에,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을 가리켜 ‘형제들’이라 부르고 있다. 바울은 형제인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않는다. 내가 너희에게 알려주겠다고 말하면서,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설명했다. 이방인 성도들은 스스로, 지혜롭게 생각하지 말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방인이 구원받은 것이, 자신의 공로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임을 기억해야 한다. 바울은 자신이 하려는 말을 ‘신비’(미스테리온)라고 불렀다. 옛날 번역에는, 비밀이라고 했다. 비밀을 아는 자와, 알지 못하는 자는, 큰 차이가 있다. 모두 다 알면, 비밀이 아니다. 감추어져 있다는 말이다.
개역 개정역에서는 ‘신비’로 번역했다. 감추어진 비밀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된, 계시된 신비였다. 바울이 말하는 신비와 비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온갖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모두 다 감추어져 있다.
(골2:2-3)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이 신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이 함께,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섭리다.
(롬16:25-26上)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라고 했다. 또한 ‘스스로 지혜 있다’면서, 성경을 다 아는 것처럼, 지혜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겸손하게 인정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성령님이 알려주시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이단들은 모르면서, 모두 아는 것처럼 떠들어댄다. (벧후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25下-26上)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우둔하게(포-로시스, 무감각한, 어두움, 굳어짐)으로 ‘포-로오’(돌과 같이 되다, 굳어지다, 둔해지다.)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방인들에 대하여, ‘완악하다’는 말로 사용되었다(막10:5, 막19:8).
(엡4:18)에는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포로시스)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돌같이 굳어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바울이 말한 신비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
① 이스라엘은 일정기간 동안, 부분적으로 우둔한 채로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언급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바울은 이미 7절에서, ‘택하심을 입지 못한 자가 우둔해 진다.’는 사실을 언급한 적이 있다.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을 우둔한(완악한) 채로 두셨다(9:18).
마음이 우둔(완악)하다는 말은, 영적으로 둔감함을 말한다. 자기 스스로, 악함을 깨닫기 못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얼굴에 수건을 쓴 것처럼, 그리스도에 대해 깨닫지 못했다. 이런 우둔한 현상은, 일정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러는 나타날 것이다.
② 이스라엘의 우둔함은 ‘이방인의 충만한(플레로마, 플레로오, 꽉 채우다.) 숫자가 들어올 때까지, 지속 될 것’이다(25下). 하나님은 이방인들 중에서, 정한 수가 찰 때까지, 이스라엘을 우둔한 채로 내버려두실 것이다.
그리고 이 기간에, 하나님이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게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이방인 중에서 선택 받은 모든 수가, 채워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거부와 불신을, 이방인을 구원하는 기회로 삼았다.
③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26上). ‘온 이스라엘’이 누구인지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제시되어 왔다. 칼빈은 본문에 나오는 ‘온 이스라엘’을 ‘교회’로 해석하고,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모든 백성’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본문을 이렇게 해석했다.
‘이방인이 들어오고, 최종적으로 유대인들이 돌아올 때, 하나님의 교회인 모든 이스라엘의 구원이 완성될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이스라엘을, 교회로 부른 경우도 있지만(갈6:16), 로마서 전체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은 이방인과 구별되는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말하는 ‘온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욱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면 ‘온 이스라엘’이 돌아온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을 말할까?
만일 그렇다면,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들이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길 때에도, 그들 중에는 항상 하나님을 거역하여, 징계 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말하는 ‘온 이스라엘’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한다고는 볼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브루스는 ‘온 이스라엘’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는, 모든 유대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집단적으로 부르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에서 ‘온 이스라엘이 돌아온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의 대부분이,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의미로 봄이 자연스럽다. 바울은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 중의 대부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때가 있다고 예고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할 때가 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그 때가 오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대부분이 그리스도를 믿고 이방인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2. 이스라엘 구원에 대한, 성경적 증거(26-27).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롬11장)에서, 이스라엘의 구원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3가지 사항을 언급했다.
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역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남은 자만, 구원받을 것이라고 예언되었기 때문이다(2-11).
②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넘어진 것을, 이방인 구원의 기회로 삼으셨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찰 때까지 이스라엘의 대부분이, 우둔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우둔함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기간이 언제까지인지, 알 수 없다.
③ 이방인 구원 사건은,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하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실패한 것이 아니다. 성경에 기록되기를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는데, 야곱의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겠다고 했다.
구원자는 시온에서 온 줄고 알고 있는데,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다고 했다. 야곱은 이스라엘을 말하는데, 야곱이 죄를 지었던 것을, 돌이키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러한 3가지 사항을 언급한 후에, 계속해서 이스라엘이, 그리스도께 돌아올 것을, 성경을 통해 계속 증언한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장차, 다시 구원 얻을 증거로, 2개의 성경구절(사59:20, 사27:9)을 제시했다. (1) 이사야는 (사59:2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고 예언했다. 야곱의 자손을 야곱으로 표현했다.
바울은 이 구절을 약간 다르게 인용하고 있지만, 본질적인 내용은 별 차이가 없다. 바울이 인용한 (사59:20) 말씀은,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해서, 2가지를 가르쳐준다. ① 구원자가 시온(예루살렘)에 오실 것이다(사59:20).
② 구원자가 야곱(이스라엘) 중에, 자기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할 것이다(사27:9). 이사야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을 구속할 그리스도가, 시온(예루살렘)에 오셨다. 그리스도는 유대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났으며, 하나님께 순종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또한 그리스도는 마지막 때에,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서, 다시 세상에 오실 것이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회개하고 죄를 떠나며,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다.
(2) 죄 용서와 언약(27).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 언약은 은혜 언약이다. 바울이 2번째로 인용한 구절은 (사27:9)다.
(사27:9)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의 죄 없이함을 받을 결과는, 이로 말미암나니 곧 그가 제단의 모든 돌을 부서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와 태양상이,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이라.”예언했다. 전반부만을 인용했다. ‘내가’는 바로 하나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를, 없애주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이것이 언약이다. 이 언약은 장차 모든 이스라엘이, 그리스도께 돌아올 때에 성취될 것이다. 성경에서 ‘언약’은, 중요한 말이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언약들이 기록되어 있다.
① 아담과의 언약(창2:16-17, 3:21). -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죽는다. 가죽 옷을 지어 입혔다.
② 노아와의 언약(창6:18, 9:9-17). - 홍수로 멸한다고 했고,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는다.
③ 아브라함과의 언약(창12:1-3, 13:14-17, 15:1-21, 17:1-22). - 그와 그 후손을 통해 구원한다.
④ 모세를 통한 이스라엘의 언약(출19:5-6, 24:7-8, 신28:1-30:30). - 율법에 순종하면 백성으로
⑤ 다윗과의 언약(삼하7:4-16, 대상17:3-14). - 다윗의 후손을 통해 용서한다. 그리스도에게 나온 자들은, 자기 행위를 의지하지 않는다. 이들이 바로, 진짜 이스라엘이다.
⑥ 새 언약(렘 31:31-34, 32:40-41) 새 언약을 처음으로 말한 사람은, 예레미야 선지자였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어겼기에, 옛 언약이 파기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바벨론에 포로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후에, 다시 그들에게 새 언약을 주셨다. 이 새 언약은, 하나님은 친히 이스라엘의 죄를 씻어주고, 성령님을 통해서, 그들을 다시 거룩한 백성으로 회복해 주시겠다는 약속이었다.
우리 예수님은, 신약시대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계셨다. 태초부터 계셨기에, 모든 죄를 사해줄 수 있었고,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에도, 그때에 예수님이 당신의 살을 찢고, 가죽옷을 입혀주고, 노아 때에도, 아브라함 때에도, 모든 사람들을 구원받게 해주셨다.
이 언약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씻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예수님은 만찬을 드실 때에, 제자들에게 포도주 잔을 주셨다. 그리고 그 잔이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라고 선언했다(고전11:24-25).
시내산 언약은, 쌍방이 서로 지킬 의무가 있는 계약이다. 그러나 새 언약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성취할 일방적인 언약이었다. 하나님은 친히 우리 구속자가 되어, 죄인들의 죄를 씻어 줄 것이라고 약속해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이 언약을 따라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하나님을 떠났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돌아와서, 새 언약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신실함에, 이스라엘의 회복을 보기 바란다.
사람들은 더욱 더, 죄악에 빠져 살아가고 있었지만, 사람을 멸망시키지 않고, 이 언약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와서, 세상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이 언약이 은혜언약이며 우리의 어떤 노력이나 도움이 없이, 하나님이 스스로 이루신, 은혜의 언약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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