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내용
•홈  >  말씀과찬양  >  설교내용
  제  목 : 2016년 8월 28 -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렸나?(롬11:1-10)
  작성자 : 이건기 작성일 : 2016-08-28
  첨부파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렸나.hwp(80K)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렸나?(11:1-10)

바울은 9-10장을 통해, 4가지 주제에 대해 언급해 왔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절했다고 해도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취소된 것은 아니다(9:1-5). 하나님의 약속은 취소되거나, 변하지 않는다(9:6-24).

모든 이스라엘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 일부 선택된 사람만이 구원받고,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구원받을 사람이 있다(9:25-29), 유대인이 복음을 거절한 것은, 그들의 과오지, 하나님의 실수는 아니다(9:30-10:21). 이것이 지난주의 말씀이었다.

1.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그러므로는 앞장에서, 말씀한 내용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음을 들었으며, 또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복음을 믿지 않은 일에 대해, 더 이상 변명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 불신앙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할 것이다. 바울은 또 다시, 이렇게 질문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나?”(메 아포사토)

는 부정적인 답을 기대하는, 수사의문문이다. , ‘그렇지 않다.’는 답을, 유도하는 질문이다. 바울은 이 질문을 던진 후에, 즉시 그럴 수 없다!’(메 게노이토, 기노아미)고 대답했다. 결단코 그럴 수 없다는 말이다. 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고, 바울이 담대하게 말했나?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바울

바울은 이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 먼저 자신을 그 예로 들었다. 바울도 이스라엘 백성이고, 아브라함 자손이며, 베냐민지파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이, 모든 이스라엘을 버렸다면, 바울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은, 바울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이, 모든 이스라엘을 버린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도 구원받을 수 있다.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는다(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는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으면, 절대로 하나님이, 버리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그 예로 엘리사 시대에 일어난 사건이다. (2-4)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이를 증명하기 위해, 성경에서 그 예를 들었다. 바울이 제시한 성경적인 예는, 엘리야 시대에 일어났던 사건이었다. 엘리야는 우상숭배가 만연한, 암흑기였던, 아합 왕 때에 활동한 선지자다.

아합은 바알을 신봉하던 이세벨을, 아내로 맞으면서, 극도로 우상숭배에 빠지고 말았다. 이세벨은 공개적으로, 바알 선교사 노릇을 했다. 친히 물질적, 정신적으로 많은 바알의 제사장들을 후원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우상숭배로 물들게 되었고, 아합 왕은 이러한 일을, 방관만 하고 있었다.

이 일로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을 좆게 되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냈다. 엘리야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참 신임을 증언하기 위해, 바알의 제사장들과, 공개적인 영적전쟁을 선포했다.

결국 엘리야의 제안이 받아들여져서, 엘리야는 850명이나 되는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들과, 영적전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각각 제단을 쌓고, 자기 신에게 제물을 드렸다. 그리고 어느 신이, 그 재물에 응답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이방신 바알에게 드린 제물에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러나 엘리야가, 하나님께 드린 제물에는,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불태우는 응답이 있었다. 이 일로 인해 엘리야는,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왕후 이세벨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엘리야를 잡아 죽이기 위한 계획을, 은밀히 추진하고 있었다.

마침내 이 소식이, 엘리야의 귀에도 들어가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야는, 크게 낙심하여 광야로 도망을 치고 말았다. 그 때에 하나님은 광야에서, 엘리야에게 나타나셨다. 그때에 엘리야는 로뎀 나무 아래에서, 하나님께 이렇게 호소했다.

(왕상19:10,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왕상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엘리야는 모든 신앙인들이 사라지고, 자신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장 영적으로 타락할 때도, 여전히 우상에게 절하지 않은, 칠천의 경건한 사람들을 보존해 두셨다.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던 엘리야는, 자기 혼자만 남아서, 외롭게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가장 타락해 있을 때에도, 백성들을 위해, 많은 경건한 사람을 보존해 두었다. 이렇게 남겨 두신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다. 바울은 이러한 예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많은 경건한 자손들을 넘겨두셨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이, 이렇게 남겨 준 사람들을 남은 자라고 불렀다. 아모스는 남은 자들이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 같다.’고 했다(4:11).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남겨진 사람들을 그루터기라고 했다(6:13).

2. 지금도 은혜로, 남은 자가 있다(5-6).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이, 징계 받을 때에도, 아주 버리지 않고, 소수의 사람들을 남겨 주셨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스라엘에게 신실하게 대해주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를 때에도, 은혜로 불러 주셨다. 그는 우상 제작자의 아들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부름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였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부르신 것도 역시, 그들이 다른 백성보다 나아서, 부른 것은 아니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다른 민족보다 더 연약한 백성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선택하고,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갈 때도, 여전히 그들에게 신실하게 대해 주었다. 하나님은 은혜로, 이스라엘을 부르고, 끝까지 그들에게 은혜와 자비로, 대해 주셨다.

(7)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하나님께 선택받았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러나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다. ‘우둔하여졌다.’(에피포로) 돌같이 굳어지다. 어둡게 되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어떻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패역할 때에도, 남은 자들을 보존하신 일을 보며, 무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바울은 이에 대해, 3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구하던 것들(, 구원),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은혜로 구원하기를 원했지만, 그들은 율법을 통해, 행위로 의롭게 되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이 구하던 의를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정죄를 받고 말았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우둔하여 진다. 돌같이 굳어지고, 어둡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하나님의 선택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하나님이 이스마엘은 버리고 이삭을 선택하고, 에서는 버리고 야곱을 선택한 것과 같다. 은혜 받지 못하면 우둔(완악)해진다.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게 된다. 선택받지 못했던, 이스마엘과 에서는, 결국 끝까지 하나님을 거부하다가, 결국 멸망했다. 이처럼 지금도, 선택받지 못한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둔하여져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회개하지 않다가, 멸망하게 될 것이다.

(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선택되지 못한 사람들이, 버림받게 될 것에 대해, 성경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바울은 이 일을 증언하기 위해, 구약 성경에서, 3개의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혼미한 심령을 주신다(29:10).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이사야는 이곳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주신다고 예고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끝까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거역하자, 마침내 그들에게 심판을 선언했다. 그리고 그 심판이 시행될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깊이 잠들게 하는 혼미한 영을 주셨다.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신다(29:4).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지 아니했다.’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를 보면서, 하나님을 거역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로부터, 영적인 눈과 귀를 어둡게 했다. 이로 인해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도, 하나님과 영적으로 어두워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다.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없다고 했다. 깨닫게 하는 것이 은혜다. (9-10)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고난을 통하여 돌아오라(69:22-23).

그들의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그들의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다윗은 믿음을 악인들이 누리는, 밥상(축복)이 오히려, 그들을 잡는 올무와, 덫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또한 그들이 항상, 무거운 짐을 지고, 기력이 쇠하여, 등이 굽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고통을 통하여, 빨리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말이다. 그것이 진정한 축복이다.

이스라엘 중에는, 하나님이 보존해 준, 경건한 사람들이 있는 반면, 끝까지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멸망하게 될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선택한 사람들을 구원하고, 나머지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다가, 멸망당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선교사도 파송해야 한다. 헌금도 보내고, 가서 섬겨주어야만 한다. ? 하나님이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준다. 우리가 아무리 선교를 외쳐도, 이스라엘이 회복되지 않으면, 구원의 완성은 없다.

 "

  이전글 : 2016년 8월 21- 이스라엘의 불신앙(롬10:16-21)
  다음글 : 2016년 9월 4 - 이스라엘의 넘어짐과 구원(롬11:11-16)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