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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6년 8월 21- 이스라엘의 불신앙(롬10:16-21)
  작성자 : 이건기 작성일 : 2016-08-21
  첨부파일:   이스라엘의 불신앙.hwp(39K)

이스라엘의 불신앙(10:16-21)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 복음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고,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고,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듣고, 또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겠느냐고 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사람들을 불러 복음을 위임하고, 복음전파를 부탁했다. 복음을 맡은 사역자들이 다니며, 복음을 전할 때에, 성령님으로 역사했다. 오순절 이후 온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 복음을 듣고, 믿게 되었다.

이로 인해, 온 세상에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산을 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아름답다. 우리가 세상에서, 할 일이 많다. 그러나 그 중에서,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이 듣게 만드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1. 복음을 들었다고, 모두 다 믿은 것은 아니다(16).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나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복음을 듣고, 순종하지는 않았다.

복음이 전파될 때에, 어떤 사람들은 믿고 받아들인 반면, 어떤 사람들은 거부했다.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면서, 이러한 일을 직접 경험했다. 그는 직접 복음을, 소아시아와 그리스를 넘어,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파했다. 그가 복음을 전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 복음을 듣지 않고, 거부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받고, 많은 사람에게 거부를 당했다. 그러나 복음을 거절하는 일로 인해, 놀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이미, 사람들은 복음을 거부할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다. (53: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이사야는 복음이 세상에 전파될 때, 그 복음이 사람들에게, 거부될 것을 미리 알고 예언했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이 거절되는 것을 보고, 당황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일은, 어느 시대에나 있다.

구약시대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사람들이, 많은 거절과 박해를 경험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면서,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에, 좌절할 필요는 없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 4가지 밭의 비유를 통해, 이러한 일을 보다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는 일을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는 일로 비유했다(13:4-8). 농부가 뿌린 씨앗 중에, 일부는 길가에 떨어져서, 새들이 먹을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복음을 들은 사람들 중에, 일부가 말씀을 빼앗겨, 깨닫지 못할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농부가 뿌린 씨앗 중에 일부는, 돌밭과 가시밭에 떨어질 것이라 말씀했다. 이 씨앗은 돌과 가시로 인해, 성장하지 못하고, 시들어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복음을 들은 사람들 중에 일부가 환난을 이기지 못하거나, 세상과 재물의 유혹에 빠져, 복음을 포기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농부가 뿌린 씨앗 중에 일부는, 좋은 땅에 뿌려져서 수십 배, 수백 배의 결실을 맺는 것도 있을 것이다. 좋은 마음으로 복음을 듣고, 끝까지 인내하여, 많은 결실을 맺고 확장된다. 그러므로 일부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한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

복음을 들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순종하지 않았다. 복음을 들을 수 없던 이방인들은 복음을 듣고 받아들였지만, 복음을 받아들여야 했던 이스라엘은, 복음을 거절하고, 거부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왜 그들은 복음을 거부했나?

2.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그러나 아무 것이나 들으면,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생긴다.

우리가 구원 받으려면, 예수님을 믿고, 입으로 시인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 믿음은, 먼저 복음을 들어야,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먼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어떤 것인지를 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때에,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할 수 있다.

성령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이 깨닫게 해주도록, 기도함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면 우리들이 들어야 할, 그리스도의 말씀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말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위해 행한 일이, 어떤 것인지를 듣고 알 때, 그것을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다른 말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리스도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삶을 통해, 친히 가르쳐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해, 많이 듣고 알수록, 더 큰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성령은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 묵상하고, 그의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게 해 준다. 성령님은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며, 동시에 말씀은, 성령이 일하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이와 같이 성령님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역사한다.

성령님이 없는 말씀은, 죽은 책에 불과하며, 동시에 성령님은 말씀을 통해서만 역사한다. 따라서 성령님과 말씀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성령님의 역사가 없이,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으며, 성령님은 기록된 말씀을 벗어나서, 역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령님의 도움 없이, 말씀을 읽으려고 해서도 안 되며, 또한 말씀을 떠나서, 성령님의 역사를 구해서도 안 된다. 이와 같이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성령님과 말씀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미 자기 종들과, 성령을 통해서, 세상에 복음을 전해주셨다.

그러므로 이 복음을 듣고, 거부한 사람들은,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과거에도, 세상에 자기 종들을 보내서, 복음을 전하게 했으며, 지금도 그 일을 계속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보내신 종들이 전하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믿음으로 화답해야 한다.

복음을 이미 믿은 성도들은, 그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서, 그들도 믿고 구원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통로임을 기억하고,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해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 그러나 유대인은, 듣지 아니하였다(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그들은 복음을 듣지 않았는가? 아니다, 들었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듣고, 거부한 일에 대하여, 변명할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이 보낸 사도들을 통해, 복음을 들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사도들을 통해 복음을 전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복음을 믿지 않음에 대해, 변명할 수 없다.

바울은 그 근거로 (19:4)을 인용했다.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만물을 통해, 자신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계시했다.

그러므로 사람은 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큰 능력과 신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믿지 못했다고 변명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들로, 풍성하게 계시해 주셨기에, 사람들이 고의로 하나님을 거부하지 않는 한,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일은, 복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죄인을 위해, 구원을 완성하고, 그 소식을 소수만 알도록, 비밀로 숨겨두지 않았다.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해, 그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게 했다. 하나님은 먼저 복음을, 유대인에게 전파했고, 또 땅 끝까지 전파하게 했다.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았으며, 그리스도와 제자들을 통해서, 직접 복음을 들었다. 그러므로 복음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그리스도를 보지 않고도, 믿는 이방인들 앞에서, 아무 변명도 할 수 없다.

(19)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이스라엘 백성은 참 신인 하나님을 버리고, 거짓 신인 우상을 섬겼다.

하나님은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을 향해 진노했다. 그리고 이 일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아닌, 이방인을 자기 백성으로 만들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일을 보고, 이방인들을 향해 시기하고, 분노하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모세를 예로 들었다. (32:21)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데, 이방인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는다고 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복음을 들었기에, 믿지 않은 일에 대해,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불순종에 대해, 변명할 수 없다.

(20)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중에, 그리스도를 목격한 유일한 민족이며, 먼저 복음을 들은, 특혜를 받은 사람이다. 메시아는 그들이 찾지 않아도, 그들 가운데 나타났다.

이스라엘이 말씀을 듣지 못했거나, 몰라서 메시아를 거부한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은 메시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메시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태어날지, 메시아가 처녀에게 잉태할 것도 알았다. 탄생 장소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도 알았다. 하지만 교만했기에 거부했다.

예로 (65:1-2)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할 때, 이방인들은 모두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이었다. 그런데 이사야는, 하나님이 그들을 불렀다고 말씀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자기 사명을 망각한 이스라엘을 버렸고, 미련하고 어리석은 이방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았다.

하나님은 패역한 자기 백성 대신, 이방 민족에게 나타나고,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며, 그들에게 온 종일, 은혜의 손을 베풀어주셨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약속에서 제외된 것이, 이스라엘의 불신앙 때문임을, 잘 보여주는 구절들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고, 이방인을 선택한 것은, 그들이 먼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렸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방인을 통해, 이스라엘이 질투를 느끼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21)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이 믿지 않은 이유를 설명한다.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방인은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붙들어, 구원받았다. 내 생각대로.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무신론자 이발사가, 목회자와 함께, 도시 슬럼을 지나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하나님이 정말 사랑이 많다면, 이렇게 가난과, 질병과 더러움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 있는가? 하나님이 어째서 이 사람들이 마약에 중독되고, 인격이 파괴되도록 나둘 수 있는가?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목회자는 이발사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와 함께 걸어가다가, 머리가 지저분하고, 더러운 사람을 만났다. 목회자가 말했다. “당신은 좋은 이발사라고 했는데, 어째서 이발도 안 하고, 면도도 안 한 채 살아가는 저런 이웃을 그대로 내버려둡니까?”

그 말을 들은 이발사는 화를 내면서 저 사람의 상태에 대해서, 왜 저의 책임이라고 합니까? 저 사람은 제게, 한 번도 기회를 주지 않았다. 저 사람이 우리 이발소로, 나오기만 하면, 멋진 신사로 만들 줄 수 있다.”고 했다.

목회자는 이발사에게, 그렇다면 저들이 악하게 사는 것에 대해, 더 이상 하나님을 비난하지 말라. 하나님은 저들에게, 자신들의 삶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말씀을 계속 주고 사람들을 보냈다. 그러나 저들이 거부하기에, 계속 저렇게 악하게 사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의를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구원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복음에 순종하기만 하면,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아무 말씀이나 듣는다고,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말씀, 복음을 들어야 믿음이 생긴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하나님의 의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나의 의를 세우기 위해, 내 마음과, 세상의 소리를 듣지 말라.

나의 의를 포기하고, 주님의 의를 받아들여야 믿음이 생긴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구원받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듣지 않는 자들에게, 하루 종일 손을 내밀고 서 있음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엄청나게 크다. 이 사랑을 믿고, 순종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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