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6년 9월 4 - 이스라엘의 넘어짐과 구원(롬11:11-16)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6-09-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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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넘어짐과 구원(롬11:11-16)
성경의 가장 신비로운 주제 중의 하나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구원받을 수 없게 되었는데, 바울은 11장에서, 먼저 ‘하나님이 모든 이스라엘을 버렸는가?’를 질문했다. 이 질문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했고, 그 이유를 2가지로 제시했다.
① 개인적인 증거였다. 바울은 자신도, 이스라엘 사람인데, 버림받지 않았다.
② 성경의 증거였다. 엘리야 때에 하나님이, 7,000명의 경건한 사람들을 남겨 두신 것처럼,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자기 백성을 남겨두셨다고 했다.
1. 이스라엘은 완전히 넘어졌는가?(11上).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거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지 못하는 눈과, 듣지 못하는 귀를 주신다고 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다, 실족했느냐(엪타이산, 프타이오), ‘실패하다. 죄를 짓다.’는 말씀이다. 먼저 이스라엘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고 질문했다. 실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복음을 거부함으로, 완전히 넘어져서,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나?
바울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이스라엘이 넘어진 것은, 일시적이며, 그들은 마지막 때에, 다시 회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날 때에, 그들을 포로가 되었다. 그들이 주변 국가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거나, 압제받게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완전히 멸망하도록, 버려두지 않고, 징계를 통해 돌아오도록 만들었다.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면, 언제든지 다시 회복시켜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계는, 이스라엘을 회개시키기 위한 방편이었지, 그들을 완전히 멸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거부했고, 이로 인해서 그들은 로마에, 나라를 빼앗기게 만들었다. 그 이후 이스라엘은, 1900년 동안 나라를 잃고, 이방인들 사이에서 방황하며, 디아스포라로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넘어짐은 완전히 망함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과정이다.
그들을 다시 독립시켜 주었고, 하나님께 돌아올 때가 있다. (11下)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바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오래 동안 버린 이유를 2가지로 제시했다. ① 하나님이 보내준 메시아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② 이방인을 먼저 믿게 하고, 후에 이방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회개시키려고 계획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자,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파하게 했다. 이로 인해 이방인들은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이방인들이 구원받는 것을 유대인들이 보고, 그들로 하여금 시기와 질투가 나게 만들어서, 그들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한다고 했다. 사도 바울이 처음부터, 이방인 전도를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먼저, 유대인 회당을 찾아가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말했다.
유대인들은, 과거의 사울처럼 화를 내며,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다. 성전 밖으로 내몰려고 하고, 성전 꼭대기에서 떠밀어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자지도 않고, 먹지도 않겠다는 청년들이 결사대까지 만들기까지 했다. 이런 유대인들이, 시기 나도록 멋있는 삶을 보여, 구원해야 한다.
2. 유대인의 넘어짐과 이방인의 풍성함(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된다고 했다.
하나님은 이방인인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희생시켰다.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희생시키는 것처럼,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희생시킨 것이다. 구약에서 유대인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고, 이방인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낙망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아브라함의 혈통만을 믿고, 안심하던 유대인들이 쓰러지고, 낙망하던 이방인 중에서, 구원받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동안 유대인의 하나님이라고 알았던 하나님이 이방인의 하나님도 됨을, 드러나게 되었으니, 유대인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었다.
풍성함(플루토스)은 ‘표, 가치 있는 물품’을 말한다. 유대인의 실패가, 도리어 하나님을 온 세상에 알리고, 확장 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마치 이와 같다. 유대인은 하나님이라는 횃불을, 그들만 위한 것이라고, 단지 속에 꽁꽁 감추어두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들이 넘어짐으로, 단지를 깨트려서, 온 세상에 횃불을 드러내서, 밝히게 만든 것이다. 이스라엘이 넘어짐으로, 그들만 소유하였던 하나님이, 온 세상의 하나님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온 세상의 하나님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유대인이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넘어짐으로, 세상은 축복을 받았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자, 그 복음을 이방인에게 주셨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그 복음을 듣고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사도행전에서 이런 일들을, 발견할 수 있다.
사도들과 바울은, 항상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을 거부하고 사도들을 박해하거나 죽이려고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할 수 없이,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게 했다. 수많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유대인의 실패를 이방인을, 풍요롭게 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복음 거부는. 오히려 세상에 복음이 확장되게 만들었다. 유대인이 복음을 거부한 일이, 이방인에게 축복이 되었다면, 유대인이 다시 돌아오는 일은, 세상에 더 큰 축복을 줄 것이다.
하나님은 이방인 중에서, 선택한 백성들의 수가 다 찰 때까지, 세상에 복음을 전파할 것이다. 그 수가 다 차면, 하나님은 다시 닫았던 이스라엘의 눈과 귀를, 열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그래서 구원의 완성은 이루어진다.
이스라엘이 다시 돌아오는 일은, 이방인들에게도 큰 복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돌아올 때에, 이방인들과 이스라엘인들이 함께 참여하는,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영원토록 계시면서, 그들의 왕이 되실 것이다.
구멍 뚫린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구멍을 먼저 막아야만 한다. 이것이 이스라엘이다. 유대인들이 돌아오면,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선교에 힘을 써야 한다.
3. 영광스러운 직분(13-14).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로마 교회 성도들의 대부분은, 이방인이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음을, 영광스럽게 여겼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기에,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었다. ‘영광스럽게 여겼다.’(독사조)는, 원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말이다. 생명을 살리는 직분이었기에, 영광스럽게 여겼다.
그가 이방에 교회들을 많이 세우고, 전도를 아무리 많이 했어도, 영혼들이 구원 받지 못한다면, 사도의 직분은, 결코 영광스러운 직분이 될 수 없다. 사도 바울보다도, 이단들을 더 많은 사람들을, 그들의 교회로 끌어 들이고 있다. 그러나 그곳에는 영혼을 살리는 구원이 없다.
그러므로 아무리 많은 사람이, 그곳을 다녀도, 그의 직분은 결코, 영광스러운 직분이 될 수 없다. 바울은 이방인을 구원하는 사도로, 자기 직분을 영화롭게 만들었다. 그 직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그 일에 충성함으로, 그 직분을 영광스럽게 만들었다.
바울은 다시 이방인을 통해, 자신의 혈육인 이스라엘을 구원하기를 원했다. 이렇게 되면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의 직분은 한층 더,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바울의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거룩한 복음 전파사역을, 남을 시기하게 하는, 도구가 되게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우리는 시기심이 모두 다, 나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시기심은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나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악한 것이나, 가지면 안 될 것을 탐하면, 그릇된 것이다.
그러나 선한 것을 갖기 원한다면, 나쁜 것이 아니다. 바울이 유대인을 시기하게 했던 것은, 악한 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방인과 유대인이, 모두 복음을 믿고 구원을 얻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시기심을 유발하여, 복음을 믿게 만드는 일은, 좋은 일이다.
(15)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그들을 버리는 것은, 유대인을 외면하고, 버린다는 말이 아니다. 유대인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이루어지고, 하나님과 세상이 화목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나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기도함으로,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온다면,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만큼 기쁜 일이라는 말이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이방인을 사랑할수록, 동족에 대한 사랑도 커졌다. 동족이 핍박할수록, 골육의 구원에 대한 간절함이, 더욱 뜨거워졌다.
나 같은 사람도 구원되었다면, 이방인이나 그 어떤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이라고 해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유대인 선교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방인 선교와, 유대인 선교는, 서로 깊은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다.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된 것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방인들의 구원 사건은, 다시 유대인들의 구원에 자극제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의 거역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던 이방인을, 화목하게 만들었다.
이제 하나님은 다시, 이방인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온 세상에 영생의 축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하나님은 선한 분이다. 선하신 하나님은, 후에 유대인의 회복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온 세상에 더 큰 복을 주실 것이다.
(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바울은 위에서 말한 것을 입증하기 위해, 2가지 비유를 제시했다. 바울이 ① 비유는 첫 열매와 떡의 비유다. 바울은 첫 열매가 거룩하면, 그 나머지 떡도 거룩하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곡식으로 떡을 만들어서, 소제로 드렸다. 이때 제사장은 모든 떡을, 하나님께 드리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 그 떡 중에, 일부분만 대표로 드렸다. 이 경우에 떡 중에, 일부분이 드려지면, 나머지 떡도 하나님께 드려진, 거룩한 것으로 간주되었다(민15:19-21).
이스라엘은 처음 익은 곡식을, 하나님께 드렸다. 구약에 제사를 드릴 때, 맥추절에 드리는 곡식은 가루를 만들어서 하나님께 드렸다. 그리고 가을추수 때, 처음 익은 곡식을 거두어서, 그것을 떡으로 만들어서 하나님께 드렸다.
처음 익은 곡식 가루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가을에 추수해서, 떡덩이로 만들어 드리는 것은 성도를 말씀한다. (고전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첫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다, 그리고 떡 덩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하나가 된 성도를 말씀한다. 처음 익은 곡식 가루를, 하나님이 받았다면, 그 다음에 드리는 떡 덩이도, 하나님이 받는다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첫 열매로 드려졌다.
② 바울이 제시한 두 번째 비유는, 뿌리와 가지의 비유다. 바울은 나무뿌리가 거룩하면, 그 가지도 거룩하다고 말한다. 뿌리가 거룩하니까, 가지도 거룩하고, 하나라는 말씀이다. 거기에 붙어 있기만 하면, 하나임을 말씀하고 있다.
첫 번째 처음 익은 곡식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나무의 뿌리가 하나님께 드려지면, 그 뿌리에서 나온 가지도, 하나님께 드려진 거룩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이스라엘 중에서도, 그 나무뿌리에 붙어 있어야 하고, 이방인 중에서도 그 나무뿌리에 붙어 있으면, 양분을 공급받아 살게 된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뿌리와 같고, 믿는 우리는 가지와 같다. 그래서 우리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 누구든지 뿌리에 연결되어 있으면, 열매를 맺게 된다. 물론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거룩하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하나 되고 붙어 있고 있는 자가, 구원받은 거룩한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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