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6년 8월 7일 - 믿고 시인함(롬10:9-10)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6-08-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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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시인함(롬10:9-10)
율법주의자들은 행위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율법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는 사람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믿음의 종교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8).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믿음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의 법은, 구원을 위해서, 어려운 일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늘에 올라가서, 그리스도를 모시고,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무저갱으로 내려가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다.
말씀이 가까이 있다. 네 입과, 네 마음에 있다며, 구원이 아주 가까이 있음이 믿음의 종료라 했다.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왜냐하면’(호티)라는 접속사로 시작한다.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말씀이 네 입과 네 마음에 가까이 있다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본문의 말씀이 나온다. 믿음의 종교는 말씀이 ‘입과 마음에, 가까이 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구원하겠다는 계획을 선지자와 율법을 통해 말씀했다. 율법을 통해서,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제사 제도를 통해, 양을 잡아 내 죄를 양에게, 전가시켜서 제사 드리는 그 율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어야 했다.
이와 같이 믿고 고백함으로 구원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는 말씀이다. 복음은 구원을 위해, 우리에게 어려운 일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그대로 고백하면 된다. 단순히 2가지만 요구한다.
①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② 입으로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받기 때문이다.
1. 예수님을 주로 믿는다는 무슨 뜻인가?
예수님과 바울 때 사용하던, 3가지 언어다. (요19:20下)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말로 기록되니라.” 이처럼 히브리, 로마와 헬라어어로 기록되었다. 주(퀴리오스)는 ‘하나님, 주인, 황제’를 말한다.
① 주는 히브리어로 ‘여호와’를 번역한 말이다. 즉 ‘하나님’과 같은 말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고백이다. 70인 역(헬라어 번역 성경)에, 약 6,000번이나 사용되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은, 예수님을 ‘주’(하나님)라고 불렀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주’라는 말을, 44번이나 사용했다.
그 중 33번은, 예수님을 주라 불렀고, 8번은 하나님을 ‘주’로 불렀다. 3번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동시에, 주라 불렀다. 바울도 여러 번, 예수님을 ‘주’(하나님)라 불렀다. 여호와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동시에 지칭하는 말이다. 성부 하나님만의 성호가 아니다.
② 주는 라틴어로 ‘황제’라는 말이다. 로마 사람들은, 황제를 ‘주’라고 불렀다. 그들은 이 세상에는 오직 한 명의 ‘주’, 황제만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로마제국은 황제만을, 신으로 인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주권자는 로마황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 믿고 고백했다.
당시에 ‘예수님은 주님이다.’는 고백은, 예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진정한 통치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백을 하려면, 생명을 포기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황제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여, 반역죄로 처벌받을 수 있었다. 요한의 제자 폴리갑도, 예수님을 주라 고백했기에, 화형 당하게 됐다.
폴리갑이 죽기 전에, 그를 존경하던 한 관리가 “한 번만 주님을 부인하고, 황제를 주라고 부르면, 살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폴리갑은 이렇게 대답했다. “평생 동안 주님께서 나를, 한 번도 부인한 적이 없는데, 내가 어찌하여 주님을 부인하겠는가?”
결국 그 관리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화형 당했다. 이처럼 바울 당시에 ‘예수는 주님이시다.’는 고백은, 생명을 건 고백이었다. 사단은 죄에 빠진 우리에게, 황제처럼 통치했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사단과 죄로부터 건져낸, 구원자요, 진정한 통치자로서의 주님이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 권세를 가진 사탄을 깨뜨리고, 다시 부활하여 우리가 ‘주’라고 부르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죄와 사망을 모두, 무릎 꿇게 만든 사건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죽음과 사탄으로부터 구원하여, 참 자유를 주신, 진정한 황제가 되었다는 말이다.
③ 주는 헬라어로 ‘주인’이다. 예수님이 교회와 온 세상을 다스리는, 주인이란 고백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졌으며, 교회의 머리가 되어, 구원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신다. 예수님이 주인이고, 나는 종으로, 순종하고 따르겠다는 말이다.
‘시인한다.’(호몰로게오)는 ‘호모’(동일한 것) + ‘레고’(말하다) = ‘동일하게 말한다, 약속하다, 고백하다, 시인하다, 선포하다.’로 번역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계획과 말씀에 동의한다는 말이다. 똑같이 말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만민은, 생명과 흥망성쇠의 열쇠를 가진 예수님께, 절대복종해야 한다.
아무튼 바울 당시에, 성도들이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일은, 유대인은 물론이고, 로마제국 하에 이방인들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의 그런 고백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한낱 인간에 불과해 보였다.
그런데 어떻게, 나사렛 예수가 여호와 하나님으로, 불릴 수가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자를, 신성모독자로 여기고, 그들을 박해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회심 이전에 바울도 그러했다.
그러나 유대인들 중에도, 바울을 비롯해서, 여러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님(여호와)으로 고백하는 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들의 신앙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일은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 되지 않고, 오직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가능한 것이다.
(고전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한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있어야지,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이 양을 잡아, 제사 드리면서, 이처럼 구세주가 양이 오신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내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보내주신 분이라고 시인하고, 그대로 믿으면 아주 쉽다. 그러나 이것을 믿기보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 했기에,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씀했다.
2.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믿음(9).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했다. 앞에서 말한 예수를 주로 시인함과, 죽은 자를 살리심은 내용이 같다. 그러면 무슨 의미인가?
① 예수님이 의인으로, 우리를 위해 죽었다고, 믿는 것이다. 관원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선고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 없는 예수님을 다시 살려, 예수님이 의로운 분임을 알려주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죄인이 아니라, 의인임을 증언한다.
② 예수님이 다시 살아남을 믿음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죄와 사망의 권세가 무너지고 영생의 길이 열렸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부활은, 결국 죄와 사망권세가,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죄 값이 지불되었기에, 우리는 더 이상 죽음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
③ 예수님이 다시 산 것을 믿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음이다. (롬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산 그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
그러므로 부활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 겉보기에는 예수님을 입술로 고백하더라도, 하나님이 일으킨 부활사건을,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그 사람도 역시 구원을 못 받은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과 입술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④ 예수님이 다시 사신 것을 믿음은, 예수님이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함을 믿음이다. 기독교인은 죽은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계신 창조주를 믿는 사람들이다. 부활 신앙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을 믿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마음과 입술이, 일치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물론 우리는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이다. 그럴지라도 때로는, 믿음이 연약해져서 “마음 따로, 입술 따로”일 때가 없는지를, 한번 살펴봐야 한다. 잘못된 열심, 하나님의 열심보다, 앞서는 열심으로가 아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다.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이. 강조가 아니라 ‘예수님을 주로 시인’함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기도는 하면서, 주인 자리는, 예수님에게 내어놓지를 않는다. 노예와 주인 사이는, 주인이 바뀔 수 있지만,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면, 절대로 주인이 바뀌지 않는다.
3.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한다는 말은 무엇인가? 3가지 뜻이 있다(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 마음으로 믿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① 마음으로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지식, 감성, 의지를 포함하는, 전인격으로 믿음이다.
② 형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진심으로 믿는 신앙이다. 마음으로 믿음은, 전 인격을 다해서, 주님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을, 의롭다고 인정해 준다.
③ 마음으로 믿음은 수동태로, 성령님의 도움으로만 가능하다.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했기에’(렘17:9), 성령님이 우리 마음을, 변화시켜 줄 때에만 믿을 수 있다(겔11:19-20). 하나님은 선지자들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계속 거역하자, 결국 그들에게 멸망을 선포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후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해줄 것이라고, 약속해 주었다(렘31:33). 이 약속은 오순절부터 성취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다락방에 모인, 120여명 사람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여,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었다. 이처럼 우리 믿음은, 성령님을 통해 이루어진다.
(2)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10下).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우리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우리의 입으로 예수님이 구주와 주님 되심을, 성경처럼 시인해야(호몰로게타이, 인정하다, 고백하다)한다.
‘입으로 시인’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리스도가 자신의 구주와 주님이 되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진정한 신앙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할 수 있나?
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함은, 성례전에 참석하는 것이다. 성례전은 침례식과 성찬식에 있다. 침례는 예수님과 연합함으로,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됨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예식이다. 침례는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죽고, 새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찬식은 떡과 포도주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한 일(피를 흘리신 일)을 기념하는 예식이다. 이 두 가지 예식은, 모두 예수님이, 자기 제자들에게 명하신 예식이다. 성찬식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공동체적 신앙고백이다.
②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것은, 다른 성도들과 함께, 공예배에 참석하는 일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주일에 교회에 가지 않고, 쾌락을 좇는 일이 있을 수 없다. 진정한 신앙은, 예수님께 진심으로 예배드리는 일로, 표현됨이 당연하다.
③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일은, 형제자매들과 함께 사랑으로, 교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은 형제자매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정과 일터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다.
④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것은, 환난 중에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다. 우리는 진정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가?
구원은 복음의 올바른 지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된 열심으로, 예수님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종교인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에, 예수님을 보내주셨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구원이 이루어지면, 올바른 지식인, ‘예수님은 나의 구주요, 나의 주님으로’ 믿고 입술로 고백함이 필요하다. 그 사실을 믿지 않으면서도, 입술로만 고백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종교적 환경에 익숙해지면, 종교적 모방을 능히 할 수 있다.
남들처럼 기도하는 척하고, 남들처럼 찬양도 부를 수도 있다. 예배에 참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내 입술의 고백이, 진정한 고백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으로부터 그 사실을 믿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진정으로 믿고 고백하는 그는 하나님의 자녀요, 구원받은 자녀임을 믿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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