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6년 7월 31일 - 자기의 의와 하나님의 의(롬10:1-8)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6-0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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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의와 하나님의 의(롬10:1-8)
바울은 (롬9-11장)에서 ‘유대인들의 불신과 구원문제’를 다루었다. (롬9장)은 선택받은 유대인이 복음을 거부하여, 하나님의 구원에서 제외되고, 이방인이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이 됨을 보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택과, 하나님의 유기를 물었다. 하나님의 약속이 취소되었는가?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는 정당한가? 이에 대해 토기장이와 진흙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며, 이방인도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받은 그릇이라고 했다. 비록 이스라엘 사람이라도, 믿음으로 남은 자들을 구원하며, 이방인은 믿음을 좇았는데, 유대인이 행위를 좇음으로, 구원받지 못했음을 했다.
1. 민족을 위한 기도(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바울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이 너무 마음 아파,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 뜨겁게 기도했다.
바울은 하나님께 구하는 바, 기도가 있다고 했다. ‘구하는 바’(유도키아)는 원래 ‘기뻐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을 ‘기쁘게 한 것’은, 자기 동족 유대인들이, 복음을 믿고 구원 받는 것이었다. 동족 유대인들이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TV를 통해 사람을 구조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때 구조원들은, 무너진 건물사이를 다니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건물 속에서, 생존자들이 발견될 때마다, 박수를 치고,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바울도 이러한 심정으로, 자기 동족 중에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게 하려고, 힘을 다해서 기도했다. 기도는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여러 가지 문제들을 놓고 기도한다. 어떤 사람은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한다.
어떤 사람은 ‘가정과 사업’, ‘교회와 나라’를 위해, ‘건강과 행복’을 위해 기도한다. 때로는 원수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들 중에서, 가장 귀한 기도는 ‘잃어버린 영혼을 위한 기도’다. 성도들은 ‘복음전파’를 위해, 기도하는 일에, 게을리 하면 안 된다.
성도는 먼저 가족과 친척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들은 한 핏줄이기에, 먼저 기도하는 것이 당연하다. 바울 역시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았지만, 자기 동족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삼상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따라서 이와 같이, 가족과 친척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기 바란다.
2. 하나님의 의, 자기 의(2-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바울은 자신이 왜,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는지, 밝히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그릇된 열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열성적으로 하나님을 섬겼다. 철저하게 안식일을 지켰고, 율법을 가르치고 배웠으며, 그것을 실천하려고 애썼다.
아마 이 세상에 유대인만큼, 종교적인 민족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만이 참 신이며, 하나님이 자신들을 선택했다고 굳게 믿었다. 하나님과 율법을 위하여, 재산과 목숨을 바치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열심은 ‘올바른 지식을 따른 열심’이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들은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을 섬겼다. 본문을 보면, 두 의가 나온다. ‘하나님의 의와, 자기 의’가 나온다. 의는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옳다는 것이다.
반면에 인간들도, 자기들이 옳다는, 자기의 의, 인간의 의가 있다.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의가, 서로 충돌하고 있다.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의는, 서로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래서 서로 용납할 수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로 구원해 주는 의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의로 구원 얻으려 했기에, 복음을 거부했다. 하나님은 은혜로 그들을, 자기 자녀로 삼으려고 했지만, 그들은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고 했다. 이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열심을 내긴 했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유대인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같은 입장이었다. 그는 바리새인으로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수학한 유대인이었다. 바울은 기독교가 이단이라고 믿었기에, 기독교인들을 체포하려고, 대제사장의 위임장을 갖고 다녔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자기의 열심이 그릇된 열심임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는 유대인들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아픈 마음을 안고, 자기 동족인 유대인들이,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믿는 자를 의롭게 하기 위해 ‘율법의 마침’이 되었다고 말했다. ‘마침’(텔로스)은 ‘완성, 목표, 끝마침’의 다양한 뜻을 가진 말이다.
①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했다. 하나님 앞에서 율법적으로, 흠이 없는 삶을 살아, 율법을 완성했다. ② 예수님은 율법의 목표다. 율법의 목표는, 그리스도를 닮는(성화) 것이다.
③ 예수님은 율법의 마침이 되었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가정교사와 같다.
따라서 율법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나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성령님을 통해 완전한 사랑의 법을, 소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이 마침이 되는 자리에,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리스도가 계시는 자리에는, 율법의 역할이 마치게 된다.
예수님은 믿는 사람들을, 의롭게 하려고,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 율법을 완성한 후에, 그의 의를 성도에게 덧입혀 줌으로, 믿는 자는 그리스도의 의를, 소유할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모든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러나 유대인은, 이런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해서,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려고 했다. 이것이 유대인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기에, 마음에 큰 고통을 느꼈다.
3. 율법에서 난 의와 믿음에서 난 의(5-6).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두 길이 있다. 즉 구원의 길이, 둘 이라는 말이다. 율법적인 구원의 길이 있고, 은혜의 구원의 길이 있다. 인간이 열심히 노력해서 이루는 구원과, 하나님이 거저 주는 구원이 있다.
성경은 인간이 하늘로 올라가는 노력해서 얻는 구원을, 율법으로 얻는 구원, 행위구원이라 하고, 하나님이 거저 주는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구원, 은혜구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은 죄인이라서,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다. 스스로 하늘로 올라갈 수 없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모두 다 죄인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으면, 성경이 틀린 말이 된다. 하지만 인간은 여기에, 순순히 응하지 않는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다면서, 계속 올라가려고 한다. 이게 바벨탑으로 나타났다.
바벨탑은 인간의 힘으로, 하늘나라를 차지하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벨탑을 허물었다. 이러한 구원은 없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는 기독교와, 많은 종교들과 사상들이 있지만, 율법주의는 기독교에 가장 큰 해를 끼친, 사상 중에 하나다. 그러면 율법주의(행위종교)의 주장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레18:5)을 인용했다.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행하면 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율법주의는 율법을 행하면, 생명을 얻는다고 약속한다.
율법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면, 복을 받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이웃에게 해를 입히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말한다. 사실이지만 문제는, 아무도 이 율법을 온전히, 지킬 사람이 없는데 있다. 성경은 이 세상에서, 율법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을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율법을 통해, 의롭게 되려는 사람은, 실패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율법을 통해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려고, 계획하지 않았다. 그러나 믿음으로부터 난 의는, 이렇게 말한다.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고 말하지 말라. 이는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기 위한 것이다.
(7-8)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또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이것은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말씀이 네게 가까워, 곧 네 입과 네 마음에 있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우리가 전하는, 믿음의 말씀이라고 했다. 믿음의 종교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울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신30:11-13)을 인용했다.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하나님이 주신 법은, 어려운 일을 행하거나, 먼 곳에 가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법은, 하늘에 올라가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바다 건너편이나, 무저갱에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그 법에 순종하려고, 바다를 건너거나, 무저갱에 내려갈 필요가 없다. ‘하늘과 바다’는 ‘찾기 어려운 곳’을 말한다. (신30:11-13)은, 세 가지를 말한다.
① 하나님이 준 말씀 외에, 다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다. ②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충분한 증거를 주었기에, 다른 증거들을 줄 필요가 없다. ③ 하나님은 유대인에게 자신의 뜻을 충분히 계시해주었기에, 그들에게 다른 이적을, 행할 필요가 없다.
‘믿음의 종교’를 설명하기 위해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했다. (신30: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의 인용이다.
모세는 믿음의 법은, 먼 곳에 있지 않고, 아주 가까운 곳, 즉 우리의 입과 마음에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진리를 찾기 위해, 먼 곳을 찾아다닌다. 진리를 찾기 위해, 온 세상을 돌아다니고 또한 온갖 종류의 책을 읽는다.
그러나 모세는, 진리는 먼 곳에 있지 않으며, 가장 가까운 우리의 입과, 마음에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해, 하늘이나 지옥까지 갈 필요가 없다.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해, 큰 이적을 행하거나, 많은 재물을 드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입으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구원의 길이 먼데 있지 않고, 마음과 입에 있다고 했다. 모세는 이것이 바로, 자신이 전한 믿음의 말씀이라고 선언했다.
바울은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도, 이와 같다고 말한다. 복음은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을 요구하지 않는다. 복음은 누구든지 듣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해, 하늘에 올라가서 구원자를 찾을 필요가 없다.
또 무저갱에 내려가서, 중보자를 모셔올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우리를 찾아 오셔서, 우리의 모든 구원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 구원을 위해, 특별한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가, 다 이루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복음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입으로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요1:12).
이처럼 믿음의 종교는, 행위의 종교처럼 구원을 위해, 어려운 일을 요구하지 않다. 믿음의 종교가 요구하는 것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단순한 일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법을 따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쉽게 구원에 참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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