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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6년 7월 17일 - 토기장이와 진흙(롬9:19-23)
  작성자 : 이건기 작성일 : 2016-07-17
  첨부파일:   토기장이와 진흙.hwp(36K)

토기장이와 진흙(9:19-23)

 

바울은 이방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섭리에 대해 설명하였다. 선택받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에서 제외되었다. 반대로 이방인들이 복음을 믿고, 약속의 자손이 되는 것을 보았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였기에, 이방인이 구원받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자기 동족인 유대인이, 복음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짐을 보면서, 마음에 큰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바울은 유대인의 구원 문제에 대해, 깊이 묵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유대인의 구원에 대해, 질문들을 던진 후에, 그 질문에 대해 스스로 대답했다.

바울은 4개의 질문을 하는데, 4개의 질문들 중에, 이미 2개를 생각해보았다(아브라함에게 했던, 하나님의 약속이 취소되었나?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가 정당한가?) 이제 바울의 3번째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자. 하나님이 어찌하여 우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1. 하나님이 어찌하여, 우리를 허물하는가?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허물하다는 흠잡다, 나무란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 문제는,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신학자들은 인간의 모든 운명이, 하나님의 예정에 달려 있는가? 아니면 인간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많이 토론해 왔다.

만일 인간의 모든 운명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예정에 달려 있다면, 사람들은 자기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일에 대해, 책임을 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면, 그들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한다.

이러한 원리는,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학자들은 만일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예정)에 달려있다면, 사람들은 믿지 않은 일로, 심판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는 믿고 안 믿는 문제가, 개인의 의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 영화감독이 영화를 찍기 위해, 두 명의 배우를 캐스팅 했다. 그리고 그 중에 한 명에게는, 선한 역을 맡기고, 다른 배우에게는, 악역을 맡겼다. 이 경우에 악역을 맡은 배우는, 그가 영화중에서 행한, 악한 일에 대해서, 추궁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감독의 지시를 따라, 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감독은, 악역을 맡은 배우에게 왜 악한 일을 했느냐?’고 책망할 수 없다. 바울의 세 번째 질문은, 이와 관계된 질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버리기로 작정했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그를 책망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바울은 이 질문에 대해, 직접 대답하지 않는다. 이미 앞에서 이 질문에 답변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누구를 지옥에 보내기로, 작정한 적은 없다.

하나님은 아담을 만들고, 그가 선악과를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를 주셨다. 그러므로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것은, 하나님의 예정이 아니라, 아담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아담은 잘못임을 알면서도, 뱀의 유혹에 빠져, 스스로 그 길을 선택했다. 하나님께 책임을 돌릴 수 없다.

그러나 은혜로운 하나님은, 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려고, 메시아 되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서, 구원해 주겠다고 약속해 주었다. 하나님은 그 약속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냈다. 사람들의 죗값을 지불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를 용서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든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지옥에 갈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지옥 간 사람이,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릴 수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구원하고(선택), 믿지 않는 사람은 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받게 했다(유기).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님 안에서 예정하시고, 예수님 안에서 선택했다. 예수님 안에서 구원했고,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한다. 예수님 밖에서는 버림받은 유기다. 그러므로 우리는 핑계할 수 없다. 예정론은 인간을 중심에 두지 않고, 하나님이 예수님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정론은 하나님이, 자기의 기쁜 뜻대로, 미리 정했다는 말이다. 그 일을, 예수님 안에서 정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님 안에서 복되고 자유로운 은혜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러한 선택을, 인간이 하나님께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물을 수 없다.

2. 토기장이와 진흙(20-21).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사람들 중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에 대해,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이렇게 질문하고 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군데 감히, 하나님의 뜻에 항의한단 말인가?’

피조물이 창조주를 향해서, 항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점이 있기에, 인간이 하나님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항변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술품이 예술가에게 항변을 할 수 없음과 같고, 진흙 한 덩이가 토기장이에게, 항변할 수 없음과 같다고 했다.

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일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 인간에게 자신이 할 일을 보고하고, 허락을 맡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혹시 하나님이, 자기가 하려는 일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싶어도, 인간의 머리로는 그것을, 이해할 수도 없다.

욥기는 이러한 진리를,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욥을 칭찬하자, 그때 사단이 욥을 비난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사단에게, 욥의 신앙의 순수성을, 시험해 보라고 허락했다. 사단은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욥의 가족과 재산, 건강을 한 순간에 모두 빼앗아 버렸다.

욥은 왜 자기에게, 이런 재난이 닥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며, 사단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 사단은 이번에는, 세 친구를 통해서, 욥을 시험했다. 친구들은 욥이, 심한 고통 받는 모습을 보고 동정했다.

그러나 결국 그를, 정죄하고 말았다. 사단은 욥의 친구들을 통해, 욥을 정죄하며 회개하라고 강요했다. 그러나 욥은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변호했다. 이 과정에서 욥은, 아무 이유 없이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하나님께, 불평을 털어놓았다.

하나님은 욥의 항의를 듣다가, 마침내 욥에게 몇 가지 질문했다. 그러나 욥은 그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가 너무 위대하며, 자신이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입을 막고, 재에 앉아서, 하나님께 자기의 무지함 회개했다.

하나님은 욥에게, 왜 그가 고통을 받아야 했는지, 직접 말씀하지 않았다. 이는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자신이 하는 일들을, 설명할 필요도 없고, 또 설명한다 해도, 욥이 그것을 다 이해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선택과 유기의 문제도, 이와 같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자신이, 어떤 사람을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버리는지, 우리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설명한다고 해도, 우리는 이해할 수도 없다. 바울은 선택과 유기를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 비유를 들었다.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 때에, 그 작품이 예술가에게 네가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항의할 수 없다고 했다(20). 이처럼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하나는 귀한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천한 그릇을 만들 때에, 그릇이 토기장이에게 네가 왜 나를 천한 그릇으로 만들었느냐?’고 항의할 수 없다.

이 비유는 예레미야와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한 것이다(18:1-11, 29:16, 45:9, 64:8). 선택과 유기에 대해, 사람들은 하나님께 책임을 돌릴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을 선택하고, 유기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토기장이는 진흙을 가지고, 하나는 귀한 그릇을, 다른 하나는 천한 그릇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에 대해, 항의할 수 없다. 또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어떤 사람은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유기하는지, 사람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창조자가 피조물에게, 자기가 하는 일을 보고하여,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 비밀을 설명한다고 해도, 우리 지혜로는 그 비밀을,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비밀을 모두 다 이해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3. 하나님의 도구(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토기장이는 흙을 가지고 임의대로, 천한 그릇과, 귀한 그릇을 만들 수가 있다. 이처럼 하나님은, 심판받을 죄인가운데, 예수님 안에서, 일부에게는 은혜를 베풀고, 나머지는 공의로 심판할 수 있다. 하나님은 멸하기로 준비된 진로의 그릇인, 죄인들을 오랫동안 참고, 기다려 준다.

그래서 김일성이도 장수했고, 이단 교주들도, 장수할 수 있었다. 이는 하나님이 그들이 회개하고, 용서받기 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심판을 연기하고,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린다(벧후3:9). 그러나 사람들이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거역하면, 반드시 공정하게 심판한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 날에 자신이 받을 진노를, 쌓는 것과 같다. 모세와 애굽의 왕자는, 둘 다 애굽의 왕과, 왕비의 손을 통해 성장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 사람 중에, 한 사람(모세), 하나님의 자비를 나타내는 도구사용했다.

또 다른 한 사람(바로), 하나님의 심판의 능력을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바로에게 하나님의 백성을, 보낼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바로는 끝까지, 그 명령을 거부했다. 하나님은 오랫동안 기다리며, 회개할 기회를 주었지만, 재앙이 모두 마칠 때까지, 회개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런 바로의 고집을, 심판의 능력을, 세상에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했다. 애굽에 내려진 10가지 재앙을 통해, 애굽과 이스라엘 사람은, 참 하나님으로,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토기장이가 흙을 가지고, 천한그릇을 만드는 것처럼, 예수님 밖에 있는 바로를, 진노의 도구로 사용했다.

그러면 바로가, 하나님의 분노를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그의 불순종이 정당화될 수 있나? 없다. 왜냐하면 바로에게, 충분히 회개할 기회를, 주셨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면 하나님의 재앙은 중단되었을 것이다. 바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바로는, 하나님이 내린 심판에 대해, 아무런 변명을 할 수 없으며,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릴 수도 없다. 하나님이 그릇을 만드신, 목적이 무엇인가?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반면 하나님은 모세를, 자신의 자비를 세상에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했다. 모세는 살인죄를 범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부르고, 그에게 하나님 백성을 인도하게 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렸으며, 이를 통해서 자기 백성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내어, 가나안에 정착하게 하여, 자신의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하는 분임을, 보여 주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섬겼을 때에도, 모세의 중보 기도를 듣고, 그들을 용서해 주셨다.

도공이 흙을 가지고, 귀한 그릇을 만들 듯이, 하나님도 모세를 불러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귀한 도구로 사용했다. 이러한 일들은, 창조주의 주권에 달린 일이기에,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인간이 중심이 되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면, 쉽게 인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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