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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6년 7월 10일 - 하나님의 선택(롬9:14-18)
  작성자 : 이건기 작성일 : 2016-07-10
  첨부파일:   하나님의 선택.hwp(68K)

하나님의 선택(9:14-18)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했지만,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거부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에서 멀어졌다. 그러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취소되었나? No. 육적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거부해서, 하나님의 약속에서 제외되었지만, 영적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받아들여, 하나님 약속이 성취되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들 중에, 약속이 없는 이스마엘을 버리고, 약속했던 후손 이삭을 통해, 약속을 이루었다. 하나님이 에서와 야곱에게,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했고,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 야곱을 에서보다, 더 사랑했다고 하였다. 그렇게 구원을 이루겠다고 했다.

1.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는, 불의한 일인가?(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하나님이 선택하고, 사랑한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는 질문으로, 수사 의문문으로 시작한다.

하나님께 불의가 있을지도 모르기에,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은, 불의가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바로 이어서 말했다. ‘그럴 수가 없다().’ 왜 이런 질문을 했나? 앞에서 바울이 한 말을, 대적하는 자들이 보기에는, 하나님의 불의함을 드러낸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에서와 야곱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무조건, 야곱을 선택했다고 했다. 하나님의 구원은, 예수님 안에 있는 자를, 구원하기로 했다. 예수님 안에 있다면, 누구든지 죄를 용서해주고, 구원하기로 하나님이 계획했다.

이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 안으로 들어오면, 어떤 사람이든지 구원하기로 예정하셨다. 하나님이 죄에 빠진 사람들을 건져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나님의 구원은, 누구를 선택하고, 누구를 배제하느냐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택에 달려있다.

구원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나 상태에, 전혀 제약 받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 자신의 주권적인 선택만으로, 예수 안에서 구원한다는 뜻을 세웠다. 이런 뜻을 모르기에, 사람들은 엉뚱한 질문을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면서, 누구는 선택하고, 누구는 버리면, 어떻게 의로운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한다. 그들이 보기에는, 하나님이 불의한 존재처럼 보인다. 불의(아디키아, 불공평, 잘못), 공평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리브가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야곱을 선택하고 에서를 미워하기로 작정했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한 사람은 선택해서 사랑하고, 한 사람은 버릴 수 있나? 이런 일을 정당하다고, 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우리는 선택이라는 말 자체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누구를 선택하고,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특혜요, 편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구원은 분명히, 하나님의 선택,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 바울은 단호하게 결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하나님은 불의가 있을 수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비밀이다. 구원의 비밀이다. 예수님이 구원의 비밀임은,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 받는 자와, 버려지는 자들이 생겨난다는 말이다. 예수님을 통해 선택받는 자와, 유기당하는 자들이 갈라진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하기로 약속했다.

선택을 입은 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원의 능력으로 받아들이고, 유기된 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하는 것을, 미련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배척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기준이 있다. 예수님 안에서의 구원이다. 하나님이 세운 이 법칙이, 불의 즉 불공평하지 않다. 가장 공평하다.

2. 하나님은 자기 뜻대로 행한다(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모세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다. (33:19)을 부분적으로 인용했다.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배경이 되는 (32-33)을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원했다. 또 홍해를 가르고, 구원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도록, 40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시켰다. 먹을 것이 없을 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고, 마실 물이 없을 때, 생수를 주셨다. 하나님은 큰 복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다. 또 율법을 주셨다. 모세를 산으로 불러, 십계명을 돌판에 새겨서 주셨다.

40일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법을 가르쳤다. 그런데 모세가 산에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기다리지 못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린 것이 아닐까?’하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의심하기 시작하면, 만사가 모두다 좋지 않게 보여서, 매사가 불평이고, 불만이 된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을 모아서,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우상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나?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배운 것이다. 애굽의 문화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우상숭배를 했다.

그때 모세가 돌판을 들고,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간음하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났다. 얼마나 모세가 분노했던지, 하나님께 받은 두 돌판을, 깨 버렸다. 하나님은 화가 나서, 모두 죽이겠다고 말씀했다. 그때 모세도 화가 났지만, 하나님께 매달렸다.

여기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인다면, 이방 사람들이 하나님을 뭐라고 생각하겠느냐고 말했다. 하나님이 힘과 능력이 없어서, 광야에서 다 죽였다고 말한다고 했다. 모세는 자기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져도 좋으니, 이 백성을 용서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하나님이, 화를 풀면서 (33:19) 말씀했다. (9:15)절 말씀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불의가 없다는 이유를 설명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말씀한다. 하나님은 자기 뜻대로 행하기에, 불쌍히 여긴다는 말씀이다. 모든 사람은 죄를 지었기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우리는 죄 때문에,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하게 여겨, 구원하기로 했다. 그 방법을 성경을 통해서, 말씀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이 보내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형들을 통해서, 그 방법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받아들인 자들을 구원하기로 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받아들인 자를 긍휼히 여겨서, 불쌍히 여겨서,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기로 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온 자들을 구원했다면, 하나님이 불의한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불의가 없다. 하나님의 선택의 자유를 말씀하면서, 하나님은 어떤 것에도, 제약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구원하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불의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게 말하는 자가 불의한 사람일 뿐이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긍휼을 베풀려고 작정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선택행위는, 불의한 일이 아니라, 의로우며 자비로운 일이다.

누가 죽을 사람 중에서 선택해서, 자비를 베푸는 일을, 부당하다고 할 수 있는가?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원하는 자와 달음박질하는 자는,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을 가리킨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구원역사에, 아무 효력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인간이 아무리 원하고, 달음박질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구원에,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분명히 성경은, 구원이 우리 원함이나 달음박질,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방법인, 은혜로 주어진다고 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멸망당할 사람들에게, 예수 안에서 긍휼과 은혜를, 베풀어주기로 작정했다. 하나님은 바로의 궁전에서, 모세를 선택하여, 그에게 긍휼을 베풀었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를 이 세상에 나타냈다. 이런 일은 결단코, 불의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3.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는, 불의가 아니다(17-18).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의 선택이 불의가 아니라면, 예수님 안에 있지 않는 자를, 선택하지 않음은 부당한가? 하나님이 선택하지 않음도 역시, 부당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는 바로를, 심판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 능력과 영광을 이 세상에 나타내기로 작정했다. 이 과정에서 바로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재앙은, 공의를 수행하는 수단이었으며, 부당한 일이 아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의 모습이다. 바로는 하나님이 버린, 자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가, 부당한 일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나님의 선택이, 죽어도 마땅한 사람들 중에서, 일부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일이기에, 선택은 정당하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거역한 죄악에 대해, 하나님이 공의를 시행하기로 작정했으니, 정당한 일이다.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라는, 두 가지를 사용해서, 자신의 인자함과 능력을 나타내기로 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신학자들은 인간의 모든 운명이, 하나님의 예정에 달려 있는가? 아니면 인간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많은 토론을 해왔다. 어떤 학자들은 만일, 인간의 모든 운명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예정에 달려 있다면, 사람은 자기 행위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의 예정과 선택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들이, 예수님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들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려고, 성령을 보내주신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거부하고, 성령의 역사를 거부한다. 그러면 더욱 완악하게 된다. 이렇게 완악하게 됨을, 하나님이 범죄 책임자라거나, 범죄 조장자라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결코 안 된다. 하나님은 다만 완악해지도록, 허용하실 뿐이다.

사람이 완악해지도록 허용하는 방식은, 성령의 역사를 철수해서, 완악한 상태가 악화되도록, 그냥 내버려두면 된다. 죄와 구원문제에 있어서는, 세상 사람들은 다 죄인들이라,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죽었고, 죽음의 집행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인간들의 자유의지대로, 구원받을 길은 없다.

하나님의 주권, 예수 안에서만 구원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일부는,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어주는 그 사랑을 받아들여, 구원받게 했다. 하나님의 주권을 밝히면서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어 주셨다. 이끌어 주시는 긍휼으로, 구원받음을 감사하고, 감격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의지나, 공로로 된 것이 아니기에, 교만할 수 없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않다. 인간이 불의하다. 불합리한 인간들의 눈에, 하나님이 불합리하게 보일 뿐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예수님 안에 있다. 예수님 안으로, 믿음으로 나왔다면,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다. 구원받은 자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을 떠나지 말자. 우리를 미혹하게 만드는 이단은, 예수님을 떠나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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