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6년 6월 26일 - 이스라엘을 위한 바울의 슬픔(롬9:1-5)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6-06-26 |
첨부파일: 이스라엘을 위한 바울의 슬픔.hwp(38K) |
이스라엘을 위한 바울의 슬픔(롬9:1-5)
(롬8장)을 통해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준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9장)에 들어오면, 분위기가 (8장)과 확 다르다. 음악으로 비유할 때, (8장)이 높고 화려한 장조의 음악이라면, (9-11장)은 낮고 어두운, 단조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8장)에서 구원의 확실함과, 하나님 사랑의 견고함에 대해, 소리를 높여 외쳤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아무 것도 우리를, 끊을 것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9장)에서 바울의 마음속에 있는, 깊은 근심을 호소하기 시작한다.
하나님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서 멀어진 일에 깊이 근심하고 있다. 로마 교회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공존하는데, 두 공동체는 여러 면에서, 가치관의 충돌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동안 바울의 진술은, 유대인을 거부하고, 이방인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진술은, 로마 교회 안에 있는 유대인에게, 오해를 살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9-11장)에서 유대인의 구원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취급하고 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될 것인지를, 깊이 논하고 있다. 바울은 이렇게 질문하면서, 이 주제를 시작하고 있다.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하나님의 약속이 깨어졌는가?’ ‘이스라엘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정녕 실패로 끝났는가?’를 묻는다.
1. 골육을 위한 바울의 근심과 고통(1-2).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바울은 여러 가지 표현을 거듭 사용함으로, 자기 말이 진심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계속해서 자신의 말에 대해서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증언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표현들은, 그가 하는 말들이, 모두 거짓이나 위선이 아닌, 진실임을 강조한다. 자기 말에 대해 진실을 확인한 후에 ‘내 마음 속에 끊임없이, 고통이 존재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바울은 자기 골육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 축복에서 제외됨을 알았다.
이러한 일로 마음에는, 끝없는 근심과 고통을, 받고 있었다. 왜 바울은 자기 골육에 대한, 깊은 고통을 호소하면서, 자신의 말이 진실하다고 했나? 그 이유는 그 동안 줄곧, 이방인 편에서, 복음을 증언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 입장에서 보면, 유대인을 버렸다고, 생각했다고 잘못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보면, 유대인들 중에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서원한 사람들이 40명이나 있었다(행23:12-13).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택된, 이방인의 사도였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유대인이었기에, 자기 골육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았다.
그래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동시에, 복음을 거부하는 자기 골육에 대해, 큰 고통을 느꼈다. 이러한 심정은, 믿지 않는 가족이 있는 사람은, 잘 알 수 있다. 자기 가족 중에, 믿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경우, 타인에게 복음을 전하면서도, 믿지 않는 가족들로 인해 마음에 고통을 느낀다.
이러한 고통과 슬픔은, 우리의 고통이며, 동시에,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함께 느끼는 고통과 탄식이다. 그러므로 골육을 위해, 바울은 기도했다.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바울은 육신을 따라, 그의 골육이며 친척인, 유대인을 위해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질지라도 좋다!’고 했다. 물론 바울이,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질 가능성은 없다. 그가 이미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선택받은 성도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을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바울의 기도는, 골육인 유대인을 생명처럼,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기 골육을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간절하게 기도했다. 목숨과 바꾸어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성경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들이, 종종 나타난다.
(1) 모세는 범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다. (출32:31中-32)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2) 예수님도 거듭되는 권고 받고서도, 끝내 돌이키지 않는, 예루살렘 성을 향해 우시면서, 이렇게 탄식했다. (눅19:41-44)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십자가에 달릴 때에도 (눅23:34上)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라고 기도했다. 바울이 당하고 있는 슬픔과 기도 역시, 이와 비슷한 고통과 슬픔의 기도였다. 연약한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의 마음을 갖자.
우리도 이 시대의 바울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구원 문제로 인해, 고민해 본적이 있는가? 믿지 않는 가족과, 골육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이와 비슷한 고통을, 느낄 것이다. 이러한 근심은, 성도들의 고통인 동시에, 그 안에 계신 성령님의 근심이다.
우리는 복음을 받지 않는 가족이나 친지, 또는 민족을 인해, 고민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거역한 사람들이, 장차 당할 심판과 저주가 어떤 것인지,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중에는 자녀를,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만 있다면, 목숨도 내놓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렇게 기도해도, 그들이 죽거나 저주받지 않는다. 그러나 형제와 친지, 그리고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들의 불신앙에 대해, 이러한 기도를 할 수밖에 없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도 믿지 않는 형제들을 인해서, 말없이 탄식하고 있다.
우리들 중에 혹시, 가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다가, 낙심하고 있는 분이 있는가? 힘을 내서 다시 기도하기 바란다. 하나님은 영혼을 위한 그들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줄 것이다. 바울은 골육을 위해서 기도하다가, 유대인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그들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가르쳐 준다. 우리는 이 시대의 바울이 되어, 믿지 않는 친족과, 민족과, 인류를 위해, 성령 안에서 탄식하며 기도해야 한다. 이들을 위한 기도를 쉰다면, 성도로서의 직무를 유기하는 일이 될 것이다.
2. 특혜를 받은 이스라엘(4-5上).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바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받은 특별한 은혜를, 8가지로 정리했다. ①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양자다. 모든 민족 중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택하여, 아들로 삼았다. 그들을 아들로 삼아, 세상을 구원하려고 했다. 이스라엘은 어느 민족도 누리지 못한, 특별한 아들의 사랑을 받았다.
②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이 함께하고 만나주는, 영광이 있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한 후에, 함께 했다. 애굽에서 구원하기 위해, 10가지 재앙을 일으켰고, 그들을 추격하는 애굽 군대를 모두 홍해에서 몰살시켰다.
하나님의 영광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나타났다. 또 하나님은, 자기 영광을 시내 산에서, 불과 연기로 보여주셨다. 후에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은, 성막과 그 안에 있는, 언약궤 위에 나타났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있는, 영광스러운 민족이었다.
③ 이스라엘은 언약을 받은 민족이다. 하나님은 어느 민족과도, 언약을 맺지 않았지만,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에게 나타나, 언약을 맺었다. 시내산에 임해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다시 언약을 맺었다. 이처럼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특별한 언약을 받은, 유일한 민족이었다.
④ 이스라엘은 율법을 받은 민족이다. 하나님은 어느 민족에게도, 직접 가르침과 교훈을 주신 적이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직접 나타나서, 그들이 살아갈 규례와, 하나님을 섬기는 규례에 대해서 가르쳐주셨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다른 민족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율법을 갖게 되었다.
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특권을 가진 민족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예배하는 규례를 가르쳐 주었다. 죄를 용서받는 규례,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자세히 계시해 주었다. 이 규례를 따라 자유롭게, 하나님께 나아가서 영광스런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⑥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온 세상이 축복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 그리고 선지자들을 통해 장차 이스라엘에서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⑦ 이스라엘은 훌륭한 조상들을 가진, 민족이었다. 우리가 존경하며 따르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과 같은, 훌륭한 사람들은 모두 다, 이스라엘의 조상이었다. 이처럼 자랑스러운 조상들을 가졌으며, 이로 인해 특별한 하나님의 은총을, 계승할 수 있었다.
⑧ 이스라엘은 육신적으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주었다. 그러므로 육신으로 볼 때에, 그들은 메시아의 조상이 되는 큰 축복을 받았다. 이러한 복은, 앞에서 말한 모든 것보다, 더 큰 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특권을 받은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부하고, 축복에서 멀어짐을 보고, 탄식하였다. 이러한 유대인의 모습은, 예수님을 믿기 전의 바울의 모습과 같았다. 유대인의 전통을 따라 할례를 받았으며, 초대 왕 사울의 후손, 베냐민 지파요, 바리새파에 속한, 가장 엄격한 율법주의 자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기독교인을 박해했다. 그러므로 바울은 누구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유대인들의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복음에서 멀어진, 자기 골육을 보고, 깊은 고통을 느낌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도 우리 중에, 현대판 유대인들이 많다. 좋은 신앙과, 좋은 부모를 가진 사람이 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교회에 나가, 침례도 받고, 열심히 활동도 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영접하지 않아,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큰 특권을 받았지만, 결국 그들의 불신앙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축복에서 제외될 것이다. 돈, 권력, 지식이 있으면 무엇 하는가? 우리는 이러한 일을 잘 알기에, 믿지 않는 형제를 보면서, 깊은 탄식을 하게 된다.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전도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3. 예수님은 찬양 받아 마땅한, 하나님이다(5下).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바울은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라고 언급 한 후에, 즉시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있다.
찬양은 하나님께만 하는 것이다. 피조물에게는 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유대인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지만, 동시에 모든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고,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었지만, 동시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고, 모든 만물이 다 그 앞에, 무릎 꿇게 했다(마28:18, 빌2:8-11 참조). 로마서의 독자는, 로마 황제(가이사)가, 세상의 주인이라고 외치던 시대에, 로마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해, 진정한 세상의 주인은, 가이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토록, 모든 성도들과 피조물들의 찬양받기에, 합당한 하나님이다. 성경은 곳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끝내 의심하던 도마도,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후에, 이렇게 고백했다. (요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은혜와 구원을 맞보았다면, 우리도 최상의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한다. 요한은 장차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에서 모든 피조물과 천사들, 성도들이 함께, 그리스도께 찬송 드리는 장면을 보고,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계5:12-13)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우리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해야 하며, 삼위일체 하나님만, 우리의 찬양의 주제로 삼아야 한다. 예수님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가 되신다. 심판주가 되신다. 심판은 분명히 있고, 지옥에는 어떤 경우에도 가지 말아야 한다.
사랑하는 가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자. 진정한 축복은 가족의 구원이다. 이런 은혜가 넘쳐나기 바란다. 기도의 영역을 점차 넓혀가자, 친천, 친구, 직장, 사회, 나라, 민족, 세계를 향해, 그래서 주님 앞에 서는 날, 당신 때문에 내가 여기 왔다는 감격을, 함께 누리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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