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6년3월 13일 -성령님의 증언(롬8:14-16)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6-0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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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의 증언(롬8:14-16)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죄의 빚을 진 죄의 노예였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의 값을 지불했다. 성령님은 죄와 사망의 세력으로부터, 성도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모두 성령님을 선물로 받았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없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결코 아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부활시켜 준 성령님은, 장차 우리도 다시 살려줄 것이다.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서,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살아있는 사람은 호흡이 있다. 먹는다, 생각하고, 행동한다. 성령으로 살아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를 통해 죄를 내보고, 기도로 호흡하며, 하나님과 교제를 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그 말씀에 의해 힘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생각을 알기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몸의 행실을 죽이며, 기쁨으로 따르게 된다. 이러한 모습으로 사는 성도들이,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이다. 그러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1.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다(14).
“무릇(가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휘오이)” 여기서 ‘무릇’은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다. (왜냐하면, 때문에, ~인 까닭에, 의심 없이)를 나타낸다.
직역하면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기 때문에,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그 이유는 (13下)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했다. 하나님의 아들은,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아들에게만, 주어지고, 아들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다.
여기서 아들과 자녀는, 꼭 아들만을 말하지 않는다. 부모나 조상과 관련되어 광범위하게, 자녀나 후손을 말하는데, 2가지 단어를 사용한다. ① ‘테크논’은 일반적인 아들과, 미성숙한 상태의 아들을 ② ‘휘오스’는 친아들이나, 성숙한 아들을 말한다.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자녀로, 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자녀가, 바로 성숙한 자녀이다. ‘인도함을 받는다.’(아고, 수동태복수)는 ‘인도하다, 가져오다, 이끌리다, 조종하다.’이니, ‘인도된다, 이끌림을 받는다, 조정된다.’ 말이다. 이런 자들이(후토이), 하나님의 아들들(휘오이)이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 죄를 이길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성령님의 인도와 죄의 인도는 다르다. 죄는 강제적이며 폭력적으로 주관하지만, 성령님은 우리를 인격적이며, 자발적인 순종으로 이끈다. 성령님은 우리의 의지를 거스르거나, 강제적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성령님은 강력하지만, 온유하게 진리로 인도하고, 자발적으로 의를 행하도록, 권유한다. 성령님은 우리가 그의 뜻을 거스를 때도, 강제로 통제하지 않는다. 우리가 성령님을 거역할 때에 근심하시며,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기도해 준다. 이러한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이들이며, 자녀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성령님의 열매를 맺는 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특권이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과 부자간에 누리는, 친밀한 교제를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서, 때를 따라서 필요한 은혜를, 구할 수 있다. 또한 언제든지, 하늘 아버지 앞에 나아가서, 그 분과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는가?
2. 성령님은 종의 영이 아니라, 아들의 영이다(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포보스) 종의 영(둘레이아, 속박, 종살이)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은, 무서워하는(포보스, 놀람, 공포) 종의 영을 받지 않고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했다. ‘양자의 영’(휘오시아)은, ‘휘오스’(아들) + 티미(배치하다, 두다, 맡기다)이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억지로 속박하는 ‘종의 영’이 아니라, 맡겨서 주인의식으로 일하는 ‘양자의 영’을 주셨다.
성령으로 양자 삼아주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 만일 하나님이 성도들을, 종으로 삼기 원했다면, 성령님이 아니라, 천사와 같은, 종의 영을 부어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을 부어주셨다.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가르쳐 주셨기에, 우리는 입을 열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 부르짖는다(크라조)는 ‘큰 소리로 부르짖다, 외치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종들은 주인을, 감히 큰 소리로 부르지 못하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자신감 있게 큰 소리로 부른다.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 ‘아바’는 아람어로 우리말 ‘아빠’같이, 아이들이 아버지를 부르는 애칭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라 부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가 아버지를 대하듯이,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자신감 있게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해 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들을 주저하는 것은, 자녀들이면 옳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녀로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대하기를 원한다.
당시에 로마에서 ‘양자로 입양된 사람’은, 아버지의 이름을 보존하고, 그 재산을 물려받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선택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입양된 사람은, 정상적인 아들과 동등한 위치를 부여받았다. 그는 법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당당하게 아버지를 부를 수 있었다.
또한 친자녀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아버지의 기업을 물려받았으며, 아버지의 업적을 높이기 위해, 친자녀들과 함께 노력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가? 아버지처럼, 친근하게 대하고 있는가? 그러나 종은 아들과는 달리, 주인을 무서워서, 억지로, 매였기에 한다.
그러나 아들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담대함과 특권을 갖기에,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일하게 된다. 우리도 한 때, 종의 영을 받은 자였다. 억지로 끌려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나? 그러나 하나님의 양자로 입양되어, 고귀한 존재들이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스스로 활동한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도록 하신 성령님은, 우리를 무섭게, 두렵게 하는 영이 아니다. 종의 영, 세상의 영은, 하나님을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성령님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인식할 수 있는 따뜻함을 허락한다.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3. 성령님이 친히, 우리가 자녀임을 증언한다(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텍크나)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바울은 성령님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증언한다고 했다.
“…와 더불어 증언한다.”(심마르튀레오)은 ‘쉰’(…와 더불어, 함께) + ‘마르튀레오’(증언한다) = …와 더불어 증언하다로, 합성된 말이다. 이 말은 어떤 일에 대해, 다른 사람과 함께 증언함을 의미한다. 율법은 증언할 때에, 진실성을 위해, 둘 이상의 증인을 요구하고 있다(신19:15).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을 증언하는, 두 명의 증인을 제시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증언하는 두 증인은, 성령님과 우리의 영이다. 물론 우리 영은, 성령님과 함께 증언할만한, 위치에 있지는 않다.
그러나 성령님은 기꺼이, 우리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증언해 준다.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보증하는, 하나님의 인(도장)과 같다. 하나님의 도장인, (성령)이 찍힌 증서를 취소하거나, 바꿀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
(1)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는가? 만약 사람이 육체적 출생만을 가진 자라면, 죄 된 본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에, 아담의 자손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마귀의 자식에 불과하다. 아담의 죄성이 후손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믿는다고 하지만, 종교적인 형식에만 붙잡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죄에서 벗어나기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했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죄 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죄인이다.
죄를 인격화시킨다면 마귀요, 사탄이기에, 사람들은 출생하면 즉시, 사탄의 자녀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마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그 신분이 바뀌어야 하는데, 예수님은 이를 거듭난다고 말씀했다. (요3:3中)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는 어떻게 늙은 사람이, 거듭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면서, 예수님께 질문했다. 예수님은 (요3:5中-6)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말씀했다.
그렇다면 누가, 거듭나게 만드는가? 그 분이 바로 성령님이다. 성령님을 통해서, 회개하여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게 되면, 하나님의 자식이 된다. 이때 성령님은 양자의 영으로, 사람 속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생명을 나누어준다. 따라서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한다.
이때부터 그들이 부르는, 하나님에 대한 호칭이 달라진다. ‘아빠, 아버지’가 된다. 만약 종이라면, 결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고, 다만 ‘주인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양자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다.
그러면 사람이, 마귀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사도 바울은 두 증인이, 보증 서준다고 말한다. 그들 중 한 증인은, 성령님이다. 성령님은 우리의 영을 거듭나게 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해 준다. 동시에 우리의 거듭난 영도, 증언해 준다.
(2) 양자의 영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성령님을 받는 사람이 적은 이유는, 목말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죄 가운데 살기를 원한다면, 진정한 목마름이 없게 만든다. 성령님을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다.
(요7장)에서 예수님은, 성령을 주겠다고 했다. (37中-39上)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베드로는 오순절에 (행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한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니라.”했다. 내 영이 예수님에게, 성령님을 갈급해하고 있음을 고백하며, 성령님이 내게 임해서, 나를 충만하게 지배해주기를 바란다고, 고백해야 한다.
죄를 이기기 위해서, 거룩한 삶을 살기 원하는 나를, 내 영과 성령님은 내 안에서 가장 잘 알고 계신다.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내 영이 성령님의 지배를, 받고 살기를 원하고 있나요? 성령님이 내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고 있나요? 하나님의 자녀처럼 살고자 하는 갈급함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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