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6년 2월 28일 - 육신을 따르는 자 영을 따르는 자(롬8:3-8)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6-02-28 |
첨부파일: 육신을 따르는 자 영을 따르는 자.hwp(67K) |
육신을 따르는 자 영을 따르는 자(롬8:3-8)
지난주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했다고 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면, 정죄함이 없다. 예수님이 그들의 죗값을 지불했기에, 더 이상 유죄선고를 받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죄의 세력이, 지배할 수 없다. 그리고 성령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서, 생명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율법은 죄의 세력을 멸하지는 못했지만, 성령님을 통해 죄와 싸워서, 승리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더 자세히 말씀한다.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용어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고린도전서를 보면, 3종류의 사람을 말한다.
① 육에 속한 자(프쉬키코스 안로포스) : 프쉬케(호흡, 영혼) + 이코스(~에 속하는 자) ‘육적인, 천성에 속한’ 뜻이다. 동물처럼 영혼을 가졌으나, 거듭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고전2:14).
이들은 성령의 일을 받지 못할뿐더러, 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이는 성령의 일, 곧 성령의 가르침과 사역의 일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만족을 따르고, 육적 욕망을 따르고, 자기 판단에 따라 사는 사람이다.
② 신령한 자(호 프뉴마티코스) : 프뉴마(영, 성령, 바람, 생명) + 이코스(~에 속하는 자)가 합성된 말로 ‘영에 속하는, 영적인’을 의미한다. 성령과 결합하여, 성령에게 들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자를 말한다. 그 사람과 그의 삶, 세계, 그가 바라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생각 한다(고전2:15).
③ 육신에 속한 자(사르키코스) : 사르크스(살, 육체) + 이코스(~에 속하는 자)가 합성된 말이다. 거듭났지만, 신앙으로 성숙하지 못해, 부패한 성질의 영향을 받고, 육적인 원리를 따라 사는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의 어린아이 같이, 거듭나지 못한 자를 따라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고전3:1, 3).
1. 죄의 심판 : 그리스도의 십자가(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죄 때문에),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사르크스)은 연약하기에, 율법을 행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죄를 행하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냈다. 육신에 죄를 정했다(카타크리노, 죄를 선고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우리 육신의 죄를 짊어지고, 죽게 했다.
우리 죄를 해결하는 방법은, 죄 없는 하나님이 아들이, 우리를 위해 죽는 방법밖에 없다. 지옥의 고통과 형벌이 크기에, 예수님이 육신으로 와서,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심으로, 죄를 용서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 인류의 죗값을 지불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통해, 우리의 죗값을 갚았기에 “죄와 죄의 원흉인 사단이, 고소할 근거를 없애버렸다.” 또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심으로, 죄의 세력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더 이상, 죄에 매여 살 필요가 없다.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프뉴마)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한 죄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성령님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령님을 통해, 죄를 이길 수 있게 해주셨다.
우리는 연약해서, 죄를 이길 수 없지만, 성령님을 따르면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다.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율법과 뜻을 따르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 죄는 율법을 이용해서, 우리 안에 각종 탐심을 이루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이룬다. 죄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육신을 좇지(카타) 않고, 성령을 좇아(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플레로오, 꽉 채우다, 성취하다) 하려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전에, 죄의 세력을 좇아, 수치스러운 일을 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거룩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적이 있다. 그때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침략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제공했다. 우리는 그 전쟁에 참여하기 싫었지만, 일본의 지배를 받았기에, 할 수 없이 참여해야 했다.
그때에 우리의 힘과 재산은, 남을 해치는 일에 사용이 되었다. 그러나 일본과 맞서 싸운 연합국은 일본보다 더욱 강했으며, 일본과 싸워서 승리를 하였다. 그리고 연합국은 승리한 후에, 우리나라를 일본으로부터 해방시켰기에, 더 이상 일본의 통치를 받거나, 침략전쟁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
전에 우리는, 사단의 지배를 받으며, 죄를 행하며 살았다. 그때는 우리가, 죄를 행하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강력한 죄의 세력으로 인해, 할 수 없이 죄를 행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해서, 죄의 세력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우리는 해방되었기에, 더 이상 지배받을 필요가 없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를 죄의 세력과 싸워, 승리할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지 않아도 된다. 성령 안에서 죄를 극복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을 수 있다. (롬8장)에서 ‘육신’과 ‘영’을 대조하며, 그 특징을 설명한다.
여기서 ‘육신’(사륵스)은, 뼈와 근육과, 핏줄로 이루어진, 육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육신’은 ‘아담 안에서 부패한 인간성’을 말한다. ‘타락한 자기중심적 인간성’을 말하며, ‘죄의 지배를 받는 자아’를 의미한다.
여기서 ‘영’(프뉴마)도, 육신과 대조되는 ‘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를 중생시켜 주고, 그 안에 거하는 성령님을 말한다. 육신과 성령님은 그 열매가, 현저하게 다르다(갈5:16-26). 우리 안에서 서로 갈등과 충돌을 일으킨다.
2. 무엇을 따르는가?(5).
“육신을 따르는(카타, 아래)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카타)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오늘 본문에는, 2종류의 사람이 나온다. ① 육신을 따르는 자 ② 영을 따르는 사람인데, 특징이 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한다. 육신처럼 썩어질 허탄한 일을 생각한다. 생각한다(프로네오)는 ‘어떤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바라고 생각하며, 소원하는 것’을 말한다. 중생했지만 육신을 따르는 사람은, 육신(죄의 정욕)의 일에, 관심을 갖는다.
자기 야망을 이루기를 소원하고, 이러한 야망을 위하여, 모든 시간과 정력을 사용한다. 그러나 ‘영(성령)을 따르는 사람’은 ‘영의 일’을 생각한다고 했다.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성령의 일에 관심을 갖는다. 성령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자기의 시간과 재산과 힘을 사용한다.
이처럼 육신을 따르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영을 따르는 사람은 성령의 일을 생각한다. 즉 생각하는 경향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했다.
육신의 생각을 따르거나, 영의 생각을 따르는 결과를 말씀했다. 어떻게 나타나는가? 육신의 생각은 반드시, 사망(심판, 죽음)의 열매를 거둔다. 사망은 하나님의 생명과 축복에서 떠나, 온갖 부정적인 일을 행하고, 경험하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육신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욕심을 따르다가, 온갖 부정한 일을 하며 살다가 결국 죽음으로 떨어진다.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에 제외되고, 내세에서도 하나님 앞에, 행위에 관해 심판을 받게 되기에,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러나 영의 생각을 따르는 결과는, 이와는 반대의 삶이 나타난다. 영을 따르는 사람들은, 생명을 얻고, 평안이 있다. 구원과 영생을 얻는다. 영을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갈망하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누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온갖 좋은 복을 받아, 누리게 된다.
성령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생명으로 인도하시며, 그들에게 세상이 주지 못하는, 큰 평안과 확신을 준다.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님이 내 속에 계시고, 성령님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러면 우리 생각이 이것을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이것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크게 영광을 받으실까?
내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지, 이런 생각들이 나를 지배하게 된다. 이것이 성령의 지배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거하면,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다. 성령님이 관심을 가지는 일에, 내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성령님이 생각하는 것도, 나도 그와 같이 생각한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은 (7-8)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왜 육신의 생각이, 사망의 열매를 거둘 수밖에 없나? ‘하나님을 원수가 되기 때문’이다.
육신의 생각은, 죄의 지배를 받기에, 하나님에 대해서, 원수가 된다(에크드라), 적대감을 보인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 대신에 자신을 섬기고, 하나님 나라와 영광에, 대신 자기야망을 추구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영광을 더 갈망한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도 않고, 또 순종할 수도 없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을 반대하며, 순종하려고 하지 않는다. 육신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싶어도, 순종할 능력이 없다. 그러므로 육신을 따르는 사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
타락한 인간의 생각은, 아무리 고상해도, 하나님과는 원수가 될 수밖에 없다. 세상의 인본주의, 종교, 철학이 정말 고상하게 보여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교묘하게 반대한다. 이 세상은 절대로, 하나님께 굴복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굴복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중생하지 못한 자연인이나, 육신을 위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선을 계속해서 행할 수 없다.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는 육신의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 따라서 육신의 생각을 따르는 사람들은, 죽음과 심판에 이를 수밖에 없다. 죄 된 욕심에 이끌려 살기 때문이다.
육신의 생각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행위의 심판을 받거나, 이 땅에서 죽음에 던져진다. 성령의 생각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다. 우리는 육신을 따르며, 육신의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인가? 아니면 성령을 따르며, 영의 일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인가?
죄와 죽음과 싸워 이기고 싶은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 죄와 사망의 그늘에서, 해방을 받고 싶은가? 성령님의 지배를 받으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오늘 예수님을 모시고, 성령의 지배를 받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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