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6년 1월 10일 -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롬6:15-23)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6-0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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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롬6:15-23)
성도는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았다. 은혜로 구원 받았으니, 행위가 악해도 된다는 말은, 결코 아니라고 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함께 살아난 자이기 때문이다. 이를 침례를 통해 설명했다. 그러므로 이제 죄가, 너희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
너희 몸을 하나님께 드려서, 불의의 무기가 아니라, 의의 무기로 사용하라고 했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않고, 은혜 아래에 있다고 했다(14). 그래서 ‘종의 비유’를 통해, 다시 한 번, ‘의의 종으로 살라.’고 설명한다.
1. 은혜는 방종을 허용하지 않는다(15).
“그런즉 어찌 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여기서 법은, 율법을 말하는데, 성도는 율법 아래에 있지 않다고 했다.
법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명령한다. 명령하고 그대로 행하면, 잘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법대로 하지 않으면, 잘못되었다고 정죄하고, 그렇게 행하지 않은 자는, 벌을 받게 된다. 법은 죄를 죄로 드러나게 한다. 그리고 율법은 죄를 이기게 하거나, 의롭게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가 은혜 아래 있어서, 의롭다고 여김을 받고, 의롭게 살 수 있는 스스로 하는 능력이, 우리 속에 있게 된다. 그런데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 받는다면, 죄짓는 삶을 살아도, 여전히 구원받지 않겠는가? 성도가 법 아래에 있지 않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계속 죄를 지어도 되는가?
이런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바울은 ‘그럴 수 없다.’고 하면서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바울은 은혜가, 방종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며 ‘종의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당시에 종이 되는 경우는 2가지였다. ① 강제로 종이 된 경우다. 전쟁에 져서, 포로가 되거나, 큰 빚을 지고, 그 빚을 갚기 위해, 강제로 몸을 파는 경우가 있었다. 이 경우에는, 남의 종이 될 수밖에 없었다.
② 자원해서 종이 된 경우다. (출21:1-6) ‘종에 관한 법’이 있다. 히브리인은 종을 사면, 6년 동안 섬기지만 7년째에는 자유를 준다. 자기의 몸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자유를 준다. 그런데 6년 전에, 홀몸으로 왔으면, 홀몸으로 나가고 아내와 함께 왔으면, 아내와 함께 나갈 수 있다.
그런데 홀몸으로 종이 되었으나, 종으로 있는 동안 아내를 얻어 자녀를 낳으면, 그 아내와 자녀는 주인의 소유였고, 자기 홀몸만 자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종이 주인을 사랑하고, 아내와 자녀들을 사랑한다면, 주인집을 떠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계속 노예로 남을 수 있었다.
만일 종이 분명히,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다고 하면, 평생 그 집의 종이 되겠다는 표시로, 문기둥에 대고, 귀를 뚫었다. 이를 귀 뚫은 종이라 한다. 바로 우리 성도들은 귀 뚫은 종이 되어야 한다. 종이지만 자유인이 된다.
바울은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 죽을 때도, 주님을 위하여 죽어야 된다. 바울은 이런 원리가, 영적인 일에도 적용된다고 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정욕을 따르기 위해, 우리 자신을 죄에게 드려, 죄의 종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은 후, 우리 주인은 죄가 아니라 그리스도다. 이는 회심이 죄를 섬겼던 일을 뉘우치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죄와 그리스도라는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죄를 따르든지, 아니면 죄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따르든지, 양자택일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적당히 죄와 타협하며 살 수 없다.
죄의 종이 되어, 정욕을 좆아 살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든지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정욕을 따라 죄의 종이 되면, 반드시 사망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우리가 죄의 종이 되는 것은 자유지만, 그 대가로 사망의 열매를 거두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면,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산 결과, 의와 생명을 얻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종은, 의의 종이 되어, 생명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2. 죄의 종에서 순종의 종으로(17-18).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바울은 말하다 말고, 갑자기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했다. 죄의 종이었는데, 의의 종으로 만들어 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마교회 성도들은 ‘죄의 종’이었다. 사단을 따라, 죄의 종으로 살던 사람으로, 하나님께 버림받고, 영원한 저주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했다. 복음을 듣고 믿었으며, 복음의 원리를 따라 살았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복음을 가르쳐주었고, 사도들은 그것을 받아서, 다시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전달해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복음을, 마음으로(진심으로) 믿고 순종했다.
그 결과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다. 의의 종이 되었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의’ 자체이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통해서, 죄의 지배에서 벗어났고,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그들은 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나서, 빛의 자녀가 되었다.
정욕에 복종하여 살던, 죄의 종에서 벗어나서, 성령을 따라서 살아가는, 의의 종이 되었다. 전에 사망의 열매를 맺었지만, 이제는 의와 생명의 열매를 맺고 있다.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큰 은혜를 생각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외치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과, 큰 은혜를 깊이 깨닫게 되면, 하나님께 감사를 외치게 된다.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부정과 불법이라는 주인에게, 자신을 종으로 팔았다. 그 결과 불법의 열매를 거두며 살았다. 정욕이 이끄는 대로 살았다. 그때 더러운 일과 부정한 일을 행하며 살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 더 이상 몸을 죄에게, 드릴 수 없다.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자기 지체를 죄의 도구가 아니라, 의의 도구가 되게 해야 한다. 성도의 지체를 의에게 드리면, 거룩함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불러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뜻이다.
과거 봉건주의 사회에는, 주인과 종이 있었다. 종들은 엄격한 법에, 제재를 받았다. 어떤 주인이 하녀에게, 기상 시간은 4시에 해서, 7시까지 청소와 식사 준비 등등, 하루 일정을 규칙을 정하고, 규칙대로 하지 못하면, 매질을 당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녀와 주인 사이에 사랑이 싹터서, 결국은 하녀와 결혼하고, 아내로 맞아들이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주인의 아내가 된, 이 여인은 아직까지도, 주인의 법 아래에 있을까? 아니다. 이제는 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주인의 사랑 안에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내가 되었다고, 남편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살아서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신을 아내로 맞이해준 남편의 사랑을 잊지 말고, 더 잘하는 삶, 이런 삶이 자신을 의에 드리는 아름다운 삶이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자신의 몸을 스스로 하나님께 드린 사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 사람은, 자기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의 종이 더 이상 될 수 없다. 우리는 동시에,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나를 하나님께 힘써 드리는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
3.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종으로(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죄의 종으로 살 때, 의에 대해서는, 자유로운(거리낌 없는) 사람들이었다.
우리의 몸을 정욕에게 드려, 죄의 종으로 살았을 때에, 의를 행하지 않았다. 그때 머리는 부정과 불법을 도모했었고, 몸으로는 악한 생각을 실천에 옮겨, 수치와 부끄러움을, 열매로 거두었다. 이런 일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죄책감과 수치감을 느끼게 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인으로 삼고, 예수님의 교훈을 좇아, 복종하는 삶을 살기 시작할 때,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 성도는 주 안에서 자유를 느끼는 자들이다. 새들은 하늘에서, 자유 할 수 있고, 물고기는 물속에서만 자유롭다.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가면, 죽고 만다.
(21-22)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인간은 다 종이다. 죄의 종이 아니면, 의의 종이다. 우리가 죄의 종이 되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 본문은 결과라고 하지 않고, 열매라고 했다. 죄의 종이 된 결과는, 사망이다. 그때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하나님과 분리되어, 영원한 저주 속에서, 살게 된다. ‘둘째 사망’이다(계20:14, 21:8 참조).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죄에서 해방되었다. 따라서 이제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다. 자기 몸을 하나님께 드린, 하나님의 종이다. 의의 종,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면, 열매가 거룩하게 맺게 된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 하나님의 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영원한 교제를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 죄의 열매는 사망이지만, 의의 열매는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6장)의 결론이다. 죄의 삯은, 죽음이라고 했다. 우리는 죄를 따라 살면서, 죄의 종으로 살아갈 수도 있고, 반대로 의를 따라 살면서,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우리의 선택에 따라, 사망이나 영생을 거두게 된다. 만일 죄의 종이 되어서, 정욕을 좇아 살면, 반드시 사망을 거두게 된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이다. ‘삯’(옵소니아)은 병사에게 주는 봉급을 의미한다. 우리가 죄를 주인으로 섬기면, 죄는 ‘사망’을 월급으로 지불한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선물은,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영생이라!’했다. 하나님은 일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값없이 선물을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값없이 선물로 주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받을 자격이 없지만, 이러한 우리에게, 값없이 영생을 선물로 준다. 선물의 근거는 우리의 주님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지만 않는다면, 믿기만 하면, 하나님은 무료로 자신이 준비하신, 완전한 생명을 선물로 주신다.
우리는 2가지 길 중에서,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우리는 중간지대에 서거나, 주변에서 맴돌며 살아갈 수는 없다. 사망으로 끝나는, 죄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고, 영생에 이르는 의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권면했다.
사망으로 가는 길은 넓기에, 그 길을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길은, 좁고 협착해서 그 길을 찾는 사람이 적다(마7:13-)고 했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좁은 길로 가려고 애를 쓰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대중에 묻혀서, 사망으로 가는, 넓은 길로 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권고대로, 의도적으로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로 가기 위해 힘써야 한다. 이렇게 속삭이는, 사단의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어차피 너는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는 세상에서 자유롭고 방종하게 살아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혹은, 에덴동산에서 사단이, 하와에게 속삭였던 말임을, 기억해야 한다. 아담과 하와처럼 이러한 간교한, 사단의 유혹 빠져서, 하나님이 금하신 일(죄)을 행하면 안 된다. 사단이 이런 말을 하면, 바울처럼 단호하게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해야 한다.
죄의 유혹을 받을 때마다, 우리가 침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여, 하나 된 사람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처럼 변화된 신분에 대해, 기억할 때에 성령님이 죄를 극복하고,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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