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6년 1월 3일 - 죄의 무기에서 의의 무기로(롬6:12-14)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6-01-03 |
첨부파일: 죄의 무기에서 의의 무기로.hwp(35K) |
죄의 무기에서 의의 무기로(롬6:12-14)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사람들이다. 침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한 흔적이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침례 받은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서 죽고, 하나님을 향해 다시 살아났음을 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을 위해서 다시 살아난 자’로 여기라고 했다(11). 성도들은 더 이상 죄의 본능이, 왕 노릇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죄와 관계없는 존재, 하나님을 위해 사는 존재가 되었다.
우리가 의로워진 성도라면, 그 순간부터 크든 작든, 변화가 일어난다. 변화의 정도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생명이라는 본질에서는 같다. 전혀 삶의 변화가 없고, 아무런 생명의 약동함이 없을 때에 과연 그가 의로워진 성도인지, 한번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1. 죄가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그러므로’는 앞의 말씀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라는 말이다.
죄는 이전 사람들을 지배하여, 죽을 몸이 되었다(5:12). ‘지배하지 못하게’(메 바실류에토, 왕 노릇하다, 다스리다.)의 명령형, 현재이다. 헬라어에서 ‘하지 말라’는 표현에는, ① 부정어(메) + 명령형 현재를 쓰는 경우와, ② 가정법 과거를 쓰는 경우가 있다.
① 전자는 이미 시작하고 있는 동작을, 금지시킬 때이고 ② 후자는 동작을 시작하기 전에, 금지시킬 때 각각 사용한다. 동작을 금지시킨 것이다. 따라서 계속적으로, 죄가 지배하도록 못하게 하라는, 말이다. 성도들은 죄에 대해 죽었고, 하나님에 대해 산 자이므로, 몸의 사욕에 순종해서는 안 된다.
의로워진 사람은, 죄가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할, 능력이 있기에, 현재 명령형으로 썼다. 우리는 죄에 대해 죽고, 다시 살아났다. 옛날의 습관이 남아있지만, 하나님께 대해, 살아있는 자로 여겨야 한다.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않기 위해, 죄가 (썩어질 그들의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 값을 모두 다 지불했다. 따라서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몸의 욕심을 따르려고, 죄에게 복종할 필요가 없다. 죄의 세력은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도, 계속해서 우리 몸을 지배하려고 한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해, 죄의 지배에서 벗어난 성도들은, 더 이상 죄의 요구를 따르지 말고, 맞서 싸워야만 한다. 이는 이미 그리스도가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36년 동안, 일본 식민지로 있었다.
그 동안 일본은 우리나라에, 총독을 보내서, 우리나라를 지배했다. 그때에 우리 국민들은, 그들이 시키는 대로 복종을 해야만 했다. 만일 우리가 그 뜻을 따르지 않으면, 우리는 가혹한 형벌 내지, 죽음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들이, 일본과 싸워서 승리했다.
그리고 연합국은, 우리나라를 일본으로부터, 독립시켜 주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독립된 후에, 더 이상 일본의 통치를, 받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우리는 그 세력에서, 이미 벗어났다. 그러므로 독립된 후에 일본 군사들은,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지시를 따르는 사람들은, 매우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이처럼 우리는 죄와 사망의 노예였다. 그때 우리는 죄 때문에, 사망의 노예로 살아야만 했다. 우리는 그때, 의를 행하고 싶어도, 의를 행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죄 값을 지불했다.
우리는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었는데, 왜 또 다시, 죄의 통제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왜 또 다시, 죄의 지배를 받아야 하나? 이제 성도들은 더 이상 죄에게 복종하지 말고, 맞서 싸워야 한다. 우리의 주인은 더 이상, 죄와 사망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화는 한 번에 되는 것이 아니다. 계속 우리가 싸워야 할 부분이다.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다시 생활 속에서 갈등하는, 이러한 반복된 싸움이, 우리의 육신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계속 죄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를 거부할 수 있다.
우리는 죄와 싸울 때, 나의 주인은 이제 내가 아니라, 바로 주님이기에, 나의 원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원한다면, 내가 싫어도 순종해야 한다. 우리 몸의 사욕은, 충동적이고, 습관적이다. 따라서 주님께 순종하려면, 주님을 바라봐야 한다. 주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순종할 수 없다.
2. 몸을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내주지 말라(메 파리스타네페, 명령형 현재)이다. 이미 시작하고 있는 동작을, 금지시킬 때 사용하는 말씀이다. 로마교회 성도들은, 옛날에 죄에 내주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불의의 무기로 내주지 말고, 의의 무기로 드리라고 했다. 원래 우리의 지체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지음을 받았다.
우리는 의의 무기가 아니면, 불의의 무기로 사용된다. 우리의 지체(손, 발, 눈, 귀, …)들은, 죄를 행하는 무기로 제공하여, 죄를 짓고, 사망을 거두었다. 알코올 중독에 걸린 사람이 있었다. 성격이 매우 난폭해지고,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해, 술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술을 끊으려고 했지만, 집에 가는 길에, 술집이 있어서, 도저히 피해갈 수 없었다. 그런데 술을 끊을 수 있었다. 술집을 지나가기 전에, 우유로 배를 터지도록 충만하게 채웠다. 그러자 술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생각과 헌신으로 채워야 한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자가 되었다. 따라서 이제 우리 지체가, 죄를 행하는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의의 무기가 되어야 한다. 네 몸을 마귀의 무기로 바치지 말고, 적극적으로 네 인생을, 하나님이 쓰는 무기로 드리라는 것이다.
일본이 우리를 통치할 때에, 우리 재산을 빼앗아, 그들의 전쟁비용으로 사용했다. 우리 청년들을 끌어다가, 전쟁을 하도록 만들었다. 심지어 우리 여성들을 데려가서, 강제로 자기 군사들의 정욕을 채우는, 정신대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때 우리의 재산과 몸은, 징집당하여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불의의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때에 우리는 힘이 없었기에, 그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다. 우리는 당당히 독립된, 주권국가의 백성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일본을 위해, 전쟁 물자를 대고, 침략전쟁의 무기가 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이제 우리 재산과 몸으로,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 선을 행하는 무기가 되게 해야 한다. 전에 우리는 죄의 노예로, 몸의 욕심을 좇아 살았으며, 우리의 지체는, 악의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으면서, 우리 몸을 사단의 무기가 되게 하면 안 된다. 이제 우리는 사단이, 우리 지체를, 죄의 무기로 삼으려고 할 때마다, 사단과 맞서 싸워야 한다.
‘드린다.’는 말은, 나를 ‘마음대로 하십시오.’하고 갖다 바치는 것과 같다. 죄에게 드리어, 불의의 무기로 드리든지, 아니면 하나님께 의의 무기로, 드리게 된다. 하나님께 드려야, 죄를 지을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래서 계속 ‘하나님께 드리라.’고 강조한다.
이제 우리의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만 한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군사로, 우리 몸을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는 무기가 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죽은 자 가운데서, 산 자같이, 우리의 지체를 주님께 드려야, 죄에게 승리할 수 있다.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항복하고, 바치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나를 다스리고, 통치할 때, 나의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될 때에, 비로소 주님께서 약속하신 빛나고, 거룩한 삶의 승리를 체험할 수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체를 사용해야 한다. 술잔을 들던 손에서, 이제는 전도지를 돌리는 손, 욕하고 저주하던 입에서, 칭찬하고 감사하던 입, 찬양하고, 복음을 전하는 입으로, 음란과 방탕으로 질주하던 발에서, 이제는 잃은 양을 심방하는 발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3.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이유(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주장하다(우 퀴리유세이) ‘통치하다, 지배하다, 주가 되다’는 말이다.
바울은 앞에서, 우리 지체를 의의 무기가 되게, 드리라고 권면했다. 왜 우리 지체가, 의의 무기가 되게 드려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먼저 절대 오해하지 말라. 이제 율법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아니다. 율법의 저주 아래 있지 않다는 말이다.
① 죄가 더 이상 우리를, 다스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연합군에게 패한 일본처럼, 사단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패하여, 모든 권세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사단을 좇아서 죄가 우리를 주관하도록 방임하면 안 된다.
② 우리가 더 이상, 법 아래에 있지 않고, 은혜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에, 율법 아래에 있었다. 그때 우리는 율법에 순종하면, 축복을 받고, 율법을 거역하면,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율법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지만, 그것을 극복할 힘을 주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 몸으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죄를 지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우리 몸을 불의의 무기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법 아래에 있지 않고, 은혜 아래에 있게 되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사면해 주셨고, 우리 행위와 관계없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가, 죄와 싸워 승리할 수 있도록, 아들의 영(성령)을 보내주셨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패배의 법이 아니라, 승리의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법적인 용서와, 실제적인 성령의 힘을 모두 받았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성령 안에서 죄와 싸워서 이김으로, 우리 몸을 의의 무기가 되게 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귀중한 몸이, 죄의 무기가 되는 것을, 거부해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 몸이, 의의 무기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드려한다. 이것은 억지로 하는 법이 아니라, 기쁨으로 드리는 은혜가 되어야 한다.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서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싫어도 그 일을 해야 할 때, 얼굴이 구겨진다. 내가 안하면 안 되니까, 월급을 못 받게 되니까, 그 일을 하면, 힘들고 괴롭다. 그러나 좋아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은, 말릴 수가 없다. 하지 말라고 해도, 그것을 한다. 좋아서 그렇다. 따라서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 기뻐하는 일이 되기를 바란다.
죄를 이기고,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①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음을 알아야 한다. ② 죄에 대하여 죽고, 다시 산자로 여겨야만 한다. 자신을 끊임없이 의식화해야 한다. ③ 이제는 적극적으로 드려야 한다. 그래서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이전글 : 2015년 12월 27일 - 성령의 역사가 갑절이나(왕하2:1-14) | |
다음글 : 2016년 1월 10일 -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롬6:15-23) | |
이전글 다음글 | 목록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