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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5년 12월 27일 - 성령의 역사가 갑절이나(왕하2:1-14)
  작성자 : 이건기 작성일 : 2015-12-27
  첨부파일:   성령의 역사가 갑절이나.hwp(39K)

성령의 역사가 갑절이나(왕하2:1-14)

 

열왕기하는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멸망을 그렸다. 왜 이 나라들이 망했는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기고, 우상숭배에 빠져서, 북 이스라엘은 (B.C.722) 앗수르에 영원히 망했다, 남 유다는 (B.C.586) 바벨론 종교를 끌어들여, 결국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비극을 맞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이, 열왕기하의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거짓 선지자들의 증가로,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과 우상숭배에 빠지고, 이슬람이 증가하여, 우리를 위협하며,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와, 거룩히 예배하는 자가 줄어들게 되었다. 악하고 음란하고 세상이 되었다.

선하고 의로운 사람들이, 발붙이기 힘든 세상이다. 이때 영적부흥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어두운 시대마다, 타락한 시대마다, 사람들에게 능력을 베풀어주었다. 그들 중에,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은 사람이, 엘리야와 엘리사다.

이들이 활동하던 때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영적으로 가장 어둡고, 암울한 시대였다. 악한 아합 때, 모두 다 죄뿐인 시대에 엘리야가 활동했다. 이때 엘리야와 엘리사같이, 걸출한 믿음의 사람들이 등장하여, 부흥의 불길을 밝혔다. 부흥의 불길을 밝히려면,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은 부흥이 안 되는 시대라면서, 시대만 탓한다. 그렇지만 부흥이 되는 교회가 있는데, 이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자녀들이 잘못된 길을 간다고 탓만 한다. 따라서 우리는, 더 큰 성령의 역사가 필요하다. 예수님은 말세에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빠진다고 예고했다.

사람들은 박해와 환난으로 인해, 예수님을 배반하고, 성도들은 체포될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미혹하는 예언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영적인 죽음으로 인도하고, 불법이 성행하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진다. 사람들은 법을 지키지 않고, 사랑이 식어져서 이기적 행동을 하게 된다.

마지막 때는 미혹의 시대이기에, 말씀 위에 굳게 서라고 말씀했다. 말씀에 굳게 서서, 하나님과 성도들을 향한 사랑이, 식지 않기를 바란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다. 시대가 악하면 악할수록, 삶이 힘들면 힘들수록, 끝까지 견뎌내야만 한다.

이렇게 되려면, 내 힘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악한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고, 잘못된 사회를 바로 잡을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정말 필요하다. 그 방법이 바로, 성령의 충만함이다.

1. 마지막 순간에(1).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이 장면은 엘리야의, 마지막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이 땅에서 엘리야의 마지막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인생이, 끝났다고 하지 않았다. ‘여호와께서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했다.’ 엘리야의 마지막은 죽음이 아니라, 하늘로 올라갔다. 성경에 죽음을 통과하지 않고, 바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간 사람은, 단 두 사람이다.

고대에 살았던, 아담의 7대손 에녹이고, 또 한 사람은, 본문의 엘리야다. 어떤 인생은, 그냥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이 있지만 어떤 인생은, 하나님이 불러가는 인생이 있다. 엘리야의 인생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인생이 있음을 보여준다.

영원히 사는 인생,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인생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다 똑같은 인생이지만, 인생에는 2종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고든 맥도날드,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쫓기며 사는 사람들과 부름 받아 사는 사람들이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똑같이 바쁘다.

인생을 살 때, 먹고 마시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가정사, 직장과 산업 현장, 심지어 교회생활까지 얼마나 복잡한 가운데, 쫓기듯이 사는가? 그러나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도, 한 인생은 쫓기는 듯이 끌려 다니며 사는 인생이고, 한쪽은 정말 영광스럽게 살아간다.

이 차이점은 바로, 부르심에 있다. 부르심을 받은 인생을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이, 침례요한이다. 마지막 목이 베이는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또 그를 추종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난 예수라는 인물에게로, 다 갈 때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던 사람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부름 받은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닦는 일을 위해, 신랑과 신부를 위해, 들러리로 부름 받은 사람이다. 이는 나의 할 일이다.’면서 살았다. 엘리야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다. 세상이 배반할 때, 세상에 물들지 않고, 승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어떤 인생을 원하는가? 어떻게 인생을 끝내기 원하는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인생의 결론이 죽음으로 끝나기 원하나? 아니면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영생의 축복을 행해 가기 원하는가? 부르심 때문에,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승리하는, 성실한 삶이 되자!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지금까지 엘리사는 엘리야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런데 지금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하나님이 나를 벧엘로 보낸다면서, 너는 여기 머물라고 했다. 그러나 엘리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엘리야를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하면서, 엘리야를 떠나지 않는다.

(3-6)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이르되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매,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엘리야가 또,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 엘리야는 길갈(1)에서, 벧엘(2), 여리고(4), 요단(6)으로 움직이는데, 벧엘과 여리고에 있는 제자들이(브네) 엘리사에게, 오늘 선생님을 머리 위로 데려갈 줄 아느냐고 물었다. 엘리사는 나도 알고 있으니, 너희는 잠잠하라고 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엘리야는 마지막인 줄 알면서도, 성실하게,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했다. 그에게 명령한 그대로, 벧엘로 가라고 하면 벧엘로, 요단으로 가라면 요단으로, 여리고로 가라면 여리고로, 묵묵히 발걸음을 옮겨갔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떠나지 않았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역을, 계승하겠다는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어떤 경우도, 같이 하기 원했다. 우리는 오늘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임을 안다면, 어떻게 살아갈까? 하나님과 항상 함께 하는 성도가 되자.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후회 없는 삶이되기를 바란다.

2. 대표 주자(7-8).

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그 선지자, (엘리야)50명의 제자들은, 걸어갔지만 섰다. 50명의 제자들은 끝까지, 함께 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요단강 가에 서 있는, 그 두 사람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엘리야’(엘리야후) = 엘리(나의 하나님)은 야후(여호와, )는 겉옷을 취했다.

옷을 말아서(갈람, 접어 포개다, 말다.), 물을 치자(나카.), 물이 이리 저리(헨나, 우헨나) 반으로 갈라졌다(하짜). 그리고 두 사람은, 그 육지(하라바, 마른 땅)위로 건너갔다. 마지막 작별 순간까지,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를 향한, 간절함이 있었다.

하나님의 역사는, 아무나 이어받는 것이 아니다. 길갈, 벧엘, 여리고에도 선지자 학교가 있었다. 거기에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다. 다른 제자들은, 엘리야가 마지막 때가 되었음을 알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따라가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엘리사만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갔다.

여기 머물라는 소리를 들었어도, 끝까지 따라갔다. 하나님의 사역을 계승하겠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유업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말이다. 엘리야는 선지자 제자들을, 요단강 건너편에 놔두고, 강을 건너간다. 겉옷을 말아서, 물을 치니까, 여호수아 3장에 나오는 장면처럼 갈라졌다.

그래서 둘은 요단강을, 마른 땅처럼 건너갔다.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엘리야는 엘리사를, 하나님 일을 계승할 사람으로 확신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취하기 전에, 해줄 일이, 무엇인가를 말해보라고 했다.

(9)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엘리사는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이 말을 오해하면 안 된다. 성령은 물질이 아니다. 많고 적은 분량이 아니다. 온전한 인격이다.

갑절이나 있게 해달라는 말은, 이스라엘 장자에게만 허락된, 2배의 몫이다. (21:17)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하나님의 역사는, 영광스런 인생을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하는 사람을 통해서만 계속된다. 엘리사처럼, 엘리야의 사역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고, 그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바라는, 이러한 사람들만이, 엘리야의 사역을 유업으로 계승받게 된다.

엘리사는 자신이, 무능한 선지자임을 인정했다. 엘리야처럼 강한 능력이 없다면, 맡겨진 사역을 성취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사람들의 강퍅해진 마음과,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외부 세력들을 이겨낼 힘이 필요했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낼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이 절실했기에, 연약함을 인정했다.

엘리야 이후의 영적인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져야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의 능력, 그 예언을 성취시키는 능력이 필요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엘리야에게 임했던, 성령의 역사의 두 배나 되는, 하나님의 넘치는 능력이다.

성령은 제자들을, 진리와 생명으로 인도했다. 불의한 세력에서 건져내어, 원수의 목전에서 능력이 부어졌다. 이 능력으로 주님의 이름을 증거하며, 영광스러운 삶을 살았다. 만약 우리에게 성령님의 넘치는 은혜와 능력이 없다면, 사역은 가치 없는 것이 되고, 아무 능력도 나타낼 수 없다.

3. 성령의 능력이 넘치는 삶(10-11).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엘리사처럼 주어진 명령을 완수해야 한다. 죽음의 강인 요단강을 건너야 한다. 엘리야는 요단강을 건너기 전까지, 엘리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요단강을 건넌 이후에, 엘리사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요단강은(요레드단), 죽음과 심판의 강이다. 우리는 먼저 자신 안에 있는, 죄의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죽어야 하고, 교만, 자존심, 자만심 이러한 것들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야 한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하게 임할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고정해야 한다.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간절히 구하는 기도를 하고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에게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능력을 받기 위해, 완벽하게 집중했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며, 그리스도의 일을 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한다.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갔다. 엘리사의 사역은 이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엘리사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능력을 체험했다.

(12-14)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고,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요단 언덕에 서서,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엘리사는 엘리야 이후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알았다.

엘리야는 오랫동안 하나님의 군대 역할을 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알과 이세벨의 이방신들을 완전하게 심판했고, 타락하여 하나님을 조롱하고 비웃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두려움과 능력을 보여주었다. 엘리야가 없는 것이, 얼마나 큰 손해인지 알지 못했지만, 이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둠과 고통에 떨고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며, 새로운 사역을 시작해야 한다. 엘리야가 행한 대로, 엘리사는 그대로 행했다. 간절히 구하고, 깨어있는 자만이, 이런 능력을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마음에 새기고, 간절히 성령의 갑절의 역사를 구하는 해가 되자.

엘리야가 행한 이적과 삶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모형이다. 우리는 성령이 하시는, 갑절의 영감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언제까지 다른 사람을 탓할 것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을 바라보자.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이 아니라, 하늘로 올라가는 인생이 되자. 그러기 위해, 자신을 죽이고, 하나님께 시선과 마음을 고정하자. 성령을 주심을 믿고, 힘차게 나가자. 성령의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2016년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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