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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5년 8월 24일 - 사람은 모두 다 죄인이다(롬3:9-18)
  작성자 : 이건기 작성일 : 2015-08-23
  첨부파일:   사람은 모두 다 죄인이다.hwp(36K)

사람은 모두 다 죄인이다(3:9-18)

그 동안 이방 사람들의, 불경함과 불의(1:18-32), 도덕주의자들의 위선적인 죄(2:1-16), 그리고 율법을 자랑하면서, 순종하지 않는 유대인의 외식(2:17-3:8)에 대해, 바울은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의 초점을 바울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돌리고 있다.

사람들은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말을, 받아들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타락한 인간은 자신의 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본성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죄인이라고, 인정하기도 싫어한다.

그러면 우리는 나으냐?(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프로아이티아오마이, 먼저 고소하다, 먼저 증명하다.)”

바울은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고 답변했다. 바울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이미 정죄했던 사람들에 비해, 하나도 나은 점이 없다고 말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 모두가, 죄 아래에 있다고 했다. 죄는 잔인한 지배자이기에, 모두 다 지배를 받는다.

(1) 의인은 없다(10-12).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기록된 바와 같다.’고 하면서, 온 인류가 타락했음을 증언하기 위해, 바울은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7: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14: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고 했다.

사람들은 위대한 인물로, 3종류의 사람들을 말한다. 의인 깨달은 선각자 위인 성자다. 본문에는 성자가 나오지 않지만, 하나님을 찾는, 구도자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중세기까지만 해도, 구도자들, 하나님과 진리를 찾는 자들을, 위대한 사람과, 성자로 삼았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고,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여러 구절을 인용했다. ‘의인이 없다. 하나도 없다.’ 영웅이든지, 지혜로운 사람이든지, 성직자든지, 예외 없이 다, 죄 아래 있다고 했다. 인간은 태양 아래에 존재하듯이, 그 누구도 죄를 비켜 갈 수 없다.

마치 태양을, 손바닥이나 양산으로 가리고, 생긴 그늘로 인해, 나는 괜찮다고 함과 같다. 이러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기가 정말 어렵다. 범죄자가 잡히면, 범죄를 끝낼 수 있지만, 안 잡히면 계속 범죄 할 수 있다. 자신은 선하고, 다른 사람을 구제하며 살기에, 죄가 없다.

있어도 크지 않기에, 하나님이 봐준다는 착각에 빠진 사람들이다. 죄인이란 소리가 듣기 싫어서,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살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올바로 살기에,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하지만, 성경은 의인은 없다고 말한다. ‘없다.’(우크), (10-12)까지 6번이나 나온다.

하나님을 찾는 자도,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 다만 악을 행하는 자만 있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의는, 상대 개념의 의가 아니라, 절대적인 개념의 의를 말한다. 선만 행하고, 죄악은 전혀 행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노아는 당대의 수많은 악인들에 비교하면, 의인이었다. 그러나 노아도, 절대적인 개념으로 보면, 의인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완전한 의에 입각해서, 판단할 때, 무죄한 인간은 하나도 없다. 컴퓨터 촬영을 해보니,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었다.

(2) 치우친 인생(12).

치우쳐’(에클리노, 퇴보하다. 떨어져나가다.), 변절과 배교를 말한다. 무익하게 되고, 맛을 잃은 소금이나, 썩은 과일처럼 되었다. 자신이 하나님처럼 행동하거나, 스스로 하나님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파스칼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의인, 위인, 성자, 3가지 단어들을, 신용하지 않는다. 나는 의인, 위인, 성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이 땅에는 오직 한 가지 종류의 사람들만이 존재한다. ‘그들은 바로 죄인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를 잘 알고 있다. 그가 얼마나 위인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원주민과 끊임없이 불화와 갈등을 겪었으며, 자기가 치료하는 환자들에게, 매우 냉정했던 사람으로, 그들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았고,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성경의 권위를 격하시킨 사람이다.

2. 신체 기관을 통한 죄들 증거

(1) 사람들의 발성기관을 통해 죄들(13-14).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했다. 여기서 말하는 신체기관인데, 가슴이 악함을 다양하게 표현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여기서도 성경말씀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목구멍’(라륑크스)은 열린 무덤으로, 사람들을 죽여, 통째로 받아들이는, 야만성을 보여준다.

(5:9)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을 인용한 말씀이다. 목구멍을 열린 무덤(타포스)으로 표현했다.

이스라엘을 포함한 중동지방에서는, 무덤입구를 한국처럼, 흙으로 덮어 놓지 않는다, 돌로 입구를 막아 놓는다. 중동의 뜨거운 나라에서, 그 시체가 썩는 냄새가, 얼마나 많이 나겠는가? 그런데 돌을 굴려 놓으면, 그 속에서 썩는 냄새가, 풍겨 나오게 된다.

’(글롯사이스, 방언), 속임을 일삼는다(에돌리우산, 돌리오오, 교활하다, 속이다의 미완료).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만 아니라, 남의 영혼을 죽이는, 이단사설의 거짓된 교훈을 말한다. 마치 하나님에게 온, 거룩한 진리처럼 말하지만, 오히려 사망으로 이끈다.

입술’(케일로스), (140:3)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 혀와 입술에서는 꿀이 떨어지지만, 죽이는 독과 비수가 가득하다는 말이다. 남을 죽이는 비난, 중상모략, 불평불만의 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스토마, 언어)에는, 저주(아라)와 악독(핔리아, 쓴 맛, )이 가득하고(게모, 가득하다, 부풀다.)” (10:7) “그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하며, 그의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인용한 말씀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 남을 저주하는 말들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

죄의 세력은, 우리의 모든 지성과 감정, 성적 활동과 양심과 의지를 포함한, 모든 부분까지 침투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치, 온 몸에 화상을 입은 환자처럼, 모든 인격 구석구석까지, 죄의 세균에 감염되어 버렸다. 구약 성경은 사람의 목구멍이, 마치 열린 무덤과 같다고 말한다.

열린 무덤에서, 시체가 썩는 악취가 나는 것처럼, 그 입으로 온갖 부정하고, 더러운 말을 내뱉고 있다. 성경은 사람들이, 혀로 날마다 거짓말을 해대고, 입술 밑에는, 상처를 입히는, 치명적인 독이 숨겨져 있으며, 입에는 남을 저주하는 악담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2) 행동을 통한 죄들(15-17).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사람은 죄악의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죄악도 행했다.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15), (푸스, 아래쪽 끝)은 악한 사람의, 악한 행동을 지적한다. 발은 복종을 상징한다. 우리의 발은 돌아다니면서, 피 흘리는데 빨랐다(옥쉬스, 날카로웠다). ‘발이 폭력과 피 흘리는 일을, 하는 곳으로 빨리 달려간다.’고 말한다.

우리 발은 이웃을 위해 희생하고, 돕는 일에는 아주 천천히 간다. 그러나 그릇된 일을 할 때에는, 신속히 달려간다. 물론 내가 어떤 사람을, 직접 살인하지 않았다고 해도, 나 때문에 방황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상처를 주어서, 피 흘리게 하였다면, 파멸과 고생으로 이끄는 자다.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16-17)(59:7-8)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생각은 악한 생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있으며,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를 말씀을 인용해 설명하였다. 사람들은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며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을 세워주는 일보다는 파괴하는 일이라고 한다.

이런 자들은 스스로, 평강을 체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남들에게 평강을 주지 못한다. 인간의 잔악함이 여기에 잘 나타난다. 사람이 이렇게 악을 행하기에, 그들이 가는 길에, 평안이 사라지고, 대신 파멸과 불행으로, 가득 차버렸다고 말한다.

3. 죄의 원인(18).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36:1)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를 인용해서 말씀했다.

인간은 마땅히,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찾지도 않으며(11), 하나님을 두려워(호보스)하지도 않았다(18).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대로 악을 행하고 있다. 인류의 죄의 원인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데에 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자기 사상에서, 하나님을 제거했다(무신론).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과 쾌락과 재물을 더 사랑한다. 그들은 하나님께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할 인간이,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스스로 왕이 되려는데 있다. (17-18)없다’(우크)2, 또 나온다. 그래서 본문에 전부 8번이나 나온다. 우리 인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모두 다 죄인이라고 말씀한다.

따라서 변명이나 핑계를 대고,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말라. 동성애가 문제인 것은, 죄를 자꾸만 죄가 아니라고 말하며, 이를 오히려 권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죄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병을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참고 있으면, 절대 안 된다.

어떤 사람은 증상이, 심각하게 나타나지만, 어떤 사람은 증상이, 미약하게 나타난다. 병의 증상이 있을 때, 자신이 스스로 그 병을 진단하는 일을, 조심해야 한다. 그 병을 나의 마음대로 추측해서, 약을 먹으면 안 된다. 그 증상을 인정해야 한다. 증상을 감추면 병을 고칠 길이 없다.

의사 앞에 병을 인정하고, 증상을 말하고, 옷을 벗고 치료를 받아야, 원인을 알 수 있다. 의사가 처방한 대로 겸손히, 그 병을 받아들일 때, 고칠 수 있다. 우리 영혼도 마찬가지다. 나의 죄를 드러내야 한다. 감추면 속으로 곪아, 결국에는 죽고 만다. 죄인도 죄를 드러내야 한다.

착하게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종교적으로 사는 사람도, 자기의 죄를 드러내야 한다.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보고 계신다. 숨기는 만큼 손해다. 고백하기 어려운 병도 있지만, 그래도 드러내야 한다. 사람들 앞에 죄를 드러내지 말고, 주님 앞에 드러내면, 치료받고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진정 존중받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죄악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인정하고, 나의 부패한 모습을, 하나님 앞에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는 사람, 내 안에 연약함과 부패됨을 알기에, 성령님의 지배 앞에, 자신을 복종시키는 자다.

오늘 말씀 속에, 자신의 죄 된 모습이 보이는가? 그렇다면 죄악을 심판하는, 두려운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한다. 하나님이 두려우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요, 주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죄인들이 피할 곳은, 한 곳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죄인 된 나를, 구원하려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예수님 앞에 오라. 거기에 용서가 있다. 거기에 새로운 생명이 있다. 예수님 앞에 와서, 주님이 주시는 용서와, 새 생명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은혜가 넘쳐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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