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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5년 8월 2일 - 율법과 양심(롬2:2-16)
  작성자 : 이건기 작성일 : 2015-08-02
  첨부파일:   율법과 양심.hwp(38K)

율법과 양심(2:12-16)

 

지난 주 말씀은, 이방인들 중에서, 남을 판단하는 사람, 양심적으로 산다는 사람의 죄였다. 남을 판단하며 사는 사람이지만, 그도 똑같이 죄를 범하는 죄인이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계속 고집부리며,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두어, 결국은 망한다.

하나님은 심판은 진리가 기준이고, 사람들의 행위를 따라 심판한다. 악을 행한 자에게는, 환난과 곤고가 있다. 유대인과 헬라인을 똑같이 심판한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심판할 때, 중심을 보고 심판하기에, 실수가 없다고 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유대인은 하나님께 율법을 받았기에, 선악에 대한 지식이 있기에, 의롭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방인은 하나님의 율법을, 받지 못했기에, 공평하지 않다고 불평을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공평하게 심판할 수 있는지, 잘 설명해 주고 있다.

1. 율법 없이 범죄한 자와, 율법을 받고 범죄한 자의 심판(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받았다고, 무조건 의인이 아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똑같이 죄를 범했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방인이나 유대인을, 모두 범죄한 자라고 했다. 율법은 2가지로 표현할 수 있다. ‘하라하지 말라.’2가지 내용이다.

양심도 비슷한 기능이 있다. ‘해야 하나?’하지 말아야 하나?’이다. 그러므로 양심은 기록되지 않은 불문법이라 할 수 있다. 바울은 율법을 받지 않고, 죄를 범한 (이방인), 율법 없이 망하고, 율법을 듣고 범죄 (유대인), 율법을 통해 심판을 받는다고 했다.

유대인은 하나님께 율법을 받아, 선악에 대한 분별력이 있었다. 그들은 매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율법을 낭독하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유대인을 심판할 때, 율법을 근거로 해서, 그들을 심판한다. 그러나 이방인은, 율법이 없는 그 상태 속에서, 심판을 받는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이런 질문을 받는다. 우리가 존경하는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같이, 착하게 살았지만,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고 한다. 이렇게 묻는 사람에게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율법 없이 망하고, 율법이 있는 자는, 율법으로 심판한다고 말씀한다.

다행히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이, 양심에 거리끼는 죄가, 하나도 없다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 (2: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라고 했는데, 이처럼 양심에 거리끼는, 조그만 죄가 하나라도 있으면, 그도 죄인이 된다.

하나님은 심판할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한다.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이 무엇인가? 복음을 다 들었다면, 그것으로 심판하지만,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심판할 것이다. 율법 없이 죄를 범한 자는, 율법 없이 망하고, 율법을 가지고 죄를 범한 자는, 율법으로 심판을 받는다.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율법을 날마다 듣고 살아도, 율법을 행하며 살지 못할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수 있는 사람은, 율법을 듣고 행하는 자이다.

하나님은 율법을 받고, 율법을 어긴 유대인이, 율법에 제시된 약속을 따라, 공정하게 심판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율법을 받았다고 자랑하였지만, 율법을 소유하고 있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율법대로 사느냐가 문제라고 했다. 성경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대로 사는 것은 아니다.

내가 율법대로 살지 못하면, 내가 자랑하는 율법이, 나를 판단한다. 그렇게 살지 못하면, 심판의 날에, 내가 자랑하는 그 율법에 의해서, 심판을 받는다. 그러면 율법 없이 살고 있는, 이방인들은 어떻게 심판을 받을까?

2. 이방인의 심판 기준 : 양심(14-15).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따라서 이방인들은, 율법을 받지 않았다고 불평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 안에, 이미 율법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방인은 하나님께 율법을 받지 않았지만, 그들 안에 새겨진 본성, 율법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래서 이방인도, 십계명에서 명령하는 일들, 부모를 공경하고, 순결과 정절을 지키며, 정직하게 살고,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들의 양심이, 율법처럼 분명하게, 선악에 대해 말해주지는 않는다.

희미하고 분명하지 않지만, 그들은 이미 양심을 통해, 율법이 요구하는 것이, 옳음을 알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사람들을, 자신의 형상을 따라, 도덕적인 인간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이, 율법을 받지 않았다고, 불평할 필요는 없다.

율법이 있는 사람들은, 율법을 기준으로 심판을 받는다. 율법이 없는 사람들은, 양심으로 심판을 받는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인간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양심이라는 법을 새겨주셨다. 이 세상의 어떤 문화권에서도,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면, 양심이 증언한다.

우리 마음에는, 탐지기가 들어 있다. 공항에 들어갈 때, 몸에 금속이 있으면, 소리가 난다. 혹시 가방 속에 위험물이 있으면, 모니터에 드러난다. 인간에게도 하나님이 주신, 탐지기가 있다. 그것이 양심인데, 복음을 듣지 못한 불신자들은, 이것을 기준으로 심판을 받는다.

양심의 법은 이방인이, 그 원칙을 벗어나서 살 때에, 그 행위가 그릇된 것이라 비난한다. 양심의 법은, 이방인의 행위에 대해, 검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은밀하게, 음란한 행동을 했다고 하자. 그러면 즉시 우리 양심의 법은, 우리의 그릇된 행동에 대해 고발한다.

그러면 나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판결하고, 스스로 자신을 정죄하거나 위로한다. 물론 우리가 지은 죄로, 세상법정에서 형벌을 받을 수 있다.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 형벌을 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행한 모든 행동에 대해, 양심은 공정하게 판결할 수 있다.

그러나 양심으로 구원받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3:9-10)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했다. 하나님의 기준에 다 모자란다는 말이다.

초등학교에서 구구단 시험을 친다. 그때 7X8=56이라고 해야 하는데, 어떤 아이는 78이라고 하고, 어떤 아이는 55, 어떤 아이는 46이라고 썼다. 선생님은 그래서 0점 처리를 했는데, 시험지를 받은 한 아이가, 선생님에게 항의를 한다.

선생님, 왜 저 아이도 0점이고, 저도 0점이어요, 78이라 쓴 아이는, 22나 차이가 나고, 46이라고 쓴 아이는, 10이나 차이가 나는데, 나는 고작 1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내가 저 아이들과 똑같이, 0점을 받아야 하나요?” 이렇게 말하는 것이 곧, 사람들이 갖는 개념이다.

사람들은 55정도 되었으면, 천당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율법이 있든 없든, 죄와 의는 분명한 기준이 있다. 정답에 이르지 않으면, 모두가 죄인이다. 하나님 앞에서 양심은, 절대 기준이 아니라, 최소기준이다. 양심을 따라 산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기에, 사람은 죄인이다.

사람들의 개념은, 사람을 죽일 때까지는, 죄인이 아니다. 간음할 때까지는 간음자가 아니며, 남의 것을 도둑질할 때까지는, 도둑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개념에서는, 사람의 마음에 살인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에, 살인한다는 것이다. 간음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에, 간음하게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심판(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모든 사람이, 죄로 죽을 수밖에 없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다.

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난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다가, 죄가 없기에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했다(1:2-4). 이것이 바울이 우리에게 전한, 복음이었다. 복음으로 심판을 받는다는 말은, 복음으로 구원도 받음을 말한다.

바울은 지금까지 행위에 의한 심판을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에 따른 심판을 언급했다. 은밀한(크륍토스), ‘사직인, 내부의, 비밀의라는 말이다. 주님은 우리의 행위만 심판할 뿐만 아니라, 그 행위를 만든 배후에 있는, 우리의 동기를 판단하고, 심판한다.

우리 죄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지은 죄에 대해서, 심판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죄를 기록해 두었다가, 마지막 날인 최후의 심판 때, ‘은밀한 것들이다 나타나기에, 공정하게 심판한다. 유대인들은 경건함을, 외적으로 나타내려고 했다. 그래서 경건한 걸음걸이를 연습했다.

얼굴을 땅에 대고, 오랫동안 엎드려 기도하면, 경건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도 평소에는, 엉망으로 살다가, 주일 아침에는 교회에 간다고, 그것이 우리를 경건하게 만드는가? 그러나 우리의 속과 겉은, 매우 다를 수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신다.

레이더가, 우리 눈으로 보이지 아니하는 비행기나 잠수함, 물고기 때를 알아내고, 가이거 계수기가 지하의 광물질까지 알아낸다. 유한한 인간의 능력도 이러한데,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떻겠나? 바울은 이렇게 은밀한 것들을 드러내는 심판을 말하면서, ‘나의 복음에이미 일러두었다고 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은혜의 복음이지만, 그 복음을 거절했을 때에는, 만민에 대한 심판이 포함된 복음이다. 바울은 도덕적인 이방인에게 나타날,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3가지 점을 강조하고 있다.

(1)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최후 심판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복음은 구원의 메시지인 동시에 심판에 대한 선언이다. 복음은 믿는 사람에게는, 구원을 약속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심판과 형벌의 선고다. 마지막 날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은, 복음이 경고한 대로 이루어진다.

(2) 최후의 심판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은 모든 심판을, 예수 그리스도께 맡겼다(5:22.27). 예수님은 마지막 심판 날에, 심판의 주인공이 되어, 믿지 않는 사람들을 공정하게 심판하실 것이다.

(3) 최후의 심판은 우리의 은밀한 모든 것도 심판할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마지막 심판 때에, 그 동안 숨겨진 행위를, 다 드러낼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중심을 알고 있기에, 행한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숨겨질 수 없다(삼상16:7, 139:1, 17;10, 16:15, 4:12-13 ).

그러므로 마지막에, 예수님이 하는 심판은, 실수가 전혀 없는 공정한 심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르는 모든 일의 동기들과, 은밀한 것까지 모두 고려해서 사람들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양심을 따라 살았는지 반성해 보자.

우리는 남을 쉽게, 판단하지는 않았는가? 이웃을 판단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판단해야 한다. 자기 성찰과 자기비판은, 매우 필요하다. 내가 너보다 더 낫다는, 상대적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안목에 의해서 판단해야 한다.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보아야 한다.

자기를 학대하는 비판, 자학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대하는 생명에 이르는 회개, 자신을 교정하는 바람직한 성숙으로, 나아가야 한다. 진리대로 나를 판단하는, 하나님 앞에 서라. 그리고 숨겨 있는 내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한다. 이 회개를 거절하면, 하나님의 진노는 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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