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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5년 7월 26일 - 양심적으로 산다는 사람들의 죄(롬2:1-11)
  작성자 : 이건기 작성일 : 2015-07-26
  첨부파일:   양심적으로 산다는 사람들의 죄.hwp(37K)

양심적으로 산다는 사람들의 죄(2:1-11)

타락한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스스로 만들어낸 사상이나 종교로, 하나님을 대치했다. 그 결과 하나님을, 새와 짐승의 모양으로 만드는 죄를 범했다. 하나님이 그들을 내버려두자 정욕을 좇아 살게 되었고,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 될, 온갖 더럽고 불의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런 일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됨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을 할 뿐 아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들도 옳다고, 인정하기까지 했으니, 사람이 얼마나 악한 죄인인지를, 하나님 앞에서 핑계할 수 없다. 이제 바울은 또 다른 사람들을 향해 말한다.

1. ‘양심적으로 살려는 사람(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1)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그러면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에 대해서는, 2가지 견해가 있다.

유대인으로 보는 견해다. 이 견해는 바울이 1장에서, 이방세계의 죄에 대해 언급하고, 2장에서는 유대인의 죄를 언급한다고 말한다. 2장에 책망 받는 대상이, 유대인이라는 지적은 없지만,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유대인으로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이방인 중에 양심적인 사람, 도덕주의자로 보는 견해다. (1:18-32)은 타락한 이방 세계의 죄를 다룬다. (2: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라며, 유대인의 죄를 지적한다. 그 중간(2:1-16), 이방인 중에, 특히 양심적으로 살려고 하는, 양심주의자의 위선적인 죄에 대해 다룬다고 말한다.

이방세계에, 온갖 죄를 저지르며 사는, 극도로 타락한 사람들이 많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는 성인처럼 보이는 사람과, 많은 철학자와, 윤리주의자들이 있었다. 윤리주의자들은 로마의 비윤리적, 행동을 보고 한탄했다.

만일 바울이 이방세계에 대한 묘사를 (1:18-32)에서 끝내고, (2:1)부터 유대인에 대해 언급했다면 이방세계에서 착하게 살려는 사람들에 대해, 무엇인가 부족하니, 내용의 흐름으로 보아도, 타락한 이방들 중에, 이방의 양심적인 사람의 죄를, 언급한다고 보는 견해가 자연스럽다.

이방 세계에는 악을 보고, 비판하며 올바르게 살려는 사람들이 있다. 양심을 따라, 바르게 살도록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 철학자, 윤리 교사, 그리고 종교인은 나름대로 바르게, 인생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선악을 구별하는, 양심의 기능이 뛰어나며, 선악에 대해서도, 남다른 분별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선악에 대해 일평생 연구하여, 자신이 깨달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이들은 (1:28-32)에서 언급된, 불의한 행동들을 보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자기는 양심적이고, 선하다는 사람들은, 죄를 말하면 별로 놀라지 않는다. 자신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 같이 선한 사람은, 지옥에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2장에서,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라고, 바울은 말했다. 자신은 선하다며, 남을 판단하는 사람의 특징은 남을 비판하기 잘한다. 자기 결점은 잘 안보이고, 남의 잘못은 크게 보인다. 이런 사람들의 모습이 바리새인들이다.

자신은 선하다며, 남을 판단하는 사람의 특징은 자기가 범하는 죄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남을 판단하지만, 너도 똑같은 죄인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동일범이다. 남의 죄는 자꾸 비판을 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2.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수 없다(1).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러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핑계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지만, 자신도 똑같이 죄를, 범하기 때문이다. 양심적인 도덕주의자들은 다른 사람이 행하는 불의를 보고, 절대로 그들이 옳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예리한 양심의 눈으로,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선한 길로 인도하려고 하지만, 다른 사람이 행하는 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남을 정죄하지만, 자신도 그 일을 행하는 사람이니, 양심적인 사람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날 수 없다. ‘도찐개찐’, 즉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다.

(2-3)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하나님은 진리로 심판하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도덕적인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악을 행하지 않는다. 바르게 살아보려고 노력한다. 악을 행하지 않으려고, 금식이나 고행도 한다. 때로는 깊은 산에 들어가서, 수행도 한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다를 바 없다. 도토리 키 재기다. 죄 속에 사는, 죄인에 지나지 않다.

자신을 본다면,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를 위장하고, 위선적으로 행동할 때가 많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더 큰 심판을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선악에 대해, 분명한 판단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부족한 사람이 살인을 때보다, 성직자나 교수 같은 사람이, 죄를 지은 경우에, 더 큰 비난을 받음과 같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방 세계의 양심적인 사람도 역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핑계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심판은 진리가 기준이다.

(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사랑이기에, 우리를 심판하거나, 지옥에 보내지 않고, 죄인들을 모두 다 용서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죄인들을 참고 기다려 주는 이유는,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끝내 회개하지 않고 계속 죄를 지으면, 결국 멸시하는 행동이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핑계 대고, 계속 죄를 짓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비를 멸시하고, 고집부리는 사람이다.

성경은 죄인을 사랑하라고 말씀한다. 그러나 범죄 하는 자의 죄를 인정해 줘서, 죄를 계속 짓도록 하라는 말은 아니다. 죄를 회개하고, 돌아서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 죄인들을 사랑하라는 말을, 죄를 인정해주라는 말로 받아들이면, 잘못된 생각이다.

(5-6)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이러한 고의적인 행위는,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진노를 쌓아 놓기에, 더 큰 심판을 받게 된다.

어떤 사람은 회개할 기회를 줘도, 계속 고집 부린다. 즉 회개하지 않는다, ‘고집’(스클레로테스)완고함, 굳음을 의미하며 회개하지 않는’(아메타노에톤)잘못을 돌이키지 않고, 계속 고집부리는 모습을 의미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과, 잘못을 지적해도, 무시하고 회개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고집부려 회개하지 아니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진노를 쌓게 된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이, 자신이 받을 진노를 쌓아놓고 있다고 경고한다. 당장에는 죄에 대한 형벌이, 지연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의 행위를 따라, 진노를 쌓아두었다가, 정확한 때에 심판한다. 우리가 저금 들면, 당장은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계속 적금을 부으면, 재산은 점점 증가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찾게 된다. 회개할 기회를 무시하고, 계속 죄를 짓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저축하는 자다.

그들이 행한 악에 대해, 언젠가는 한꺼번에,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된다. (62:12)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예수님도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지막 때에 심판을 말씀했다.

하나님의 심판은 분명히, 우리의 행위를 따라, 정확하게 시행된다.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숨겨진, 우리의 모든 은밀한 일까지 찾아서, 심판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롭기에, 정직하게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모든 죄를 용서해 줄 것이다.

그러나 죄를 계속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증표인 예수 그리스도도 믿지 않으며, 행한 대로 심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심판 날에, 심판할 증거가, 우리가 세상에서 행한, 믿음의 행위들이다.

3. 선과 불의를 좇는 자에게 주어질 보상(7-8).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마지막 심판 때에 영생을 받는 사람도 있고, ‘진노의 심판을 받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무엇을 받을지는,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참고 선을 행하며,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않는 것을 구한 사람들은, 영생을 받게 된다.

참고 선을 행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살아감을 의미한다. ‘영광’(독사)장차 얻게 될,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며(8:30), ‘존귀’(티메)하나님의 자녀로서 갖는 존귀함을 말하고, ‘썩지 아니함’(압살씨아)부활에 참여할 것을 말한다.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않는 것을 구하는 사람은,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죄가 판치는 세상에서 참고 인내하며, 믿음으로 살아감은 참된 성도들의 특징 중에 하나다. 이런 사람은 심판 때에, 심판에서 벗어나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 중에는,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않고, 불의를 따르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에게, 진노와 분노(엄한 심판)로 갚아준다. ‘당을 짓는다.’(에리이아)공직에 있는 사람이, 부당한 수단으로, 이기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당을 짓는 사람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사람이다. 그들은 이기적인 욕심과 야망을 추구하며, 소망 없는 존재처럼 살아간다. 이러한 사람들은, 남을 시기하며 질투하며, 이로 인해 또 다시, 분열과 다툼이 일어난다. 자기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거역한다.

불의’(아디키아)의롭지 못하는 일을 말한다. 이기적인 욕심과 야망을, 추구하는 사람은, 결국 의를 떠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마지막 날에 크게 징계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죄를 지을 수 있지만, 회개하지 않고 버틴다면, 결국 심판이 있다.

(9-11)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바울은 악을 행하는 사람들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라고, 경고한다. 하나님은 공의롭다. 그러므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평안을 제거하고, 고통과 고난을 당한다. 여기에 나오는 환난’(맆시스)재난이나 시련을 의미하고, ‘곤고’(스테노코리아), 마음의 고통을 말한다.

하나님이 악을 행하는 자의 영혼에, 환난과 곤고로 채워준다. 이러한 심판은 유대인에게도 내려질 것이고, 헬라인에게도 내려질 것이다.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을 공정하게 심판할 것이다.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인내하며,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 영광으로 입혀주고, 그의 이름을 존귀하게 하고, 그 마음에는 평안으로 채워준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을 구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중심을 보고, 판단하라고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잘못되는 법이 없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고 판단하기에, 심판할 때에 사람의 낮을 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악을 행한 사람에게는 고통을, 선을 행한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안을 줄 것이다.

사회를 향한 비판을, 완전히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남을 쉽게 비판하지 말자. 우리는 자신을 하나님 말씀 앞에서,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잘못했다면, 자꾸 변명하거나, 고집부리지 말고 회개하야 한다. 그래야 용서가 있고, 희망이 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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