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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5년 7월 12일 - 합당하지 못한 일이 죄다(롬1:28-32)
  작성자 : 이건기 작성일 : 2015-07-12
  첨부파일:   합당하지 못한 일이 죄.hwp(38K)

합당하지 못한 일이 죄(1:28-32)

 

하나님은 사랑이다. 그런데도 진노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진리를 고의로, 막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사람들에게 주었다. 그러나 스스로 거부함으로, 엉뚱한 것에 마음이 끌려, 살게 되었다.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살게 됨으로,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했다.

바울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내린 형벌 중에서, 특별히 성적 부도덕에 대해 언급했다. 죄는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행동, 역리로 행하게 만든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가장 현저한 증거로, 동성애를 제시했다.

바울은 하나님을 거부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 성적 부도덕을 넘어, 우리의 삶에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상당한 보응을 받았는데,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각종 타락이 나타난다. 본문에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1.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함(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인간의 죄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싫어했다.’(절대 아니다) ‘콘타’(이 되다, 편리하다, 적합하다.) = 적합하지 않다는 뜻이다.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일이, 가치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거나, 섬기는 일을 거부한다. 예배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들은 돈이나, 건강, 쾌락 등에는, 관심과 반응을 보이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창조를 거부하고, 만물이 옛날부터 저절로 있었다고 주장하며, 세상에 인격적인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타락한 인간은, 마음과 생활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하니까, 간섭한다면서 귀찮아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마음에서 내쫓았다. 하나님이 내쫓는다고, 내쫓김을 당하는,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자, 오히려 하나님께 버림받는 짓만 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그들을 상실한 마음에 내버려 두었다. ‘상실한’(아도키몬) (아니다)+도키모스(받을만한, 인정된, 연단된) = ‘무가치한, 버림받은, 합당하지 못한다.’뜻이다. 상실한 마음은, 하나님께 버림받아, 가치를 잃어버려서, 추구하는 것이, 부적절한 마음이 됨을 말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무가치하게 생각하자, 하나님도 그들을, 가치 없는 삶을 살도록, 내버려 두셨다.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어서, 사람들이 옳은 것에 벗어나는 일들을 행하게 되었다. 옳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인간의 본분을 벗어나서, 하나님과 자신에게, 미움과 증오를 받을 만한 일, 죄만 행하며 살고 있다. 우리는 죄짓지 말아야 함을, 알고 있지만, 죄를 짓는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계속해서 죄를 짓는다.

29절 이하에서, 합당하지 못한 일들을, 21가지로 나열한다. 이것을 보면, 정말 악에는 끝이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악이 악을 낳고, 악이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 해당하는지 살펴보자.

2.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면, 각종 죄들이 나타남(29-31).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이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행하는 합당하지 못한 일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바울은 당시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들의 행위에서, 합당하지 못한 일들을 열거했다.

이 목록이 당시의 모든 죄를, 제시했다고는 할 수 없다. 아마 바울은, 당시와 이전시대에 사람들이 행했던, 각종 불합리한 행동들을, 기억나는 대로 모두 다 열거했다. 바울이 열거한 죄의 목록과 의미는 다음과 같다. 크게 5가지 죄로, 분류할 수 있다.

(1) 마음의 악함이 나타남.

모든 불의’(아디키아: 잘못되고 거짓된 일, 부정이나 비행), (아니다) + 디케(공의, 옳은) = 옳지 않다는 말이다. 여기서는 아래에 기록된, 모든 부도덕한 일들을 말한다.

하나님의 의와, 계획에 반대하는, 행동들을 말한다. 자기 이익을 위하여, 그렇게 행동하지만, 실제는 유익하게 만들지 못하고, 도리어 해롭게 된다.

음행’(포르네이아, 근친상간을 포함한 음행, 간음, 상징적으로 우상숭배). 우리 성경에는 없고, TR(표준역)에는 나온다.

추악’(포네리아, 윤리적으로 더럽고, 깨끗하지 못한 일),

탐욕’(플레오넥시아, 분에 넘치는 욕심, 시기나 강탈) 하나님의 법을 떠나, 많은 가지려는 욕심이다. 악의’(카키아: 악한 뜻, 의지)가 가득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사람을 무가치한 마음에 내버려 두어, 마음에 옳지 못한 악한 뜻과 의지로, 가득 찬 존재가 되고 말았다.

(2)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함들

시기’(노스, 질투, 악의) 남을 미워해서, 깎아내리고, 정죄하게 된다. 시기에는 독이 들어있다.

살인’(노스: 다른 인격을 죽이는 것)인데, 마귀는 살인을 일삼는다.

분쟁’(에리도스: 말로 다투기를 좋아하는 성품)을 일삼으며,

사기’(돌로스: 거짓으로 꾀어서, 남에게 해를 입혀 이익을 취하는 것),

악독’(카코에-이아: 남을 해치려는 마음) = 카코스(악한) + 에도스(도덕적인 습관, 예법, 태도), 서로 질투하며, 죽이고, 싸우며, 남을 속여 해치려는 마음이 가득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3) 말로 짓는 악함들.

수군수군’(핍시쑤리테스: 은밀히 남을 모해하고 중상하는)하며,

남을 비방하는’(카타라로스: 습관, 관례, 태도, 익숙하다, 중상 모략하는)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자, 사람들은 혀와 언어가, 타락하게 되었다. 그들은 거룩한 말을 해야 할 입으로, 남을 중상모략하고,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들을, 내뱉는 사람들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흉을 즐기고 있지는 않는가? 비방하는 자, 다른 사람을 욕하고, 다니고 있지는 않는가?

(4) 신성모독과 교만

하나님께서 미워하는’(쎄오스튀게스, 하나님을 조롱하고 거역하며 반대하는 자)

능욕하는 자’(휘브리스테스, 비난자, 해를 끼치는 자, 거만하고 멋대로 행동하는 자)

교만하고’(휘페레노스, 건방진, 교만한, 오만한) 사람으로, 다른 사람을 멸시하고, 자신을 높임.

자랑하며’(알라조나스, 허풍떠는 사람, 헛된 것을 추구하며 잘난 체하며), 스스로를 자랑함.

악을 도모하는’(에퓨레테스 카콘, 악을 창작하여서, 세상을 어둡게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부모님께 거역했다.’(아페이이스, 반항적인, 순종하지 않는, 권위를 거역).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미워하고 모독하며, 교만하고 오만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되고 말았다. 또한 악을 창작하여, 세상을 더 어둡게 만들고, 자기를 낳아 준, 부모님과 권위를 거역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5) 저질스런 행동

우매한’(아쉬네토스: 미련하며 도덕적으로 저질적인), 올바른 판단력이 없어짐.

배약(아쑨쎄투스: 약속을 지키지 않음, 신용 없는), 약속을 쉽게 깨고 지키지 않음.

무정한’(아스토르구스: 애정이 없음, 본능적인 감정마저 마른) 사람이 되고 말았다. 정욕을 따라서 사는 사람은, 우매하고 저질스런 행동을 하고, 약속을 쉽게 파기하는, 신실하지 못한 사람이 되었으며, 인간의 기본 감정마저 사라진, 무정한 존재가 되었다.

무자비한’(아넬레에몬, 동정하는 마음이 없는). 옆에서 사람이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이런 행동들이, 바로 사람들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결과, 나타난 현상들이라고 했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러한 행동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하나님을 떠나, 정욕을 따라 살고 있는, 영적 질병의 증상들이다.

3. 악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고 함(32).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 coming-out

(1) 사람은 이러한 일들이 옳지 않으며, 하나님의 심판인 사형을 받기에, 마땅한 행동임을 알고 있다. 몰라서 짓는 죄가 아니다. 알면서 짓는 죄, 의도적으로 짓는 죄다. 이런 죄는 마귀로부터 오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사형에 해당하는 죄로, 정했음을 알고도, 짓는 죄다.

사형은 육신의 생명만을, 뺏음만 아니라, 죽은 후에 영원한 심판받음을 말한다. 본능적으로, 이런 행동들을 하나님 앞에서 하면, 안 되는 행동임을 알고 있다. 우리도 이러한 일들이,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받는 일임을, 잘 알고 있다.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이, 옳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을, 용납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능적으로, 이러한 일들이 옳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그 일을 행한다.

(2) 타락한 세상 사람들은, 자신만 이런 일들을 행할 뿐 아니라, 이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옳다고 지지한다. 오히려 이들이 옳다고, 옹호한다. 타락한 세상 사람들은, 불의한 행동을 하는 이웃을, 서로 서로 인정함으로, 죄를 합리화하고 격려한다. 그러니 얼마나 완악한 모습인가?

그러나 이러한 불의한 행동은, 악을 더 악화시켜서, 양심을 마비시켜 버린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이방 세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고 말한 이유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이 정하셨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양심을 통해, 본능을 통해서,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합리화시킨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더 나쁜 것은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고 했다. ‘세상이 다 그렇고 그런데, 그 정도 가지고 그래?’하면서, 다른 사람이 저지른 잘못까지도 두둔하는 추악한 세상이 되었다.

동성애를 생각해보자.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지만,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공식적 통계로 30만 이상이 동성애자라고 한다. 은밀하게 하는 사람들까지 다 합치면, 훨씬 더 많은 숫자가, 동성애자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시장으로 출마하는 사람이, 동성애를 두둔하지 않으면, 당선될 수 없다.

그들은 숨어 있지 말고, 밖으로 나와라, coming-out하라고 한다. 세상이 모두 썩어버렸다. 심지어 동성애자들끼리 모인 교회도 있다.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고, 선포하는 목사들도, 동성애를 신학적으로 옹호하는, 썩은 세상이 되었다.

동성애가 허락되자, 일부다처제, 소아(아동)성애, 근친결혼, 수간봇물이 터지듯이, 이러한 행위도 허락해 달라고 나타나고 있다. 도둑과 강도에게도 복음은 필요하다. 그러나 도둑과 강도가 되는 일이, 선천적이니, 허락해 달라고 한다면, 망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자랑거리는 아니다.

왜 인간이 이처럼 타락했나? 근본적인 이유, 문제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해결할 수 있다.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기에, 그 마음에 온갖 정욕들과 더러운 죄악들이, 가득 찰 수밖에 없게 되었다. (11:24-26)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우리 가운데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지내는 분은 안 계신가? 하나님께 마음과 삶을 드리기 바란다.

교회에는 다니지만, 마음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가? 내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셔야 한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실한 마음대신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마음을 우리에게 허락해주실 것이다. 이런 은혜가, 우리 마음에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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