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5년 6월 14- 로마교회를 방문하려는 이유(롬1:7-13)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5-06-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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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교회를 방문하려는 이유(롬1:7-13)
바울은 앞에서, 자신과 복음에 대해 소개했다. 또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인사하며, 로마교회를 위해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하고, 로마교회를 방문할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그 당시 ‘로마’는 세계 최대 도시로, 사람들에게 선망의 도시였다. 법의 원천이었으며, 또한 문명의 중심지였다.
바울은 출세를 위해, 로마를 방문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큰 도시인가를 구경하려고 방문한 것이 아니다. 로마는 종교적으로, 온갖 우상숭배의 근거지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곳에도, 하나님의 백성을 남겨두셨기에, 그들을 구원하고, 세워주려고 방문하려고 했다.
1. 바울의 인사(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1)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로마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중에서, 로마교회 성도들을 사랑하사, 자기백성으로 불러주었다. 이러한 점에서 로마교회 성도들은, 큰 복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성도는 자신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태어나기도 전에 야곱을 사랑하시고, 에서를 버렸다. 이것을 기억하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으며, 또한 자신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갖고,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다.
(2) 로마교회 성도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성도, 즉 거룩한 무리’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 중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별하여, 하나님을 계시할 제사장 나라로 부르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불렀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불렀다. 로마교회 성도들 역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 하나님은 기독교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러서, 높은 신분으로 만들어 주셨다.
이처럼 우리는, 부름 받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살아가는 자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 세상과 복음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3) 바울은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은혜와 평강’을 기원했다. 구약의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기원했다. (민6:25-26)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고 축복했다. ‘은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값없이 주시는 선물을 의미하고,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이 하나님과 화평하게 된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은 ‘은혜’로, ‘죄인인 우리가 값없이 의롭다고, 인정받았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를, 화목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다. 은혜와 평강이, 지금 우리에게 넘치고 있다. 이 사실을 믿고 있는가?
그렇다면 왜 아직도, 버림받은 사람처럼, 낙심 가운데 살아가는가? 그러므로 우리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형제와 이웃들을 향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축복해야 한다. 우리가 이웃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축복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무한한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2. 로마 교회 성도에 대한 바울의 감사와 기도.
로마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에, 은혜를 받은 자처럼, 살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녀의 어떻게 되어야 하나?
(1) 감사(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바울은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의, 신앙 소식을 들었다. 아직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로마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으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믿음의 삶은, 성도들에게 감사와 기쁨을 준다. 그러므로 믿음의 삶이, 온 세상에 알려지기는, 신앙인이 되라.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았으면,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한다. 순서도 첫째가 감사이지만, 내용으로도 가장 중요한 것이 감사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하나님 아버지에게 마땅히,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감사를 드려야 한다. 이러한 소식은, 하나님이 가장 듣기 원하는, 귀중한 소식이다.
바울은 복음의 방해꾼이었기에,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도 받고, 사라라는 직분도 받았다. 그러므로 감사를 드렸다. 우리는 복음이, 더 많이 전파되도록, 하나님께 더욱 감사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2) 기도(9-10).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로, 감사했을 뿐 아니라, 기도했다. 바울은 자기 뜻을 앞세우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앞세웠다. 하나님의 선한 뜻이, 로마에도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했기에, 로마에 가서 성도들을, 만나기를 원했다. 사도 바울에게는, 간절한 소원이 있었다.
어떻게든지 로마에 가서, 성도들을 만나보고, 복음을 전해주겠다는 소원이었다. 그 소원이 얼마나 간절한지, 짐작할 수 있다. 로마 성도들을 그리워하며, 기도할 때마다 쉬지 않고, 그들을 생각하면서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증인이라고 했다.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을 만나 본적이 없지만, 그들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쉬지 않고 기도했다. 후에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이러한 기도의 열매였을 것이다. 속히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한, 응답이었다.
바울은 억지로 하지 아니했다. 내가 로마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로마로 보내준다는 확신이다. 그래서 자기 뜻을 앞세우지 아니하고,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좋은 길, 순리의 길을 찾겠다는 말이다. 우리도 무슨 일을 하든지, 내 뜻을 앞세우지 말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야 한다.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그 사람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함이다.
3. 믿음의 삶의 모습(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이 로마 교회를 방문하려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1)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어, 그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다.
‘신령한 은사’는 (고전12-14장, 롬12장, 엡4장)에서 말하는 ‘성령의 은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은사들은, 바울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직접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바울이 로마교회를 방문해서,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주려던 ‘신령한 은사’는 ‘복음에 대한 가르침이나 권고이었을 것이다. 복음을 가르치고, 권면의 말을 전해서, 로마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견고하게 하려고 했다.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그가 나로 인하여, 견고해져야 한다.
성도의 만남은 서로에게 유익하고, 아름다운 감동을 주어야 한다. 또 바울은 그들에게 은사를 주지 않았다.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자신도 그들을 통해, 피차 안위, 위로 받기를 원했다.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세워주는 동시에, 그들을 통해서 위로받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다. ‘나는 주는 사람이고, 너희는 받는 사람, 나는 가르쳐주는 사람이고, 너희는 배우는 사람이다.’ 이렇게 권위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나도 역시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이니. 서로 믿음의 교제를 통해서, 피차에 서로 세워주고, 위로 받자. 얼마나 겸손한 사람인가? 사도 바울은 겉으로 보기에는, 차갑게 보이지만, 그 속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성도들이 만나면 서로에게, 상처나 아픔을 주어서는 안 된다.
(2) 바울의 방문 계획, 열매(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바울은 여러 번, 로마에 가려고 했다. 복음의 열매를 맺기 위해, 자신의 삶을 다 바친 사람이다. 일생 동안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면서, 마게도냐 소아시아 여러 지방들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잠시도 쉬지 않았다.
부지런한 농사꾼처럼,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이제 곳곳에서, 그가 뿌린 복음의 씨앗이 자라서, 열매를 맺고 있었다. 바울은 로마에서도, 복음의 열매를 거두기 원했다. 사람들은 야망을 갖는다. 공부하러 미국이나 유럽으로 떠난다. 돈을 벌려고 집과 고향을 떠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성공을 위해서다. 바울이 로마로 가려고 했던 이유는, 출세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서, 놀러 다니기 위해서가 아니다. 복음을 위해서다. 지금까지는 로마로 가는 길이, 열리지 않았다. 성도는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을 보면, 빨리 그곳에 복음의 씨를, 뿌리기를 원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복음을 전파하여, 복음의 씨를 뿌리고, 그 열매를 거두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과나무가 사과나무로만 있을 때에는,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지 못한다. 사과나무에는 사과열매가 맺혀야, 다른 사람들이 그 사과로 인하여, 유익을 누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사랑의 열매로, 세상이 그 복을 누려야 한다. 성도들이 예배당 안에서 서로 만나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서로의 믿음을 견고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서로의 믿음이 자라가고, 성품이 변하고, 사고방식이 달라짐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져야 한다.
(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게 되기에, 사랑의 열매가 맺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끼리만 좋아하면 안 된다. 우리끼리만 누리는 열매가 아니라, 예배당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것이 성도들의 교제다. 물이 언제 썩는가? 고여 있으면 썩는다. 머물러 있으면 썩는다. 나만 보기 시작하면, 나눌 수가 없다.
나를 벗어나서, 다른 사람을 볼 줄 알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줄 때,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착각하면 안 된다. 열매를 맺어서, 내가 가지려고 하기에, 문제가 된다. 성경적인 열매의 의미는, 나누어 주는 것이다.
성도들이 교회와 목장에서 만나는 이유는,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함도 있지만, 서로를 세워주려는 만남이 되어야 한다. 성도들이 서로 만났을 때, 서로 비난하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은사를 서로 나누어주어, 견고하게 세워주고, 안위함을 주어야 한다.
민수기 13장을 보면, 모세는 자손의 수령된 사람들을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와서, 보고를 하는데, 상반되는 2가지 보고를 하게 된다. (민13: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안돈시켜)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반대로 (13:32-14: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하면서 격동시켰다.
우리 성도들은 서로 만나서, 교제를 나누는 이유는, 믿음을 세워주고, 분노를 풀어주어, 조용하게 만드는, 안돈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아름다운 열매가 맺혀지게 된다. 우리 성도의 만남과 교제에는, 이런 아름다운 교제로, 좋은 열매가 맺혀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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