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5년 6월 7- 바울이 전하는 복음(롬1:1-7)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5-0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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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전하는 복음(롬1:1-7)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에 보내는 편지다. 당시에 로마에는,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었다. 로마교회를 개척한 사람들은 바로,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왔다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서, 회개하고 침례를 받았던 성도들이, 로마에 돌아와서 세운 교회였다. 사도들이 세운 교회가 아니었다.
이때까지는 어떤 사도도,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 로마교회 안에는, 유대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대인보다 오히려, 이방인이 더 많이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여러 가지 신학적, 문화적 차이가 있었다. 바울은 복음의 핵심을 설명하기 위해, 로마서를 썼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편지를 썼다. 다른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와는 달리, 로마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서론을, 매우 길고 자세히 썼다. 바울은 로마교회를 직접 세우지 않았기에, 그들은 바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본론을 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자세히 소개했다.
1. 사도 바울, 그는 누구인가?(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현대인은 편지를 쓸 때, 먼저 ‘○○에게’라고 쓰고, 그 후에 ‘○○올림’이라고, 자기 이름을 밝힌다.
그러나 바울이 살았던 당시에는, 반대로 자신을 먼저 소개하고, 끝에 받는 사람의 이름을 밝혔다. 바울도 이러한 당시 관례를 따라서, 로마에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을 먼저 소개했다. 자신을 어떻게 소개했나?
(1) ‘종’(둘로스).
정확히 말하면 ‘노예’다. 바울 당시에 ‘노예’는, 주인의 소유였기에,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었다. 노예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인이 시키는 일 뿐이었다.
당시에 주인은, 노예의 생명을, 마음대로 처리 할 수 있었다. 노예는 짐승보다, 조금 나은 정도로 대접받는, 비참한 존재였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자신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자기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헌신된 존재임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종은, 비천함을 가리키는 동시에, 명예로운 의미도 있다. ‘종’은 비천하지만 않았다. 구약은 모세와 여호수아를 비롯한, 신앙의 위인들을 ‘여호와의 종’이라 했다. 이스라엘 백성을 ‘나의 종’이라 부르기도 했다(사43:1, 10).
‘여호와의 종’은 하나님이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 특별히 선택하여 세운 사람이나, 집단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종은, 명예로운 이름이기도 했다.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소개한 이유는,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는 말이다. 종은 겸손과 영광을, 동시에 가진 이름이다.
(2) 사도
‘사도로 부름 받았다.’고 했다. ‘사도’(아포스톨로스)는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12제자를 선택하고, 그들을 ‘사도’라 불렀다(눅6:12-13). 사도는 이런 자격이 있어야 했다.
① 예수님이 친히 부른 사람. ②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 ③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도록, 위임한 사람을 말한다. 예수님을 대신하는, 자격을 위임받고, 파송된 사람이다. 그러나 사실 바울은, 예수님의 12사도에는 들지 못했지만, 자신을 ‘사도’로 소개했다.
그 이유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울에게 직접 나타나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책임을, 위임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예수님의 12제자 명단에, 들지 않았지만, 분명히 부활한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사도로 임명받았다.
바울은 ‘종’인 동시에 ‘사도’로 소개했음이, 특별히 인상적이다. 두 칭호는, 크게 대조되는 칭호다. ‘종’은 겸손한 위치를 강조하는 칭호지만, ‘사도’는 보낸 사람을 대신하는, 특권을 강조하는 칭호다. ‘종’은 그리스도를, 주로 모신다는 일반적인 말이고. ‘사도’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칭호다.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대조적인, 두 가지 이름을 동시에 사용하여,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이러한 이름을 통해서, 자신이 예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는 종인 동시에, 복음을 위임받은 사도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3) 복음을 위해 택정되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소개했다. 바울은 복음을 변호하고, 복음을 보존하고, 선포하기 위해, 택정함을 받았다. ‘택정함을 입었다!’는 ‘특별히 구별되었다.’는 의미다.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특별히 구별된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렘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여기서 ‘성별하였다.’가, 바울이 로마서(1:1)에서 말한 ‘택정함을 입었다.’는 말과 같다. 예레미야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위해 구별되었던 것처럼, 바울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특별하게 구별되었다. 자신이 전할 메시지를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바울이 전할 복음은,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인간의 메시지가 아니었다. 그리스도가 주신, 거룩한 메시지였다. 구약의 선지자들도 자기 사상이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전했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에는, 신적인 권위가 있었다.
바울도 자기 사상이나 생각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계시해주시고 맡겨주신, 복음을 전해야 했듯이, 우리도 하나님이 계시하신 복음을 전해야 한다. 따라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도, 신적인 권위를 갖고 있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죄인을 위해, 하나님이 친히 준비한, 구원의 메시지였다.
2. 복음의 내용(2-3).
(1) 복음의 기원은 하나님이다(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것’이라 했다. 그의 아들에 관해, 성경에 미리 약속했다고 했다. 복음은 즉흥적으로 주어지지 않았다. 이미 창세전에 계획되어 있었다.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약속대로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약속했다. 하나님은 성경대로, 그 아들을 보내주셨다.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을 빼면, 복음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복음은 인간의 사상이나 이론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해 준 것이었다.
교회는 인간의 생각이나 이론, 또는 인간이 만든 종교들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잃어버린 이 세상을 위해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을 전하고, 가르쳐야 한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목숨을 걸고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듯이, 교회도 하나님이 약속한 복음을 전해야 한다.
(2) 성경이 복음을 증언한다(2).
복음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해주셨다.’고 했다. 바울이 받은 복음은, 갑자기 주어진, 새로운 것이 전혀 아니다. 하나님이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고하고 증언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구약과 신약의 메시지는, 통일성이 있다.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이처럼 구약성경은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한다고 했다.
예수님은 (단7장)에 언급된 ‘인자’와 (사53장)에 언급된 ‘고난 받는 종’을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예수님은 여러 번 제자들에게, 자신이 구약에 예고된 대로, 고난을 받고 부활할 것이라고 했다(눅24:25).
그리고 베드로도, 오순절에 성령이 오셨을 때에,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성령 강림이 구약 예언의 성취였다고 했다(행2:14절 이하). 이와 같이 복음은, 이미 구약 성경이 미리 증언하고, 약속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일은, 예수님을 전하는 일이다.
(3) 복음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다(3-4).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복음은 ‘그의 아들, 곧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이라 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이 복음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것은, 더 이상 복음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바울은 예수님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셨음을 말한다. 예수님은 인간적으로 보면, 다윗의 후손인 요셉의 아들이다(마1장). 하나님은 오래 전부터 성경에,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라고 예고했다.
예수님은 다윗의 혈통으로 세상에 오셨고,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죽었다. 그러나 죄가 없는 분이기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해서,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었다.’ 부활은 예수님의 신성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구원자라고 하는 자들이, 이 땅에 많이 있지만, 그들이 구원자가 될 수 없음은, 부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셔서,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포했다. 부활 전에는 연약하고, 낮은 가운데에 계셨지만, 부활 후에는 하나님 우편에서, 세상을 다스리신다.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소개하고 있다. ‘주’(퀴리오스)는, 당시에 로마 황제에게 붙여진 칭호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 삶을 통치하고 주관하는 예수님은, 로마황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다.
예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을 알 때,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다. ‘예수’는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한, 가브리엘 천사가 전해준 이름이다. ‘구원’이라는 의미이며, 세상을 구원할 분임을 말해준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임을 믿을 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또한 ‘그리스도, 메시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인류의 구속자로 성령을 부어 세워주셨다. 복음은 우리의 삶을 주관하는 주인이시며, 인류의 구속을 위해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이다.
3. 복음의 목적(5-6).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1) 복음의 목적은, 예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하는 것이다(5上).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고 말했다. 바울을 부르고,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였다. 바울은 원래,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사람이었다(행22:8).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은혜를 주셔서, 사도로 불러주었다. 바울이 사도가 된 이유는, 하나님의 큰 은혜 때문이었다. 은혜는 받을 자격도 없고, 아무런 공로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베풀어주는 사랑을 말한다. 죽어 마땅한 죄인이지만, 버리지 않고,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고, 영광스런 천국기업을 이을 수 있게 해주었으니, 이것이 바로 은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은혜를 베풀어줄 뿐 아니라, 귀한 직분을 주셨다. 목사의 직분, 장로의 직분, 권사의 직분, 집사의 직분을 허락해주셨다. 얼마나 소중한 직분인가?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사람만이, 주어진 직분에, 충성할 수 있다. 왜 직분을 주셨는데,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지,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귀한 직분을 주신 이유가 무엇인가?
바울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직분을 받았다고 했다. 바울이 부름을 받은 이유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나 혼자 폼 나게 살라고, 내 이름을 빛내려고 주신 직분이, 결코 아니다.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은혜와 직분을 주셨다.
이러한 원리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고, 주님의 이름을 전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기 영광이나, 이기적인 목적을 추구할 수 없다.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높이고, 그 분의 이름을 전해야 한다.
(2) 복음의 대상은 모든 사람이다(5中).
바울은 자신이 ‘모든 이방인을 위해’ 부름 받았다고 말했다. 특정한 개인이나, 특정한 민족을 위해서, 사도로 부름 받지 않았다. 복음은 유대인만 아니라, 모든 민족을 위한 것이다(16).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위해, 바울을 사도로 불렀다. 이방인 중에는, 로마교회 성도들도 포함된다(6). 복음은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인종, 민족, 사회적인 편견과 배타심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사람들을 구별하지 말고, 누구에게든지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3) 복음의 목적은 믿음과 순종이다(5下).
바울은 이방인들이 ‘믿고 순종하게 하려고’ 부름 받았다. 복음은 복음을 듣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믿음과 순종을 요구한다. 복음은 복음을 믿고, 구원받기 위해서다.
복음은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예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기 위해서 주어졌다. 율법은 외식과 자기 행위를 자랑하지만, 복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게 만든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하나님께 드린 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복음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만든다. 복음의 목적은, 사람들이 믿고 구원을 받고, 또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지금까지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설명을 해왔다. 이제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한다. “너희도 그들 중에서”라는 말은 “너희가 이방인들 중에서”라는 말이다. 당시에 로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복음을 받아 누리지 않았다.
그 가운데 몇 사람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고, 부름을 받은 사람들만이, 복음을 받아 누릴 수 있었다. 복음을 받아들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기에, 예수님이 발걸음을 예비해주고, 내 모든 삶을 책임져주신다.
결론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름 받았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마지막을 장식한다.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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