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5년 3월 22일 - 불의한 재판을 당한 예수님(마26:57-68)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5-03-22 |
첨부파일: 불의한 재판을 당한 예수님.hwp(39K) |
불의한 재판을 당한 예수님(마26:57-68)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마치자마자, 그 날 밤, 한 밤중에 체포되었다. 이는 불법적인 체포였음을 보여준다. 그날 밤에, 급조된 불법재판에 따라, 십자가 사형언도를 받았다. 세 번의 재판 모두, 불법적인 재판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불의한 재판이었다.
1.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끌려감(57).
“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예수님을 결박당한 채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냈다. 가야바는 당시에 대제사장이었다.
AD 18년-37년까지, 약19년 동안 대제사장으로 있었다. 당시 대제사장의 임기가, 4년이었다. 매우 오랫동안, 대제사장 자리를 지켰다. 외교적 수완과, 행정력이 뛰어나서, 로마당국과, 적절한 처세술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산헤드린은 이스라엘 나라의 최고 결정기관이었다. 예수님이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심문하려고, 세력가들이거나 부유한 지주들인 장로들과, 율법전문가인 서기관들로 구성된, 70명 회원들의 의장인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 즉시 모였다.
회원1/3, 24명만 모이면, 산헤드린 회의를 열 수 있었다. 산헤드린은 피고인을 보호하고, 공정한 판결을 할 수 있도록, 엄격한 법적규정이 있었다. 회의 장소는, 공정한 판결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설치되었다. 은밀하게 재판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되었다.
부정한 모의를 하지 못하도록, 밤에는 할 수 없다. 특별한 이유로, 밤에 결정했다면, 새벽 이후에 다시 산헤드린에서, 공식적인 인가를 받아야 했다. 사형과 같은 중대한 일을 다룰 때에는, 이를 신중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며칠씩 시간을 두고 결정했다. 절기에는 열수 없었다.
심문과정을 보면, 산헤드린 회의원칙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회의를 열 수도 없는, 유월절에 소집되었고, 은밀한 장소에서, 심문이 진행되었다. 또 밤에 은밀히 모여서, 재빠르게 판결을 내리고 말았다. 이는 예수님의 심문이, 얼마나 불법으로 처리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그들은 정직한 마음으로, 예수님은 판단하지 않았다. 죽이려고, 이미 결의했다. 죽이려는 증거를 찾기에 급급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무리들의 저항을 막기 위하여, 신속하게 처리했다. 예수님을 심문한 회의는, 불법적인 날치기회의다.
(58)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베드로는 예수님을 가까이 따라갈 용기가 없었기에, 멀찍이 따라갔다. 그래서 나중에 배신하게 된다. 기도에 실패하면, 위기의 순간에 용기를 잃고, 비겁해진다.
(59-61)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증거를 찾으매, 거짓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이르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유대 재판제도는, 우리나라 재판제도와 조금 다르다.
유대에는 검사가 없다. 검사대신에, 죄 짓는 것을 목격한, 2명 이상의 증인이 필요했다. 증인들의 말이 일치해야, 재판을 열 수 있었다. 증인들이 재판에 먼저 나와, 피고인이 죄를 증언하면, 그 후에 피고인이, 증인의 말에 변론을 했다. 그리고 산헤드린 회원들이, 함께 의논하고, 최종판결을 내렸다.
그날 밤에 예수님을, 고발한 증인들은 많았지만, 말이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너무 급하게 모여서, 말을 맞출 시간이 없었기에, 더 이상 재판을, 진척시킬 수 없었다. 그때 다른 증인이 앞으로 나와 ‘예수님이 성전을 헐고, 3일 만에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잘못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는 성전 되신 예수님이 죽으면, 3일 만에 다시 살아난다는 말이다. 유대인은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을 매우 신성하게 여겼다. 따라서 성전을 무너뜨리고, 3일 만에 다시 짓겠다는 말씀은, 성전모독 죄에 해당하지만, 또 증언한 사람들도 말이 일치하지 않았기에, 예수님을 유죄를 증명하지 못했다.
2.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가?(62).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증언이 일치하지 않아서, 증언이 채택되지 못하고, 피고인의 말을 듣는 순서로, 넘어갔다.
유대인의 재판에는, 증인의 고소가 있은 후에, 피고인의 변론을 듣는 순서가 있다. 그러나 증인의 고소가, 아직 채택되지 못했기에, 피고인의 변론을 들을 수 없었다. 예수님은 증인들의 말이, 서로가 일치하지 않으니, 변명할 필요가 없었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
이사야는 이런 모습에,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사53:7上)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예수님은 얼마든지, 그들의 거짓을 폭로하고, 진실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침묵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다렸다.
계속 침묵하자, 대제사장은 당황해서, 예수님을 유죄로 몰아넣으려고 질문했다. (63)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먼저 가야바는 예수님께 ‘하나님 앞에서,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맹세하라.’고 했다. 이는 재판에서, 피고가 진실을 말하겠다는 서약이었며, 처벌도 받겠다는 말이다. 또 예수님께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했다. ‘네가 하나님 같이, 신적인 속성을 지닌 존재냐?’는 말이다.
예수님이 ‘그렇다’고 대답하면, 대제사장은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로 기소할 수 있다. ‘네가 성경에 약속된, 그리스도, 메시아라고 했다는데, 그 말이 사실인가?’고 말했다. ‘네가 구약에 약속된,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냐?’는 질문이었다. 예수님을 정죄할, 합법적인 근거를 찾으려고, 이런 질문했다.
예수님이 이 질문에 긍정하면, 신성모독죄와, 반란죄로 기소될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대답을 기다렸다. (6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대제사장의 음흉한 계획을 알았지만, 예수님은 신성과, 메시아 되심을 침묵하거나, 숨기지 않았다. 예수님은 ‘네가 말하였다.’며, 가야바의 말에 긍정했다. 그 동안은,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만 말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숨겼지만, 더 이상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란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만일 이때 예수님이 침묵했다면, 거짓말을 말함과 같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로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증언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예수님의 대답은 대제사장의 질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려고, 인간으로 왔다. 예수님이 돌아가시지만,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게 된다고 예고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면, 다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 너머에 있는, 영광스러운 미래를 보고, 산헤드린 회원들에게, 장차 하나님 우편에서, 세상을 다스리다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구름을 타고 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 선언은 (시110:1, 단7:13)에 기록된, 메시아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된다는 말이다.
산헤드린 회원들은, 예수님의 증언을 듣고, 신성모독을 하는, 죄인으로 간주했다. 예수님이 신성을 가졌고, 그리스도라 함을 들었으니, 더 이상 심문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정죄하고, 사형을 언도했다. 따라서 그들은, 심판 날에 아무 변명을, 할 수 없다.
3. 신성모독 죄니 사형에 해당한다(65-66).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 모독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대제사장은 예수님의 입으로, 자신의 신성과, 그리스도임을 인정하자, 매우 기뻐했을 것이다. 자기들이 원하는 증언을 들어, 기뻤지만, 기쁨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신성모독 죄를 범한 자의 말을 들으면, 옷을 찢고, 큰 분노를 표시함이, 관례였다(왕하1:37).
랍비의 규정을 보면, 율법이 중대한 위협을 받을 때, 법관이 일어나서, 옷을 찢도록 규정하였다. 이런 경우에 율법은, 옷을 찢는 부분이나, 길이에 대해, 세밀하게 규정하였다. 모세는 신성모독적인 말을 한 사람을 보면, 그를 돌로 쳐서, 제거하라고 명령했다(레24:16).
예수님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말을 들은 대제사장은, 더 이상의 증거를, 찾을 필요가 없다고 여겨,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를 범한, 중범죄자로 몰아갔다. 예수님이 신성모독 죄를 범했다고 한 후, 대제사장 가야바는, 산헤드린 회원들에게,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뇨?’고 물었다.
그러나 산헤드린 회원들은, 예수님의 사형을 결정했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생사가 걸린 시점에, 신중하게 재판을 진행하지 않았다. 선동하듯이 분위기로 몰아가, 예수님에 대한 사형판결을 이끌어냈다. 산헤드린의 사형판결은, 신성모독을 규정하는 (레24:16)을 근거로 했다.
그러나 이 판결은, 여러 가지가 불법이다. 탈무드를 보면, 산헤드린은 생명을 죽이기보다, 구하는 일에 힘써야 했다. 궐석판결을 금했고, 다수의 동의가 아니라면,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했고, 사형을 선고하려면, 같은 날에 하지 못하게 하는, 판결 원칙을 가르쳐 왔다.
이런 판결원칙은, 죄인에게 가능한 자비를 베풀기 위한 것이요, 잘못을 방지하기 위한 법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이미 죽이기로 결정했으니, 산헤드린은 자비의 정신을, 적용하지 않았다. 산헤드린 법은 이렇게 말했다. ① 심문은 반드시 낮에 하고, 해지기 전에 끝마치라,
② 무죄인 경우는, 심문 날에 선고하고, 유죄인 경우에는, 다음날 선고해야 한다. 그러나 산헤드린은, 이러한 법규들을 어기고, 조급하게 예수님의 심문했다. 예수님을 심문한 당일에 선고하였고, 바로 그 날에 형을 집행했다. 사형 죄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자비가 없이, 예수님에게 모욕과 수치를 주었다.
(1) 모욕과 수치를 당한 예수님(67).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공회회원 중에 몇 사람은 분노하여,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런데 이러한 모욕과 수치는, 성경에 예고되었다.
(사50: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인간이 당할 수 있는, 최고 악한 수치를 예수님께 안겨주었지만, 예수님은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부끄러움이 없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얼굴에 침 뱉음이, 인간이 당할 수 있는, 최악의 모욕이었다(민12:14, 욥30:10). 그들은 예수님을 자기 손아귀에 넣고, 할 수 있는 한 예수님에게, 큰 정신적 피해를 주려고 했다. 예수님을 희롱했고, 때렸으며, 또 비방했다. 예수님의 무죄를 증명하는 재판이다.
(2) 선지자 노릇을 하라(68)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그 후에 그들은 예수님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주님을 치고, 누가 너를 때렸는지, 알아 맞혀 보라고 조롱했다.
‘네가 정말 선지자라면, 눈을 가렸어도, 너를 때린 사람을, 알 수 있다.’면서 조롱했다. 재판관들은 정의를 시행하고, 자비를 베풀어야 했다. 또한 그들은 지도자로서 마땅히 사형 판결을 받은 자에게 마땅히 사형에 처한 자라도, 자비를 베풀어야 했다. 그러나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한 것이었다.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의 예언을 정확하게 성취했다.
예수님에 대한 산헤드린의 판결은, 불법적인 회의였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임을 분명히 증언했으나, 유대인들은 이를 믿지 않고, 예수님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예수님은 이런 일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정한 길임을 알았기에, 변명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고난을 당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약의 모든 예언의 말씀이, 일점일획도 빠짐없이 이루어졌다. 이는 하나님의 신실성과, 성경 말씀이 정확하고, 오류가 없음을 확실히 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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