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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5년 2월 15일 - 향유를 부은 여인(마26:6-13)
  작성자 : 이건기 작성일 : 2015-02-15
  첨부파일:   향유를 부은 여인.hwp(37K)

향유를 부은 여인(26:6-13)

 

지난주에 예수님은, 유월절 이틀 전에,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팔리게 된다고 예고했다. 예수님은 인류를 위한, 속죄제물이 되기로 굳게 결심했다. 바로 그 순간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대제사장의 집에 모여서,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의논하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처치하되, 민란이 일어날 것을 염려해서, 유월절에는 예수님을 체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가룟 유다의 배반사건이 그 뒤에 나온다. 이러한 사건 사이에, 복음서 기자들은, 음모와 배반사건 사이에, 한 여인의 감동적인 헌신에 대한 기사를, 삽입하고 있다.

음모와 배반이 검은색이라면, 여인의 헌신사건은, 어둠을 비추는 빛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지도자들이 음모의 독을 뿜어내고 있을 때에, 여인의 헌신은 그 독소를 제거하는, 해독제 역할을 하고 있다. 복음서에는 한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기름을 부은 2가지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7:36-50)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 갈릴리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이 사건은 시몬이라 부르는, 바리새인의 집에서 일어났다. 이 여인은 죄인으로 소개되는데,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그 발을 닦은 후, 그 발에 입을 맞추고, 마지막으로 향유를 부었다.

(26:6-13, 14:3-9, 12:1-8)에 기록되어 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사역의 말기에, 베다니에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일어났다. 마태와 마가는 여인이, 귀한향유를 가져다가, 예수님 머리에 부었다고 기록하는 반면, 요한은 향유를 발에 붓고, 머리털로 그 발을 씻었다고 기록했다.

이러한 광경을 보고, 가룟 유다가 향유를 허비한 것을 책망하면서, 비난한 사건이 소개되고 있다. 그때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녀를 그대로 두라고 지시한 후에, 복음을 전할 때마다, 그녀의 헌신 사건을 전하여, 기념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1. 참된 헌신(6).

예수께서 베다니(+ 아니, 가난한 자의 집),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12: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요한은 이 사건이, 유월절 엿새 전에, 베다니에서 일어났다고 했다. 그러나 마태와 마가는 유월절 이틀 전에 일어난, 유다의 배신행위와 함께, 이 사건을 기록했다. 아마 이 사건은, 요한의 기록대로, 유월절 6일 전에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마태와 마가는, 이 여인의 헌신과 유다의 배신을, 극적으로 대조하기 위해, 함께 기록했을 것이다. 실제 이러한 배열은, 십자가를 향해 가는 길에 놓인, 빛과 어두움의 세력을, 극적으로 대조해주고 있다. 유월절 6일 전에 예수님은, 베다니에 도착했다.

요한은 그 곳이,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준, 나사로가 있는 동네였다고 소개했다(12:1). 예수님께서 그 집에 도착했을 때, 그 집에서는 예수님을 위해, 잔치가 열렸다. 그때 마르다는, 잔치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사로는 예수님이 계신 곳에, 함께 앉아 있었다(12:2).

마태와 마가 요한은, 이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 대해, 조금씩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마태와 마가는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이,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이었다고 소개하였다. 그러나 요한은,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이, 나사로와 마르다, 그리고 마리아의 집이었다고 했다.

이 기록에 근거하여, 나병환자 시몬이, 나사로의 누이인 마르다의 남편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추측이 맞는다면, 시몬은 나병환자였다가 예수님을 통해, 고침 받은 후에, 마르다와 결혼한 남자다. 그렇지 않으면, 나병환자 시몬이 누구이며, 왜 그를 나병환자 시몬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없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순례자가, 마지막으로 머무는 휴식처다. 예루살렘에서 약2km정도 떨어진 곳에 감람산에 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있는 동안, 감람산 뒤에 있는, 베다니에 있었다. 예수님은 유월절 6일 전에,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마르다)의 집에서 식사했다.

유대 계명에 의하면, 유월절 만찬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정결한 사람이어야 한다. 따라서 당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앞두고, 자신을 정결하게 유지하기 위해, 부정한 장소에는 가지 않고, 부정한 물건과도, 접촉하지 않았다. 따라서 고침 받았을 것이다.

(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그때 한 여인이,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왔다. 그 향유를 식사하는,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 이때,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이,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였다고, 기록했다(12:3).

나사로의 가정은,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받은 가정이다. 예수님은 친히, 죽은 나사로를 살려주셨으며, 또한 마리아의 형부인, 시몬의 나병도 고쳐주었다. 마리아와 마르다 역시,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이들은 얼마 전에, 오라비가 죽었던 일로 예수님을 원망했다(11:21, 32).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를 책망하지 않고, 오라비를 살려주었다. 그때 예수님의 은혜와 감격을, 잊을 수가 없어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예수님의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마지막 주간에, 수난에 대해 예고해주었다.

예수님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마리아는, 예수님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예수님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 동안, 예수님께 받은 은혜를, 꼭 보답하고 싶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들 중에서, 가장 귀한 향유를 예수님께 드리기로 결심했다.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길 기회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가 가진 가장 귀한 것을, 예수님께 드리기로 결심했다. 이러한 점에서, 마리아의 헌신과 가룟 유다의 배신사건은, 극적으로 대조했다.

마가와 요한은 이때, 마리아가 부은 향유는 순전한 나드 한 근이었다고 했다. 나드는 인도에서 자생하는 뿌리에서, 추출한 값비싼 향유였다. 이 향유는 매우 귀해서, 향기를 보존하려고, 용기 속에 넣고 밀봉했다. 대개 이 향유를 담는 그릇은, 주전자 모양으로, 옥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 향유를 사용할 때에는, 보통 주전자의 목 부분을 깨고, 향유를 부었다. 이렇게 한 번 사용한 나드 향은, 다시는 사용할 수 없었기에,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했다. 이러한 고급 향유는, 어머니가 딸에게 전해 주는 가보였다.

일반적으로 팔레스타인에서는, 잔치에 초대한 주인이, 손님머리에 향유를 부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향유는, 값이 싼 것이었다. 그러나 마리아가, 예수님께 부은 향은, 순전한 나드향으로 매우 값비싼 것이었다.

2. 헌신에 대한 비난(8-9).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유대인은 구제가,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는, 외적인 표시였다.

그때에 제자들은,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 것을 보고, 분노했다. 마태는 이때 분노한 사람들이 제자들이었다고 소개하고 있고, 마가는 어떤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요한은 이때 분노한 제자를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라고 말하고 있다(12:4).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 것을 보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예수님의 재정을 맡고 있었다. 그 여인에게, 그 향유를 팔아서 구제함이, 더 나았다고 했다(12:5). 대개 유대인들은 절기 때에, 구제행사를 함께 병행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유다의 비난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룟 유다에 의하면, 그 향유는 약300데나리온의 가치가 있었다(12:5). 300데나리온은, 노동자가 300일을 일해야 버는, 큰돈이었다. 하루 임금을 10만원으로 계산하는 경우, 300데나리온은 3,000만원에 해당했다.

이 돈은 가난한 여인에게는, 큰돈이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재정을 담당했다. 겉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을 핑계 댔지만, 사실 그 돈을 훔쳐가려고 생각했다(12:6). 요한은 가룟 유다를 도둑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므로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 것을 보고, 허비한다며 분노했다.

마리아가 이렇게 엄청난, 헌신을 할 수 있었던 뿌리는 무엇인가? 마리아는 많은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해 듣고, 말씀의 큰 은혜를 깨달았다. 오라비가 죽음에서 구원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은혜의 과정을 거치며, 예수님께 사랑받는 여인이 되었다.

즉 은혜 위에, 은혜가 넘치는 여인이 되었다. 차고 넘치는 은혜를 받았던 여인이었다. 그래서 300데나리온의 향유가, 다른 사람의 눈에는 엄청나게 비싸 보였지만, 마리아는 은혜를 충만해 받았기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졌다. 은혜를 올바로 받은 자가, 헌신할 수 있다. 구호로 안 된다.

그러나 예수님의 답변은 (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그녀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말씀했다. 예수님은 그녀가, 자신을 위해 좋은 일을 했다고 말씀했다.

헬라어에는 선하다는 말이 2가지 있다. 도덕적으로 선하다는 말을 표현하는 데에는 아가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선할 뿐만 아니라, 외형적으로도 아름다운 것은 칼로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좋은 일을 했다칼로스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헌신이, 도덕적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렇게 선하고 아름다운 헌신이, 비난을 받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예수님은 그 상황에서 구제하는 일보다, 자신을 위해 향유를 부은 일이, 더 적절한 일이었다고 말씀했다.

(11-12)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든지, 그들과 함께 있기에, 언제든지 원하면 구제할 수 있다고 말씀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곧 죽음을 맞기에, 다시는 예수님께 헌신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상황에서 마리아가 행한 일은, 옳은 일이었다고 변호해주었다. 예수님은 그녀의 헌신을, 자신의 시신을 위해, 장례를 준비한 일로 받아 주었다.

제자들은 서로 높아지겠다고, 다투고 있었고, 유다는 예수님을 팔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을 이해하고, 힘을 다해 예수님께 헌신했다. 따라서 제자들이 이러한 여인을 비난하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3. 보상을 받은 헌신(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마리아는 순수한 사랑을 가지고,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깨닫고, 최선을 다해서,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러한 마리아의 헌신에 대해, 최상의 보상으로 갚아주셨다. 예수님은 그녀가 자신의 부활과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었다.

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 이 여인의 헌신도 함께 전하여, 기념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 여인이 드린 향유는, 과부가 드린 두 렙돈과 같은, 진정하고 참된 헌신이었다. 그녀의 헌신은, 예수님을 감동시켰으며, 또 그것을 듣는 성도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녀의 헌신을 기록하여, 성도들에게 전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도 그녀가 행한 일을 읽고, 그녀가 드린 헌신을 기념하면서 기리고 있다. 마리아가 향유를 붓는 사건은, 역사상 딱 한 번밖에 없는, 종말론적인 사건이었다. 십자가를 지기 전에, 행한 일이다.

만약 그때 마리아가 향유를 붓지 않았다면, 부을 수 있는 기회는, 평생 없었다. 한 번 온 기회에, 마리아가 헌신함으로써, 예수님을 장사를 기념하는, 아름다운 일을 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것은,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셔야 할 수 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 앞에서, 헌신할 수 있는 기회는, 몇 번 되지 않는다. 그때를 붙들어야 한다. 우리의 드림이, 하나님께 영광의 드림이 될 때가 있다. 그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마리아가 향유를 부었을 때, 그 향기가 주변으로 퍼져나갔던 것처럼, 우리의 헌신도 세상으로 퍼지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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